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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나훈 <이웃>: '이웃으로서의 타자'
    REVIEW/Dance 2013. 8. 16. 02:48


    ▲ 박나훈 <이웃> 포스터[=박나훈 무용단 제공]


    로비에서 박나훈과 김준기는 관객과 경계선을 긋지 않고 ‘어느새’ 출현한다. 이미 ‘정시’라는 관념과 그것을 둘러싼 침묵까지가 공연의 일부로 말려들어가고 있다. 


    영어 교육용 발음 청취 테이프의 무작위적인 재생은 그 자체의 리듬 패턴을 그리며 단속적인 출현의 텅 빈 기표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이는 춤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도 춤이 가져가야 할 정서 역시 아닌 반면, 이 단어들과의 마주침은 이 두 남자가 각자의 영역을 그리며 맞닿고 떨어져 가는 단속적인 접속과 흩어짐과 같이 그저 나타남과 반복을 가능케 하는 순간적인 구성이라는 역량 아래 있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어깨를 맞대는 친밀한 인사와도 같은 제스처는 이 공연의 하나의 모티프이자 제사(題詞)이다. 이웃이기에 가능한, 그러나 이웃이 형성되기 이전, 다른 개개인의 고독한 위상이 그것과 충돌하는 그런 세계.


     두 남자가 마주하고 마치 서로를 가격하듯 부딪친 후 또 다른 접촉이나 관계 맺기가 이뤄지는 대신 반대 방향으로 다시 돌아가 버리고 마는 것은 두 사람의 소통과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애초 상정되는 대신 물리적인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만이 그 둘을 가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이 사건 역시 어떤 기억으로 이전되기 이전의 짧은 순간으로 흩어진다. 각자 그리고 관객으로 방향을 틀고 각각 한 명씩 춤 내지는 행위에 동참하게 하는데 이는 누군가를 선택하기보다는 그저 누군가가 선택되는 것에 가깝다. 


    반면 관객이라는 경계선마저 이탈하며 기어가는 김준기를 박나훈은 거두어 보듬고 가는데 이 수용이 관객 한 명 한 명을 마치 나와 충돌하며 나의 이웃이 됐던 지난 과정처럼 그 사람이 나의 단 하나의 특별한 이웃이 되는 것은 응당해 보인다.


     관객의 작품에 동참함이 이 작품에서는 이웃의 관계 맺기의 맥락 속에서 읽힐 수 있음은 물론, 이웃하는 또 다른 이웃의 시선이 박나훈과의 관계를 이웃의 관계맺음으로 용인하고 있다. 반면 이웃을 지정하는 경계를 벗어나는 급진적인 순간에 박나훈은 타자를 이웃으로 용인한다.


     이웃을 타자의 현상으로 그 다음에는 경계에서의 마주침으로 다시 적극적 관계의 추인으로 이끄는 일련의 과정에서 이웃은 관객 바깥에서 출현하여 이어 관객에게서 선택되어진 이후 다시 관객 바깥으로 이전되어 간다.


     박나훈은 일종의 뚜렷하게 몸을 놀리되 강단진 몸통을 유지하며 숨을 움직임의 흔적과 함께 신체로 드러낸다. 이는 한편으로 얼굴을 강하게 부각시키는 작용을 한다. 허리를 깊게 숙였다. 펼 때 커다란 ‘숨’은 그의 얼굴로 연장되며 시간을 타고 멈춤(분절)의 커다란 단위와 예고할 수 없는 다음 움직임을 잠재하고 있다. 


     “존재란 존재자가 아니라 존재자가 존재하기 위해 폐를 끼치는 전체다. …… 이웃 또한 그런 전체 중의 하나다. …… 그것들이 나에게 존재를 준다. ……” (박나훈, <이웃> 리플렛에서)

     

    이는 마찬가지로 존재(나)는 필연적으로 타자(너)에게 영향을 끼치며 세계(우리)라는 범주를 형성한다. 그리고 타자로 인해 나는 의미를 갖는다는 식으로 약간의 변주가 가능하다. 


    1부에서의 마치 땅을 기어가며 의미의 교환을 만들지 못하던 마지막 ‘경계 이탈’의 남자의 모습처럼 이 집단은 연쇄작용을 만들지 못하고 각각 혼자 남겨졌을 때 내재적으로 스스로에게로 소급되며 갇혀 버린다. 이는 그 침낭에 갇힌 채 헤어 나오지 못함의 동작, 답답함을 호소하는 몸짓들에서 드러난다. 이는 어떤 상징적인 것을, 곧 눈 덮인 산과 회오리바람, 그리고 그에 응전하며 고독한 사투를 펼치는 인물들을 직접적으로 재현함에 다름 아니다.


    정확하게 자고 일어나 하룻밤이 흐른 이후 일상의 순간들, 그리고 어떤 갈등 관계. 내재적인 그리고 환경에서 기인하는 많은 실재적인 부분들, 마치 현실의 재현으로써 환영적인 현실, 시간의 찰나적인 지나감을 현상하는 하루는 그 순시간의 지나감만큼이나 밀도 없는 일종의 부재와도 같은 느낌을 주었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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