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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아카이브로서 몸의 정동
    REVIEW/Theater 2021. 9. 22. 00:55

    연극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박태양[사진 출처: https://photos.app.goo.gl/8nB83eeZo4ygSLUS9](이하 상동). 사진 왼쪽부터 백소정, 최희진 배우.


    1992년 고등학교에 입학한 김이박과 2008년 고등학교에 입학한 김이박, 전자에서 후자로 건너가는 지점에 복수의 김이박, 곧 하나의 김이박들이 있다. 곧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이하 〈김이박〉)의 제목에서의 동어반복의 제스처는 두 개의 다른 시간을 하나의 더 먼 곳에서부터 오는, 그리하여 합쳐지며 다시 과거가 되는 하나의 시간으로 구성됨을 의미한다. 분명 처음에 두 다른 김이박이 전제되지만, 이 둘은 무대라는 하나의 시간대에 있으며, 그러한 흐름 가운데 하나의 김이박과 다른 김이박은 역할을 교환하는 듯 보인다. 둘은 서로의 시간을 구성하지만 실은 거울처럼 상대를 비추고 그 상대에 의해 자신이 구성되는 관계로 엮여 있다. 
    1992년에서 2008년을 거쳐, 2021년의 끝에 다다를 때까지 미시사로서 김이박은 거시사로서의 역사를 비추는 하나의 관점으로서 존재한다. 이는 뉴스로 스쳐 지나갔던 각종 대소사를 읊는 것으로 흘려보내는 것으로써 역사의 기점들, 문화적 현상, 관계가 없는 듯한 또 다른 어떤 미시사까지, 역사는 주로 장국영이나 마돈나같이 당시 청년 시절의 김이박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 문화적 사건 외에는 파편적인 언어들로 갈음되고 마는데, 충만한 자아의 시대라는 개인 서사의 경계선상에서 거대한 역사의 흐름은 흐릿하고도 미미한 것으로 기입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분명히 어떤 일이 있었는데, 없던 것처럼 흘러갈 때가 있다.”라는, 주술처럼 흘려보내는 김이박‘들’의 여러 차례의 내레이션, 그리하여 몇 번인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반복적인 곧 강박적인 문장이 가리키는 “일”은, 고등학교 시절 당시의 생생한 문화에의 경도됨, 그리고 온몸을 휘감는 학교 선생님을 향한 사랑의 감정과 그것을 더듬어 가는 언어들이 모두 아닌, 거시사 속에 기록되지 않는 것이면서 동시에 언어로 정리할 수 없는, 그리하여 파악하거나 인식할 수 없는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소문으로 수렴한다. 
    역사의 파편들은 쉬이 우리의 기억에 달라붙고 그들의 어렸을 적 문화 역시 레트로 코드로 향유되는 듯 보인다면, 이 스쿨미투의 사건은 분명 극에서 언급되지만 생생한 추억이나 여러 역사적 파편 속에서 그와 똑같이 ‘유연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우묵하게 뭔가 잠겨 들어간다. 그렇다면 이러한 김이박과 그다지 상관없이 그냥 흘러가던 파편들, 극을 감싸고 있는 역사는 미시사와 어떻게 불화하며 희미하게 관계 맺는가. 그러한 접점은 어떻게 의도의 반경 안에 머무르는가. 정취의 향유는, 그리고 추억의 복각은 우리의 기억 작동법이 역사의 망각과 만나는 지점을 지시하는 것에 머무르게 하고 마는 것일까. 

    조각들로서의 내용, 따라서 헤집어진 전체, 아니 전체를 기울 수 없이 스쳐 지나가는 역사와 그것을 정동의 차원에서 아슬아슬하게 초과하는, 또는 거시사에 기입되지 않는 차원에서 가닿지 않음의 몸체를 지닌 〈김이박〉의 형식, 그중 가장 주요한 부분인 발화 방식은 조금 독특한 부분이 있다. 가령 두 김이박이 하나의 김이박이 되는 것이 그러하다. 김이박(백소정 배우)의 말을 다른 김이박(최희진 배우)이 내레이션으로 설명하는 장면처럼 더러 한 사람의 행동은 다른 사람의 말에 의해 완성된다. 이러한 전유는 기본적으로 두 사람의 대화로 진행하는 대신, 늘 김이박들이 존재할 뿐이라는 것, 곧 그 둘(두 다른 시대)은 거울상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그와 동시에 그 둘은 빈 무대 위에서 압축적으로 시공간을 변경하며 존재의 몸짓을 현시하며 스스로를 그리고 서로를 지시해야 한다는 점에서 허용된다. 
    그리고 예외적으로 열린 음성해설 회차―자막과 수어 통역 역시 각기 다른 일자에 예외적으로 3회차 제공된다.―의 상황은 〈김이박〉의 한층 더 복잡한 화성을 만든다. 말과 몸짓이 하나의 존재를 가리킨다면, 서수연의 음성해설은 이 둘을 무대 위의 물리적 위치와 행위로 가시화하며, 두 다른 개체로 분할한다. 또는 분별하게 만든다. 이러한 말은 이 무대를 단순화하지만, 그 결과는 다성부의 강화다. 
    이러한 해설, 극으로 치면 지문의 역할은 애초에 한 명의 서사를 같이 쓰는 둘의 관계에서 확장된 것으로 봐야 할지, 거꾸로 그 둘의 관계를 감싸고 도는 말 그대로 ‘해설’로서 극의 복잡성을 가중하는, 정확한 동시에 자의적인 해설자의 역할에서 발현되는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이에 대한 연출의 답변을 통하면, 이는 기본적으로 음성해설작가가 시각장애인 관객이 볼 수 없는 것을 들을 수 있게 한 것인 한편, 이러한 자리를 위한 공연의 리듬, 템포를 유지하기 위한 리허설과 조정을 통한 극의 재조정의 과정이 선행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말은 극의 보충이 아니라 극과 절합하는 독특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해설자는 “관객”이나 “무대”와 같은 용어로써 이 극의 구성되고 있음을 극의 규칙으로 인계한다. 또는 사물 그 자체를 지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말은 이 무대가 텅 빈 곳이며, 리얼리즘을 지탱하는 상징적 의미가 부여되는 사물들이 사실상 소거되어 있음과 연동된다. 곧 무대 천장에 달린 전구들은 “전구”이기도 하고 “조명”이기도 하다. 〈김이박〉은 말과 움직임, 또는 움직임에 더해지는 말, 또 (음성해설의 경우) 그 바깥에서의 말을 통해 단속적인 말과 움직임의 결합을 만든다. 이는 노래로 연장되기도 하고, 유행가 같은 음악과 결합하기도 한다. 이런 문법 생성의 자유로움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텅 빈 무대, 그리고 하나인 듯 함께 움직이는 두 배우―이런 쌍생아의 모습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두 배우가 무대를 휘젓고 다니되 무대 앞뒤로 분할해 관객을 바라보며 춤추는 장면에서 극대화된다.―, 그리고 모든 장면과 말에 새삼 움직임을 집어넣은 안무의 영역에서 오는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말을 재현하거나 간단한 동작을 율동처럼 덧붙이는 게 아니라, 말의 결을 따라 말이 나오는 경로를 따라 움직임은 말의 길을 만든다. 말은 움직임의 여지를 만드는 차원에서 중간중간 단락된다. 대사의 비중만큼 움직임의 비중이 있다.

    〈김이박〉은 고등학생 둘의 생기발랄함을 언제까지나 유지하는 공연이다―2021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한 여학생을 관객 한 명이 대리한다. 말과 움직임 등의 다성부적인 화성과 빠른 리듬, 역사를 욱여넣은 선형적인 연표적 전개 아래 블랙아웃된 기억에 다가가는 극이다. 역사는 차곡차곡 아카이브된다. 〈김이박〉의 역사는 그런 아카이브의 나열로서 리스트 하나씩을 제거하는 것에 가깝다. 공연 팸플릿이나 표에 실린 QR코드를 통해 접속되는 사이트(https://sites.google.com/view/kimleepark) 내 리스트들은 세 개의 카테고리로 나뉘어 있다. 
    “김”은 공연에 등장하는 시대상과 맞물린 키워드들, “이”는 공연에 사용된 음악들, “박”은 〈김이박〉 자체의 공연 아카이브 및 외부 참조 링크로서, 시간과 음악의 분절된 조각들은 하나의 재료들로서 어떤 하나의 관점을 향한 미래적 차원에서 열린다. 이는 각 주체의 현재성의 상태와 접선하거나 그에 비켜나지만, 그러한 주체 자체를 구성하지는 않는다. 

    스쿨미투는 트위터상 국내 사회 분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해시태그로, 학내 성폭력, 성추행 폭로가 시작된 후 1년간 전국 80여 개 학교에서 스쿨미투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뚜렷하게 표시되는 문화사적 아카이브, 그에 대한 생명력 있는 재현이 가진 고등학생 둘의 정동에 비해 우묵해지는 경험으로서 스쿨미투의 단락들이 전달된다. 곧 전달방식, 그 전달의 주체가 갖는 정동의 정위의 차이가 미시사로 연장되는 문화사의 재현에서 파이는 구멍(간극)으로서, 그리고 그것을 체현하는 몸으로서 또 다른 바깥과 내밀하게 접함을 드러낸다. 곧 배우의 몸들이 시간들을 새기고 그 몸에 역으로 다양한 시간이 새겨진다. 이는 앞서 말했듯, 레트로 코드로 향유되기도 하고, 미지의 기표로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심연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아카이브로서 연극’은 가장 크게는 세대의 취향과 문화로써 접속한 시대상을 보여준다. 복잡한 아카이브의 양상은 시계열적으로 이어지거나 유기적인 흐름을 갖지 않는다는 점에서, 압축적이지 않고 비선형적 질서를 갖는다. 따라서 이 활기찬 연극 속 (재)코드화되는 문화들은 읽히기보다 감응되거나 접속된다. 감응의 방식은 제각각 다를 것이고, 그 정도 역시 다를 것이다. 동시에 이 문화 속에 자리한 스쿨미투라는 사건은 1992년, 그리고 2008년 입학한 김이박의 이전의 기억을 재호출하고 재명명하는 다시 쓰기의 작업일 것이며, 그 끝은 관객석에서 동참한 고등학생의 참여처럼 현재의 시점이 놓인다. 기억의 여러 층위, 곧 기억의 균열을 〈김이박〉은 보여준다. 

     

    김민관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일정: 2021년 9월 2일(목) ~ 9월 19일(일)
    공연시간: 수, 목, 금 8시 / 토, 일 4시 (월,화 쉼)
    * 금요일 음성해설 / 토요일 수어, 문자 통역 진행
    공연장소: 대학로 선돌극장

    창작진 공동구성
    연출: 이래은
    대본: 이오진
    연출부: 김태령 심지후
    출연: 백소정 최희진
    움직임: 손지민
    액팅코칭: 장재키
    무대: 장호
    조명: 신동선
    음향: 임서진
    의상: 김미나
    수어번역: 김홍남
    수어통역: 성지윤, 유민지
    음성해설: 서수연
    영상: 삼인칭시점
    사진: 박태양
    그래픽: 황가림
    기획: 나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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