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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영두, 〈구두점의 나라에서〉: 음악의 응전으로서, 그리고 솔기로서 움직임
    REVIEW/Dance 2021. 12. 15. 00:12

    정영두 안무가, 〈구두점의 나라에서〉ⓒAiden Hwang [사진 제공=국립현대무용단](이하 상동).

    정영두 안무가의 〈구두점의 나라에서〉는 타격감 있는 피아노 연주를 움직임으로 고스란히 연장한다. 음악과 움직임의 상응이 무대를 구성한다. 음악의 밀도를 움직임의 밀도가 지탱한다. 이러한 밀도는 무대를 지탱하기보다 그 자체로 음악을 상대한다. 그리고 관객은 이 밀도들을 버텨내야 한다. 이러한 짜임에는 동명의 그림책 구두점의 나라에서(시: 크리스티안 모르겐슈테른, 그림: 라트나 라마나탄)의 서사적 짜임이 전제되고 있을 것이다. 반면 공연만으로는 그 서사를 포착하거나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사실상 책의 짜임은 무대의 짜임 너머를 위해 소환할 필요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연주의 여닫음으로써 장이 구분되는데, 각 장의 길이는 짧고 휘몰아치듯 전개된다. 여기서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그 자체를 쉼 없이 곧이곧대로 바라보게끔 하는데, 선율보다는 타법 자체를 두드러지게 표현하는 연주를 무용수들은 시각적 표지의 결절점들로 매듭짓는다. 무용수는 음표의 메타포를 가리키는 듯도 보이는데, 이는 실상 사물이 의인화된 것의 한 측면으로 볼 수 있다. 머리에 쓴 모자부터 목에 걸린 장식, 마찬가지로 허리춤에 매달린 장식까지 의상에 부착된 장식들이 신체를 분할하는 것도 무용수가 사물로서의 캐릭터를 갖는 데 영향을 끼친다. 

    신체 분할의 방식으로서 의상 디자인은 수직적인 신체 양상 아래, 주로 정적인 상황에서는 멈춘 상태에서 하체만 들어 올리거나 하는 등의 하체의 분할된 움직임과 꼿꼿이 선 신체에서 약간의 각도를 틀어 분리되는 얼굴의 텅 빈 마스크화로 양분된다면, 이러한 수직적 자세를 유지한 채 주로 팔과 예외적으로 다리를 다채로운 신호로 순식간에 변화시킬 때는 다른 부위는 ‘시각적으로’ 닫힌 채 신체 중앙 공간이 부각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수신호는 정영두 안무가의 전매특허와 같은 것인데(일견 발레의 스텝이 기초가 되는 것 같지만, 이는 일종의 전제일 뿐, 사실상 움직임은 다른 하체의 경로나 더 복잡한 문양으로서의 기호들을 간직한다.), 그것이 재현적 양상을 가늠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연극적이라고도 볼 수 있고, 모든 내러티브를 음악의 전개로 전적으로 이양한 〈구두점의 나라에서〉의 경우에는 빠른 음악적 표지를 동기화하기 위한 찰나적 악상처럼 ‘부상’한다. 이는 또한 표면적으로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도 읽히는데, 너무 촐싹댄다거나 적잖이 우아함을 깨뜨린다는 표현이 그러한 해석과 연결될 것이다. 반면, 이러한 몸짓은 무용수들이 얼마나 탁월하게 음악적 표지들을 남김없이 해소하는지를, 곧 탁월한 과제 수행성을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머리에 달린 장식이 마치 닭 볏처럼 얼굴을 빠르게 떠는 것 역시 그것을 일부러 우스꽝스럽게 격하시키는 해석이 아니라 모든 몸의 표지를 음악을 수행하는 일종의 분절된 기관으로 사용하는 안무 방식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음악 자체가 실상 계속 변주에 기대고,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를 전제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전적으로 음악이 몸을 구성한다고는 볼 수 없다. 곧 그 분위기를 그러한 잔 움직임이 직접 표현한다기보다는 음악이 끊기는 또는 음악을 닫는 적당한 응결 지점에서 그 움직임으로 음악이 수렴된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구두점의 나라에서〉는 끊임없는 장의 구분으로 점철된다. 잠깐의 휴지 기간도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데, 예외적인 순간은 두 대의 피아노 연주만으로 장면이 이뤄지는 순간들이나 두 무용수의 실루엣 움직임, 모든 무용수가 찰랑거리는 판을 가져와 이를 움직임으로써 음을 동시에 만들어 내는 장면 등이다. 마지막 움직임은 음악 자체가 없는 장으로서 또한 예외적이다. 두 대의 피아노 연주만이 허락되는 순간에는 드디어 그 연주를 보게 되는 게 아니라 듣게 된다. 두 연주자의 협연은 측면으로 떨어져 정확히 마주 보는 구조로서 위치해, 두 사운드의 분리와 차이를 시(청)각적으로 명확하게 인지하게 한다. 주선율과 보조 선율의 차이, 즉흥적으로 보이는 각 연주자의 연주 구간 등이 강조된다. 
    어둠 속 실루엣 장면은 의상의 시각적 지표를 거두고, 유려하고 부드러운 웨이브로서 움직임이 강조되는데, 이로써 분할된 신체 대신, 인간적 형상이 출현한다. 악기로서의 매체이자 시각적 오브제로서 판을 활용한 장면은 모든 무용수가 정면을 응시하며, 연주자로서의 정체성을 움직임에 혼합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나아가 음악이 실제 없음에도 구체적으로 나뉘는 포즈들의 분절에서 음악적 잔상이 부상하거나 음악이 복구되는 듯한 인상을 안기는데, 몸을 움츠리고 손을 휘감을 때 음악은 일정 순간 지속하며 끊긴다. 공감각적이라고도 보이는 이러한 순간은, 일차적으로 음악이 쉴 새 없이 지속하는 가운데 이에 조응하며 가득 찬 움직임을 가져가는 무대에 길들어 있기 때문일 것인데, 안무가는 물론 그러한 순간을 인지하고, ‘이쯤에서’ 정확히 음악으로서의 움직임을 배분한 것일 것이다. 그러니까 과도한 음악 위의 춤이라는 양상은, 이와 같은 비움의 지점을 선택함에 따라 그 과잉으로서의 음악과 춤을 일종의 길들임과 복선으로서, 사후적으로 그 의미를 완성한다. 여기서 춤은 악기로서의 사물 자체를 의태하고 있기도 하지만, 유일한 생명체에 가까운 연주자의 지위를 비로소 무용수들에게 수여한 것이기도 하다. 

    사실상 〈구두점의 나라에서〉는 거의 AI가 만든 것 아닐까 하는 정도의 정교함을 갖춘, 매 장이 어떤 하나의 스타일로 수렴되지 않는 차이 위에 차이가 쌓이는, 그보다는 차이를 차이가 지우는 어떤 강박적 태도로 진행되며, 다채로움의 양상으로 점철된다. 이는 음악이 그만큼의 다양한 변수를 갖고 있음에 움직임 역시 상응하도록 연출한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몇 가지 부가적인 요소로서, 움직임이 강조되는 무대에서 마치 불순물처럼 눈에 띄는데, 구두점이 무대 천장에서 내려오거나 무대 중앙에 들어간 벽 위에 영상으로 투사되거나 하며 제목을 상기하는 가운데, 검은색 계열의 무용수들의 의상 역시 그러한 문장 기호와 어느 정도 친연성을 가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구두점의 나라에서〉는 연주의 무한한 변주 가능성에 상응하는 무한히 분절된 움직임들의 접합으로 구축되는, 움직임의 대단히 밀도 있는 전개 양상을 지켜보게 되는 공연이다. 〈구두점의 나라에서〉는 구두점의 기능이 그러하듯 문장을 닫고 또 닫으며 작은 단편을 완성하고 또 완성한다. 이러한 양상은 거의 일관되는데, 앞서 살펴봤듯 거기에 음악의 전적인 활용이나 음악 없음을 통해 구조적 분기가 만들어진다. 여기서 무용수의 존재가 부상하는 예외적 부분은 다음과 같다. 


    후반부에 모든 무용수가 두 그룹으로 나뉘어 원을 만들고, 두 무용수가 거기서 빠져나가며 두 손을 맞대는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생기가 느껴진다. 캐릭터의 닫힌 경계에서 이 같은 순간은 무용수들이 틀과 형태를 유지하는 가운데, 그 경계가 시험되는 순간이다―물론 그러한 순간은 중간중간 존재한다. 바깥으로의 장력을 지탱하며 두 무용수는 그런 경계를 접촉의 순간으로 가져간다. 마지막에 이르면서 구두점으로서 무용수들은 한 뭉텅이로 유착되는데, 이런 관계는 앞선 분리되고 정확한 간격의 분포와 배치 양상과는 거리가 있다. 각자 움직임을 수행하기보다 서로 호흡을 맞추고, 정확하게 모든 움직임이 음악에 맞아떨어지기보다 붙어 있는 신체에서 잉여적인 몸짓과 시차가 발생한다. 안무가는 재단된 안무로부터의 사물들의 유격을 존재 간의 관계에서의 흐트러진 질서로 바꾸고자 한 것이 아닐까. 

    〈구두점의 나라에서〉는 끝없이 이어지는 음악을 몸으로 연장한다. 움직임 역시 끝이 없다. 이 세계는 다분히 동화적이거나 이상적이다. 현실 세계의 단면으로 이따금 나아가는 지점이 앞선 그러한 두 손의 마주침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곳은 ‘구두점의 나라’이다. 그곳‘에서’ 구두점들이 살아나간다. 이러한 우습고도 기묘한 풍경을 지탱하는 음악에 정영두 안무가는 움직임의 다변화된 양상의 무한 축적으로 응전한다. 거기에는 구두점을 끊는 약간의 틈이 문득 보인다. 결국 〈구두점의 나라에서〉는 ‘구두점의 나라’라는 외피 아래 음악으로서의 움직임의 가능성을 극단으로 몰아붙인다. 그것은 꽤나 놀랍고 긴장되는 순간이다. 

     

    김민관 mikwa@naver.com

     

    [공연 정보]

    공연명: 구두점의 나라에서

    공연 일시: 2021.12.10()-12() 7:30PM 토일 3PM·7PM

    공연 장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안무: 정영두

    조안무: 정록이

    움직임: 공동창작

    출연: 강다솜, 김수인, 김지원, 노예슬, 염정연, 이경진, 이예지, 이유진, 정록이, 주정현

    음악: 신동일

    연주: 신은경, 안지아

    미술: 정민선

    기술감독: 어경준

    무대감독: 이도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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