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연극 <싸움꾼들> 리뷰 : '출구 없는 현실'
    REVIEW/Theater 2013. 3. 13. 01:32



    ▲ 연극 <싸움꾼들> [제공=극단청우]


    제목이 참 도발적이다. 싸움꾼들은 싸움꾼들의 역동적인 싸움 광경을 자연 상기시킨다. 실제 이종 격투기라기보다는 프로 레슬링에 가까운 싸움이 몇 차례 무대에 등장한다. 


    퀵 서비스 기사를 하는 불특정한 다수로서의 이름, 특정한 누군가에 대한 무매개적인 이름을 지닌 퀵27호는 철인 28호가 되기에 하나가 부족하다. 이 하나의 결여는 지령을 받고 달리는 퀵 서비스 기사에서 목적지에 당도했을 때 전달할 사람이 없는 경우를 맞는 곧 목적지를 상실하고 마는 구멍으로 나타난다.


    “더 빨리 달려라!”는 실제 누군가에게서 기인하지 않는 그 자신의 내면으로부터의 (초자아의) 명령은 “죽고 싶어 환장했어.”라는 미친 사람 취급당하면서도 그것을 기꺼이 무시하고 달리게끔 퀵27호를 몰아갔다. 곧 속도의 희열을 만끽하며 실은 속도에 희생당하고 있던 이 브레이크 없는 현대인이 어느새 뒤집힌 퀵72호가 돼서 이길 때까지 싸워야 하는 이종격투기 현장에 낯설게 투입되는 사태가 출현한다.


    퀵27호의 기억은 불완전한데 마치 가상적 체험으로 나타나는 어머니의 환영, 그리고 격투 현장에의 투입에 대한 지령을 무선으로 전달하는 최교수의 원격현존은 일종의 조작된 삶의 환경에 처한 자신을 상실한 미래적 현대인에 일견 근접해 나가는 듯 보인다. 


    송강호가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유약한 직장인에서 고도의 흥분을, 무대를 군림하는 용사의 에너지로 바꾸고 등장한 <반칙왕>이란 영화를 자연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은 오히려 마스크를 쓴 정체불명의 절대적 힘의 적에 일상에서의 별다른 전환 없이 응전해야 하는, 사실상 퀵서비스 기사의 고투와 별 차이 없는 무대로의 연접을 통해 주체성의 회복 내지 자아의 확장이라기보다, 그저 불필요한 전쟁을 치러야 하는 현대인의 디스토피아적 현실에 가까워진다.


    그렇다면 이 마스크 쓴 적은 단지 하나의 잉여물이었던 셈인가. 화해할 수 없는 적은 실은 자신이 볼 수 없던 맹목적 지점의 예컨대 퀵 서비스 기사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곧 하나의 리얼이라 생각됐던 척박한 삶의 격투 현장은 오로지 게임의 규칙에서만 성립하는 승리와 패배의 순환론적 반복만이 있는 일종의 현실을 비추는 환영이 아니었던가.


    속도를 쟁취하여 미친놈이 되었던 것처럼 그는 마스크 쓴 자를 때려눕히고 벗길 수 없는 마스크를 벗기려 하는 가운데 극은 중단된다. 


    이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뒤로 하며 달리는, 곧 이 미친놈이라는 소리보다 더 앞질러 달려가던 그의 목적지는 어디였을까. 이 목적지를 잃고 헷갈리는 가운데 마주하는 여러 환영의 잔챙이들 속에 도무지 퀵27호는 자신의 삶을 제대로 구성할 수 없다.


    어쩌면 그는 이 미친놈이라고 명명하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실은 자신의 내면이 구성한 목소리임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매우 모호한 실은 모호할 수밖에 없는 현실(상징계)에 불확실한 징후들(상상계)로 뒤덮인 <싸움꾼들>은 오직 속도만 있을 뿐. 출구 없는 어떤 화이트 아웃의 한 시점에서 무한히 열리고 또 멈추고 있다. 곧 이종격투기의 삶이 퀵서비스 기사의 삶에 부착된 전혀 새롭지 않은 하나의 반복이었을 뿐인 것과 마찬가지로.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