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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술술+실천+비평(오정은)
    REVIEW/Visual arts 2020. 8. 20. 16:43

    술술+실천+비평(2019)

    오정은 (미술비평)

    blog.naver.com/aquablue_0



    다른 개인

    나는 지금 문래동의 한 건물 앞에 서 있다. 「문래 술술랩」(이하 「술술랩」)으로 이름하게 된 지하 1층, 지상 5층짜리 건물의 문 앞이다. 용도를 다한 낡은 건물이 영등포문화재단의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으로 한 달여 동안 예술가의 공유지로 사용된 장소가 「술술랩」이다. 나는 한 기획자의 소개로 한 달 전 이 공간을 처음 만났다. 노래방 업소로 운영되던 흔적이 역력한 지하 1층, 남은 간판과 구조로 보아 작은 식당과 주차장이었을 지상 1층, 그리고 고시원이었을 2~5층이 집기류의 온전성과 청결, 수도와 전기를 잃고 예술이라는 국면을 기다리고 있었다. 2층부터 5층까지 기획자 네 명이 한 층씩을 맡아 창작자 몇 명을 공모하거나 섭외해 어떤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참여 작가들은 대부분 고시원 방 한 칸씩을 맡아 나름의 일을 꾸려 나갈 것이었다. 그리고 11월 8일부터 17일까지의 《술술랩 프리오프닝》에서 그 실험의 자취를 공개하게 된다.

    작가들의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며칠이 지난 10월의 어느 날, 내가 그곳에 처음 방문했을 때 대부분의 방문은 닫혀있었지만, 영역 표시를 하듯 남겨진 작가 작업의 흔적이 무언가 진행 중임을 가늠하게 했다. 마침 계단을 올라오던 한 작가를 만나 그가 스쾃(squat)으로 거주하고 있는 303호를 둘러봤다. 그런 뒤 1층으로 내려가 음료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때는 마루 한편에 쳐진 텐트를 봤고, 재단 직원도 여기 숙박하려는 양으로 텐트를 설치하고 갔다는 말을 들었다.

    프리오프닝의 첫날, 나는 「술술랩」의 외벽에 거대한 파사드 영상이 상영되고 육일봉의 디제잉 음악이 더해지면서 골목 일대의 침잠과 침묵이 쫓겨나가고 있는 장면을 봤다. 아니, 건물과 그 주변에 서식했던 무심함의 형체가 예술가, 행정가, 관객이 되어 뱅쇼를 마시고 사진을 찍고 수다를 더하는 상황을 보았다. 전시에서 낯설지 않은 ‘오프닝 행사’의 기시감이, 서울 구도심에 새삼스러운 ‘도시재생’의 프로세스가, 묘하게 별다른 것처럼 느껴지는 감각도 있었다. 그것은 사업과 예술의 추동 속에 배분된 구획과 역할 안에서도 규정되지 않은 개인이 머리를 들이밀고 불쑥 나타날 때였다. 나는 그 개인의 형체를 따라 건물의 내부로 들어가 보았다.


    남가삼카 바라스사 남티코 다붇삼맥사 남타나 모나

    어릴 때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다가 그 위에 새로운 음악을 녹음하고는 했다.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녹음 버튼을 눌러 헌 테이프에 새 음악을 덧입히는 경우가 흔했는데, 새로 녹음한 음악 사이사이 공백이 들어가 전에 있던 음악이 몇 초간 재생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 몇 초의 음악은 음악이라기보다 소리나 잡음에 가까웠고 어떤 고함이나 비명 같을 때도 있었다. 과거 상업과 생활의 흔적이 여전히 공간을 지배하는 「술술랩」에서 작가의 작업 사이사이에 그 몇 초가 있었다. 다만 유년시절 나의 몇 초가 실수였다면, 여기에서의 몇 초는 상당량 의도된 계산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이 비명처럼 들렸고 집단을 기어이 어기고 벗어나는 개인의 희롱처럼 느껴졌다. 나무 바닥과 곰팡이 슨 벽지를 무작위로 뜯어내 비정형의 더미로 쌓아둠으로써 장소특정형으로 설치한 306호의 작업에서도, 바닥과 벽지, 타일을 계측적으로 뜯어내고 콘센트와 에어컨 호스가 60여 점의 회화 규격과 서로 들어맞게 설치한 402호의 작업에서도 그것을 느꼈다. 튀어나온 기둥과 경사진 지붕이 드러나는 벽면과 천장을 캔버스 삼은 403호의 드로잉과 501호의 조명 작업 역시 그랬고, 심지어는 오프닝 날 문을 닫고 ‘전시 오픈 준비중입니다_404호 :)’라고 써놓은 A4용지를 방문에 붙여놓은 404호도 그랬다. 나는 거기서 과거의 시간을 중첩해 현재에 배합하고, 튀어나온 오래된 못을 지금 작업에 찔러넣어 파생되는 음절을 자기 안에 기록하는 개인을 보았다. 꽤 흥미로운 실험이면서도 구태여 해야 하는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예술은 기존에 듣던 멜로디로 구사되지 않는 것이었고, 주술적인 응원이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3층과 4층을 잇는 계단에 쓰인 ‘뱌베트 사이보 다붇 바르사 맣나’, ‘남가삼카 바라스사 남티코 다붇삼맥사 남타나 모나’ 같은 글귀가 같은 의도와 맥락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몇 달 뒤, 예술인·기술인·주민이 함께하는 지역협력공간으로 리모델링되어 오픈될 「술술랩」의 시한부 삶에 찾아든 개인이 시공의 한계를 초월해서 그를 위로하고 동침하는 것 같았다.


    빈 곳의 우화

    나는 지금 「술술랩」의 401호실에 들어와 있다. 조금 전에는 지하 1층에 내려갔다 왔는데, 혀를 뺏긴 듯 노래방 기계 없이 인기가요 포스터만 남기고 텅 비어있는 거기는 육일봉 사람들의 춤판이 벌어진 1층의 앰프와 가까워서 전해지는 소란으로 마른 목을 채우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곳은 비어있었다. 여기, 401호가 그렇듯이. 401호에는 작업이 되기를 기다리는 작가의 사물과 노트 따위가 여기저기 널려있다. 작가는 이 방을 작업이 완결되어 정지된 채 전시되는 장소가 아니라 투과되는 곳으로 삼았다. ‘작업으로 발전한다면 좋은 일이고, 작품이 되지 못한다 해도 그것이 바로 그 흔하디흔한 작업실 풍경이 될 것입니다’라고 스스로 썼다.

    나는 이제 한 층 밑으로 내려가 도시 공간을 촬영한 영상 작업이 상당한 3층 복도와 방을 지나 303호로 간다. “정은아. 나는 오프닝 날 내 방을 열지 않아. 내 방은 전시장이 아니라 스튜디오야.”라고 말했던 작가의 방은 오늘, 자물쇠로 굳게 잠겨있다. 그러나 나는 학창시절 터득했던 기술을 활용해 자물쇠를 따고 들어간다. 스쾃의 스쾃을 하면 무엇이 되나? 그런 명목보다도 사실은, 예술가, 행정가, 관객의 사교가 활발한 오프닝 행사의 분위기를 피해 개인으로 숨을 돌릴 곳이 필요해서였다. 이곳에서 나름 오랜 시간 숙식한 작가의 행위 덕분에 303호는 꽤 안락하다. 아마 얼마 전까지 303호는 누군가의 진짜 집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미친다. 나는 조금 전 401호 싱크대와 작은방에서 보았던 이끼와 거미줄 같은 형태를 회상한다. 물론 그것은 고시원 생활 경험이 있던 작가의 연출된 작업이었다.

    좁은 복도를 공유공간 삼아, 가지처럼 양쪽으로 나 있는 몇 개의 방에 한 명씩 월세를 내고 생활하던 장소성은 물리적으로나 의미적으로나 지금까지 남아있다. 그래서 이곳을 점유해 숙박하거나 작업하거나 설치하기로 한 작가들의 개별 실천은 ‘지역사회의 문제 해결’ 같은 주최 측의 목적에는 ‘아직’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 ‘아직’의 단서를 붙인 것은 그러나, 말 그대로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방정부가 주목하고 있는 건물에 창작자 개인이 틈입해 들어가 자기 흔적의 기표를 대중에 증명해내야 하는 의무감도 내버리고 방문마저 닫아버리고서 오롯이 개인으로서 공간을 점유해보는 시도는, ‘증명’이 일반화된 요즈음 창작 세태를 교묘하게 때리는 것 같다. 그래서 네 명 기획자의 미감과 방식의 차이가 건물의 층위를 나누기보다 곱하고,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는 작가의 의도가 자연스러우며, 오프닝 날 문을 닫고 있던 곳도 행사의 오류로 식별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나는 도시재생과 주민 친화의 예술론이 오랫동안 문래동을 비롯한 일부 대상지에 우화로 설정되어 있었다고 생각했고, 이번의 임시 프로젝트 뒤로 정식 개관될 「술술랩」이 개인에게 지분을 침탈받음으로써 제게 닥친 담론의 위기와 비판을 넘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여기서 개인은 거대 서사로의 편입을 부정하고 상대적으로 목적이 없는 형이상학적인 위치에 다다른다.

    건물의 미래를 이만하고 여기서 빠져나가려던 나는 영상의 이미지를 보다가 문득 찾고 있던 개인의 고함과 비명의 출처가 이끼와 거미 같은 데에서도 있음을 깨닫는다. 순간, 그들은 이곳이 텅 빈 곳이 아니라는 증언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규정되지 않았던 개인이 머리를 들이밀고 불쑥 나타나 자신을 토해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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