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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라지」리뷰 : 역사주의에 함몰되지 않는 역동성의 미학
    REVIEW/Theater 2011. 3. 11. 10:25


     

     배우는 정면을 본다. 직접 이야기한다. 제4의 벽은 있지만, 철저하게 관객을 상정한 발성이고, 과장되어 있어 리얼리즘이 아닌 표현주의적이다. 존재는 격상되고 공간에서 메아리친다. 음악은 존재를 끌어올리고, 인물들의 속내는 들끓고 있다.

    「도라지」는 철저히 환유 차원에서 이야기한다. 배우들은 관객의 대면 차원에서 서 있거나 내지는 유희를 벌인다.
     곧 존립 자체가 공간의 출발이다. 막을 치고 내리고 음악의 격상과 잦아듦으로 시퀀스의 구분을 두지만, 구체적인 공간에의 묘사를 상정하기보다는 서 있음으로 존재한다.
     대사는 과장된 느낌을 주는데 격분을 토하듯 자신을 발산한다. 대사에 따르는 의미들의 결을 섬세하게 따라가는 게 아니다. 곧 말함 자체가 공간으로 퍼져나가며 관객과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일이다. 이는 그 역할로서의 대면이나 어떤 주체를 세우는 게 아니다. 다만 에너지 자체로 귓전을 울리며 파고드는 것이다.
     이는 목소리가 아니라 메아리에 가깝고 절규가 아니라 웃음에 가깝다. 감정과 호소가 아니라 액션이자 어떤 유희에 더 가깝다. 이들은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액션을 하는 것이고, 액션을 곧 연기 삼아 현실을 현재로 뒤섞어 버린다. 어떤 혼돈 속에 우리는 있다.
     이는 곧 신체가 무대 안에 아니 무대와 현재와 현실이 모두 섞여 하나의 대기권 안에 퍼져 가는 것이다. 몽롱해진 가운에 유희는 침범한다. 노래와 춤, 이 혼탁한 무대가 가리키는 현실은 역사의 한 배경이고 그와 등가 되는 이와 같은 무대 양식은 하나의 메타포다. 하지만 그 외 이 작품에서 간접적인 방식은 없다. 모든 것은 직접적인 장치에 의해 이뤄진다.

     지리 산천에 퍼져 있는 도라지, 도라지는 특정한 어딘가에 있지만 그것은 개별자의 기억이고 이는 편재한다. 하지만 편재가 중요한 게 아니라 땅을 전유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도라지는 곧 땅에서 홀로 피어난 정신 작용을 의미하면서 그 이전에 잃어버린 땅을 전제한다. 민족의 상징으로서 은유적으로 들리는 도라지 역시 어떤 익숙한 노래로서 아련함과 아득함, 입에 익는 친근함으로 자리하며 환유적으로 접근되는 것이다. 몸으로의 집중과, 몸 바깥으로의 정신을 잃게 하는 직접적임 공동의 노래가 또한 그렇다.

     바람결에 떠내려 오는 시대에 대한 통찰 역시 노래와 마찬가지로 반복된다. ‘여기는 자유가 방종으로 치닫는 곳, 숨 막히는 자유에 대한 열망과 그리움 또한 사실 부재하는 곳’, ‘자유라는 이름이 자유와는 상관없이 가득 차 있는 곳’, 이는 준엄한 시대의 통찰로서 현상을 꿰뚫지만 부재하며 오로지 바람결에만 들려오는 수밖에는 없다.
     
     구한말 나라를 구하기 위한 강렬한 의지를 불사르는 김옥균과 홍종우, 두 인물을 축으로 전개되는 「도라지」는 결국 두 인물의 좌절이 깊숙하게 자리한다. 갑신정변의 실패와 일본으로의 도피, 그리고 살해당하는 김옥균, 최초 프랑스 유학생으로 헤이그 파견의 책임을 대신 지게 되는 홍종우, 처음 김옥균의 묘비 하나를 무대 위에 세워 놓고 설명하는데, 그 묘비에서 김옥균의 머리만이 튀어 나와 말을 하는 광경이 괴기스럽다. 이른바 괴물로의 변신이 감행되는데, 이로써 역사는 감정적인 회환의 소용돌이로 점철시키지 않고, 시종일관 좌절과 미래에 대한 환희가 묘한 배합을 이루는 배경 가운데, 김옥균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현시시키며 우리 앞에 다시 위치시킨다. 앞을 역사를 재구성하는 측면으로도 바라볼 수 있었다면, 이는 분명 시간을 뛰어 넘는 경험이다.
     「도라지」는 분명 역사를 모티브로 하지만, 역사의 상처를 소재로 하지만, 결코 역사의 허무주의나 재현의 단계에 머물지 않은 끊임없는 유희와 무대 안과 외화면의 목소리의 힘으로써 무대를 힘 있게 길어 올린다. 힘차게 현실의 고삐를 당긴다.

    [공연 개요]
    ● 공연날짜: 2011년 3월 2일(수) ~ 3월 6일(일) 
    ● 공연시간: 평일 8시, 토 4시, 8시, 일요일 4시
    ● 공연장소: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
    ● 희곡: 오태석
    ● 번역: 이시가와 주리
    ● 연출: 김수진
    ● 주최: 신주쿠양산박, 스튜디오반, 두산아트센터
    ● 후원: 한일연극교류협의회, 전주대학교,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 
    ● 입장권: 일반 3만원, 대학생 2만원, 중고생 1만원 
    ● 티켓판매: 두산아트센터, 인터파크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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