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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은진, 〈UNDOIT〉: 행위와 움직임 사이에서
    REVIEW/Dance 2021. 9. 13. 21:52

    최은진 안무, 〈UNDOIT〉. ⓒ곽소진(이하 상동). 윤상은 퍼포머.


    행위가 어떤 목적성을 띤다면, 움직임은 그 자체로 성립할 수 있다―움직임은 움직이다의 명사화인 셈이지만 동시에 특정한 시간과 형태로 의미화한다. 행위가 목적에 따라 도구들을 수단으로서 사용한다면, 움직임은 도구를 만지는 몸짓까지도 목적으로 내세울 수 있다. 행위와 움직임 사이의 간극을 임시적으로 구성하는, 이러한 구분 도식에는 물론 예술이라는 지침으로부터 심미화되는 움직임이라는 전제가 있다. 반면 이 예술의 자리, 움직임에 행위를 집어넣는다면, 남는 건 행위임을 지시하는 움직임이다. 또는 행위로서의 움직임이다. 따라서 이 과정은 행위에서 움직임으로의 수렴을 낳는다. 
    최은진 안무가의  〈UNDOIT〉은 일견 행위의 움직임으로의 전환이 아니라 행위의 변형과 해체를 통한 움직임의 확장으로 보인다. 행위와 움직임을 오가는 가운데, 행위인지 움직임인지 모를 경계지대가 생겨나고,  〈UNDOIT〉은 그 사이에서 인식과 감각이 교란하는 지점을 추구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이것은 행위가 묻어나는 움직임인가, 움직임을 빙자한 행위인가?’ 행위는 행위 자체의 코드를 지닌다. 그리고 이는 일상 오브제의 리얼로부터 온다. 곧 도구로부터 시작한다.

    김명신 퍼포머.

    네 명의 퍼포머는 모두 제각기 다른 일상의 오브제들을 행위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에서 시작해, 이를 움직임으로 연장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일차적으로 심미적 움직임, 무용적 움직임으로 식별 가능한 움직임을 벗어나고자 하는 것으로 감각된다는 점에서, 행위로부터의 출발은 반-움직임 또는 비-움직임의 코드를 띠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여기서 안무는 움직임의 새로운 동기를 찾기 위한 행위에 가깝다.
    나아가 네 명의 퍼포머는 자신만의 움직임을 노정한다. 또한 네 명의 퍼포머는 자신만의 움직임을 해체한다. 여기서 행위의 해체가 그러한 결과를 낳는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는데, 어떤 행위처럼 하지 않기, 곧 움직이기는 어떤 움직임 같이 보이지 않기로 귀결된다. Not A는 Not B로 수렴한다. 이러한 도식을 따른다면, A가 B의 필요조건임을 상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곧 행위는 움직임보다 큰 범주이며, 행위의 예외를 만든다면, 이것은 움직임의 예외―곧 존귀한 것―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작용이 우연한 것이라면, 곧 A와 B의 상관관계가 없는 것이라면, 앞의 명제 역시 추출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행위와 움직임은 과연 완전히 다른 범주로 볼 수 있는 것일까. 

     〈UNDOIT〉은 행위의 해체, 더 정확히는 행위라는 코드의 해체를 통해 움직임을 만든다. 그 결과는 물론 정형화되지 않은 움직임이다. 코드화되지 않은 움직임이다. 이것은 행위의 흔적들을 계속 그 안에 기입하려는 행위로서의 움직임이기도 하다. 곧 행위의 지연이 아니라, 행위와 행위를 지연시키는 반-행위의 움직임의 포괄이다. 움직임이 되기 위한 행위의 실패의 순간들이기도 하다. 여기서 행위의 얼룩은 움직임이 되지 못한 순간으로 봐야 하는가.
    효자손을 들고 등을 긁으려던 윤상은의 행위가 행위로 도착하지 못하며, 한없이 느려지고 버벅거리는 순간들의 연속이 휘청거리는 몸 전반으로 다시 공간으로 확장되는 첫 번째 순간이,  〈UNDOIT〉의 시작이다. 이러한 시작은 공연의 게임 규칙을 설정한다―빗을 빗던 박유라의 행위가 흐트러지며 팔딱거리는 몸으로 변신하는 것은 이 짝패다. 윤상은의 표정은 매우 심각한데, 이는 행위로서의 움직임이 되는 데 실패하는 분명한 표현이다. 또는 그 몸을 설명한다. 초점은 불명확하며 몸을 보위하지 못하며 통제하지 못한다. 몸의 분산과 이탈은 의지의 이탈과 분산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는 어떤 의지를 또한 보여준다, 몸의 분산과 이탈을 위한 분산과 이탈의 ‘희미해져가는’ 의지. A를 Not A로 하기, A~(Not A를 향하기)로 하기. 하지만 A를 잃지는 않기.  〈UNDOIT〉의 어떤 법칙이다. 김명신의 표정은 한층 더 명확하게 이와 움직임과의 관계를 보여주는데, 일반적이지 않은 몸의 반경을 하기 위한 일그러짐 또는 치우침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 반쯤 굳어진 표정은 제어되는 몸을 표상한다. 하지만 그 굳어진 표정이 몸을 제어하고 있지는 않은가.

    주희 퍼포머.

    주희는 태권도 동작을 선보이기도 하고, 발성을 해서 그 앞쪽에 위치한 마이크에 소리를 반향시키기도 한다. 이는 박유라의 허벅지를 한 번 탬버린으로 치는 행위 이후에 두 번째 소리와 공간의 연결이다. 진상태의 물리적 사운드는 이 공연 전반을 지배하는데, 이는 각 무용수의 행위의 끝을 알리는 표지이면서, 행위들이 사물에서 연원한 어떤 마찰적 반복임을, 의미 없음의 의미임을 알리는 매체로서 기능하는 듯하다. 이 소리에 의해 각 무용수는 공간 곳곳에 산재한 다른 무용수와 배턴 패스를 한다. 
    중앙은 비어 있고, 가에 모든 존재가 있다. 입구에서 들어가면 좌측면은 2층 연립 주택의 테라스처럼 꾸며 놓았고, 맞은편은 창가가 있다. 이러한 공간 구성이 그 일부의 기호들로써 일상의 공간임을 지시하는 가운데, 무용수들은 관객과 같은 곳을 보다가 이내 멀어지며(중앙 공간을 향하며) 등지고 행위와 움직임 사이에 무엇을 하기 때문에 이러한 멀어짐은 일상의 연장이다. 중앙 공간은 물론 허구의 공간이다. 반면 일상의 일부를 신체의 일부와 결합하려는 차원에서 일상의 연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간을 싸고 있는 더 정확히는 닿고 있는 진상태의 사운드는 배경음이고, 더 정확히는 물리적 마찰에 의한 전달이라는 차원에서 움직임을 은유하는 메타포이면서 그것과 완벽하게 동기화되지 않는 차원에서 조금 더 선명하고 직선적인 언어로 분류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음악과 움직임의 다른 결을 상정한다. 

    박유라 퍼포머.

    두 사람 간의 교차는 후반부를 지배한다. 주희가 배드민턴을 정확히 치는 행위를 하다 공을 정확히 박유라에게 보내는 대신 그것을 치기 위해 몸을 비틀고 꼬는 행위가 시작되고 이내 상대방으로 연장된다. 이러한 행위들은 앞선 행위들에 이어 반복적으로 확인되며 예측 가능한 수준에 이른다. 밀도는 수축되고 행위의 코드는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UNDOIT〉의 경로에서, 그 전제된 방식은 단순하다. 관객석에서 중앙으로, 한 명에서 다른 한 명으로, 행위에서 움직임으로. 한 명에서 두 명으로 쌓는 더하기의 방식이 결론을 대신한다.  〈UNDOIT〉의 움직임의 코드는 움직임의 의지를 재구성하지만, 각각의 경로는 결국 어떤 움직임의 흐름을 따라 가야 함을, 또한 그 흐름 자체를 움직임의 방식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는 연습되고 축적된 움직임을 전제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 경로를 다양하게 해야 한다는 점에서 선택지는 무한하며 이러한 움직임의 방식이 즉흥 움직임처럼 이러한 선택지들(?)을 보이게 만든다. 행위의 표층은 곧 움직임의 심층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움직임이 단순하게 말해 그저 어떤 즉흥이라면,  〈UNDOIT〉은 공연으로서의 짜인 움직임의 코드를 해체해 춤의 한 표지로 나아가고자 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행위하다 이를 움직임의 모티브로 가져가는 건 즉흥에서 흔히 목격될 수 있는 바다. 곧 빈 중앙 공간에 놓이면 각자가 선택한 오브제와 함께 춤을 시작할 무용수들의 펼쳐질 시간들. 그리하여 각자의 움직임만이 공존하는 동시에 각자의 움직임을 주고받는 짜임으로 일부 나아가는 시간들.

    왼쪽부터 김명신, 박유라 퍼포머.

     〈UNDOIT〉은 행위가 움직임에 전제된 무엇임을 전제한다. Not A는 Not B로 나아간다. 그렇다면 다시 우리가 알던 움직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행위와 대립하지 않던가.  〈UNDOIT〉은 결국 움직임의 탈코드화를 지향한다.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UNDOIT〉은 행위의 표층을 가져오지만, 결국 움직임이 어떻게 피상적이거나 그럴 듯한 것으로 생각되지 않을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으로서, (반-움직임이라는 또는 비-움직임이라는) 움직임의 심층을 띤다.

    마지막에는 창가에서 책, 또는 자신만의 노트를 각자 읽으며 내용의 의미를 웅얼거리는 목소리의 기표로 뭉개는 듯 보인다, 마치 행위를 해체하며 반-움직임을 만들 듯. 이러한 실험은 반대편에서는 적절한 소리의 거리를 확보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이며, 무엇보다 하나의 덩어리를 만들기에는 너무 짧게 끝난 듯하다. 동시에 소리와 움직임 간의 사이를 실험하는 이후의 방법론을 그려 보이기도 한다. 

    김민관 mikwa@naver.com

     

    [공연 개요]

     

    «UNDOIT»

    목표하지 않고 성공하기 지배하지 않고 이용하기.

    사물을 대하는 몸의 태도를 조정하는 방법을 안무적으로 고안해 사물과의 관계를 다시 상상하고 재편해본다.

     

    공연일시: 2021년 9월 6일(월), 9월 7일(화), 9월 8일(수) 오후 6시

    공연장소: This is Not a Church (서울 성북구 동소문로10길 34-16)

    안무 : 최은진

    움직임실연 : 김명신, 주희, 윤상은, 박유라

    음악 : 진상태

    조명 : 한윤미

    무대/진행 : 심우섭

    그래픽 : 송재욱

    영상기록 : 최강희

    프로듀서 : 신진영

    * 본 공연은 2021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 다원예술 창작지원을 받아 제작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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