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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지영, 〈기다란 선을 따라 무한히 이동하는〉: 유동적 언어에서 단단한 언어로
    REVIEW/Dance 2021. 9. 9. 00:39

    유지영 안무, 〈기다란 선을 따라 무한히 이동하는〉. ⓒ곽소진(이하 상동). 왼쪽부터 이종현, 유지영

     

    〈기다란 선을 따라 무한히 이동하는〉은 언어와 움직임의 교환을 놀이처럼 시험하는 듯 보인다. 화이트보드와 의자, 양말 등 이들은 이미 놓여 있던 사물이나 착용하고 있던 의상을 수행의 근거들로 활용한다. 그리고 정방형에 가까운 공간 사이에 또 하나의 정방형에 가까운 벽이 놓여 통로를 구성하는 공간의 삼면을 이용해 이동의 반경을 그려나가는 퍼포먼스에서, 제목은 장소를 체현하고 있었다―장소는 제목을 구현하는 적합한 장소였다. 여기서 “단단히 고정하세요”는 움직임에 대한 정언명령으로서, 공연 전반을 지배하는 기호로서, 그 자체를 규칙으로서 그 둘이 지정한다는 점에서 재귀적으로 수렴한다―그 근거를 지정할 수는 없다. 

    첫 번째 장면인, 테이블을 중간으로 두고 서로 마주한 이종현과 유지영은 서로를 복제한다. 거울의 반영이 아니라 동시에 같은 움직임을 각자의 방향에서 한다. 그리고 테이블 옆에 세워진 커다란 화이트보드를 잡고 발을 굴려 이동한다. ‘기다란 선을 따라 무한히 이동하는’ 건 더딘 움직임 사이의 균열점들, 곧 분절 지점들이거나 이동할 때 바닥을 짚는 양말과 바닥의 마찰 같은 것들인 한편, 무엇보다 끊길 듯 지속되는 레코드판에서 새어 나오는 듯한 음악의 층위다. 

    두 번째 장면은, 이동 후에 도착한 화이트보드가 전면에서 이 둘의 얼굴을 가리고 있고, 이 둘은 바지에서 자석을 꺼내 화이트보드에 붙이는 걸로 시작된다. 그것이 자석인 건 이후에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단단히 고정하세요”라는 글자가 드러나고, 그 둘은 그 앞에 놓여 있던 나무 의자와 이불보를 갖고 행위하는데, 유지영이 나무 의자의 볼트들을 드라이버로 돌려 하나씩 빼서 해체해 나간다면, 이종현은 이불보와 그 안의 천을 계속 안팎으로 뒤집는 식으로 움직인다. 이종현이 자크를 채우지 않고 안과 밖의 경계선을 고정하지 않음으로써 고정되지 않음의 상태를 드러낸다면, 유지영은 고정된 것의 고정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이들은 단단하지 않은 사물과 단단한 사물 사이의 단단히 고정되지 않은 상태를 구성하며 앞의 지시문을 ‘반대로’ 이행한다. 

    “단단히 고정하세요”는 단단히 고정되기 전의 무른 상태를 지시하는데, 이 둘이 만드는 상태 혹은 과정은 각각 이 말의 예외 혹은 이전을 상정한다고 볼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여기서 이행은 이 말의 근원적인 전복의 실천이 아니다―이 말 자체를 무효화하지는 못하며 이 말 자체로부터 이 비-움직임 혹은 반-움직임이 출발한다. 나아가 이 말의 해체될 수 있음에 근거한다는 점까지도 이 퍼포먼스의 언어와 움직임의 교환을 충족시킨다. 곧 이 말이 자석의 이동에 따라 위치되는 형태라는 점, 곧 자석들로 구성된 지표라는 건 이 자석이 놓이고 다시 해체되는 과정에서, 언어가 조각적 행위로부터 유래하는 물질이라는 것, 조합을 통해 빚어진 언어의 형상이라는 점으로부터 언어와 움직임의 교환은 미묘하게 변주되기에 이른다. 

    마지막 장면인 “양말분류법”은 언어와 움직임의 가장 직접적인 교환인데, “양말분류법”은 바로 “단단히 고정하세요”를 해체하며 재조합한 것이다. “단단히 고정하세요”의 해체는 그 이전의 장면에서 “단단히□□□하세요”나 “단단히□□□□□요” 그리고 이후의 “□□□□고정□□□”에 이르기까지 “단단히 고정하세요”라는 언어의 틀을 남겨두고, 유지영이 그 언어를 풀어헤친 여러 의미가 그 앞에 선 이종현의 움직임과 결합하며 작동했다. “고정”은 주로 정지로, “단단히”는 주로 움직임의 밀도가 반영된 형태로 드러났다. 

    ”양말분류법”은 “단단히 고정하세요”의 전면 수정인데, 유지영이 자신의 왼쪽 양말을 벗어 이종현에게 보내며 동시에 양말 앞에 수식어를 붙여 양말을 호명하는 행위의 끝없는 반복이다. 수식어는 매번 달라지지만 중간중간 반복되기도 한다. 양말이라는 매개(물)에 덧붙여진 언어는 움직임의 직접적 재현이다. 움직임에 상응하는 언어의 급격한 도착은 미세한 차이를 동반한다. 이는 이종현에서 유지영으로, 그리고 유지영에서 이종현으로 도착하는 손과 손 사이의 양말의 맞물림과 동시에 발생하는 사운드라는 점에서, 이러한 언어는 움직임의 동력으로부터 출현하는 움직임의 생생한 하나의 조각이다. 마치 자석처럼 풀어 헤쳐질 수 있는 것처럼, 단단히 고정되기 직전의 상태로 되돌려지는 나무 의자 위에 잠겨 있던 볼트처럼 언어는 사물로써 드러나고 사물은 언어의 작은 조각들이 된다. 나아가 움직임의 양상에서 언어는 사물로 나아간다. 그것은 “양말”인지 양말인지 혼동을 주는, 어떤 사물 같은 언어, 동시에 언어 같은 사물이다. 

     

    김민관 mikwa@naver.com

     

    [공연 개요]

     

    - 일시  |  2021년 9월 3일 금요일 17시 / 20시 
                               9월 4일 토요일 15시 
                               9월 5일 일요일 15시 
    - 장소  |  윈드밀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13)
    - 회당  | 17명 
    - 러닝타임  | 50분 

    ■ 공연소개 ■
    <기다란 선을 따라 무한히 이동하는>은 하나의 고정된 상태로 머물러 있는 언어에 의문을 갖고, 언어가 지칭하는 바와 붙어 있는 대상을 낯설게 만드는 시도를 지속한다. “언젠가 이미지 그 자체와 그것이 달고 있는 이름이 함께, 기다란 계열선을 따라 무한히 이동하는 상사에 의해, 탈동일화 되는 날이 오기를 캠벨 캠벨 캠벨...”

    ■ 제작진 ■ 
    콘셉트, 안무 : 유지영 
    창작, 퍼포먼스 : 이종현, 유지영
    드라마터그 : 한수민
    조명디자인: 김은빈
    음악, 사운드 : 조은희
    무대진행 : 이신실 
    그래픽 디자인 : 김은지(개미그래픽스) 
    기록영상/사진 : 곽소진
    도움 주신분 : 신진영 
    후원 :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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