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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 판독기] <아르센 루팡>을 관통하는 해석의 코드란
    REVIEW/Musical 2013. 3. 24. 11:41

    '스페셜 인트로'



    ▲ 지난 2월 27일 열린 <아르센 루팡> 프레스콜(이하 상동), 루팡-김다현, 넬리-배다현


    <아르센 루팡>은 본격적인 막을 열기 전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에 해당하는 영상을 집어넣는다. 그리고 짧은 실제 장면의 삽입에 따른 전환이 있다. 일단 전자는 '입체적으로 지도 보기'에 해당하는데, ‘능동적인 시선과 촉각’에 해당한다. 이는 시간을 공간화하고 동시에 역사의 조각들에 기초한 특정 지점을 찾는다는 식의 추리의 코드가 덧붙여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추리의 코드 그리고 이 능동에 해당하는 활력이 뮤지컬 전반에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를 가늠하는 시작 지점이 된다. 


    Intro: 두려움의 존재, 루팡





    루팡의 정체와 관련해 한 수도원에서 간절하게 루팡의 출현에 두려움을 떨며 기도를 올리는 모습을 통해 당시 세상에 그가 거의 공포의 존재임을 드러낸다. 이는 종교의 신성함과 정확히 대립하는 지점에서 한편으로 믿음의 차원에서 들여다봐서는 안 되는 그런 불길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금기에 가로놓이는 루팡이란 인물은 정확히 그 금기를 뛰어넘으며 존재한다. 어떤 무한한 역량으로 한 발 앞서 현장을 거쳐 가고 또 나타난다. 연극이라는 실시간 무대 예술 자체가 추리에 적합한 장르일까 하는 점은 여전히 의문부호로 남는다. 


    곧 뛰어난 변장술로 그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게 했던 루팡의 활약에서 가령 책이라면 그를 포착해 내는 데 있어 심정적 예측은 가능했겠지만, 그리고 모종의 불확실함, 무엇보다 어떤 기대를 안고 루팡이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을 기대하게 됐겠지만, 무대에서 이 변장술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다가오게 된다. 가령 개인적으로 봤던 루팡에 김다현 캐스팅에서 김다현이 신출귀몰하게 출현하고, 또 변장을 통해 다른 인물로 분할 때 관객은 그 분장술 자체에 대한 놀라움은 있지만, 모종의 불확실함에 따른 기대감은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루팡’의 능청스러움



    이런 저런 이유로 <아르센 루팡>을 뛰어난 추리극 코드가 작품을 관통한다고 보기는 조금 어려울 듯싶다. 그보다 뭔가 다른 요소들로 이 작품을 봐야 할 것 같다. 


    ‘김다현’의 루팡은 가령 그 능청스러움과 애드리브 같은 대사들의 천연덕스러움, 그리고 잘생기고 훤칠한 외모에 의해 이미지 캐스팅으로는 꽤 훌륭하다고 하겠다. 이 능청스러움의 루팡에 주목해 보는 게 좋겠다. 곧 이 능청스러움은 앞서 말한 금기를 어떻게 그가 가볍게 뛰어넘고 또 그만의 세계로 다른 모든 존재를 인도하는 것을 보여주는 어떤 중요한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첫 수도원 시퀀스에서 수도원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는 방식이 일종의 소문을 통한 강력한 미디어를 보여주는 동시에 비단 수도원뿐만 아니라 신의 뜻을 따라 엄격한 도덕의 지침에 예속된 삶, 곧 중세의 한 전형을 보여주며 그 뒤로 루팡이 등장하면 이것과 전혀 상관없이 진지하지 않은, 곧 능청스러운 어떤 모습에서 이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초월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는 점에서 루팡은 시대에 대한 초월적 사고관이 투영된 작품은 아닐까 생각하게 하는 요소가 있다.


    한편 이 루팡을 <돈주앙>이라는 작품의 또 다른 판본으로 놓고 비교해 보는 것 역시 흥미로울 듯하다. 돈주앙은 무한한 여성의 마음을 쟁취하되 한 여자에 얽매여야 한다는 규약, 그리고 신을 믿고 이를 회개해야 한다는 금기를 절대적으로 무시하는데 바로 이 규약과 금기를 가볍게 뛰어넘는 요소에서 돈주앙과 루팡의 유사성이 드러난다.


    ‘내 안의 나’


    ▲ 지난 2월 27일 열린 <아르센 루팡> 프레스콜(이하 상동), 루팡-양준모


    루팡의 삶에 대한 태도와 독특한 인격적 풍모는 일종의 트라우마가 형성되는 장면을 통해 구체적으로 해명되고 있다. 그리고 아마 여기서 <아르센 루팡>을 관통하는 최고의 넘버 ‘내 안의 나’가 등장한다.


    사실 루팡의 가벼운 언동은 극의 활력을 부여하지만 추리보다는 그의 세계에 초대된 느낌으로 관객을 붕 뜨게 만드는 측면이 강하다. 그래서 루팡이 지금의 루팡으로 다시 태어난 장면을 삽입하는 것은 루팡의 인격적인 부분에 대한 일종의 ‘해명’이자 해명되지 않는 부분에 대한 설명이라는 점에서 ‘해소’라 하겠다.


    물론 이러한 부분이 루팡의 장대한 이야기를 한 편의 두 시간 여 뮤지컬로 엮어내는 것과 함께 루팡을 설명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랐을 수밖에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트라우마 신이 조금은 매끄럽지 않게 삽입되는 것 같은 요소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루팡을 이해할 수 있는 주체로 현상하려는 작품의 의도에 따라 그 트라우마의 지점을 다시 생각해 본다면, 그리고 어쨌거나 루팡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라는 점에서 이 장면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루팡은 어린 루팡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지점에서 잠깐 망설이는 지점을 보여 준다. 이 문을 여는 순간 충격의 기억이 펼쳐질 것이다. 어둠의 순간에 들어서며 이 문을 열고 다시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이 충격의 기억은 삼촌의 죽음과 관련된다. 삼촌의 죽음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했던 자신을 상기한다. ‘저 문을 열고, 나는 쫓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복수의 일념 대신 ‘먼저 행동’한다는 자신만의 강력한 준칙과 정의감이 강력하게 생겨난다. 


    이 시퀀스에서 문은 백팔십도 회전하며 문 안의 세계로 들어오는 것을 드러내는데 루팡의 겉으로 드러난 바와 내면의 양립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고도 하겠다. 곧 루팡이 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것은 들어온 입구로 다시 나가는 것밖에는 없을 것인데 그렇다면 이 두려움을 직시하고 그 과거의 순간을 미래의 순간으로 다시 바꾸는 수밖에는 없다. 그리고 이 다짐이 ‘내 안의 나’로 드러난다. 사실 프레스콜에서는 이 장면을 양준모가 시연했었는데 전율이 일만한 장면이었다. 사실상 지금의 루팡이 형성된 순간이지만 실제적인 하이라이트 곡이자 정점을 찍는 부분이 됐다. 미약하게 시작해서 눈에 띄게 고양되어 가는 부분을 갖는 곡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


    김다현-루팡이란



    김다현의 이 노래는 양준모에 비한다면 조금은 아쉬움을 남긴 것도 사실인데, 앞선 능청스러움의 이미지에 연기(이 부분은 앞서 말한 듯 김다현의 장점으로 드러난다. 양준모는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긴다)에서 갑작스런 차이를 낳는 장면이라는 극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기인하는 바도 있지만 다른 가창에 따른 부분도 분명 있었다. 


    김다현 캐스팅을 봤으니 그의 넘버 소화 능력 역시 이야기하지 않을 순 없는데 목소리가 맑고 힘이 있고 독특한 반면 첫 음에 악센트를 두고 부르며 그 힘을 지속하는 놀라움은 있었지만 그것을 조금 더 굴곡 어린 덩어리들을 형성해 내거나 고양케 하는 부분에서는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됐다. 여기에는 물론 개인적 호오가 작용함을 밝히고 관객에 따른 편차도 있을 것이다. 


    중반 망토를 펄럭이며 홀로 무대를 누비는 장면에서 그의 노래는 조금 음정 면에서 분명치 않은 측면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는 음폭이 큰 노래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기인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뮤지컬 초반인 만큼 조금 더 나은 장면으로 구현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결과적으로 처절함의 측면에서는 양준모의 장면이 더 강하게 드러났다는 생각이다(부연하자면 양준모는 프레스콜에서 이 장면만을 했기 때문인 것도 있겠다). 전체적으로 <아르센 루팡>의 넘버들은 꽤 신경 써서 잘 만든 것 같은데 도약 지점과 반복의 순간을 적절하게 조합해 관객들의 귀를 번쩍 뜨이게 할 수 있다면 명작으로 나아가는 관문을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레오나르도-조세핀 


    ▲ 지난 2월 27일 열린 <아르센 루팡> 프레스콜(이하 상동), 레오나르도-서범석, 조세핀-선민


    레오나르도 역의 서범석과 조세핀 역 안유진의 노래는 꽤 좋았다. 넬리 역 배다해의 경우 나쁘지 않았고. 서범석이 안유진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될 때 그는 ‘언젠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사실 관객의 입장에서도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반면 그럼에도 그 죽음은 매끄럽지 않게 보이는 부분이 있는데 너무 갑작스럽기 때문이다(그렇다면 그 대사는 이 대사의 갑작스러움에 대한 하나의 변명과 같은 해석이라 하겠다). 


    중요한 건 이 부분부터 서범석의 역량이 드러난다는 것인데 칼을 맞은 상태에서 정상적인 가창을 선보이는 대신 반쯤 숨이 잘 나오지 않고 헐떡이는 상태로, 곧 이것이 넘버인 동시에 일종의 처절한 말임을 그대로 드러내는 매우 뛰어난 선택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다른 캐스팅의 경우 어떻게 드러내는지를 보진 못했지만 말이다.



    ▲ 지난 2월 27일 열린 <아르센 루팡> 프레스콜(이하 상동), 레오나르도-박영수, 조세핀-안유진


    여기에서 조세핀-안유진의 경우 팜므파탈적 이미지의 연장선상에서 차가움을 드러내는데 조명을 통해 비친 두 사람이 얼굴을 맞댄 장면에서 무미건조하다 싶을 정도로 차갑게만 보였던 점은 좀 의아한 부분이었다. 이 장면을 조세핀의 ‘야망의 빛’을 위해 어둠의 터널을 통과해야 했던 레오나르도의 마지막 빛이 다하면서 조세핀에게는 죽음의 냉기가 징후적으로 비치는, 그래서 레오나르도로서는 죽음으로써 빛을 만들고 조세핀에게는 빛의 자리가 오히려 꺼져가는 그런 장면이 아닐까. 


    여기에 조세핀의 손에 의해 두 번(?)의 죽음을 맞는 결단의 순간은 레오나르도의 사랑이 어떠한 식으로 이뤄졌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오직 어둠 속에서만 그것을 초월해 당도하던 너를 향한 시선과 마음 그리고 단지 나만의 것이었던 그것에서 잠깐이나마 그러나 영원한 하나의 순간이 될 그 순간에, 너의 마음이 적어도 시선이 나를 향하게 하는 것, 그렇다면 그의 죽음은 여러모로 ‘어둠의 끝’이라 하겠다.


    루팡의 마법술


    ▲ 지난 2월 27일 열린 <아르센 루팡> 프레스콜(이하 상동), 제브르-이기동, 조세핀-선민



    앞선 루팡의 능청스러움이 성역에 대한 금기와 그 인식을 가볍게 깨뜨리고 그 반대편에서 나온다고 했을 때 그것과 함께 중요한 것은 또한 그것을 실제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루팡의 변장술과 함께 그의 등장을 늘 다른 존재로 현상해 내는 것은 일종의 트릭 그리고 마법술이다. 곧 신의 보이지 않는 능력에 비해 루팡의 마술은 두려움이자 하나의 현혹인 것이다. 


    <아르센 루팡>에 등장하는 폭죽과 같은 여러 효과는 동해 번쩍 서해 번쩍하는 루팡의 등장시 그를 완성하는 어떤 클리셰와 같은 것 그리고 사건이 실제적으로 발생하고 있음을 증명한다는 점에서 <아르센 루팡>이 미스터리물로서보다는 사건의 양태와 진행 과정에서의 스릴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 무대 중앙에 떠오르는 설치 구조물은 하나의 반전이다. 그렇지만 이는 역시 실시간 무대예술이라는 특징에 맞춰 그 자체의 실제적인 크기로 현상된다. <아르센 루팡>에 쓰인 다양한 특수효과는 사건의 발생에 스펙터클을 부여하고 또 생생함을 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무대를 누비는 루팡의 자유로움의 역량과 그것을 형성한 반대급부(트라우마), 그 모두에 대한 집중, 그리고 한편으로 성역을 뛰어넘는 루팡과 마술을 통한 신기들과의 만남, 어둠 속에서 빛을 갈급하는 레오나르도-조세핀이 지닌 역할의 매력, 선율적인 매끄러움의 넘버들까지, 지금까지 작품에 대한 해석적 초점에 집중했다. 이제 <아르센 루팡>의 다양한 매력에 다시 한 번 빠져보자.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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