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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ance 2019] 마리 슈이나르 무용단, <앙리 미쇼: 무브먼트>: 세계를 읽는 법REVIEW/Dance 2020. 3. 16. 16:47
하나의 게임의 법칙이 전제되고 이는 끊임없이 중첩된다. 양면으로 펼친 책의 도상을 띤 스크린에는 끊임없이 오른쪽 장에서 상형문자들이 뜨고 이를 퍼포머들은 표현하고, 다시 문자는 왼쪽 장에서 축소돼 쌓인다. '문자의 움직임 도해'로 볼 수 있는 공연은, 스코어 자체가 거의 동시적으로, 하지만 선제적으로 지시된다고 할 수 있다. 각각의 포즈 또는 움직임은 매우 파편적인 데다 구현과 동기화에 모든 게 맞춰 있으므로 공연은 매우 명확할 뿐더러 움직임에는 어떤 다른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 듯 보인다.
개별의 2차원 시각적 기호들은 3차원의 움직임의 제약 조건이 되지 못하는데, 이는 무엇보다 3차원의 움직임이 움직임의 시각적 표상 (불)가능성을 시현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공연이 보여주는 건 매체 간의 번역(이미지-문자→움직임)이 아니라 번역 불가능성 자체이고, 매체-기호 간, 곧 중첩되는 정보들의 상호 피드백이다. 처음 문자가 먼저 제시되고, 이를 따라 함을 보여준 건 이 게임의 룰을 습득하는 관객 눈높이의 전달이었다면, 이후 움직임과 이미지는 어떤 선후 관계가 아닌 동시적 관계이며, 실제 퍼포머는 이를 보지 않으며 볼 필요가 없다, 아니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리듬은 째깍째깍 돌아가므로, 곧 어떤 굴곡도 용납 않고 반복되므로.
움직임을 보고 이미지로 번안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러니 2차원의 겹쳐진 획들의 고유성이 음영 없이 하나의 톤으로 칠해진 그림, 가위로 잘라 낸 종이 또는 포토샵에서 하나의 검은색을 입히고 올가미툴로 따낸 이미지가 아니라, 순서와 시간과 움직임을 갖는 것이라 보는 것 역시 가능하다. 물론 그 반대로 3차원 움직임이 2차원 이미지로 분쇄되는 건 상대적으로 매우 쉬운데, 이 역시 매끄러운 번역은 아닌 데다 정지(=순간)의 포즈와 단면으로 이를 포착하(려)는 시각적 전유를 통해서 겨우 가능해진다.
움직임은 하나의 이미지 단면으로 수렴되기에는 불충분하여 일종의 손을 바삐 놀리며 비어 있는 획들을 차례로 임시로 채우며 착시가 가능하다고 손짓한다. 또는 실제로 울부짖거나 하여 이 2차원 이미지가 하나의 생명체임을 주지시킨다. 하얀 배경의 검은색 이미지에 (흰) 얼굴이 없다는 것, 그리고 검은 복장에 얼굴은 색깔을 더하지 않고 그대로 노출한다는 것은, 이미지와 움직임의 결정적 차이는 아니다. 이러한 차이는 지울 수 없다기보다는 의도적으로 지지되어야 하는데, 이는 이미지로 결정될 때 얼굴이 하나의 사물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의 결과물이지만, (이미지로부터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의 어려움을 온전히 소거하지는 못함으로써 여전히 인간적이면서 동시에 비-인간의 어떤 형상을 따라 가게 된다.
<앙리 미쇼: 무브먼트>는 움직임을 이미지로 고정시키는 과정에서 거의 성공적으로 문자를 복기하는데, 이는 문자가 될 수 없다. 어떤 포즈와 그 포즈에 도달하는 움직임의 과정이며, 읽는 것이 아니라, 곧 반대쪽에서 기의가 따라붙는 기표가 아니라 보는 것에 가깝지만, 여전히 그것은 두 개의 중첩된 보기를 통해 문자를 움직임으로, 또는 움직임을 문자로 읽어 내는 과정을 수행한다. 곧 움직임과 이미지는 수행적 읽기를 통해 빠르게 전환된다. 여기서 읽기란 두 개의 식별되는 레이어를 설정함을 의미한다, 곧 우리는 두 개의 책이 거의 동시적으로, 약간의 시차를 가지고 끊임없이 펼쳐지는 세계를 보며, 세계를 보는 데 그치지 않고 물론 읽어 내게 된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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