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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IP合(힙합)》, 음악과의 관계에서 바라본 세 가지 힙합으로서의 현대무용
    REVIEW/Dance 2021. 8. 26. 08:04

    (공연사진) KNCDC_HIP合_등장인물 ⓒAiden Hwang (이하 상동)[=국립현대무용단 제공]

     

    김설진 〈등장인물〉, 김보람 〈춤이나 춤이나〉, 이경은 〈브레이킹〉의 순으로 진행된 세 개의 무용 공연인 《HIP合》은 모두 힙합을 모티브로 하며 국악을 접목한다. 그럼에도 각각의 다른 공연들이 하나의 이름으로 모일 때 공연의 순서를 구성하는 건 기획의 예술적 묘가 전제된, 공연 외적인 차원의 언어, 하지만 관객의 경험과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다. 
    무대 바닥을 하강시킨 상태에서 시작한 〈등장인물〉을 처음으로 한 ‘힙합’의 두 번째 무대는 빈 공간으로서 무대를 활용한 〈춤이나 춤이나〉가 뒤따르는 게 당연한 듯 보인다, 가장 많은 출연진 수와 천장 위의 무거운 투명 오브제 구성의 〈브레이킹〉이 가장 뒤에 와야 할 것임을 상정한다면. 그렇지만 이는 순전히 공연 준비의 효율적 차원으로만 환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장 클라이맥스적인 차이를 공연 내에 가지고 가는 공연이 〈브레이킹〉인 것이다. 
    앞선 두 공연과 대별되는 이 공연의 차이는 음악을 가장 유려한 것으로 구성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다른 두 공연이 음악에 대한 절대적 의존에 기초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음악에 초점을 맞춰 세 개의 공연을 모두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등장인물〉에서 안무가인 김설진을 포함한 세 명의 퍼포머는 모두 제목처럼 ‘등장인물’로 존재한다. 어쩌면 이 인물들이 어떤 주체의 지위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차원이 이 작업의 중심 주제이면서 김설진의 작업들에서 공통되는 어떤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무대 아래서 등장한 퍼포머들은 전체적으로 군무보다는 제각각의 움직임을 갖는데, 이러한 움직임이 연결되는 건 현장의 디제잉에 의한다. 야밤의 사각거리는 어떤 장소의 반복되는 음향에서 출현한 존재들은, 무성(無聲)적 존재에서 희극적 존재로 나아간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이들의 존재를 읽을 수 있다. 이는 물론 대중 일반을 상대하는 데 있어 무대의 생기를 돋우는 클리셰든 극적 장치이든지 할 수 있다. 그리고 익숙한 음악들의 차용과 전환 속에 인물 한 명 한 명이 나타나고 새롭게 부각된다, 이 넷의 얽히고설킨 관계 양상 속에서. 

    특히 가부좌를 튼 스님의 이미지를 만들고 그 앞에서 수련을 방해하는 듯한 동물을 묘사하는 것 같은 장면은 퍼포머들의 정면성이 강조된 장면이다. 여기서 음악의 주술이 캐릭터의 연기를 만들고 그러한 장면들을 분할한다는 데 주목할 수 있다. 디제잉의 믹싱이라는 지점, 곡에서 곡으로라는 디제잉의 문법은 결국 이 공연의 리듬으로, 이야기의 얼개를 만드는 데 주요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무대 뒤 배경음악을 만들던 음악가 최혜원은, 보이지 않지만 극의 구조를 구성한다. 그리고 이 음악의 특징은 시간적으로는 지속되지 않는 교체 가능성을 가진다면, 물리적으로는 두 사운드의 중첩과 분할 가능성을 상정한다. 전통과 현대는 이러한 차원에서 한복의 의상과 동작보다는 음악 안에서 명확하게 혼재되어 있다.

    (공연사진) KNCDC_HIP合_춤이나 춤이나 ⓒAiden Hwang (이하 상동)[=국립현대무용단 제공]

    〈춤이나 춤이나〉는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에서 소개된 각종 ‘우리의 소리’를 음원으로 사용한다. 총 열두 개의 ‘우리의 소리’가 사용되는데, 최혜원이 이를 믹싱해, 연이어 소리가 펼쳐진다. 사실상 퍼포머들이 보여주는 움직임은 이 소리의 내용을 재현하는 것과 크게 상관이 없어 보인다. 박자에 따르는 움직임은 결과적으로 소리를 기표 자체로 드러낸다. 물론 이 기표는 목소리가 담지하는 실존의 생생함이기도 하다―그리고 이러한 실존은 움직임을 초과하는 일면이 있다. 움직임은 이 소리로부터 박자를 놓치지 않기 위한 강박과 같다. “표현을 위한 동작이 아니라 동작 자체가 표현이 되는” 공연에 대한 팸플릿상의 설명은 동작 자체에서 숨겨진 의미를 찾을 수 없으며 그 자체를 감각하는 방식만이 유효할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동작들이 휘발됨으로써 완성된다면, 그것들을 연결하고 종합하는 관점을 온전히 배제할 수 있는 것일까. 
    〈춤이나 춤이나〉는 무한 기표의 자율성, 혹은 포스트모던적 유희로 비치지만, 사실상 그 전제는 음악에 대한 움직임의 강박에 있다. 그 음악의 고삐에서 풀려나온 무용수의 움직임은 춤의 명령이, 음악의 시스템이 멈추었을 때 헐거워지며 길을 잃은 모습으로 희화적 웃음의 틈을 만든다. 하지만 그것은 이 ‘움직임 공장’에 대한 의문이나 다른 움직임의 모색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우리의 소리’의 내용은 실상 들리지 않기도 한다. 문자로의 전환 또는 중첩은 없다. 이를 순전한 기표로 치환할 수 있을까. 앞선 목소리의 실존, 노래가 담은 내용은 분명 순수한 기표로 사라지기보다 어떤 틈과 해석의 여지를 만든다. (만약 곡들을 분류하고 그에 따라 연결하고 주요한 부분을 반복과 차이로써 갈음했다면, 단지 음악의 내용을 가시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안무에서도 주요 장면을 만들 수 있지는 않았을까.) 계속된 기표에 대한 일치의 강박, 기표 위에 쌓는 기표의 세계는 피로감을 선사한다. 해석할 필요 없음의 동일한 결론에서 오는 피로. 열두 개의 소리에 기막힌 동기화의 안무를 구성함은 안무라는 것이 순전히 기술적인 차원에 국한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낳는다. 동시에 무대라는 것 역시 진공의 연습실에 가깝다. 곧 X축과 Y축 사이에서 정렬된 퍼포머들의 움직임들이 끊임없이 자욱하다. 

    (공연사진) KNCDC_HIP合_브레이킹 ⓒAiden Hwang (이하 상동)[=국립현대무용단 제공]

    〈브레이킹〉은 천장에 늘어뜨린 투명한 강화 플라스틱 종류로 보이는 구조물을 무대 안에서도 사용해, 존재와 존재 사이에 그것을 놓고 마주 보고 마주하는 식의 장면들을 배치한다. 그것들을 사이로 한 채 퍼포머들은 각기 다른 나타남으로 인트로의 긴장을 지속한다, 무대는 조명을 통해 열려 있는 상태에서. 이것들이 새로운 긴장을 구성하는 건 음악이 라이브성을 부각하며 무대를 뚫고 나오듯 박차를 가할 때 그에 맞춰 구성되는 군무다. 같은 동작을 분절된 형태의 각기로, 또 유연함에 가속도를 주는 식으로 각각 스트리트 댄스와 현대무용의 차이가 시각화될 때이다. 곧 각 고유한 움직임이 그 차이를 선명하게 각인하는 식으로 동일한 시간에 머무르려 할 때이다. 물론 빠른 리듬으로 가속되는 음악의 궤에서 전자가 조금 더 유리해 보인다. 잠비나이의 멤버 이일우, 그리고 이충우, 이준의 연주는 국악을 바탕으로 한 연주 역시 배경이라기보다 하나의 무대에서 공존한다. 결과적으로 음악의 파열음은 움직임이 절합되고 각색되는 시점과 맞물린다. 

    〈등장인물〉이 어떤 연극적 상황 속에서 관계 맺음의 캐릭터성을 강조한다면, 〈춤이나 춤이나〉는 인형 같은 무용수의 캐릭터성을 강조한다. 물론 이 자체를 즐겁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브레이킹〉은 다른 존재들의 차이를 실재화하며 공통된 시간에서의 각각의 목소리들이 존재하는 정치적 장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캐릭터로부터 나아가 퍼포머들 각 존재성을 드러낸다. 동시에 음악을 하나의 존재(의 출현)로 드러냄으로써 음악의 고유성을 가능하게 한다. 결과적으로 〈브레이킹〉의 음악은 자유롭고 음악으로부터 퍼포머 역시 자유롭다. 

     

    김민관 mikwa@naver.com

     

    《HIP合(힙합)》 포스터

    [공연 정보]

     

    공연 일시: 2021.8.20.(금)-8.22.(일) 금 7:30PM 토·일 2PM·6PM
    공연 장소: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등장인물 MOVER〉
    안무 김설진
    출연 김설진 김기수 김봉수 서일영

    〈춤이나 춤이나 Nothing to〉
    안무 김보람
    조안무 이혜상
    출연 김보람 공지수 서보권 성창용 유동인 조영빈 조혜원

    〈브레이킹 BreAking〉
    안무 이경은
    출연 고준영 김지영 김미리 임재홍 김영은 김현주 김동주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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