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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병준, 〈유령극단 “심각한 밤을 보내리”〉: 결집과 누락이 공진하는 밤
    REVIEW/Performance 2021. 12. 1. 00:59

    권병준, 〈유령극단 “심각한 밤을 보내리”〉 전시 모습(이하 상동). 로봇의 퍼포먼스가 이뤄지고 있는 모습. 이는 미술관이 아니지만, 일반적인 전시 형태이기도 하다.


    유령극단의 〈심각한 밤을 보내리〉는 단순하게는 남산골한옥마을을 산책하며 헤드폰상의 목소리들과 로봇들의 움직임과 마주치는 공연이다. 한옥 다섯 채의 각 장소에 따라 사운드가 다르게 재생된다. 이 말들은 어떤 내용의 구체성을 가지며 서사의 형태를 갖추기보다 밤에 대한 어떤 정동의 제스처이며, 관계를 위한 구애이자 밤에 대한 감응, 영원에 시간의 동기화에 대한 주문이다. 밤이 이 공연을 평등하게 둘러싸고 있듯 헤드폰이 귀에 눌러앉고 목소리가 가리키는 시간과 화자와 최종적으로 수신자의 불분명성, 그리고 달의 메타포를 갖는 빛나는 구체를 손에 포개고 사람들과 비좁은 길목에서 스쳐 지나가는 모든 압력은 비가시적 환경에의 매체의 협응이라는 제안이 전제된다. 

    공기처럼 귀를 감싸고 있는 건 사운드이다. 반면 이것이 꺼지고 켜지는 것은 각 장소의 입구를 나가고 통과하는 것에 따른다. 장소의 문턱을 넘는 수행에 따라 각 다른 사운드가 재생되는데, 이 사운드는 특정 공간에서는 사운드 구간이 상당 부분 비어 있다 시작된다. 배우가 따로 등장하지 않는 장소에서 사운드의 부재는 명확하게 감각된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공간의 비어 있음을 헤드폰의 진동이 귀에 전달되지 않는 비어 있음으로 현상한다―헤드폰은 매우 직접적인 현존의, 현존을 지시하는 대상이다. 이 구간이 가장 강조된 장소는 로봇들이 등장하는 공간이다. 

    본격적으로 한옥에 들어가기 전 모였던 장소로 관객이 모두 나온 뒤 로봇이 움직이며 춤을 춘다. 일종의 미러볼이 로봇의 머리 대용이 된다.

    로봇의 분절된 기관의 움직임은 판소리를 하는 움직임으로 번역된다. 로봇의 손에 부채가 들렸고, 이는 오르락내리락하며, 이 로봇의 정체성을 가리킨다. 로봇은 어떤 몸짓을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정교하고 정확한 정도의 크기를 움직일 뿐이다. 여기서 동기화되는 발화는 인간의 예외적 존재로서의 로봇이 이야기하는 인간에 대한 적대, 그 결괏값으로 발생하는 인간의 소외이다. 곧 타자의 자리에서 인간을 부정하는 비인간이 무대 위에서 단독자의 자리, 곧 주체의 자리를 획득할 때 인간의 위치는 심하게 심문받게 된다. 이때 인간 음성의 변조, 따라서 인간의 그것을 닮았지만 떨림 속에 채워지지 않는 빈/얇은 구간들의 지점들은 불편함과 불안함을 주게 된다. 이 목소리의 언캐니함으로부터 결집되고 누락되는 로봇의 성대와 내 신체가 체현된다. 그 소리는 로봇의 내부가 아니라 로봇의 외부로부터 온다. 따라서 제1의 존재는 헤드폰이다.

    “심각한 밤을 보내리”라는 말은 주체의 말이 아닌 AI가 만드는 불명확한 문구 정도의 의미로 다가온다. 곧 자동기술법적으로 기술되어 채택된 우연한 말은 초현실주의적 세계의 나를 벗어난 주체를 현상한다. 다른 장소로 넘어왔을 때 들리는 배우들의 목소리가 몽환적 꿈을 지향하는 것, 끝없이 밤을 내포하고자 하는 것―그 목소리가 사라지며 밤에 내포되고자 하는 것―은 주체의 몫을 양도하려는 어떤 몸부림 아니었을까. 
    몸에 접지되는 것들, 곧 귀와 손, 발, 온몸에 결합되는 것들, 그리고 분절되며 울리고 단속적으로 재생되는 소리들, 전시된 로봇들의 움직임과 춤, 그리고 노래. 이러한 조각들이 단지 조각들로 자리하는 〈심각한 밤을 보내리〉는 그 분위기가 자아내는 정동의 밤이 주체와 비주체의 자리를 전복하기를, 우리의 기억과 망각의 자리를 교환하기를, 사라진 목소리와 시간들이 다시 복권되기를 고대하는 어떤 무지한 꿈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는 착각을 일게 하는 작업이다. 

     

    김민관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일시: 2021.10.21.()-10.24.() 6:30pm, 8:30pm

    공연장소: 남산골한옥마을

    후원: 서울특별시

    협력: 남산골한옥마을

     

    제작

    콘셉트연출사운드기술 총감독: 권병준

    작가: 권병준 with AI

    기술제작감독: 백주홍

    조연출: 조웅철

    조명디자인: 신동선

    조명오퍼레이터: 홍주희

    기술지원: 오의진, 윤중선, 조수아

    녹음 및 편집: 김근채(펑크타이어 스튜디오)

    사진 기록: 전병철

    영상 기록: 장지남

    프로듀서: 박지선, 최봉민(프로듀서그룹 도트)

     

    목소리 출연

    권병준, 박선희, 박현지, 성수연, 우범진, 이경구, 조웅철

    어린이: 박준우, 박해빈

    특별 출연: 유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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