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9월 즉흥상설-고수푸리 '몸의 대화': '즉흥', 춤이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자리
    REVIEW/Dance 2013. 9. 26. 14:57

    즉흥은 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것으로만 두기에는 다소 부족해 보인다. 춤이 생성되는 순간 춤으로써 춤에서 미끄러지며 또 다른 춤으로써 춤이 되려는 시차적이고 불가능한 시도가 즉흥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는 다시 춤, 춤의 현전이 아닐까. 


    춤은 상대방을 의식한다. 그리고 그 몸에, 춤의 틈에, 춤의 드넓은 장에 들어가기 위한 기회를 엿보고 있다. 아니 먼저 춤을 시작한 이로서는 상대방이 우발적으로 들어오기를 동시에 안정적으로 안착하기를 바라며 틈을 벌리고 있다. 이런 절대적인 타자성과 조심스러움, 그리고 쫓고 쫓김으로 나타나는 이후 양상은 곧장 춤이 되지 않는 끊임없이 간극을 벌리는 시차에 다름 아니다.


    유빈 댄스, 그리고 이나현의 춤이 갖는 실체적, 질료적 측면이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즉흥을 통해서 그것들이 느슨하게 풀려 나오며 타자성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공기를 읽을 수 있었다.


     신체의 뒤틀림은 형상적인 측면에서의 비정형의 이미지와의 유비 관계를 형성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이는 리듬의 뒤틀림이기도 했는데, 이는 시간의 뒤틀림이고, 그 몸을 감싸고 있는 음악(실제 이번 즉흥에서 음악이랄 것은 없었다)의 지체를 의미했다.


     넓은 보폭에 상체의 위아래의 큰 낙차는 숨의 기울기를 상향보다 오히려 땅에 가깝게 한다는 느낌을 들게 했는데 마치 상하체를 제각기 노는 이 움직임은 이 땅에 정박되어 이 몸의 무게에 체감하는 모든 것의 부피를 쓸어 담고 만지며 나아가려는 실존의 은유를, 비정형의 특이한 현존의 환유로 바꾸는 것이 이 춤의 특질이 아닐까 싶었다.


     웅혼하게 뿜어져 나오는 이선경의 정가에 구수한 추임새로 무대 뒤에서 무대까지 들어온 김수보의 소리는 각각 몸이 리듬을 얻는 하나의 단초를, 구체적인 움직임과 몸의 방향을 바꾸는 데 작용했다. ‘가락’은 순간 전통이라 여겨져 온 몸짓을 재현하게 하거나 음악과 동기화되는 순간을 만들기도 했지만 그것이 정합되는 그런 차원은 물론 아니었다. 


    다만 지난 즉흥(<거의 모든 것, 소음>)과 비교해 사운드의 장이 입체적이고 환상적으로 구현될 때에 비해 춤과 음악이 만나는 지점에서 상승되는 측면은 적었다. 앞서 말했듯 음악은 몸의 리듬을 정형화하는 한편, 더욱 복잡하고 세분화된 몸의 리듬을 구현하는 데 있어 무의식적인 안무자로 어느 정도 기능하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자연 갖게 했다.


     김수보는 홀로 인간의 ‘얼굴’을 갖췄다. 곧 무용수들이 흘러가는 몸, 뒤섞이는 몸, 생성되는 몸이 될 때 어떤 특정한 정동마저 사라진 입체적 입자들이 될 때 김수보는 웃으면서 하자는 주의로 너털웃음을 부여했고 갑작스런 생동감이 돌았다. 


    이는 어떤 현현의 차원이었는데 ‘비인간’의 궤적에서 인간적인 무엇인가가 떨어진 것 같은 생뚱맞은 데가 있었다. 반면 이는 춤에 대한 특질을 새삼 상기시켰는데, 춤은 감정을 그 자체로 표현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 언어적인 측면이 아니라는 것.


    반면 김수보가 지은 이후 또 다른 웃음은 그를 도깨비로 드러냈다. 이는 춤을 이화시켰고 그 춤과 그를 포함해 이 장 자체를 이화시켰다. 인간과 비인간의 동시적 공존은 이제 비인간(도깨비)과 인간 군상의 어떤 평범한 일상의 시차적 공존으로 느껴지게 한 것이다. 


    마지막에는 이나현부터 시작해 한 명씩 관객석에서 사람들을 불러왔다. 그러나 그리 특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앞서 느슨하게 이 공기 속으로 퍼지는 춤의 확장된 영역은 바로 이런 부분에서 가장 극대화된 것이다. 곧 춤은 해체되고 꾸물거림으로 몽환적인 도취로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여기서 (나를 대신한 다른 이의) 참여는 그다지 효용이 없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즉흥 속에 유빈 댄스의 춤의 무늬를 어렴풋하게 본 것과 더불어 이 춤의, 춤으로부터의 생성의 지점이 즉흥이 아닌 무대에서 봤을 때에서처럼 즉흥에서 이뤄지는 경우들을 보며 즉흥과 안무의 측면이 춤의 생성의 지점에서 분명 일치하는 측면이 있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었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