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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전히 놀라운 이야기’, 연극 <FACE>
    REVIEW/Theater 2013. 4. 5. 01:17

    인트로: 무려 46년이예요!


    ▲ 지난 4일 오후 정보소극장에서 열린 1인극 모노드라마 <FACE> 프레스리허설 장면(이하 상동)


    무려 46년이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일본은 20여만 명에 달하는 여성들을 성 노예로 삼았고, 여기에 강제로 끌려갔던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가 자신의 경험을 증언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이는 화석화된 과거의 진실이 아니며, 그것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금기시되어야 할 부분 역시 아니다. 이는 현재에 지속되는 기억의 문제이며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은 일본의 비윤리적인 태도가 계속되는 이상, 이는 정치적인 문제이자 인류 공동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한편으로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감정적인 부분을 채 감춘 채 말할 수 없는 부분인 것도 같다. 가령 이와 같은 문제를 예술은 어떻게 다뤄야만 할까. 여기 위안부 사건을 다룬 하나의 연극을 소개한다.

     

    ‘여전히 놀라운 이야기’

     


    "내가 본 이십여 개가 넘는 공연 가운데서 가장 성공적인 공연…… 김혜리는 마술같이 한 인물에서 다른 인물로 변화한다. 그리고 그녀가 우리를 안내하는 곳은 감정적이고 충격적인 여행이다. 그녀는 그 여행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 잘 알려지지 않은 실화에 대해 듣도록 해주고, 인간의 영혼이 얼마나 회복력 있는지를 보여준다." _셰리 에이커(Sherry Eaker),「백스테이지(BACKSTAGE)」

     

    이는 오는 21일까지 대학로 정보소극장에서 열리는 <FACE>에 관한 리뷰다. 김혜리는 자신이 연출하고 직접 출연한 <FACE>에서, 6명의 인물과 한 위안부 할머니의 5세, 15세, 82세의 모습을 혼자서 표현한다. 이 연극은 국내에서 2011년 국립극장에서 열린 2011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에서 5일간 선보인 것 외에 이번이 두 번째다.

     

    뉴욕 1인극 연극제 중 가장 유명한 ‘솔로노바 아츠 페스티벌(soloNOVA Arts Festival)’에서 첫 워크숍 공연을 영어로 선보인 이후, 수정 과정을 거쳐 2010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약 한달 동안 총 26회 공연을 치렀다. 이는 호평을 이어졌다. ‘더 브리티시 씨어터 가이드(The British Theater Guide)’의 최고 평점인 별 다섯 개를 이 공연에 수여했다.

     

    영어로, 그것도 1인극을 한다는 것 자체가 김혜리 역시 부담이었다 2007년에는 더 이상 이 작업을 미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녀의 워크숍 공연을 본 메리 콘웨이(Merry Conway)는 자진해서 미국의 언어 사용에 맞는 표현으로 대사를 다듬는 부분 등에서 미국의 조언을 줬다.

     

    김혜리는 자신의 공연들을 본 관객들 대부분이 위안부 사건의 진실들을 잘 몰랐고, 공연을 보며 많이 놀라워했다는 반응을 전한다. 이는 아마도, 같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유태인을 대학살한 ‘홀로코스트’가 일종의 ‘기억의 박물관’으로 기억되고 영화와 같은 매체에서 재조명되는 데 반해, 여전히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해는 해결되기는커녕 그러한 진실을 우리 스스로가 다시금 역사에 적확한 기입을 해야 할 숙제를 안고 있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예술이 정치적인 것이 되는 순간’

     


    김혜리는 무대 상수(관객이 보기에 오른쪽)에서 앉아서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작한다. 직접 위안부 할머니가 된 것이다. 고개를 가슴 쪽으로 당기고 커다랗게 눈을 치켜뜨며 말할 때 시선은 끊임없이 좌우를 돌며 관객 한 명 한 명에 닿는다. 그 시선에 닿을 때면 순간 움칫한다. 시선은 단지 닿고 마는 게 아니라 닿는 순간 그녀는 짧은 순간 응시의 시선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연극에는 마치 관객이 없다고 상정하고, 극이 진행되는 ‘제4의 벽’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반면 김혜리는 관객과 같은 시공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끔 하는 것이다.

     

    김혜리가 구현하는 할머니상은 꽤 단단하다. 북받치는 설움은 간간이 눈물로 맺히지만, 이 할머니의 증언은 단지 상처받은 한 개인의 서글픈 토로여서만은 아니어야 한다는 점을 김혜리 역시 잘 알고 있어서가 아닐까. 곧 증언은 토로와는 다르다. 그야말로 '마음에 있는 것을 죄다 드러내는' 게 아닌 '사실을 증명하는' 차원이다.

     

    한편 이는 역사의 가장자리에서 말해질 수 없었던 이름 없는 자의 이야기가 잃어버렸지만 잊을 수 없는 차원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며 현재의 역사로 다시 쓰이는 힘을 지닌다. 곧 이러한 증언은 역사를 관통하는 한 명의 기억으로서 대표성을 띠는 동시에 그 속에 있었던 한 명의 지극히 부조리한 삶의 한 슬픔이 그 안에서 언뜻 배어난다.

     

    그리고 이 눈물은 결코 나약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우리는 한편 이 눈물이 인간이 극히 나약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가리키며 그러한 나약함이 있기에 우리는 결코 타자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것 역시 거의 무의식적으로 알게 한다.

     

    이러한 할머니의 자리는 개인의 트라우마적인 기억을 역사의 현 위치로 꺼내놓는 ‘대표의 성격을 띤 증언자’의 성격을 띠는 동시에, 인간의 나약함 대신 굳은 의지로써 스스로를 추슬러 객관적인 시선을 담지하게 하는 ‘역사를 새기는 담담한 목소리의 주체’를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눈물은 이 ‘담담한 역사의 한 대표자’로서도 결국에는 지울 수 없어 남는 눈물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한 할머니의 말, 그리고 눈물에서 인간의 위대함과 나약함을 동시에 읽는다. 또한 역사는 객관적으로 기록되어야 하며, 부조리한 역사의 과정에서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의 피해자들을 정서적으로 위로해야 함을 동시에 읽는다.

     

    ‘예술은 어떻게 삶으로 돌아가는가?’

     

     1인극 모노드라마 <FACE>의 연출 및 배우 김혜리


    김혜리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집을 읽으며 한 분의 이야기로 다시 구성하고 싶었다. 동시에 다큐멘터리로 이를 재현하는 대신, 예술 작품으로 창조를 하고 싶었다. 객관적 자료와 이야기를 토대로 했지만, 위안부 할머니를 찾은 건 작품이 완성된 이후였다.

     

    관객은 <FACE>에서 위안부 할머니를 만나지만, 한편으로 강렬한 역사의 기억을 체험하고, 나아가 그보다 우리가 위치해야 하는 지점에 대한 생각들을 하게 된다.

     

    한편 이는 82세 할머니가 처음에 직접 관객을 대면하며 이야기를 전하다가, 곧 5세, 15세로 돌아가 과거 아버지와의 행복했던 기억을 전하며 어린아이가 되고, ‘명확한 말의 자리’에서 생생한 기억 그 자체에서 몰입하며 괴로워하는 그 시절 자체를 드러내는 ‘현시의 자리’로, 그리고 다시 82세 할머니로 돌아오는 일련의 과정에서 배우 자체에 대한 경의를 품게 된다.

     

    하지만 거의 일인 다역의 연기가 배우가 전할 수 있는 최대치의 그것이라는 것을 결코 부정할 수 없으면서도, 그녀의 연기가 곧 연기 그 자체로만 남지 않고, 우리에게 역사의 현 위치에서 감응을 일으키는 것은 그녀가 역사를 한 자리를 대표해서 말하는 위안부 할머니의 자리를 예술로써 대표함을 스스로 자처한 데서부터 이 작품이 시작되기 때문일 것이다.

     

    “배우·극작가 김혜리가 중요한 게 아니다. 항상 ‘너 자신보다 큰 것’이 있다고 하는 게 있다면 연기에서도 더 큰 자유로움을 발현할 수 있다.”, 


    그녀가 역사의 무거운 문제를 홀로 연극으로 옮기며 받는, 스스로에 대한 압력은 꽤나 컸으리라. 이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곧 부담감이란 또 다른 숙제를 가진 그녀에게 그녀의 스승격 존재들이 해준 조언은 작품을 만드는 데 부담을 덜 수 있는 힘이 됐다.

     

    에필로그 : 우리가 직면해야 할 얼굴



    우리에게 있어 우리 자신보다 큰 것이 무엇일까. 아마도 하나는 확실할 것이다. 우리가 망각하지만, 실은 기억해야 될 것들. 그것과 대면하지(face) 않으면, 김혜리가 분한 할머니의 근엄한 눈빛을 담은 얼굴(face)처럼 역사의 가장자리에서 우리를 진득하게 노려 보며 언젠가는 삶의 자리를 근본부터 흔들리라는 것을, 곧 그 기억이란 우리 모두의 역사일 것이다. 곧 한 위안부 할머니의 '얼굴(face)'은 우리가 '직면해(face)'야 할 부분임을 김혜리는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연극 <FACE>인 것이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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