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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뷰] '2011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의 수상 후보 작가展 : '병치, 시간, 삶'의 편집 기술
    REVIEW/Visual arts 2011. 8. 10. 12:02


    서로 다른 것들의 이질적이지 않은 조합/생성
     

    ▲ 김상돈 작가 전시 전경

    철판 쟁반과 검은 챙 모자들을 겹겹으로 쌓은 길게 연결해 놓은 구조물, 「솔베이지의 노래 - 머리 꼬치」, 잎을 나타낸 깔창과  철근으로 만든 줄기의 화분, 「솔베이지의 노래 - 일보일보 一步 화초」, 가짜 수박을 매달아 놓고 나무에 깃털 꽂아 놓고 대걸레들로 나무 받침 뼈대를 형성하는 「솔베이지의 노래 - 삼족오」……

    시선으로 들어오는 등산객들의 산의 모습에서 철물점의 톱 연주자로……, 화면은 비서사적인 흐름으로 병치되어 오간다. 거울 하나를 놓고, 그로부터 거울 안에 담는 자연 풍광이 출현한다. 시선은 이미 전제되어 있는 반면 등장은 예고되어 있지 않은 갑작스런 출현의 형태를 띤다. 이른바 화면에는 등장과 출현 간 애매한 경계가 존재하고, 가상과 실재가 혼합된다. 사실상 이는 허구의 인물을 존재시키기보다는 보통의 특정하지 않은 누군가를 특정적인 시공간의 우연적 출현에 의한 우연적 선택에 의해 특별한 누군가의 문맥으로 전환시키는 측면이기 때문에 모큐멘터리가 아닌, 실재이지만 환영적인 측면을 선사하는 것에 가깝다.

    사람들 웃음소리가 화면을 뒤덮고, 이는 통상 술 한 잔 걸친 등산객들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대신 그것을 청각을 통해 절대화하며 사라지게 만드는 동시에 화면의 전환 계기로서 전환의 동력의 필연적인 이유를 놓아둔다.

    ▲ 8월 8일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이후 자신의 작품 앞에서 김상돈 작가의 모습

    산 위 헬기 소리와 새 지저귀는 소리, 그리고 철물점 톱 켜는 소리 동시에 발 까딱 거려 재봉틀 밟는 것 같은 움직임, 그리고 산은 병치되고 혼합된다. 소리는 그 연결점 없고 맥락을 알 수 없는 것에 하나의 목소리를 부여하는 것.
    병치를 통한 연결 고리가 없는 것 같은, 크게 두 공간 계열의 화면에서 유사성을 찾게 만들지만, 실은 두 개의 상반되는 것들을 안으로부터 융화시키면서 트랜스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현대적(도시, 모던)인 것과 신화적(산 : 가령 산 자체가 신화성을 띠는 것은 아니지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그래서 거기에 의식성을 부여하는 것으로써 이것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특별히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의 행위는 주술적인 수행성까지 가져가는 것처럼 보인다.)인 것을 병치시켜 두 개의 다른 리듬과 속도를 섞고, 간극을 만들기보다 사운드의 상호 간섭 및 침범의 사운드 편집이 두 다른 계열의 영상을 지배하면서 마치 현대인이 일상을 벗어나서 신화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묘한 느낌을 선사한다.

    우연하게 카메라를 쳐다보는, 물을 뜨러 온 노인 등산객은 사진이 지닌 ‘포착’에서 나아가 이중-발견, 마치 시차를 두고 관객 스스로가 그를 보고 또 그가 우리를 보는 것 같은 관계적 동시성이 만들어진다.


    현재로 가속되는 근대 신화로의 점프

    ▲ 최원준 작가 전시 전경

    돌 하나가 크게 서있고, 거기서 흐릿하게 도시 풍경의 전경은 마치 돌이 하나의 시선으로 도시를 지배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며 근대(근대 발전 궤도의 연장선상에서 구축된 도시)를 가없게 무력화시킨다.(「금오탁시형金烏啄屍形(금빛 까마귀가 시체를 쪼는 형국」_풍수지리가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부 박영규의 묘를 금오탁시의 대혈로 보는데, 작가는 금오탁시혈이라 불리는 곳에서 실제 촬영을 했다)

    산 밑 터널의 닫혀 있는 문은, 거기서 여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곧 측정할 수 있는 시간으로 산에 인위적으로 구축된 게 아니라 산의 문을 재구성한 것 같은 구성물의 느낌을 준다. (「경부고속도로 옥천터널」)

    도로에 공사 차량은 이것은 공사하는 것이란 표식을 나타내고, 그 현장이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이곳이 은밀하게 감행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경부고속도로 옥천터널」)

    도로의 풍경은 원근법의 시선으로, 공간의 깊이가 아닌 시간의 깊이, 그리고 신화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의 점프를 감행케 한다. 이미 현대(근대)의 도로, 그리고 구획으로 쳐 있는 곳은 자연처럼 보이는 곳, 그리고 자연 안의 한 부분이라는 공간은 사실 인간의 개발 가도의 편제라는 것, 그리고 개발이라는 잊어버린, 또 잊고 있던 시간은 사실상 잃어버린 신화로 다시 돌아오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준다는 것.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고 있다.
     

    ▲ 8월 8일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이후 자신의 작품 앞에서 최원준 작가의 모습

    세 개의 영상 『물레』는 문래동을 구성하고 밝힌다. 인터뷰로써 건조하게 문래동 작가와 노동자들의 인터뷰가 오가는 영상, 「물레(파트1)인터뷰」와 그 옆 철제 공장의 돌아가는 기계들의 클로즈업된 이미지들과 그 동력들을 나타내는 직접적인 소리, 그럼에도 타악 리듬이 섞여 들고 주목하게 되는 사운드가 출현하는 영상, 곧 예술적으로 재구성된 영상, 「물레(파트2)풍경」이 병치된다. 이러한 비교적 사실에 근거한 이미지와 사운드는 또 하나의 두 영상을 합친 시간 정도의 긴 영상, 「물레(파트3)물레」와 대위법적으로 또 맞물린다.

    파트1에서 ‘철공소 작업소…… 같이 가보실래요?’하자 갑자기 정적이 흐르고 뇌리 치는 사건과 같은 느낌을 준다. 이는 사실적 인터뷰 화면에서 갑작스런 판타즘의 영역, 드라마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을 가리키고, 옆 파트2의 이미지-사운드의 병치 영상과 모종의 합의를 구성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는 또한 가장 긴 영상, 파트3의 드라마와 연관된다.

    쇠로 만들어진 작은 박정희 모형을 달구고, 나무를 갈고, 음악은 갑자기 너무 비장하게 가고, 총이 만들어져 있다. 총은 쓰여야 한다는 말이 서사를 만든다. 파트3에는 작가의 분신과 같은 남자가 들어가 있는데, 그가 촬영을 요청한 배우는 그 만들어진 총을 들고 앞을 향해 쏘는 자세를 취하는데  사고가 일어나고, 총이 발사되고 쓰러졌을 때 피의 색깔은 매우 인위적이다.

    그림자가 벽에 너울거리다 과거로 넘어가고, 새마을운동이 출현한다. 이러한 불완전한 장면들의 연결들은 폭력의 징후를 남기고(그래야만 함에 가깝고, 일어날 수 없는 일임을 더욱 강조하며 과거에 비판의 화살을 돌린다.), 이것이 과거로의 통로가 되는 하나의 판타지 계열을 만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를 찍는 활동사진 같은 장면들에서 다시 박정희 동상이 나오고, 과거의 기시감을 남기는 현재를 보여준다. 할아버지들이 하모니카 연주하는 사운드로 장면 전환이 있다. 마지막의 현재는 역설적으로 과거로 구성되어 있다.



    '노동을 예술로' 수행적 작업과 코드의 재전유

    ▲ 설치 작품, 「파도」, 파트타임스위트

    설치 작품, 「파도」는 멀리서 보면 화사한 색감으로 자리하고, 가까이서 보면 털실로 뜬 수공예 작품의 성긴 면들이 드러난다.

    ▲ 「행진댄스」, 파트타임스위트

    「13평 클럽」 안 「행진댄스」는 조금 밝음에서 어둠, 창문 앞 공간 안 보임, 다시 형광으로, 공간은 밝고 어둠의 채색으로 만들어진다. 내레이션의 말은 빨라지고, 청각적 즐거움을 준다. 화면 없이 음악만 흘러나오고, 후렴만 반복된다.
    무언가를 밟는 행위는 시멘트의 지척거림이 온 몸으로 전유되는 가운데 하나의 덩어리와 같은 추상적인 물질로 화면에 전이된다.
    클럽 음악과 조명의 빛은 춤을 추게 만들기보다 그에 맞춰져 춤을 추고 있는 영상의 작가들을 보는 것에 그치게 만든다.


    노동을 예술의 시간으로 치환하고, 그 시간을 삭감해 편집의 영역으로 재가공하여 그 무거움을 덜은 것은 실제 수행적 작업의 과정을 유희와 재미로 치환하며 예술이 만들어지는 과정(고난의 과정을 겪은 뒤 결과를 낳는 것과 과정이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는 대다수의 결과물 위주의 작업 과정과는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동시에 결과에 과정을 포함시킨다.

    한편 「행진댄스」는 「13평 클럽」으로 인해 성립되는데, 반면 「13평 클럽」은 「행진댄스」로 인해 작품이 의미를 획득한다. 곧 클럽 공간을 재전유한 공간이 되는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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