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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뷰] 코르넬 문드루초 :「프랑켄슈타인 프로젝트」, 괴물 주체의 패러디적 되살림
    카테고리 없음 2011. 5. 14. 08:09


    컨테이너 박스, 카메라의 개입, 헝가리 사람들, 프랑켄슈타인 박사 이야기의 모티브.

     

    아주 좁다는 것, 카메라와 연결된 몇 대의 수상기가 무대를 복사하고, 전시 프레임으로 바꾼다는 것, 통역과 번역이 필요하고, 좁다는 것으로 인해 가까이서 그들을 대면한다는 것, 자신을 만든 사람을 죽인다는 것, 신화적인 이야기의 실재화/현재화.

    이 공간 전체를 쓴다는 것, 컨테이너 박스의 문을 열고 나가거나 예고 없이 들어올 수 있다는 것, 시선은 끊임없이 이동되어야 한다는 것, 카메라의 연결을 통해 공간 외부로 확장되기도 하는 것, 헝가리어가 관객에게 있어 영어 대신 언어의 대등한 층위를 상정한다는 것, 카메라에 의해 오디션 배우로 등장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괴물처럼 변형시킨다는 것,

    무대가 아닌 컨테이너 박스 자체를 리모델링 몇 개의 방으로 나누고 그 앞에 의자들을 설치해둠으로써 이 공간 자체는 극장 안의 설치된/삽입된 무대이자 프로시니엄아치가 존재하지 않는 공간 전체가 하나의 무대가 되고, 사실상 극의 공모자가 되게 된다.
    영상에서 존재를 다른 존재로 변이되는 경계를 쉽게 가져가는 것은 존재에 대한 언캐니한 측면, 일상의 전복과 같은 것을 말한다. 그러다가 결국 괴물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이름 짓지 못 한 괴물은 발견되는데, 아니 인지되는데, 자신을 탄생시킨 존재를 죽이는 이야기는 곧 죽음에 대한 공포 곧 신에 대한 의지가 끝없는 발전 가운데 추락의 공포로 변이되는 지점 곧 통제되지 않는 테크놀로지, 나아가 배제된 것 명명되지 않은 것의 드러남과 같은 모더니즘의 극점에서의 경계적 양상을 드러낸다고도 보이는데, 여기서 나아가 궤를 같이하는 「블레이드 러너」와 같은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미래를 구현하고 있는 영화로서는 곧 그 테크놀로지의 산물로서 존재가 오히려 인간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어떤 희망 같은 것을 스쳐나가게도 한다.

    그렇지만 이 연극은 그러한 테크놀로지적인 측면에서의 망이나 통제의 주체의 파기와 같은 비극의 양상을 그리는 데 천착하지 않고 오히려 그 이후 괴물이 살아난 이후의 세계를 부각 시키는 데까지 나아간다.

    오디션을 할 때 오디션을 보는 배우를 비추는 화면이 비틀어지며 색깔이 변해 인물이 증발되며 순간적으로 괴물의 모습이 스쳐가는 장면에서 인물의 일상적 측면에서 낯설게 됨의 언캐니 경계를 보여주는데, 인위적인 웃음-기계적 면모와 자연적인 개성 자체로서 웃음의 면모가 묘한 경계를 타는 옛날 동화 속 바보와 같은 모습의 타박 당하는 여자의 웃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딸의 사라짐, 외부로 나감과 아들 괴물의 사라짐/외부로 나감 등 혼란스럽게 공간을 빠져 나가고 무대를 확장하며 해체하는 일련의 순간들이 미심쩍음을 봉합하며 헛헛한 감정을 낳는데 이와 같은 무대로부터의 소멸과 그에 등가 시키는 죽음의 선고는 전체적으로 혼란의 카오스 상황을 낳게 되고, 무대에서의 표면 서사는 무대 뒤의 가려진 서사의 이중 서사 전략을 통해 묘한 느낌의 출렁임 속에 사로잡히게 하고, 공모 아닌 공모 참여를 하게끔 만든다.

    인물 간에는 은밀한 공모가 작동되고 있는데, 중계자와 같은 떠버리 감독이 정신없이 관객과의 놀음을 전반에 깔고 있는 가운데, 진실은 이후 은밀한 관계 맺음을 노출시킴으로써 드러나게 된다. 괴물은 어머니의 숨겨놓은 자식이고 강압 주체인 아버지를 죽임으로써 프랑켄슈타인 신화를 벗어나 오이디푸스적 동력에 위치하게 된다.

    괴물은 살인을 함으로써 괴물의 충실한 역할을 수행하며 전이될 수 없는 괴물 주체로 남는데 이를 은밀히 조종하고 다독이는 엄마는 괴물로부터 도망가는 게 아니라 탯줄을 끊지 않는 조종자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커뮤니케이션을 달성한다고 볼 수 있을까.
     


    은밀한 관계들은 단지 구획된 방 안에서 이뤄진다는 것만으로 은밀한 광경을 본다는 규칙들을 가져가고 마지막에 기괴한 노래-어떤 주제곡 같은-로부터 죽은 이들까지 살아나 산 자와 공모하는 장면으로부터 이 작품이 에피소드적 호출을 통해 마치 시트콤과 같은 시공간의 분절적 나열과 자기 패러디와 이합 집산적 콜라주, 기시감 어린 모방, 시공간 구축 등의 특성을 부분적으로 가져가며 자기 세계 구성을 하고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사진제공=페스티벌 봄]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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