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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고은, 〈아키펠라고 맵: 세 개의 고래-인간 동그라미〉: 신화적 세계와 그 공백에 대한 이야기
    REVIEW/Performance 2021. 11. 7. 23:59

    ©박수환 [사진=옵/신 페스티벌 제공]


    〈아키펠라고 맵: 세 개의 고래-인간 동그라미〉는 고래에 대한 이야기다. 더 정확히는 그 고래가 있던 시간을 떠나 보낸 현재의 시점에서 그 존재와 시간을 애도하고 오마주하는 상연이다. 이러한 상연은 두 명씩의 한정된 관람으로 조건 지어졌는데, 장소 이동에 따른 관람 방식과 매체 활용이 달라지며, 이를 퍼포머가 라이트를 통해 이동의 동선을 관람객에게 안내하며, 매체의 켜고 끔을 수행하고 때론 제시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나누어 준 쪽지에 담긴 허먼 멜빌의 고래가 없어진 것에 대한 은유적 나열은 이 상연이 지시하는 언어의 내용과 형식을 갈음한다. 
    고래는 우리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로서 감각의 저변을 확장하고 새로운 감각을 수여하는 낭만적 존재라면, 휘발유가 고래를 구원했다는 대사처럼 고래기름을 사용하던 시절에 무수히 포획되어 죽음을 맞은 역사의 구간에서는 인간의 문명과 결부된다는 점에서는 은폐된 역사의 기원과 비평적 텍스트를 지시한다. 고래에 대한 동경과 역사적 실상은 고래에 대한 신화적인 세계와 역사적 현실의 사이에서 진동하는 〈아키펠라고 맵: 세 개의 고래-인간 동그라미〉의 세계관에 상응한다. 
     
    어두운 공간의 한정된 빛은 발걸음을 인도하거나 언어를 보게 하는 매개체가 되거나 이미지에서 흘러나오기도 한다. 스크린과 관객이 자리할 공간을 제한다면, 작품에서 그 외의 공간이 드러나는 부분은 거의 없다. 예외적으로 작은 방의 스크리닝을 지나 벽면의 어슴푸레한 형태를 확인할 때 이는 고래의 뼈대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체험에서의 메타포가 성립함은 의도에 대한 응답인가, 아니면 서사를 이해하려는 관람객의 무의식의 소산일까. 
    〈아키펠라고 맵: 세 개의 고래-인간 동그라미〉의 텍스트는 잘 읽히지 않는 편이며, 체에 거르듯 가라앉는 인상을 준다. 처음 나온 이미지와 자막은 후반에 한 번 더 반복되며 다른 이미지로 나아간다. 그럼에도 이를 포함한 텍스트 조각들이 명확하지 않은 건 이 텍스트의 내용이 어떤 시대로부터, 어떤 주체의 이야기인지 명확하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이 환경과 그 텍스트의 전달 방식 자체가 이 퍼포먼스를 잠식하기 때문이다. 

    어둠과 조명, 프로젝트가 켜지고 꺼지는 과정 모두가 지시되며, 커다란 프린트의 글자를 조명으로 차례차례 위에서 아래로, 좌에서 우로 가리킬 때 또 책을 넘길 때 빈백에 앉아 영상을 봐야 할 때, 이미지가 나오는 안경 장치를 넣고 뺄 때 사물들은 알 수 없는 손에서 관람객의 시선으로 또는 손으로 건네진다. 따라서 수행성은 수동적 관람의 실천으로, 그리고 제한된 신체 교환에서 담지된다. 말이 없는 각각의 주문과 수행은 전시의 정해진 동선을 새로운 환경에서의 실천으로 연장하는 결과로 맺어진다. 지도를 그리는 것과 같은 이러한 실천은 텍스트가 그리는 시간과 장소의 알 수 없음에 상응하며 텍스트의 의미 해독의 결락을 수용하도록 한다.

    퍼포머가 자신이 보는 위치에서 반전된 이미지로 책을 넘겨주는 장면에서, 책은 고래의 이미지들을 담고 있는 이미 존재하는 책으로 보이는 책의 군데군데에 붙은 종이 위의 문구를 보도록 한다. 따라서 책의 여타 이미지와 프랑스어로 쓰인 문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작가의 텍스트의 배경으로 눈에 필연적으로 들어오는 것이기도 하다. 책이 이미 진짜 존재하는 것이라면, 이 작품에서의 이미지들 역시 푸티지를 활용한 방식으로 볼 수 있을까. 
    여기서 임고은 작가의 작업 방식이 리서치를 통한 지식체계의 수렴과 이를 토대로 한 발화, 그리고 매체의 구동 방식을 드러내며 이미지를 만드는 형식, 곧 장치의 일환으로 성립되는 전시 공학에서의 체험의 종합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비추어 볼 때, 〈아키펠라고 맵: 세 개의 고래-인간 동그라미〉는 어떤 시공에 대한 이야기, 동시에 그 시공에 대한 체험을 통한 그 시공에 대한 수렴을 의도한다. 하지만 그 시공은 이미 현재 인식 불가능하거나 도달 불가능한 것이므로, 이 작품은 그러한 시공의 부재에 대한 인식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노래하며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다도해/군도의 뜻을 지닌 ‘아키펠라고’의 지도를 현상하는 작품에서, ‘인간 동그라미’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손에 든 조명이 밝혀지고 생기던 원은 거대한 세계의 작은 구역을 보여줄 뿐이었다. 이는 이후 이미지가 펼쳐짐을 예고했다. 공간의 벽면이 거대한 고래의 배 속처럼 느껴졌던 것처럼, 한정된 영역을 거꾸로 매우 좁은 세계에서 거대한 세계의 비가시적인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작품의 메시지로 볼 수 있다면, 작은 원은 그러한 거대한 세계 속 인간의 위치에 대한 알레고리로 다시 생각되는 것이다. 또는 파악할 수 없는 인지적 영역의 한계라거나.

    김민관 mikwa@naver.com

     

    [퍼포먼스 개요]

     

    일시: 2021.10.29.2021.11.2.11:15 / 12:00 / 12:45 / 13:30 / 14:15 / 15:00 / 16:30 / 17:15 / 18:00 / 18:45 / 19:30 / 20:15, 2021.11.3.11:15 / 12:00 / 12:45 / 13:30 / 14:15 / 15:00 / 16:30 / 17:15 / 18:00

    장소: 문래예술공장 박스시어터

    소요 시간: 35

    언어: 한국어/영어

    콘셉트, 영상: 임고은

    프로듀서: 유병진

    기술 감독: 김연주

    공연: 심은지, 김하연, 길경하

    전시 디자인 : 박효선

    출판물 기획 및 편집 : 이한범 (나선프레스)

    그래픽 디자인: 김단비

    사운드: Post Industrial Boys (George Dzodzuashvili), Marie Poland Fish

    텍스트 : Emily Dickinson, Ursula K. Le Guin, Herman Melville, Philip Hoare

    영문 번역 감수: Maurizio Buquicchio, Igor Sevcuk

    위촉: /신 페스티벌

    후원: 서울문화재단 문래예술공장

    *2021년 서울문화재단 BENXT(비넥스트) 선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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