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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세계 국립극장 페스티벌] ‘올르론’, 끈덕지게 따라 붙는 타자와의 관계 맺기REVIEW/Dance 2009. 9. 21. 14:36
벨기에의 무용 단체, ‘담 드 픽Dame de Pic’의 올르론Holeulone은 긴 면을 보이게 불쑥 삼각기둥이 놓인 것 빼고는 무대의 별다른 구성이 없다.
출연진은 모두 두 명이고 이 둘의 긴밀한 호흡과 조응으로 한 시간여를 끌고 나간다. 여기에 티에리 반 하세의 잉크 애니메이션 기법의 끊임없이 덧입혀지는 영상이 자리한다. 물 흐르듯 색채와 모습을 달리하며 이어지는 영상의 끊임없는 변화를 존재의 거처로 삼고, 두 사람의 긴밀한 조응과 관계 맺음만으로 무대는 구성되는 것이다.
툭 튀어 나온 장애물은 눕거나 엎드린 몸의 전면을 드러내기도 하고, 그 뒤로 떨어져 자취를 감추는 데 사용된다.등장부터 입을 다물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무용수의 모습에는 적잖은 실의 내지 무기력함이 읽혀졌다. 그것은 곧 주체로 무대를 잠식하는 대신 타자로서 누군가의 시선이 덧입혀지게 되는 것과 관계가 있다. 둘의 조합과 그것의 끊임없는 상충됨은 타자와의 관계 맺기라는 난국에서 출발한다.
계속된 뒹굶과 돎의 움직임은 타자와 떨어졌을 때 벌어진다. 침묵 하에 있는 타자로의 의식(儀式)을 실행하듯 내지는 자신의 의식(意識) 자체를 비워내는 움직임이든.영상의 이동은 이들의 거처를 분명치 않게 한다. 내면을 파고들거나 그 자체로 춤의 움직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타자와의 긴밀한 결합의 꿈은 실랑이로 나타나기도 하고 침묵의 타자를 수면 위로 길어 올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에 붉은 불빛이 한동안 덧입혀지는 ‘지옥도(地獄圖)’의 풍광 뒤에 조명의 아웃 뒤에 오는 쾌락적 웃음은 타자에 대한 갈구 및 실존적 외로움이 아닌 충만한 자아에 대한 만족인 듯 보인다. 그 이후로 타자는 귀찮은 존재로 변하고 독립적 주체로 자신의 길을 만드는 데 주력하게 된다.
이들의 내면을 훑는 것 같은 영상은 카메라의 시선을 닮아 있다. 끊임없는 패닝과 줌인, 불안정한 시선을 대변하는 흔들림, 초반 하나의 얼굴 안에 다양한 표식들이 새겨지고 다시 덧입혀지는 과정이 어느새 두 사람의 얼굴로 나타나고, 또 그들이 존재하는 환경은 그 범위를 좁혀서 두 얼굴로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쾌락 뒤에 타자를 품는 대신 그 무대의 환경에 옷을 벗어 사람의 흔적을 만드는 남자, 그를 심연에 빠뜨리고 고개를 내밀어 빛의 세례를 받는 또 다른 남자의 모습으로 끝을 맺었다
작품 제목, 올르론Holeulone은 불어 발음으로 All alone 또는 Hole alone의 이중 의미를 지닌다. 타자의 낯섦은 곧 내면의 또 다른 자아와의 대면으로도 비유되는 것이다.(사진제공=국립극장)
관람일시 및 장소 : 9월 18일 8시,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김민관 기자 mikwa@artz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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