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 창단 5주년 기획 공연 ‘GAMMA’의 두 번째 막을 연, 최호종 안무가의 〈Virgin Soil〉은 한동안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정박되지 않는 흐릿한 형체들의 흐름, 그 가운데 일정 정도의 정동 정도만이 감지된다. 이러한 분위기는 처녀지를 뜻하는 제목을 따른다면, 되도록 형상(figure)적인 것들을 불명확하게 만듦으로써 일종의 배경(ground)으로서 장소를 강조하는 의도적인 전략에 의거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대지의 특징이 명확해지는 건 트로이의 목마를 재현한 커다란 구조물이 무대 오른쪽에 들어오면서부터인데, 그조차도 고정된 목마를 제외한 나머지를 뚜렷하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목마가 변함없는 형상을 유지하는 것처럼 실제 그 목마에 숨어 있던 존재는 등장하지 않지만, 그 목마를 탄 이와 함께 거대한 그림자가 무대를 덮으면서 중앙의 존재들이 그로부터 침식되는 사태를 맞게 된다.
트로이의 목마와 같이 재현의 상징적 도상에 따라 서사의 일단을 공유함은 움직임의 명확한 형상을 대체하는 효과를 낳는데, 이는 막이 오르기 전 막 뒤에 숨어서 빠끔히 다리를, 이어 얼굴을 내미는 여자는 하모니카를 문 채 막의 중앙에 이르고, 별도의 조작 없이 몸의 장단을 연주로 잇고, 호응을 유도하는 것에서부터 명확하다. 시종일관 웃음을 띠지만, 다리가 살짝 꺾이는 고통을 감내하는 모습을 순간 보이고 이는 어긋난 음가의 소리로 곧장 이어지고, 약간의 지연 후에 연주를 이어 나간다. 전반적으로 이 명확히 주의를 끄는 몸짓은 주의 자체를 그 표면에 부착시키고 막 뒤의 세계를 유예하는 눈속임 전략이라는 점에서, 목마의 작은 조각 버전으로서 그것을 선취한다고도 하겠다. 그리하여 막이 걷히며 ‘순식간에’ 드러난 그야말로 스펙터클은 그 모든 것이 정비되어 있었다는 점(을 감춘다는 점)에서 성립하는 부분이다.
목마 앞에 자리한 여성의 의례적인 몸짓과 표정의 표지를 제하면, 의도적으로 희석되는 그 앞의 움직임들은 음악의 모호한 양식에 힘입은 바 큰데, 몇 번의 분절을 겪는, 배경의 주조음 위에 흩뿌려지는 형상으로서 멜로디는 그 강세를 둘 중에 어디에 두어야 할지 자체를 묘연하게 한다. 목마를 대체하는 형상, 누인 두 사람이 한 사람 위에 올라타 엇갈린 방향으로 결합해 이동하는, 마치 말의 뒷걸음질을 본뜬 무대 왼편에서의 이동으로부터 어쩌면 이 목마의 영향력을 벗어나게 되는데, 마찬가지로 치실 같은 오브제를 입안 좌우로 왔다 갔다 뜨는 여자의 몸짓에서 그 오브제는, 앞선 하모니카의 대체재 같은 인상을 준다.
이러한 입속 모양을 오브제 없이 옮기는 예외적 존재인 배진호의 좌측 바닥 위의 조명을 사선으로 받으며, 뒷걸음질과 좌우 방향 전환과 반복으로 이어지는 고독한 몸짓에서 집단적 움직임으로 확장되면서부터 형상은 자신을 지정할 준비를 갖춘다.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몸의 축을 유지한 채 세부만을 초점화하는 대략적인 움직임의 개요는, 앞선 더딘, 묘연한 대기를 극단적으로 그렇지만 압축된 긴장 아래 그야말로 ‘조용하게’ 폭발시키는 것과 같은데, 절단된 분출, 또는 아슬아슬하게 균형 잡힌 몸의 토대에서 세부로의 이행은 짧은 순간 흩어진 형상의 잔해들을 완전히 동결시킨다.
그 가운데 목줄을 찬 존재들은 말미에 이르러 새된 소리를 내는데, 그 이후에 배진호는 더 크게 소리를 지르는 몸짓에 갇힌, 그렇게 장면이 닫힌 채 막을 맞는다. 여기서 처음 막이 열리고 등장한 웨이트리스가 쟁반의 덮개를 열며 나온 커틀러리가 땅에 떨어지게 된 것이 아마도 단서였을 텐데, 턱 아래와 양쪽 쇄골 사이에 꽂은 포크―무대 뒤쪽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연습 사진에서는 숟가락으로 대체되었던―를 지지하는 목줄 같은 밴드의 연결로 인해, 그 소리는 경감되거나 변형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것이 한층 더 가시화된, 뚜렷하게 목줄을 하고 있는 배진호의 경우, 소리는 안으로만 들리는 결과를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곧 소리는 증폭돼 보일 뿐이다.
〈Virgin Soil〉은 마지막에 이르러, 앞선 트로이의 목마라는 안과 바깥의 대립된 도상을 내부로 전도하며 마치 그 안에서 침묵해야 했던 목마 안의 병사라는 존재들의 서사가 굴절되어 목마 밖의, 트로이 성의 사람들의 몸을 장악하며 표현되는 것처럼 보이는데―그러니까 그 전까지 그 내부의 공간이 가늠될 수 있지는 않았다.―, 이는 마음껏 하모니카를 불었던 여자의 결과를 또한 전도시킨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들리지 않는 소리는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작품의 의도를 관철하는 가장 강력한 메타포를 지지하는, 부재하는 매체, 그 매체적 변환이 된다. 곧 잘 들리지 않거나 아예 들리지 않음으로써 고통은 호소되되 부정확한 것에 그치며, 이는 (타자의) 그 고통을 고립된 영역으로만 인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기울어진 몸의 축은 실제 한쪽 목을 뻣뻣하게 쳐 올린 건 목을 찌를 위험의 포크 때문인데, 이는 허리에 수직으로 각목 같은 지지대를 댔을 때와 유사하게 몸의 구조 자체를 실제 변경한다. 그렇지만 이는 실제적인 고통보다는 그 고통의 결과에 대한 시뮬레이션에 따르며, 목마를 비롯해서 전리품이 위협과 고문을 위한 매체로 변용될 때 목마의 그림자가 이들을 뒤덮었던 것에서 시작되었던 지배당함이 극단적으로 실천될 때의 양상으로 드러난다.
목마 앞의 여성이 목마를 달콤한 서비스의 일환을 소개하는 웨이트리스의 역할을 연기하는 것과도 같았던 것처럼, 뒤집힌 이 서비스의 결론은 본래 서사의 차원을 먹는 것의 메타포로 전유하고 다시 먹지 못하는 그 몸은, 그 모든 걸 (제대로) 말할 수 없는 목~입의 실제적 위협과 그 고통으로 번져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은유적인 차원에서 뚜렷한, 어둠이라기보다 암흑의 배경 없음 속에, 희미한 목소리를 간직한 형상의 희미한 추출―시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이 장면으로 인해, 앞선 느슨한 그리고 잔여의 풍경과 인물들의 구심적이지 않은 배치는 극단적인 힘의 양상으로, 아이러니한 폭동으로 인한 일시의 소거 대상으로서 그 합당함의 유인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