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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스티벌 봄 2011 리뷰] 김황 :「모두를 위한 피자」
    카테고리 없음 2011. 5. 14. 05:02


    북한에의 경계를 타고 넘는 것, 북한으로의 접속망 개설을 감행하는 것.

    ▲ 4월 10일 작품 상연 후 작가와의 대화에서 배우들 중간에 앉은 김황 작가

     김황은 북한으로 가는 중국 밀수꾼을 북한에서 편지를 건네주는 우편배달부이자 네트워크 플랫폼으로 활용한다. 콘텐츠는 북한 사람으로 분한 두 남녀 배우가 피자 만드는 법, 대중가요와 춤 따라 하는 법 등을 유튜브 형식으로 찍은 영상을 담은 CD로 제작하여 이것을 무작정 그곳에 500장 분포하고, 이후 편지 등을 통해 반응을 전달 받는 것이다.
     꽤 유치하고도 재미있는 영상들은 북한 사람을 전유하여 이뤄지고 이 CD들을 불특정 다수에게 건넨다는 사실 또한 재기발랄하다. 경계를 보고 경계에서 감행하는 전략은 남한과 북한을 분리해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의 코드화된(코드 자체가 경계인 가운데) 사고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기에 신선하다.

     영상 다음에는 새터민인 사람도 한 명 섞여 있고, 앞서 출현한 배우들이 함께 동일선상에서 앉아 북한에서 예전에 왔던 편지들을 읽기 시작하고, 피자 만들던, 우리가 봤던 동영상들을 보고 나서의 반응들이 적힌 편지도 섞여 있다. 편지들이 중국을 통해 CD와 같이 동영상을 밀거래의 루트에서 오고 가는 것이다.

     그렇게 이 작품은 김황 감독이 만든 영상의 결과물만으로 이뤄지진 않았다. 실제 영상을 보고 보내온 반응이 결코 북한에서 담담하게 자신의 현재 상황을 전하는 것만큼의-비디오의 후속 반응으로서 편지가 아닌- 감동을 전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어떤 완성 자체를 지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상 두 개와 편지는 무대 내 배치의 개념과 같고 이는 예술적 표현으로써 모든 걸 상쇄시키는 것이 아니라 진실이 누설될 수 있는 일련의 여지를 찾는 것 자체를 제시하고, 이후 프로젝트의 일부 과정을 보여주며 프레젠테이션 하는 것이다. 이른바 관객가의 대화는 그 표현의 장의 아우라를 깨기보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에 가까웠다.

     곧 무대 내 완성을 꾀하는 것이 아닌 진실을 감지하는, 그래서 예술과 삶의 한 통로를 만들며 예술이 그 자족적인 세계, 구조적인 측면의 완성도에 머무는 게 아니다. 이것들이 하나의 단초로서 운동할 수 있는 계기의 지점을 알려주는 게 중요한 것이다.

    ▲ 사진제공=(주)키노아이DMC

     최근 3월 개봉한 「굿바이, 평양」 같은 영화를 보면 실제 북한에 들어가 촬영을 한 장면을 볼 수 있는데, 김황 자신이 말하는 중국을 통한 북한으로의 루트를 소개함으로써 북한에의 하나의 접근 방법론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것은 무대에서의 협소한 소재와 현실 인식, 현실을 다루는 기존 무대 예술의 제한된 방식에 대한 메타 비평적 인식이 결과적으로 되어 버렸다.

     북한 주민의 못 먹고 산다는 말은 그네들로서는 어떤 우울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다. 곧 우리의 배고픔은 절대적인 배고픔이 아닌 상대적인 것, 비교적인 것이고 전반적인 문화 계층적 부의 상대적 차이의 비교의식에 가깝지만, 그것은 그저 사실이고 신체에 깃든 명확한 현실 인식이다.

     곧 배고픔의 층위가 다르며 그로 인한 삶의 좌절, 절망 또한 그들에게는 엄밀히 말해 과잉적 감정, 부르주아 내지 뿌띠 부르주아의 감정적 의식일 뿐이다.

     북한 주민의 말은 너무나 담담하게 다가오는 말투는 놀라울 정도다. 배고프다는 것은 명확한 현실 인식이고 배고프다는 사실에서 한 발도 더 나아가지 않는다. 즉 배고파서 우울하다. 내 삶의 지위가 절망적이다. 나는 왜 이럴까 등의 의식이 엄밀히 성립되지 않는다.

     예술은 사기고 그래서 삶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균열, 붕괴의 지점을 주는 것이며 결코 그 자체의 만족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어야 한다.

     현실로의 개입과 전략, 예술적 표현과 삶의 섞음, 삶의 파편적인 분출과 예술에서 나아가기, 그리고 뒤바뀐 현실에의 인식, 김황은 다시 새로운 장을 예고하고 있었다.
     
     엄밀히 새로운 세상의 디자인이 아닌, 새로운 세계 인식의 지점을 제공하는 현실을 비집고 들어갈 틈을 만들어주는 디자인의 영역을 그려나갈 것이라 생각된다.
     곧 예술은 현실을 직접적으로 바꾼다기보다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하는 것, 코드 시스템을 붕괴하는 균열의 지점, 곧 시선으로 치환될 수 있는 그러한 지점을 제공하는 고등사기인 것이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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