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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리뷰 : 삶을 초극하는 의지의 인물, 돈키호테를 만나다
    REVIEW/Musical 2012. 8. 14. 11:52

     

    ▲ 지난 5월 22일 오후 2시경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소재 올레스퀘어 드림홀에서 열린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제작발표회 현장(이하 상동), <Man of La Mancha>, 돈키호테 역의 황정민

    2005년 "뮤지컬 돈키호테"로 국내에 초연된 뒤, 2007년, 2008년, 2010년 세 번이나 재공연된 뮤지컬 <맨오브라만차>(프로듀서 신춘수, 연출 데이빗 스완)의 다섯 번째 공연이 열리는 중이다.

    2012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의 캐스팅에서, 우선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로는 뛰어난 연기로 스크린과 무대를 넘나드는 배우 황정민, 신뢰감을 주는 뮤지컬 배우 서범석,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인정 받는 뮤지컬 배우 홍광호가 트리플 캐스팅으로 출연하며, 알돈자 역은 초연과 2010년에 알돈자 역을 연기했던 이혜경과 지난 해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조정은이 더블 캐스팅으로 맡았다.

    한편으로 2007, 2008, 2010 모든 돈키호테에 출연한 이훈진과 함께 새롭게 이창용이 더블 캐스팅으로 산초를 맡았다.

    스페인의 대문호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를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는 세르반테스가 자신이 쓴 ‘돈키호테’를 들려주는 극중극 형식으로 돈키호테의 이야기를 감싸고 있다. 돈키호테 역의 황정민, 알돈자 역의 조정은 캐스팅으로 본 작품을 전체적으로 조망해 본다.

    호른을 불어제쳐 극장에 과밀도로 포화됐을 때 돌연 말 타는 리듬은 고양 끝에 공간의 너른 분포로 이동한다. 카타르시스를 품은 시간적 층위는 동굴의 어렴풋한 무대의 모습이 비춰질 때 다시 캐스터네츠의 긴장과 푸른빛이 감도는 그 무대의 신비로움을 피아노로의 매질로 포획하고 또 벌려 나가기 시작한다.

    시작을 알리는 서곡이 이토록 뛰어난(신경 쓴) 뮤지컬은 아마 없을 것 같다. 서사의 여정을 함축한 그 곡들의 연결은 뮤지컬 전체의 (거의 주요 곡의) 주요 부분을 순일하게 잇는 것에 가까울 정도다. 이 점이 앞으로 뮤지컬을 어떻게 풀어갈지의 압축적 관점이 녹아 있는 측면일 것이다.

    집시의 기타는 깊이감이 그 동굴 속을 타고 이 동굴 속 다리가 열림은 깊이를 지닌다. 공간감을 선사하는 것이다. 조명을 받은 돌은 실제 같다. 이곳은 감옥으로 변한다. 이어 마이크가 너무 선명해 목소리는 배재해 바깥사람들(앙상블)의 개별적 목소리가 너무 다르게 들려 실제감을 떨어뜨리는 부분은 꽤 큰 이질감으로 들어왔다.

    이어 “운명이여 내가 간다.”와 “어디든 끝까지 따르리.”로 대변되는 두 인물의 발화, <맨오브라만차>는 하나의 노래에서 이어지며 두 인물의 다른 관점으로 양립하고, 중첩하며 대위법으로 평행된다. 삐걱거리는 말 수레를 끌고 가며 돈키호테를 우직하게 보필하는 산초(배우 이훈진)의 모습은, 무모한 돈키호테에게 있어 현실의 누군가가 부착되어야 함을 은유적으로 가리키는 가운데, 그럼에도 두 사람의 여정이 만만치 않게 흐름을 예고한다.

    기사 ‘돈키호테’가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맹렬함에서 일시로 벗어나, 이성을 가진 작가로, 돈키호테와 극을 매개함은 뜻밖으로 느껴진다. 이는 극중극의 경계를 분명히 하기 때문으로, 돈키호테의 광기를 일종의 매개될 수 있음으로 전제하기 때문이다.

    알돈자의 조정은 배우는 걸어가면서 거칠게 노래 <다 똑같아>와 움직임을 동시에 펼쳐내며 그로부터 움직임과 발성을 합치시켰고, 꽤 현장감이 살아나는 가운데, 거친 호흡과 샤우팅 창법으로 그 발성을 바꿔 내는 데 능숙했다.

    돈키호테를 맡은 황정민 배우는 그 호흡을 끊이지 않고, 말하듯이 자연스럽게 <둘시네아>를 부르는데, 이는 그가 뮤지컬 배우 이전에(뮤지컬 배우만이 아닌) 연기의 폭이 그만큼 깊기 때문으로 순일한 계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앙상블의 <그 분의 생각뿐>은 뮤지컬의 캐릭터에 따라 얼마든지 목소리 변주가 가능함을 잘 보여주는, 일종의 소극과 같은 장면으로 구성되며, 이어 이훈진의 <좋으니까>는 청아하고 꽤 밀도감 있는 가운데 끝 부분이 퍼져 나가는 것이 매력적이다.

    <내게 뭘 원하나>에서 조정은은 코끝에 감정을 싣고, 또한 힘을 빼고 느슨하게 표정을 만들며 일종의 연기로서의 노래를 매우 잘 보여줬다. 이어진 이발사의 등장이 점프 컷(jump cut)처럼 급작스럽기는 했지만, 오히려 이런 불규칙한 리듬이 좋았다. 이발사의 세숫대야를 황금투구로 이해하는 장면은 돈키호테를 우스꽝스럽게 만들기보다 세상을 거꾸로 보는 돈키호테의 시각을 드러낸다.

    <이룰 수 없는 꿈>으로 이어지는, 돈키호테의 별빛 아래의 맹세는 기사도적 낭만주의 식의 돈키호테의 정념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으로, 천하고 흔한 이름인 알돈자는 고귀한 여성,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받칠 수 있는 존재의 이름인 둘시네아로 바뀌고, 둘시네아에 대한 돈키호테의 흠모와 찬양과 이어진다.

    알돈자란 이름에는 신분계급의 심급이 들어 있고, 알돈자 역시 자신을 창녀와 같이 우스꽝스럽고 천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편견을 스스로 역시 받아들여 자신을 규정한다. 이는 단순히 계급의 명시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귀족적이란 타고난 인격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 싸움, 이길 수 없어도 /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 길은, 험하고 험해도 /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따르리라 / 내가 영광의 이 길을 진실로 따라가면 죽음이 나를 덮쳐 와도 평화롭게 되리 …… 마지막 힘이 다할 때까지 가네 저 별을 향하여”

    이 맹세의 말에서 꿈꾸는 삶의 노래로 넘어가는 부분에서, 삶의 원동력이 되는 사랑이 이상의 실현으로 비상하는 모습을 본다. “저 별을 향하여”는 반향의 소리로 무대 벽에 울렸다.

    곧 이상은 현실을 초극하고자 하는 의지다. 이데아지만 이는 현실의 참담함과 비루함에 자신을 기꺼이 내줌으로써 얻는 것일 뿐이다. 곧 끓어오르는 이 이상에 맞춰 열정이 현실의 상처에 대한 LSD 같은 환각 작용의 역할을 함을 무의식적으로 믿는 것일 수도 있다.  

    2막에서 돈키호테는 “슬픈 수염의 기사”로 기사 책봉식에서 이름을 얻는다. ‘슬플 수염’이란 게 과연 있을까. 이는 일종의 제유법이다. 수염을 통해 존재 전체를 형상화하고 대변하는 것으로, 말하자면 돈키호테는 수염을 지닌 동시에 슬픈 기사의 모습으로 현현하는 것이다.

    "새야 작은 새야", 북 두드릴 때처럼 파열하고 노래의 박편들의 거친 빠른 반복으로 흐르고 긴장감 있는 북소리가 인상적이다.
     
    전쟁에 죽어가는 동료들을 보며 돈키호테는 왜 죽는가가 아닌 왜 살아왔는가를 물었었다. 그의 무모한 삶의 이력이 형성될 수 있는 플래시백과 같이 제공되는 그 기억은, 스스로에 대한 자기 연민이나 삶의 위축되는 대신, 자신의 의지로써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게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었던 듯 보인다. 죽음에 대한 기억은 삶을 상처로 물들이기보다 삶의 무한한 역량을 떠안고 삶 속의 동기와 유인을 실천할 수 있느냐의 삶의 문제로 넘어간다.

    삶은 죽음의 마지막 순간을 맞기까지 진행되며 기억될 뿐이며 따라서 죽음이 온다는 것은 삶을 멈추는 게 아니라 삶의 고삐를 놓지 않고, 삶을 반성하게 하는 그런 시간임을 돈키호테의 삶의 태도는 잘 보여준다.

    돈키호테가 무모하게 풍차에 뛰어들지만, 어쨌거나 상처는 남는다. 그리고 상처는 두려움으로, 벗어날 수 없는 흔적으로 자신을 지배할 것이다. 이상을 향해 나아가지 못한 채 머뭇거림은 보통의 사람에 해당하는 문제일 것이다.

    상처는 이상이 풀려버렸을 때는 단지 현실의 험한 모습 그뿐이다. 앞선 이상이란 LSD는 현실을 보지 못하는 돈키호테의 또 하나의 맹점으로 비극의 전초전으로 맺어진다. 구체적으로는 알돈자가 노새끌이들에게 유린당함으로, 노새끌이들이 다시 돈키호테가 믿던 것이 거짓임을 드러내 그의 신념 체계를 허물어뜨리게 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알돈자의 깊숙한 스스로의 비루한 처지와 천함을 지독하게도 인정하는 고백의 신은 노래와 대사의 매끈하게 이어져 있다. 결코 알돈자는 ‘알돈자’의 현실의 비루함과 ‘둘시네아’의 환상 사이에서의 간극을 인정 않는다.

    소리의 본래 원인을 보지 못한 채 듣는 것을 뜻하는 아쿠스마틱acousmatique의 목소리가 돈키호테가 감춰뒀던 두려움으로 돈키호테를 쫓는다. 

    거울의 기사들이 돈키호테를 거울로 비춰, 그의 초라한 늙음의 모습의 진실을 알린다. 돈키호테는 충격에 빠지고, 거의 사경에 헤매는 그를 찾아온 알돈자는, 둘시네아로 자신을 기억하던 돈키호테가 이제 기억을 잃은 것을 보고, 자신을 둘시네아로 소개하며, 돈키호테에 의해 부여된 자신의 이름을 돈키호테의 본래적 삶의 평면에서 되찾기를 바라는 의지의 강한 발화로 호소한다.

    알돈자의 애절함과 그의 무모한 관점이 투영되던 지난날의 아련함이 죽음의 자리를 감도는 가운데, 망각은 돈키호테의 이상을 지우고, 그 이상의 뒤에서 현실의 틈을 메우던 사람들의 존재도 길을 잃는다. 이상을 망각하고, 현실의 끈도 닿을 수 없는 돈키호테의 미약한 죽음의 의식에서 정적이 지배한다.

    손을 뻗치던 돈키호테는 돌연 일어난다. 정적의 순간이 빚어낸 집중이 예기치 못한 충격으로, 죽음이라는 실재와 마주케 하고, 생명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끼게 한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순간이다. 다시 의식을 찾은 돈키호테는 <이룰 수 없는 꿈>으로 명멸하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자신의 꿈꾸기와 그에 대한 의지로 새겨 나간다.

    여기서 다른 배우들의 <라만차의 사나이>와 함께 일종의 커튼콜 이후의 앙코르 개념이 섞인다. 그리고 하모니를 덧입은 이 힘이 어디까지 다른지를 잘 보여준다.

    ▲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의 데이비드 스완(David Swan) 연출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의 시선으로 또 다른 현실이 일어난다. 돈키호테의 삶을 포개고 있는 세르반테스의 이야기는 실재와 허구의 경계를 뒤섞는다. 돈키호테의 이야기는 세르반테스가 스스로를 투영한 화자의 단순한 이야기라기보다 오히려 저자 개념을 뛰어넘는 삶의 본질에 가 닿는 이야기로, 세르반테스의 현실을 감싼다. 이로써 감옥에 끌려 온 세르반테스의 이야기는 모든 죄수의 마음을 녹이며 그가 무죄임을 선고받게 된다.

    [공연 개요]
    공연명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Man of La Mancha)>
    공연장 샤롯데씨어터
    공연기간 2012년 6월 22일 ~ 10월 7일
    공연시간 평일 8시 / 수 3시, 7시 / 토 3시, 7시 30분 / 일, 공휴일 2시, 6시 30분
    (월요일 공연없음)
    티켓가격 VIP석 13만원 / R석 11만원 / S석 8만원 / A석 6만원
    관람시간 2시간 50분 (인터미션 포함)
    프로듀서 신춘수
    연출 데이비드 스완 (David Swan)
    출연 황정민, 서범석, 홍광호, 이혜경, 조정은, 이훈진, 이창용 외
    주최 롯데엔터테인먼트, SBS
    제작 ㈜오디뮤지컬컴퍼니, CJ E&M
    주관 오픈리뷰㈜, KMH, BOM
    협찬 BC Loun.G
    공연문의 오픈리뷰㈜ 1588 - 5212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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