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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DANCE2013] 라 베로날(La Veronal), <숏컷–세 도시 이야기 Shortcuts>: 말과 몸, 봄과 보임의 시차 속에서
    REVIEW/Dance 2013. 10. 18. 15:30


    ▲ 라 베로날(La Veronal), <숏컷–세 도시 이야기 Shortcuts> [사진 제공=서울세계무용축제]


    외화면 목소리가 지정하는 묘사와 서술, 그 바깥에서 유희적인 캐릭터들의 파편적이고 반복적인 일상, 이 둘의 관계 내지 간극은 서로에 대한 완벽한 재현으로 작용하기보다 오히려 평행되며 나뉘는 차원에서 출현한다.


    전체적으로 말은, 특히 첫 번째 도시 ‘레이캬비크’에서의 말은, 어둠의 공간에서 둘이 움직임을 쌓아 나가는 것에 그것에 순전하게 몰입하게 하지 않고, 모호한 서사의 일면에 재현되는 내지는 서술되는 측면에서의 부합되는 환상, 완전하게 파악될 수 없는 상황의 일부로 여겨지게 할 뿐이다. 


    이 말은 그래서 명확하게 현실을 만들기보다 (무)의식의 흐름으로 흘러가며 마치 주술처럼 내 안의 화자로 전이되며 파편들로써 현실을 불완전하게 파악하는 공명으로 발현된다.


     말이 동시에 일종의 음악의 단위와 구조를 만든다면, 그리고 동시에 몸과 이질적으로 균열을 일으킨다면, 몸은 그것에 저항하기보다 그들만의 움직임을 만드는 데 주력한다. 어둠 속 빛-그림자가 무대 위쪽 바닥으로 옮겨가는 것으로 커다란 움직임의 단위가 재편되는데 일종의 비물질적 건축적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내레이션이 ‘보는 것보다 더 거짓은 없다.’에 이르면 이 말 자체가 가상과 환영의 측면에서 또한 몸의 진지하지 않은 측면과 상응하는 것에 대한 자기 지시적 측면을 오히려 명확하게 보여주며 조소하고 있음을 표현한다.


     애초에 어떤 이야기 속 캐릭터로 재현되고 있음에서 출발하는 극은 이들의 움직임을 실존이나 우리를 대신한 주체로 제시하지 않는다. 건축적 공간으로 일상을 확장하던 앞의 엉뚱한 도발은 (가상) 현실에 대한 참조적인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는 현재 움직이고 있음은 이 극장 바깥을 벗어나 현재 당도하고 있으며 이 안에서 그것과 합치될 수 없는 관객이 제2의 참조적 현실에 대한 유추를 시도해 보는 것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말들은 이 벗어나면서도 천연덕스럽게 위치하는 몸들에 대한 혼란스런 전거로 작용하자 동시에 그것에 대한 유일한 또 일부의 전거로 작용한다.


     궁극적으로는 완전한 몰입의 불가능한 데서 오히려 작품의 의도를 찾아야 할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현실(의 참조)로부터 출발하되 그것을 압축적으로 또 자의적으로 재현하는 것의 실패를 그 자체로 보여주는 솔직함에서도 찾는 게 가능할 것이다.


     다음 장은 ‘모스크바’로, 이들의 움직임이 다분히 현실, 그리고 건축이라는 일상과 장소에 대한 측면을 묘사하려는 것과 연관해 장소 특정적, 장소 참조적인 극으로 여러 장소의 (불가능한) 재현을 계속해서 시도하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마이크를 잡은 (진행자)에 의해 버전 A와 버전 B로 나뉘어 관객이 각각 왼쪽 오른쪽 눈을 감으면 하나를 볼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게임을 제시하는데, 결국은 ‘한눈’에 다 보이는 무대에서 중요한 것은 그 둘의 차이와 일면이 아니라 중간에 선 자의 경계에서의 위치와 그 시선이다. 이는 움직임보다 이전에 있는 것으로 그 둘을 매개하기보다 그 둘을 보며 그 둘의 차이를 확인하는 메타적 시선이다.


     이어 눈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하는데 제2의 현실에 대한 참조라는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꽤나 황당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 장소에 대한 재현, 한편 정동에 대한 재현이 각각 제반 무대의 현실과 무용수가 내는 정서로 전이된다. 그리고 이 두려움은 이 극 안의 것이라기보다 우스꽝스러운 몸짓 바깥의 말을 타고 관객 그 자체에게로 소급된다.


     암전이 됐음에도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는데 이는 마치 환영의 실재로 보이던 움직임에서 이 극장 자체의 장소 특정적이며 실재적인 그 무엇 자체로 다가오게 하는 측면이 있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 ‘시에나’의 성당의 종소리로 시작한 마지막 안무는 오직 관계 맺음으로만 성립하는 안무다. 상하체가 뒤바뀐 둘의 춤, 서로에게 몸의 반절가량을 제공함으로써만 스스로를 타자로 유지할 수 있는 몸의 합체, 그리고 뒤바뀜으로써만 흘러가는 안무는 변형된 신체의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적 순간의 분절된 단위들의 합산으로도 표현된다.


     둘 같은 하나(실은 하나로 묶인 둘로 표현된 또 다른 둘), 하나에서는 의미가 없는 둘은 실존을 신체들의 엮음이라는 형상의 배치의 다양한 변주로 바꿈으로써 의미를 내재적이지 않은 단지 표현적인 측면에서 소구될 수 있도록 만든다. 의미 부여는 필요 없고 춤은 형상의 창출이라는 점에서 움직임은 정확해야 하고 또 의미는 그 자체로 합목적적으로 실현될 뿐이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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