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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색이 아프레걸〉, 박남옥의 입체적 형상화
    REVIEW/Musical 2021. 12. 30. 00:16

    극본 고연옥, 연출 김광보, 작곡/음악감독/지휘 나실인, 안무 이경은, 〈명색이 아프레걸〉[사진 제공=국립극장](이하 상동). 여행 가방을 든 박남옥 역의 이소연 배우.

     


    영화감독 박남옥의 삶을 창극으로 녹여낸 〈명색이 아프레걸〉은 최초의 여성 감독이라는 수식어라는 과잉 기표를 지우고, 당대 신여성으로서 영화를 하는 것의 갈등을 영화에 대한 그의 태도와 이상과 교차시키며, 시대적인 주체의 한 관점을 개인으로 귀속시키는 대신, 그의 역경을 시대의 정동과 영화의 이념으로 알레고리화하는 것으로써 박남옥을 역사에 입체적으로 위치시킨다. 파도의 형상 아래 좌우로 흔들리는 사람들로 시작되는 무대의 장면은 이후 등장하는 박남옥이 밀선을 타고 바다에 빠져 죽을 뻔했던 경험의 무의식적 원형이면서, 광복 이후 문화적 격변기라는 흔들리며 정확히 좌표를 상정할 수 없는 시대의 정동을 상징한다. 

    〈명색이 아프레걸〉은 카메라를 고정해 장면들을 담는 영화, 그리고 땅을 딛고 서서 최대한 멀게 포환을 던지는 스포츠, 곧 투포환 선수로 실제 활약했던 박남옥(이소연 배우)의 신체에 각인된 기억의 연장선상에서의 운동, 이 둘을 흔들리는 풍경과 땅에 관한 반대항으로서 재위치시킨다. 멀리 날아가는 투포환은 사실 서울에서 최초의 영화 상영 이후 예술과 삶 모두 침체기를 겪는 과정(남편의 이혼 통지나 지방으로 영화를 순회 상영하지 못하는 일련의 사태) 이후, 박남옥의 분열 증세를 보여주는 핵심적 알레고리로 사용되는데, 애초에 거침없이 날아가는 것으로서 꿈의 실현이라는 메타포는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을, 따라서 도난당하지 않을 초라한 사물로서 멀리 나아가기라는 의지와 이상의 굴절된 형태로, 다시 무거운 짐을 덜어버리는 것으로 마음이 가벼워졌다는 ‘정신 승리’의 봉합 기제로 급격하게 기울어진다. 

    이는 이후 두 번째 영화를 찍지 못한 불운의 삶 자체를 생각한다면, 일말의 반짝임이 삶을 지속할 힘을 주는 장면이라는 점에서 무대의 환영을 통한 임시적 봉합쯤으로 생각되는 부분도 있다. 반면, 이는 삶을 뛰어넘는 영화적 이상이 좌절된 이후 밋밋한 현실 자체에 발을 딛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동하는 기차 안에서 어르고 달래던 딸에게서 안정된 삶의 환경에 그를 투여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반성과 삶의 회한 등의 생각과 감정이 복합적으로 엉켜 폭발하는데, 영화의 현실에 대한 안정화 전략의 마법이 지나면, 구불거리며 요동치는 삶의 여러 조건은 알레고리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파고로 부상한다. 처음의 지나치게 밝았던 모습은 실패를 받아들이고 현실을 체감하는 것과 함께 하강하며 새로운 삶의 조건을 구성한다. 그 최종 결과가 투포환(목적에서 짐으로서 변이된 메타포)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짐을 선택하는 것이다. 

    더 거칠고 무한한 욕망을 담지한 주체로서 박남옥을 보여주는 두 가지 대상과의 관계는 하나가 영화라면, 다른 하나는 김신재(김지숙 배우)라는 배우다. 극 안에서는 박남옥의 사랑은 유일하게 김신재만을 향해 있는데, 남편(조영규 배우)과의 관계는 다분히 형식적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사랑은 너무 격정적이고 애절해서, 이성애적이고 가부장적인 사랑이라는 규범적인 당대 사랑의 관습과 가치관 속에 오히려 언어화되지 못하는 뭉개진 기호로 그것이 은폐되었음을 드러내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데, 물론 퀴어로 특정하지 않고 더 넓고 잠재적인 차원에서, 이상에 대한 정향으로서의 사랑을 기호화하고 있다고 하겠다. 

    처음 영화감독으로서 애를 업고 씩씩하게 영화 현장을 통솔하는 박남옥의 모습은 예의 대장부의 그것이다―남성 주인 기표를 띤다. 워킹 우먼으로서 멋진 여성상을 보여주는 반면, 격렬한 삶의 의지, 아프레걸로서의 약동과 생기(生氣)는 사실 무대 위의 캐릭터적인 환상으로 다소 비약한다는 인상을 주는데(어떤 사유도 그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 그에게 주어진 이후 삶의 곤경에는 그가 의도하지 않게 따라붙는 총체적 난국으로서 따라붙는 영화와 관련한 환경의 제약과 여성으로서 주어진 책무 등을 경유함으로써 〈명색이 아프레걸〉이 오히려 한 개인으로서 박남옥의 좌절과 시련으로 수렴하지 않게 만든다. 
    〈명색이 아프레걸〉은 자본과 환호가 따라붙지 않는 영화의 적대적인 조건과 함께 당대와 호흡하는, 그럼으로써 변화하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입체적인 여성상(‘화려하고 멋진 신여성’이 아닌)의 ‘시대’로 구성하며, 따라서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닌, 분석적이고 성찰적인 시선으로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을 만든다. 곧 존재로써 시대를 관조하며 변위한다. 따라서 다분히 신파의 속성을 갖추고 있으며 이를 몇몇 장면에서 과잉으로 보완하던 연출 기법―이는 박남옥에서의 반복을 넘어 다른 인물의 치정 관련한 애절한 감정을 표현하는 여러 곡, 곧 내용의 반복을 통해 확인된다. 다른 한편으로, 무용수들이 단순히 배경과 같은 들러리로 소모되는 부분들은 지적될 수 있는 부분이다.―은 어느 정도 상쇄될 수 있다. 

    동시에 박남옥의 영화 속 치정은 그러한 플라토닉 사랑과는 거리가 있는데, 현실적인 사랑의 모습들은 오히려 욕망의 본연적 모습을 통해 제도적 금기와 경계를 지시하는 차원이 크다. 박남옥의 첫 영화이자 마지막 영화인 전쟁 중에 미망인이 된 사람의 삶을 다룬 〈미망인〉에서, 주인공 ‘신’ 역 의 이민자 배우(김미진 배우)와 영화에서 ‘택’ 역의 이택균 배우(김수인 배우)의 사랑은 후반 영화의 프레임을 벗어나 현실에 직접적으로 펼쳐진다는 인상을 주는데, 그에 따르면, 현실과 영화의 어떤 교류가 이어진다고도 볼 수 있으며, 영화의 바깥과 박남옥의 삶 바깥에 자리한다는 점에서 주변부의 서사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명색이 아프레걸〉의 음악은 연주 자체의 독립적인 위상을 주장하지 않는데, 가령 모든 음악은 대사에 고스란히 스며들도록 설계되었다. 음악이 단독적으로 전개되거나 심지어 대사 이후 약간의 여운조차 허락하지 않고 다음 대사가 전개된다. 이는 단순히 연주의 라이브니스가 부각되지 않는 차원뿐만 아니라 역할, 그리고 배우가 극의 전개 안에서 튀어나오지 않게 마감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운’으로서 잠깐의 음악적 전개는 캐릭터를 부상시키고 나아가 배우에 대한 스포트라이트를 성립시키는 부분이 있다. 이는 창극의 발성을 기본으로 하지만 실상 현실 고증의 의상과 함께 일종의 뮤지컬이라 할 수 있을 공연에 대한 기대와 감각을 소거시키는 방식에 의거한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명색이 아프레걸〉은 현실처럼 일상에 놓이는 풍경 옆에 카메라를 위치시키며 현재가 영화로 실시간으로 포획되고 있음을 여러 번 등장시킨다. 필름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관찰자의 시점이 병렬적으로 구성돼 노출된다는 점에서, 관음증적 위치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동시에 일상으로부터 연장된 삶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차원에서 영화라는 매체를 그리는 것으로도 보인다. 전쟁미망인을 다룬 그 영화는 복잡한 사랑의 관계를 보여주는데, 인간을 어쩔 수 없는 욕망의 담지자로 그린다. 역설적으로 떠들썩하고 북적거리는 영화 현장은 불 꺼진 영화관 거리를 거니는 박남옥과 극적인 대비로 부상하기 위해서만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명색이 아프레걸〉은 박남옥을 종래 “아프레걸”과는 너무 다른, 그 같은 쓸쓸한 주체의 모습으로 그리는데, 삶의 굴곡과 함께 여러 주체의 변경이 이뤄진다. 개인과 역사의 사이에서 〈명색이 아프레걸〉은 어쩔 수 없이 개인에 초점을 맞추어 역사를 어느 정도 주변화시키지만, 역사의 주석들이 조금은 더 세밀하게 따라붙었다면 하는 아쉬움을 준다. 그럼에도 입체적으로 인물을 형상화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명: 국립극장 기획공연 명색이 아프레걸

    공연 일시:20211217()~20211231() 금 오후 730, 일 오후 3

    공연 장소: 국립극장 해오름

    관람연령: 15세 이상 관람

     

    주요 제작진

    극본: 고연옥

    연출: 김광보

    작곡·음악감독·지휘: 나실인

    안무: 이경은

    협력연출: 윤혜진

    협력안무: 장현수

    무대디자인: 박상봉

    영상디자인: 정재진,

    조명디자인: 이동진

    의상장신구디자인: 김지연

    소품디자인: 정윤정

    분장디자인: 백지영 등

     

    출연진

    박남옥: 이소연

    김신재: 김지숙

    이민자: 김미진

    이택균: 김수인

    방영자: 조유아

    김영준: 이광복

    박영숙: 이연주

    나애심: 민은경

    신동훈: 유태평양

    R: 조영규 

    국립창극단(10명), 국립무용단(22명), 국립국악관현악단(22명의 국악관현악단과 4명의 밴드세션이 추가되어 총 26인조 편성) 및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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