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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ance 2019] 로베르토 카스텔로, <우리는 밤에 방황하고 불로 소멸한다>: 강박에의 황홀REVIEW/Dance 2020. 3. 16. 16:48
▲ ALDES/로베르토 카스텔로 <우리는 밤에 방황하고 불로 소멸한다>ⓒPark Sang Yun[사진 제공=서울세계무용축제](이하 상동)
일정하게 아래로 흘러내리는 방향성으로 인지되는 패턴 무늬의 무대 전면의 프로젝션 아래의 움직임. 일종의 스크린으로서 극장 안에서 그 무늬와 교접하며 동기화되는 움직임은 스크린의 연장으로 기능하며 마치 흘러내리는 스크린 같다. 여기서 몸은 준자율적이며 스크린에 복무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스크린은 이러한 생명력에 감화되어 움직임을 지시하며 신체적 움직임 자체가 된다. 여기에는 타악류의 일정한 사운드 리듬이 전제되는데, 이는 이 무한한 걸음으로 대변되는 움직임의 지속을 안으로 접히게 한다―만약 영상과 같이 사운드의 강박적 작동이 없었다면, 영상으로 인해 내부가 구성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무한한 루프가 가능한 깊이의 공간을 구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이 반복 자체의 리듬이 파열에 대한 열망을 이겨냄 자체가 주는 황홀, 곧 '또 다시 반복된다는 것'이 주는 쾌감이 이 작업의 지속에 동참하는 하나의 방식이 될 것이다. 대부분 정면을 향한, 또는 옆으로 돌아 걷는 가운데 거리는 일정하게 유지된다. 이들의 보폭을 관찰하자면 한 발은 앞으로 향하지만 다른 한 발은 연이어 뒤로 주춤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제자리걸음이 되지는 않는데, 스크린의 무늬는 점증적으로 확장되고 변화되어야 하는데, 이는 그것에 인계된 몸의 움직임의 미세한 변화에 따라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dark / light"로 반복되는 지시문은 어둠과 빛의 상관관계를 탐구한다기보다는 그 둘을 분절하며 차라리 차이를 전면화하는데, 이진법은 이 작업의 반복의 메타포에 상응하며―시작과 종결이 아니라 A와 B의 끊임없는 뒤집힘만이 있는 것이다.―결과적으로 최면을 위한 주술의 기능을 한다. 이 작업은 결국 어둠을 (불)가능하게 하는 빛―스크린―이라는 지지체와 빛으로부터 드러나는 어둠―신체―에 대한 지시문이다. 내리꽂듯 발음되는 "dark"와 그 위에 살포시 안착되는 "light"는 어둠을 거꾸로 지지체로 갖는 빛의 연약한 서사를 지시한다. 여기서 연약한 빛은 어둠을 보충한다.
스크린은 어둠("dark")이 반복될 때마다 자리를 옮기고 이는 때때로 몸을 벗어남으로써 몸은 빛과 어둠에서 잘려나간다. 몸은 여기서 빛의 가장자리 바깥의 그림자가 되고 "dark"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 경계의 안으로부터 이 스크린의 3차원 영역이 상정되고 있고, 그러한 세계는 옮겨 간다. 그리고 우리는 때로 뒤틀린 세계를 보게 되지만, 한 발을 불구로 상정하는 걸음걸이로 인해 세계는 여전히 공고한 프레임이 된다. 그렇지만 그 예외의 순간, 프레임을 비껴나는 몸은 우직함 자체를 주장하는 듯 보인다. 이 몸은 일종의 마술처럼 다시 프레임으로 들어가 있고, 프레임은 또 다시 위치해 있으니, 다른 곳에. 그러니 가상의 잔여물로서 몸은 시차로서 자신의 우직함을 증명한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728x90반응형'REVIEW > Dance'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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