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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DANCE2013] 전인정과 사이먼 바커 프로젝트 <문 없는 문>: '과정으로서 무대, 그리고 수많은 몸들'
    REVIEW/Dance 2013. 11. 7. 11:02


    ▲ 전인정과 사이먼 바커 프로젝트 <문 없는 문[사진 제공=국제무용협회]

    빛은 어둠으로부터 출현한다. 비물질적 시각으로서 빛이 어둠을 안고 더듬더듬 출현하는 가운데 여전히 어둠은 물질적이고 촉각적으로 몸을 감싸고 있다. 여기에 선 전인정은 무제한의 공간으로서 광야를 헤집는 눈 먼 이의 의식을 체현한다.


     이 광야를 출현시키는 특정한 방식으로서 돎이 출현한다. 이 돎은 급작스럽고 동시에 멈출 수 없다. 돎의 현존은 막다른 막막한 길을 그 끝없음의 무한정의 잠재적인 영토로 바꾸며 몸은 최대치의 에너지를 발산하나 의식은 순일한 차원에서 명료함을 띤다. 이 회전으로부터 출발한 몸의 박동은 멈춤에서도 그 표정으로 그 힘찬 맥동을 갖고 있으며 어떻게 펼쳐질지 모를 급박함의 진행을 충분히 내재하고 있으며 조임과 풂을 자유롭게 가능케 한다. 곧 멈춤 역시 이행의 한 부분이다. 아니 오히려 중요하다. 회전 자체에서 무를 발견하듯 멈춤 자체에서 최대치의 에너지를 사유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징은 은근하게 울리며 결코 미약하지 않은 광대한 에너지의 분절만으로 존재할 따름이다. 그리고 이는 바람의 미미함을 스펙터클의 광경 뒤로 뒤따르게 하는 데 적역이다.


     처음으로 전인정은 사이먼 바커와 마주하며 비스듬히 비켜선다. 이는 상투적이지 않은 방식이며 여전히 극적 세계의 잠재성을 고스란히 안고 그것을 연장하는 방식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파편적이고 분산적이며 불균질한 리듬으로 환경을 창출하고 전인정과 또 다른 신체로 만나는 사이먼 바커는 악기의 매질을 그 자체로 드러내며 동시에 드럼이라는 강력한 매질(로서)의 악기를 배음으로 둔다.



    그리고 그것과의 대위법 속에서 다른 여러 매질들을 그 자체로 드러내며 현재 마찰됨으로써 ‘지금 여기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며 몸과의 가상의 마찰을 구현해 낸다. 곧 이는 단순한 배경음의 효과 차원에 그치기보다 그 자신이 스스로 효과를 창출하며 이것들이 이질적으로 몸과 조우하는 방식을 고안해 내는 것으로써 비로소 사이먼 바커는 위치하며, 그렇게 그는 전인정에 우선해, 춤에 종속되지 않고 다양한 매질을 품고 있는 음들을 만들어 낸다. 


    한편 이 과잉의 시작으로서 음악은 이후 춤의 멈춤 이후에도 적용되며 춤을 가능하게 한다. 몸을 리듬-기계로 구동시키는 것이다.


     온갖 매질들의 실험장, 그에 접속하고 다가가는 수많은 몸들의 지치지 않음의 지속은 실상 지치지 않으나 지침을 생산한다. 이는 합산되지 않은 너무나 많은 것들, 수많은 자연을 거쳐 오며 광야에서 가령 ‘숲’으로 들어온 이후 많은 정보들의 해석되지 않은 경험을 겪어왔기 때문으로, 이 소리-제공(제공/제공)의 사이먼 바커의 세계와 대면하며 전인정은 급작스레 그 에너지의 향방을 소거하고 또 관객석으로 돌려버린다. 이는 관객에게 전인정이라는 역할로서 말 걸기를 실행하는 것으로 이는 수없이 정신없이 지나쳐 온 의식들에 순간 구멍이 생기며 그것들을 더듬어 보는 순간을 예기치 않게 주기도 한다.



     이는 전인정의 독무대였음의 인식을 착시적으로 수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강렬한 매질로서 음악 안에서 그 즉시로 현존하기란 쉽지 않다. 아니 사운드는 몸을 초과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비등비등한 대면/대결은 환경 자체를 만드는 사운드, 수많은 몸들의 변화로서의 몸인 사운드의 일부가 되며 또 그것을 체현하는 매체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즉흥으로서 무대, 즉흥 자체가 창작 과정의 전부가 되는, 완성되지 않는, 그 자체로 온전한 이런 춤-무대의 형식은 결코 끝나지 않으며 어떤 흔적으로서만 남게 마련이다. 이는 그래서 완성도의 평가를 무색하게 하며 관계성의 미학이 주는 생채기와 서로에 대한 스스로의 증명과 같은 것으로 남을 뿐이다.


     우리 것을 전유/체화해 드러내는 사이먼 바커식의 우리 음의 변용은 우리 것을 이국적인 것으로 다시 듣게 하며, 그것을 분절하고 또 다른 새로운 몸들을 만드는 방식의 구현을 목격하게끔 한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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