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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안녕, 마이 버터 플라이>: 연극의 현실로의 환원을 시도하기
    REVIEW/Dance 2013. 8. 18. 03:53


    ▲ 7/5(금)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연극 <안녕, 마이 버터 플라이> 프레스콜 장면(이하 상동)


    시작은 실제 손숙의 극에 맞춰 공연 시작 전 진행 상황이 그려진다. 서은경과 김원해는 뒤늦게 등장하고 그것이 곧 시작될 것임을, 아직 시작되지 않았음에서 시작된다. 공연 전 스태프가 공연이 시작됨을 알리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가상적으로 실제를 그리는 이 공연 시작 전의 모습은 이 공연이 ‘손숙의 인생과 직접적으로 닿아 있는 공연’임을 그 바깥의 경계로부터 상정해 낸다. 이는 어떤 고전의 차용이 아닌, 현재의 삶과 역할 이전의 배우 자체로부터 출발하는, 어느 정도 그 자체로 손숙과 연극에 대한 것들이 현시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손숙의 고유의 톤과 음색, 표정은 이제 어떤 ‘역할’로 건너가는 간극을 낳는 대신 손숙이 갖고 있는 기존의 이미지를, 그리고 연극 너머 손숙이 생성되는 측면 사이에서 각각 소급되고 또 미묘하게 그를 벗어난다.



     손숙이 아닌 김정숙으로, 현실의 기시감을 일종의 ‘연극’이라는 최소한의 트릭-장치로 드러내는데 전적인 가상이 아닌 현실과 합치되거나 그것이 치환된 부분이 분명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끔 한다.


     ‘마이 버터 플라이’라는 이름은 뒤늦게 도착한다. ‘연극’이라는 이름으로.


    이 연극 내에서 연극 자체의 경계인 제목의 도착은 이 ‘연극’이 하나의 선물이고 여전히 이 제목이 표상하는 연극이 현재의 삶에 부과된 하나의 잉여 차원, 동시에 삶을 다시 치환하며 그것 바깥에서 이들 삶을 실제로 중간 중간에 바꾸는 효과를 낳는다.


     스태프(도 연기자)들이 나와 굳이 무대를 정비하는데, 이는 무대와 삶(진행 장면)의 경계를, 현실을 상정하며 또한 이 모두를 연극 바깥의, 또한 연극이 포함된 삶의 궤적으로 바꾸기 위함이다.



     손숙의 삶과 평행하는 듯한 김정숙의 삶은 어떤 문제적 삶, 그는 가족이 결부된 지난 기억들이 수면에 부상하며 극 이전에 실제로 건너가게 된다. 이 기억의 회귀, 그리고 극으로 건너가며 순조롭게 진행되는 대신 미묘한 균열과 혼란의 상황이 보인다. 


    연극은 삶과 겹쳐지고 극이 완성되는 과정은 그에 응당한 감정의 몰입, 곧 대본이 아니다. 대본은 그 너머로 사라진다. 이제 김정숙이라는 현재로, 또 역할을, 지난 삶을 생성하는 이 궤적이 이의 현대적 발화로 실제가 되며 출현함을 의미한다. 이는 실제가 되며 연극에 놀아들며 그에 합치되며 또 회귀하는 순간으로, 그 연극의 진정성이 출현하게 된다.


     곧 삶에 떨어진 연극이 온전히 연극의 시간으로 화하는 순간이다. 



     ‘무대는 100퍼센트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곳’, 배우의 위치는 그 과거 속에서 어떤 마법에 열쇠가 되는 것을 마이 버터플라이 곧 ‘내’ 나비로 그의 딸을 온전히 떠나보내고 동시에 (마음으로) 간직하는 순간이다. 


    어떤 회상의 기억으로 그녀의 죽음, 또 불가항력적인 떠나감의 애도 불가능한 순간들은 말할 수 있는, 계속 부를 수 있는, 그리고 ‘나’를 상정할 수 있음의 구문으로 나아간다. 


    곧 이 제목은 연극은 하나의 구문과 같은 속삭임으로 압축되고 연극을 통해 과거-현재를 수행하며 지난 감정들이 흘러나오고 과거를 진정 바라볼 수 있게 되자 이 둘 사이에서 어떤 화해의 영역이 그리고 그 ‘예지적’인 대본에 역할로서 동시에 자신으로서 합치되며 연극은 제자리로, 삶은 온전하게, 관계는 따스하게 자리 잡게 된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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