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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은미, 〈Let me change your name〉: 이름을 바꾸는 어떤 행위들
    REVIEW/Dance 2021. 12. 30. 11:24

    안은미컴퍼니의 ‘4괘 - 용 이름 거시기 조상님’ 포스터 [이미지=영등포문화재단 제공]

    〈Let me change your name〉을 표면을 한 문장 정도로 압축한다면, 음악적 주술에 포획된 자동인형들의 무한한 맥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은 반복된 리듬과 파열음으로 팽팽하게 무대를 옥죈다. 여기에는 시선, 스트립, 위치 짓기, 맞섬 등의 여러 관계 도식이 역시 반복적으로 출현한다. 한편, 무대는 텅 비어 있고, 배경색의 변화만 있다. 무용수들은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교차하는 방향성을 갖는다. 이는 안은미 안무가가 자주 구사하는 무대 작법으로, 비슷한 구문을 반복하는 무용수들의 무한한 나타남과 사라짐의 교대는, 텅 빈 무대 위에서 지체 없이 가장 빠른 속도로 가능해지며, 무대가 끊임없이 갱신되는 것을 통해 각 무용수의 존재론적 지위보다는 무대 자체의 변신술쯤으로 공연을 수렴시킨다. 

    사실 이러한 무한 이동의 작법(무용수들은 처음에 좌에서 우로, 또 우에서 좌로 이동하는 기술은 한쪽 다리만을 바깥쪽으로 해서 앉은 자세에서 바닥을 휩쓸고 감을 반복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아가 무한한 반복 구문의 군무로서의 확장은 모두 그치지 않는 음악적 소용돌이에 상응하는데, 이러한 강박적인 반복은 기계 장치의 지속적이면서 더딘 열화됨에 맞서는 신체의 어쩔 수 없는 소진―그와 동시에 신체의 무한한 동력의 불가능성과 이를 향해 가는 놀라움 또는 두려움―을 형상화하려는 것으로도 보인다(이러한 소진은 반복된 구문을 지속했을 때 관객의 분열적 양상 또는 내파로도 이어진다.). 반복적인 군무가 잦아들며 중앙을 누비는 김혜경의 춤은 파열적 양상을 보이는데, 곧 음악의 일정 단위를 춤의 일정 단위의 구문으로 바꾸는 반복의 단위가 더 이상 정확하게 적용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방향성을 상실하거나 방향/리듬을 의도적으로 이탈하는 춤의 구문이 곧 음악을 상실할 때 김혜경의 움직임 역시 그치고 그의 헉헉대는 숨소리는 직전 움직임의 양상같이 마구잡이의 방향성을 띠며 파열된다. 

    아마도 꽤 긴 시간을 거쳐 온 그와 같은 숨소리에서 어떤 다른 부가적 움직임도 더해지지 않고 〈Let me change your name〉에서 가장 두드러진 이미지, 곧 옷을 훌러덩 벗어 던지는 이미지를 대용하는 커다란 무대 장막 같은 것이 떨어져 내리는 것으로 끝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공연은 무용수들이 다시 자신의 옷들을 들추고 올리는 것으로 움직임을 새롭게 다시 지피고, 무대 중앙에 등장한 하얀색의 한층 밝아진 분위기의 무대 위에 걸맞은 촐싹대는 음악과 움직임으로 무대를 이어 나간다. 이는 사실상 앞선 장 자체의 또 다른 반복이자 변주이다. 한 번은 무겁고 어둡게 펼쳐졌다면, 다른 한 번은 가볍고 밝게 펼쳐진다. 어떻게 보면 음악과 표정만 바뀌어 있다. 이러한 스펙터클한 군무 양상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관객의 파열을 기도한다. 관객은 그러한 파열로부터 자신을 붙들기 위해 정신을 잃거나 다시 정신을 차려야 하지만, 사실상 그럼에도 달라진 광경은 없다. 

    이러한 무한 동력의 무대를 비집고 들어와 해석의 말미를 주는 건 곧 안은미다. 당연히 그럴 일 없겠지만 안은미는 군무에 동참하지 않으며 혼자 무대를 장악하는데, 짐짓 상반신 아래를 향한 중심을 만드는 우묵한 신체로 극장의 소실점을 자신의 신체로 옮기며 사물화된다. 적당히 눈을 감은 신체의 현현은 부처의 상이랄까―곧 안은미는 자신의 등장을 낯선 시간, 침잠하는 시간, 우묵한 시간으로 구현한다. 그것은 기도하는 성스러운 시간일 수도 암묵적인 어둠의 시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상의 초점은 얼굴에서 벌거벗은 상반신으로 어느 정도 옮겨 간다. 
    그러한 동작을 포함해, 안은미는 크게 세 가지의 움직임을 구현한다. 앞선 장면이 적잖이 상징적이고 재현적인 차원의 숭고한 대상의 형상화에 가깝다면, 한 개인으로 풀려나온(조명은 다시 현실의 광경을 비춘다.) 안은미는 안무가 아닌 춤의 자율적 역량을 펼쳐놓는 것으로도 보인다. 군무의 반복의 단위는 곧 정확한 구문들이 지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따라서 여기서 춤은 이 반복의 불가능성에 대한 차원에서 소진의 과정 곧 반복 자체를 가리킨다. 그 안무의 개별 단위들이 아니다.), 안은미는 단 한 번밖에 없는 움직임을 펼쳐낸다―이는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음악을 접고 펴는 식으로 일종의 테크노 음악은 트랜스한 광경으로 몸에 묶인다(음악을 가지고 놀고 있음이 감각된다. 곧 그는 음악과 동기화된 신체 양상을 가져가는 대신, 음악과 몸 사이에 간극을 삽입한다. 음악의 사이에 몸을 접합하기를 반복한다.). 

    마지막 움직임은 시간적으로는 가장 앞서는, 자신의 위치를 구획하기, 그 연장선상에서 침투하는 관계를 구성하기이다. 거기에는 두 가지 시선이 있다. 중요한 건 일반적인 바라보기가 아닌 눈동자의 힘/빛이 현현되는 응시의 시선이다. 이는 반복되는 이동 구간에서 김혜경에게서 촉발된 두 가지 이상 징후의 하나로 이미 발현된 바 있는데, 애초에 몸을 아래로 짧게 떨어뜨리며 단말마의 신음을 내는 것(이는 앞선 후반의 거친 호흡에 조응한다.) 다음으로 째려보듯 상대를 또는 앞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는 냉랭한 미소의 차원으로도 연장되는데, 이러한 시선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시선이 분리된 채 무대를 떠돈다면, 그에 대응하는 건 모든 무용수에게 적용되는 여러 벌의 색색의 원피스를 들춰 눈을 가리기이다. 이는 자연스레 원피스를 벗어젖히는 동작으로 이어진다. 이는 남녀 구분 없이 적용되고 자연히 여성 누드가 출현한다. 그리고 그 정면성이 부각된다. 이러한 장면은 미학적 용어로는 에로티시즘이나 미디어 용어로는 전적으로 선정적 이미지를 전면에 활용한 방식으로 치부될 수 있을 정도로 극 전반에 주요한 장면들로 두드러지며 나타난다. 스스로를 들추고 눈을 가리는 것으로 몸과 시선은 등가의 교환을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시선의 고립은 떠돌다 그러한 신체를 마주하며 대응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들추는, 수치를 전시하며 수치로부터 도피하고 은폐하는, 그럼으로써 수치를 전도하는, 이러한 행위가 향하는 대상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 곧 그러한 신체를 응시하는 타자의 시선일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많이 반복되는 춤은 무엇일까. 이는 회전하고 두 팔을 앞과 사선으로 각각 분배하고 다시 회전하는 춤이다. 찌르고 도는 이러한 춤은 네모난 구획 안에서 전환하며 매번 위치를 지정하는 안은미의 동작의 일종의 변형태―그것을 국소 범위로 압축한 형태―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안은미의 동작의 연장선상에서 응시가 생겨난다. 위치의 방향성이 생겨나는 순간, 또는 선회하거나 돌아서는 등의 급격한 동작의 구간 이후 그러한 시선이 발생한다. 

    이러한 시선은 치마를 벗어 자신의 눈을 가리는 행위로부터 시작된 나체와 대응한다는 점에서, 헐벗은 신체, 정면을 응시하거나 상체를 도드라지게 내밀고 런웨이의 모델처럼 걷거나 남자 무용수가 여자 무용수를 높이 들어 올리며 가령 김지연 무용수가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하며 초점 없는 시선과 함께 아래로 흘러내리는 모습 들은 왜상적 신체의 증상들로 보인다. 이는 안은미의 구획 짓기와 시선으로부터 비로소 해결의 기미가 보인다. 관객으로 미칠 수 있는 타자의 시선을 미연에 봉합한다. 

    안은미가 다른 무용수들과 함께 등장하고 나아가 관계 맺는 예외적 장면이 있다. 이는 “Let me change your name”을 설명하는 가장 직접적인 장면이 될 것이다. “너”와 “나”의 관계 맺기로 연장되는 주체의 생성. 앞선 안은미의 상대방과의 거리 형성하기, 자신의 구획 설정하기의 압축적 전개이면서 동시에 그러한 구획을 파괴하는 것이기도 하다. 곧 안은미의 가슴을 치고 사라지는 김혜경의 행위는 이미 감당할 수 없는 타자의 거리가 당도해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안은미가 띤 웃음은 엔지와 같이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폭력과 항의의 제스처, 그리고 침입과 침범의 행위를 긴급하게 자신의 신체 내부로 전도시키는 것과 같았다. 나와 너의 마주침의 과정에서, 너의 고정된 지시 틀을 바꾸라는 폭력적 언어에 대한 대응은 시선으로 또는 시선에 대한 교란으로 나타난다고 보인다. 

    〈Let me change your name〉은 안은미무용단의 몸들의 무한한 변신들과 반복된 주문을 통한 무대 구현 아래, 스쳐 가는 관계의 교환, 그리고 그로 인해 굴절되고 변용된 주체의 모습을 드러낸다. 음악의 시간이 단단한 현실계를 의미한다면, 안은미가 출현하는 침묵의 시간의 삽입―곧 한 번은 부정으로 다른 한 번은 긍정으로 반복되는 구문의 중간에―은 어떤 성찰과 이념의 언어를 주조한다. 그리고 시선을 타자를 향해 이탈하기, 너와 나를 교환하기, 나의 시선과 신체를 교환하기 등의 행위는 ‘이름을 바꾸는’ 어떤 예시들일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 일시: 2021년 12월 19일 일요일 18시
    공연 장소: 영등포아트홀

    예술감독: 안은미
    음악감독: 장영규
    무대감독: 김지명
    영상감독: 이태석
    연습감독: 배효섭
    출연: 안은미, 김혜경, 김지연, 배효섭, 정의영, 김경민, 유재성, 황경미, 이현석, 정상화, 조선재, 오현택, 이민주
    제작: 안은미컴퍼니
    주최·주관: 영등포문화재단, 안은미컴퍼니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등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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