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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지애, <뉴 먼스터(New Monster)>: 관습적 상징을 영도의 표현으로 만들기
    REVIEW/Dance 2013. 4. 1. 02:42


    의도된 관습



    정형화된 움직임들과 평면성의 규칙으로 말미암은 관습적 연극의 외양은 실은 의도된 것으로 일종의 인형-되기에 가깝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들로부터 균열을 발견하고 참조적 변형의 지점을 만드는 게 임지애의 의도라 하겠다.


    ‘이미지 전이 놀이’로 표현한 그의 안무 방식은 재현적 이미지들을 펼쳐 놓는 가운데 순간적으로 그것의 미끄러짐을 가져가며 잇기보다 균열을 발생시키고 평면에 예속된 형태로 그리고 표면을 캡처하는 식으로 몽타주하는 차원에서 진행됨으로써 달그락거리는 종이 인형의 외양을 고스란히 표현해 낸다. 


    자연에 대한 환유적 심상은 세 번째 전이에서 구체적이고 가상적으로 이미지들을 통해 드러내지만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기 전 파도소리를 무대에 배치하여 방향성을 상실케 하며 그들에 대한 응시로 혼란스럽게 옮겨가는 전략을 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인형-되기는 이 혼란스러운 응시의 과정에서 얼굴 표정을 짓는 데서부터, 그리고 잔걸음으로 기모노를 갖춰 입은 여성의 발걸음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식으로 움직이고, 어깨에 뽕을 집어넣어 상징적인 복장을 상상케 함으로써 곧 이 모든 것들을 통해 종합적으로 이뤄낸다.


    이 인형은 일종의 태엽을 걸었다거나 위에 실로 잡아당겨 조종하는 것처럼 거의 자동인형처럼 움직이게 되는 것에 가깝다. 


    미끄러지는 표면



    동작들을 덧붙이는 식으로 시간을 분절화하고 몽타주하여 동시에 기계 되기의 표면 속에 뒤로 넘어갈 듯 흡수되어 가는 듯한 빠른 제스처는 이 정신 없는 기계가 온전한 정신으로 돌아오려는, 그래서 조종되지 않는 매우 짧은 시간을 통과한다. 


    이러한 파편화된 의식과 시간 속에 정교한 장치로서 몸은 셋이 모여 관객에 대한 응시의 자세를 취하는데, 이 시선은 정확히 관객을 향한 것이 아니다. 관객이 바라보는 차원과 이 육체를 포함한 스크린은 동시대간의 생성과 미끄러짐을 낳는다. 


    정확히 이러한 응시 뒤에 오는 이미지들은 관객에게 동시간대의 보여주기를 성립시키는 대신(그럼으로써 보여줌과 수용의 콘텐츠가 동일하다는 전제를 갖는 대신) 겹쳐지는 어떤 부분에서 차이를 낳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동시성의 다양한 관점 그리고 미끄러짐은 이렇게 보여주는 것 대신 보이는 것의 표면을 의미하며 곧 이 표면은 육체성이다. 


    마스크 놀이



    앞의 장면을 일종의 축제적 광기로 휘발시킨 뒤 표면으로만, 흔적으로만 남던 어떤 한 순간의 재현이지만 결코 원본을 얻어낼 수 없던 표현들은 하나의 미약한 순간의 찰나적 나타남으로 인해 균열을 내며 또한 분절적 조합을 통해 그것이 가능했다. 또한 직접적인 인형이 아닌 인형-되기의 착시적 형태들 속에서 가능했다. 


    곧 두 번째 이미지 전이는 이미지들이 배치된 차원에서 움직임을 드러내기로, 앞선 동작들을 바닥 아래에 깔린 저마다의 마스크를 쓰면서 장군(남자)·선녀(여자)·당나귀(동물)의 이미지를 구체화한다. 놀이와 변형, 의도된 장치(각각의 마스크)를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마스크는 상징적 잉여물로 각각의 존재를 탈각시킨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동물이 있고, 동물은 중성으로 두 사이를 잇고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인형 되기의 딱딱함에 균열을 낸다. 곧 상징적 엄금에 갇히지 않는 형국이다. 


    그래서 인형으로서 남자가 멈춰 서서 근엄한 장군의 형상을 하고 있을 때 옆에서 덜렁거리는 가운데 종이칼로 한 번에 배어버리자 이 동물은 죽는데, 곧 종이 인형의 이미지로 수렴되며, 기괴한 생명력과 약동하는 생명력이 우스꽝스럽게 절합된다. 도미노 연쇄작용으로 이미지들이 쓰러지는 과정에서는 존재들의 관계 맺기 대신 종이라는 사물 자체로 환원되는 이미지의 표면만을 전시하게 된다.


    엔트로피 현상 


    세 번째 이미지 전이는 셋이 한 몸을 이뤄 몸을 흔들며 뒤섞인다. 파도의 주파수에 맞춰진 사운드에 맞춰 흘러가며 시작에서 드러내지 않았던 환유의 몸짓을 드러낸다. 마스크들을 다 떨쳐내고 영도의 지점을 만든다. 앞선 동작들을 순서대로 잇는 대신 동시적으로 펼쳐놓으며 위계 없는 해체된 상황을 만든다. 


    단편들의 결합과 그로 인한 분절된 리듬과 균열의 지점은 이제 쉴 새 없이 하나의 구문으로 이어져 폭포처럼 쏟아져 드러나며 특이한 몸짓 구문을 만들어 낸다. 동물을 영도로 놓고 남자와 여자의 몸짓은 서로 간에 전이된다. 


    파괴력은 분절된 구문의 빠른 재생의 훑음을 통해 또한 엔트로피의 폭발적 뒤섞임을 통해 생겨난다. ‘이미지 전이 놀이’는 일종의 이미지 옮김(transfer)을 통해, 이미지라는 시뮬라크르 너머(trans), 신화적 원형을 기묘한 방식으로 현전시켰다. 그에 대한 상징적 구문에 구멍을 내며. 재현의 빼기와 표현의 과잉을 절합하는 가운데.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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