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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급호텔」리뷰, 절연된 시간의 봉인을 풀 때
    REVIEW/Theater 2011. 3. 11. 06:55



     역사의 단편을 끄집어내는 행위는 위험하고도 무모한 반면, 그러한 행위 자체에는 항상 새로움이 더해진다. 그것이 작품이 다시 여기 있는 이유이자 창작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역사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작업 과정에서 면밀한 사전 리서치와 문학적 수사와 극적 봉합의 과정들이 응당 필요했을 것이다. 또한 슬픔을 슬픔 그 자체로 놔두거나 의미 없는 폭력의 실상만을 강요하거나 분리된 현실 자체로 그리는 것 역시 문제가 있다.

    극단 초인은 어떻게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조망하는가? 어떻게 그것을 전유하고 되살림 하는가?
    폭력은 결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해 이는 그 몸에 입혀진 할머니들의 기억을 통해 흘러나오는 말들을 배우들이 전유하는 방식으로 곧 현재에 재현하는 것으로서 기억의 차원에서 벌어지며 시간의 누적이 경험되어야 한다.

    ‘이는 누구의 말인가?’하는 혼란이 극 초반을 장식한다. 이는 할머니의 말인가? 할머니의 말을 듣는 우리의 시선이 개입된 말인가? 과거인가? 현재인가? 재현인가? 현시인가?

     마치 시적 수사들로 그러한 경험이 격상될 때 우리는 짐승 같은 삶에 대한 고정관념격 좌표를 수정해야 한다. 내밀하게 몸을 타고 흘러나오는 말들은 단지 짐승의 육체가 쓸고 지나간 황폐함으로 점철된 것만은 아니다. 그들의 회환과 삶에의 그리움, 무기력한 자아에서 바라보는 판타지, 인간은 시선과 기억과 이미지를 안고 살기에 현실은 단지 현실로만 존재하는 게 아닌 늘 현실과 우리의 시선이 매개된 또 다른 현실로 현실은 표상된다. 그들은 기억을 길어 올린다.

     그러니까 이런 막연한 생각에 그들의 상처는 외부의 것이며 무조건적인 악으로 인한 치유될 수 없는, 그래서 꺼내질 수 없는 것으로 버려둔 것에서 이 작품은 그것들을 우리의 살갗에 닿게 만든다.

     우리는 늘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실재적인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경우는 생각하지 못 한다. 그리고 생각하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 마치 죽음을 버려두었듯 우리는 그런 일을 겪지 않을 것이라는 하지만, 그러한 소통의 차단이 그들을 격리시켜 놓았던 것은 아닐까? 결벽증적인 에고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문학적 수사는 오히려 환유적 작용으로 배우의 몸을 감싸고 배우의 깊은 구멍으로 침투하며 관객은 그 몸을 전유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는 감정적인 것도 아니고 치장된 것도 아니며 삶을 영위하는 인간의 목소리일 뿐이다. 목소리를 전유하는 것을 통해 경험을 내밀화시키던 배우들은 막이 바뀌고 무대 한 곳에 좁은 방을 상정하고 그 안에서 대화를 푼다. 시간은 이미 그들의 몸에 입혀진 상처들을 바라보게끔 한다. 앞선 말들은 상처를 전유하는 방식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는 구부러진 길이 점차로 높아지며 거대한 부피로 무대를 단출하게 장식하고 있는 것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움직인다고 할 수 있다. 길은 아득하고 시간을 통과하는 의미를 가진다. 곧 아득함은 기억이다. 그리고 이 안에서 서로를 부르는 또는 과거를 헤집는 소리는 일종의 메아리로 퍼져 나간다. 이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 흩어질 수밖에 없지만, 공간을 채우게 된다. 구부러진 길로 인해 배우들은 각기 다른 높이와 깊이의 제각각 층위에 서서 단절된 삶의 개인을 그려낼 수 있다.

     가미카제로 나가게 된 일본 군인은 순수한 인간으로 표상된다. 또한 열세 살에 끌려온 위안부 소녀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본 군인의 모습을 통해 야만적 짐승으로 추상되던 일본 군인의 모습이 이데올로기에 의한 것임을 조심스럽게 펼쳐 놓는다.

     그리고 그 어리다는 것은 부드러운 신체에 깃든 무한한 잠재성을 내재하며 현실로 나가기 전을 가리키고, 기억의 아름다움이 삶에 직접적으로 이어져 있는 순간을 가리키기도 하다. 현실에 나아가면 기억은 드문드문 찾아와 위로가 됨은 물론이다.

     「특급호텔」은 일견 여성들의 실제 경험들을 바탕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무대에서 구성하는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떠올리게 한다.
     위안부 여성들의 수다들에서 움츠려든 자궁이 너무나 확실히 드러나 보인다. 이는 아픔이고 내밀한 감을 주며 보는 이를 움츠려 들게 한다. 실제 그것이 드러나지 않지만 시간의 궤적을 타고 나온 몸에는 이제 더 이상 목소리의 전유를 거치지 않아도 생성되는 상처들의 흔적이 뚜렷하다. 이들의 몸을 보며 우리는 함께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은 판타지로 또 다른 이들의 삶을 돌아보며 또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만들며 서로를 위로한다. 그들이 다시 삶으로 돌아가도 경험을 공유하거나 그 내밀한 상처를 드러내기는 힘들기에 이들은 기꺼이 서로를 보듬는다.

     한 여성이 도망가고 “뛰어!”라고 모두가 소리치며 무대 세트가 뱅뱅 돌아갈 때 무대는 시간을 되돌리고 있었다. 그러니 행복의 순간은 기억의 회상에 있는 곧 판타지로밖에는 달성될 수 없는 그런 것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며 또한 모두가 하나의 정신적 유대감으로 묶여 있음을, 실은 관객까지도 그에 동참시키고자 하는 가운데 혼란이 온다. ‘이 압박감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일종의 공황 상태가 지속된다.

     무대는 돌아가며 그 완만한 듯 경사진 구불거리는 길의 시간을 생략한, 거친 높이를 직접적으로 관객과 마주한다. 그 부피 역시 하나의 압박이다. 피해갈 수 없는 절규는 정녕 절규의 고통을 우리에게 심는 것일까? 이 절규는 누구의 것일까?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아무의 것도 아닌 흩어지듯 찌르는 목소리가 다시 낯섦으로 돌아온다.

     신음과 절규 역시 허락되지 않는 주체적 행위이거나 또한 허락되기 이전의 과잉적 기표라면 이것 역시 시간이 멎는 경험이자 가장 큰 판타지의 일부가 아닐까 싶다.
     도망치다 다리가 잘린 여자의 자궁에 들어오는 짐승의 방망이는 이 경험에서 벗어나지 않는, 결국 그 현재의 재현 범주 안에 이 연극을 끝낸다. 그래서 뒤는 더 무겁다.

     우리는 상처 입은 채 다시 현재를 영위해야만 하는 걸까? 어쩔 수 없이 상처는 무의식적으로나마 강요되고 강조된 것이 아닐까? 여전히 무겁다. 일상에서의 삶의 전유 방식들이 나온 토크 신에서 다시 무거움으로 돌아간 것은 그래서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과거라는 시간의 부분에 갇혀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절연된 시간으로 지금까지의 공백의 시간을 우리에게 생각의 무게로 부여해 주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공연 정보]
    ● 공 연 일 시: 2011년 2월 25일~3월 6일
    화~금요일 오후 8:00 / 토~일요일 오후 3:00(월요일 공연 없음)
    ● 공 연 장 소: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 공 연 시간: 100분(인터미션 없음)
    ● 관 람 료: 일반 25,000원 / 대학생 15,000원
          티켓 수익의 10%는 나눔의 집에 기부됩니다.
    ● 할 인 율:
     - 남산예술센터 회원 20%할인(남산예술센터 홈페이지 예매 시)
     - 조기예매 할인: 1월 31일까지 예매 시 모든 티켓 10,000원
     - 프리뷰 할인: 2월 25일~27일까지 공연 예매 시 30% 할인
     - 극단 초인 관극 회원 & 2010년 초인 공연 티켓 소지자 30% 할인
     - 20인 이상 단체 관람 시 모든 티켓 10,000원
    ● 공 연 주 최: 극단 초인 / 남산예술센터
    ● 공 연 후 원: 서울특별시 / 서울문화재단
    ● 예 매 및 문 의: 극단 초인 전화 02)929-6417 / 이메일
    choin.theatre@gmail.com
    ● 스 태 프
    - 작 품 원 작: Lavonne Mueller
    - 작 품 번 역: 최 영 주
    - 작 품 연 출: 박 정 의
    - 조 연 출: 김 주 연
    - 작  곡: 조 선 형
    - 미술감독 & 조명 디자인: 박 연 용
    - 무대 디자인: 이 주 은
    - 무 대 감 독: 임 해 열
    - 움직임 지도: 오 충 섭
    - 공 연 기 획: 김 연 정
    - 디 자 인: 성 소 진
    - 포토그래퍼: 양 동 민
     
    ● 배 역
    - 금  순: 정 의 순
    - 옥  동: 이 상 희
    - 카미카제: 김 기 준
    - 선  희: 안 꽃 님
    - 보  배: 신 정 원
    - 군 인 들: 이 종 훈, 이 은 성, 이 성 재, 류 동 헌

    관람 일시 : 3월 6일 일요일 3시 마지막 공연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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