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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뷰] 디륵 플라이쉬만 Dirk Fleischmann : 「나의 패션쇼 My Fashion Show」 유동하는 관객의 시각 경험
    카테고리 없음 2011. 5. 14. 05:26


    디륵 플라이쉬만의 이야기는 참말이다. 그가 가진 담론 체계, 경계에 대한 이야기는 언설이다. 곧 그것 자체일 뿐인 담론을 형성하는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이고 그것이 일으키는 충격과 충돌의 감화 내지 경험은 별반 없다.


    엄밀히 패션쇼 마술쇼, 기계비평가 이영준의 해설, 아르코예술극장 무대에서 시작한 분장실 등의 공간 투어, 기반에 깔린 디제잉, 대북 방문에서부터 각종 정치적 문제를 다룬 기사를 읽고 삐라처럼 뿌리는 퍼포머 등으로 이뤄졌지만, 시간의 누적된 경험을 주진 않는다.
     곧 작품의 구조는 없고 단지 몇몇 장치들을 패치워크식으로 붙여 구성할 분이다.

     이것들이 탄력적으로 연결되지 않음으로써 단지 전시 공간처럼 개별적으로 나뉘어 있을 뿐이다. 극장이란 것을 전유해서 북한이라는 지역의 공간을 가르는 층위로 새롭게 해체‧재편하며 환영과 실재를 가르는 또 하나의 장치를 실현시키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으로 표상되는 공간들이 그 표상을 불러일으킬 만한 실재감이 없다는 것, 극장의 분장실 자체를 재봉틀 공장이나 공장 사무실이라는 식으로 위치 짓고 있는 차원에 그침으로써 또한 관객들의 소몰이 과정이 너무 우왕좌왕하고 정신없으며 시간 차원에서 분배함으로써 인위적인 차원으로 구성될 뿐이고, 제대로 경험하기에는 충분한 여유가 없다는 것, 굳이 타임 라인이 없는데도 공간을 현재화시키고 자의적으로 선택하기보다 소몰이적으로 정신없이 몰리게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크게 트랜스할 지점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재봉틀 공장이나 사무실은 다른 현실의 차원으로 주어지지만, 그 현실의 경계가 묘연하다. 공간들은 무심하고 아무런 반응도 응답도 보내지 않는다. 그저 거기에 위치할 뿐.

    그렇지만 그 공간 자체가 육화되어 나타나지는 않는다. 다만 임시 거처가 될 뿐이다.
    이러한 뻥의 미학, 허풍의 미학, 과장의 미학, 눈속임의 미학은 마술쇼를 보여줄 때부터 이미 의도한 것이었음을 인지케 하고도 남음이 있는데, 패션쇼에서 공간 탐방으로 가다 다시 패션쇼로 넘어온 뒤 주목할 만한 것은 그나마 패션쇼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미 그것도 한번 본 것이라 별 대단한 게 없다는 사실이 힘을 빠지게 한다.

    신비하게 깔리는 턴테이블의 전자음악은 보통의 캣워크 대신 아주 느린 차원의 걸음, 음악의 에너지를 몸에 내재화시키고, 관객과의 경계를 아주 가까운 차원에서 극대화시키며 이전에 없던 신체로서의 매체를 통한 아우라를 환기시키는 신체를 상정시킨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인가에 대한 물음은 오히려 고정되지 않고, 유동적으로 관객의 이동을 가능케 하고, 다른 차원의 현재임을 인지케 해서 이것이 지금 나의 현재가 아니라는 일종의 거리두기적 고찰과 정체성의 균열을 불러일으키는 측면에서의 감각들이 제공된다. 이 점이 가장 탁월한 지점으로 정치적인 것들의 이야기는 정치적이지 않은 측면의 유흥이 곁들어지며 현재의 좌표를 다른 곳으로 두고 지금의 사건들로 호출해 내는, 마치 그것들이 재현이 아닌 현재에 붙잡히지 않는, 인식되지 않는 다른 차원의 시공간으로 보이게끔 만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여기’의 개념은 현재를 무엇으로 취하느냐는 질문과는 별개의 사안이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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