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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현주 작, 이양구 연출, 〈집집〉: 하나의 집(을 지배하는 시스템) 아래 무수한 존재들이 있다!
    REVIEW/Theater 2021. 9. 22. 00:19

    연극 〈집집〉 ⓒ김솔[사진 제공=극단 해인](이하 상동). 이나리 배우.

    극장에 들어서면 작은 집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낡은 나무로 된 싱크대장 표면에 흰색 패널을 부착하는 것으로 극 중 유일한 사물의 변화가 여러 장면에 걸쳐 단속적으로 꽤 느리게 일어나는 것처럼, 리얼함은 임대아파트를 재현한 이 집 안 곳곳을 지시하는 것으로 드러나며, 마찬가지로 그 사물을 만지고 지시하며 인물의 발화가 구성되듯 일상은 한없이 느리고 세세한 시간성으로 구성된다. 리얼함은 곧 이 집의 외양, 곧 그 속의 사물들, 그중에서도 싱크대가 지지하며, 이 집은 20년의 시차를 둔 두 인물, 박정금(박명신·이윤화 배우_더블캐스팅)과 연미진(이나리 배우)의 삶을 오가는 공간이자 리얼함의 공통된 토대이기도 하다. 곧 그 둘은 다른 시간에서 마주할 수 없는 반면, 이 집은 마치 그 둘을 응시하듯 제 모습을 간직한다. 
    처음에 커다란 여행용 가방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듯, 청약 당첨으로 갓 이사 온 연미진의 서사에서 극은 그 시작점을 계속 물고 늘어진다, 곧 그의 주거는 처음처럼 계속 불안정한 무엇으로 남는다. 그의 존재는 마치 잉여처럼 불안한 자국을 남긴다. “임대”라는 말이 가리키듯이 집은 사실상 누군가의 소유로 수렴하는 대신 텅 빈 기호로서 오가는 사람들을 수용한다.
    알 수 없는 하수도 냄새 같은 역겨움의 흔적을 쫓다 발견한 싱크대 밑에서 발견한 돈다발은 박정금의 마지막과 연결되며 극은 그 끝 주위를 맴도는 것처럼, 둘의 시간은 하나의 시점―박정금은 끝에, 연미진은 시작―에 옭아매어 있다. 
     

    이나리 배우. 싱크대 밑 공간은 공연에서 들여다보고 더듬어가는 구멍으로서 반복해서 지시된다.

    〈집집〉에서 집을 마련한 것은 일종의 성공 서사로 수렴하지 않는다. 이는 연미진의 경우에, 그의 배우자 이성근(조형래 배우)이 일종의 편법을 써 획득하여 더 어려운 사람들의 기회를 빼앗은 부조리함으로 연미진의 행위를 규정하며 명확해진다. 집과 집이 겹쳐짐을 상정하는 제목처럼, 〈집집〉은 두 사람으로 분산되는 하나의 집을 그린다. 집과 연관한 인물의 갈등 서사는 한 개인의 서사가 아닌 안정된 집의 자리를 확보하지 못하며 고통받거나 갈등하는 사람들 각각의 서사로 수렴한다―또는 그 누구의 서사도 안정적 주권을 확보하지 못한다. 박정금의 경우에는 소득 자체가 초과해 잡히며 기초생활수급자로서 임대아파트에 사는 자격을 박탈당하는 것에 대한 갈등이 존재한다. 집에 숨긴 돈다발은 이 집이 온전한 자기의 영역으로 수용되지 않는 물리적 반증으로 보인다.

    왼쪽부터 집집TV의 사회자와 부동산 전문가로 출연한 정혜지, 문희정 배우.

    연미진을 비판하는 이성근의 양심은 극의 갈등을 고조하지만 연미진과의 대화로 이어지지 못하며 이미 술에 취해 이성을 잃은 모습으로서 미약하게 생채기를 남기는 데 그친다―그는 말과 함께 무대 바깥으로 퇴장한다. 곧 그의 말은 50만 원의 월세를 대신할 수 있는 임시적인 해법이라는 점 앞에서 무력하다. 청약 당첨에 대한 욕망은 희소한 것이 귀중한 것인 자본주의의 논리가 고스란히 작동되는 부분이다. 모두의 진정성은 바늘구멍을 향한다. 이를 매개하며 현실의 구조로 연장하는 부동산 TV는 주택 청약 관련한 정부의 포퓰리즘식 정책을 족집게 강사처럼 알려주고 전화 연결을 통해 청약 희망자와 상담까지 해주는데, 이들은 입시를 치르듯 배점과 가산점을 계산해야 하는 익명의 존재에게 해법을 들려준다. 블랙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정부 정책은 마치 전체를 향하지만, 일부의 행운을 구원하는 데 그친다. 그 과정에는 부동산 TV가 안내하듯 청약의 조건인 부단한 자금 마련을 위한 성공적(?) 삶의 영위가 수반되어야 한다. 

     

    왼쪽부터 김재복 역의 우범진, 박정금 역의 이윤화 배우. 김재복은 박정금의 아들이다.

    집은 어쨌거나 누군가를 품고 숨기는 게 가능하다. 그것은 안락한 곳이기도 하고 정상궤도를 이탈하는 자의 은신처이기도 하다. 잠깐 등장하는 박정금의 아들은 닫혀 있던 방문을 열고 갑작스럽게 등장한다. 알 수 없는 눈빛, 더딘 걸음은 노동 중에 허리를 다쳐 폐인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투영된다. 여기에 끄적거리듯 뱉는 말은 정체된 집의 오랜 시간성을 몸으로 옮기는 바 있다. 마치 귀신과 같은 그의 존재는 완전히 드러나지 않는 어두운 방 자체를 임시 구조물이 아닌 실재처럼 체현한다―그 외의 공간은 반쯤 바깥으로 개방돼 드러나도록 되어 있다. 
    애초 〈집집〉의 거실은 인물을 지탱하는 지지기반이다. 여행 가방이 치워진 마룻바닥에 깔린 장판은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노출한다. 사실임 직한 주거 시설은 사실상 리얼리즘의 재현이 균열되는 시점을 보여준다. 집 바깥쪽으로 이어져 노출된 철골 골자의 재현은 이러한 재현 모델이 공고하지 않음을, 어느 선에서 절충되고 있음을, 사실상 어떤 재현의 규칙이 적당하게 협상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재현적 실재의 공간에서 온전하지 못한 불안정한 거주의 두 인물의 불안은 어쩌면 이러한 바닥의 불완전한 마감과 함께 무대로 확장되어 간다. 결국 〈집집〉이 시도한 리얼리즘으로서 공간은 반절의 개방과 반절의 타협으로 완전하지 않다. 이는 결국 집에 자리 잡지 못한 불완전한 존재의 초상으로 나아간다. 〈집집〉이 그리는 내용은 결국 법의 지배와 생존의 영위의 불화다. 그 둘이 겹쳐 있음을 집과 집을 잇는 제목이 체현한다. 

    왼쪽부터 우범진, 이윤화 배우

    김민관 mikwa@naver.com

     

    [공연 개요]

    평일: 오후 7시30분 / 토,일: 오후 3시 / 월요일 공연 없음
    극장: 연우소극장 

    작: 한현주 
    연출: 이양구
    출연: 박명신/이윤화, 이나리, 최요한, 이선주, 조형래, 최설화, 이은정, 문희정, 정혜지, 호종민, 우범진 
    기획: 정소은
    무대디자인: 조경훈
    조명디자인: 고귀경
    음향디자인: 목소
    의상디자인: 김미나
    음악: 김민정
    분장: 장경숙
    사진/그래픽: 김솔
    영상: 김성균
    행정: 김진이
    티켓매니저: 한민주
    무대감독: 예일
    조연출: 최현서, 장윤하
    조명오퍼: 김해빈

    제작: 극단 해인 
    후원: 서울문화재단, 연우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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