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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기존의 인형들》: 인형의 바깥, 바깥의 인형
    REVIEW/Theater 2021. 12. 22. 01:49

     

    〈고랑 몰라〉(이경성 연출), 《기존의 인형들》 ⓒ조음기관

    《기존의 인형들》은 이지형 작가가 인형을 만들고, 본인은 연출을 포기한 채 연출을 바깥으로 아웃소싱하는 형태의 기획이다. ‘기존의’ 인형들은 그래서 주어진 인형의 어떤 가능성들을 이야기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공연이 오른 순서대로 김보라, 여신동, 이경성에게 이지형은 각각 “관절”, “감탄사”, “언어”라는 키워드를 던져주었다. 이러한 키워드들은 인형을 제시하는 것 외에 연출의 자율적 지위를 완전히 수여하는 규칙에 의해 작품의 주제와 직접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키워드들에서 각각 안무, 무대디자인, 연극을 하는 이들과의 희미한 연관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기존의 인형들》은 사실 2018년 신촌극장에서 처음 열렸고, 인형을 주고 연출이 작품화하는 개념을 이번에도 고스란히 연장하고 있다. 당시 프랑스 연출 에르베 르라흐두, 여신동, 적극 연출이 참여했다. 일종의 적극적으로 사라지는 매개자로서 이지형은 인형만을 제작하고 연출을 호출하고 그 지위를 위임하는 것을 통해 작품성과 작품의 차이는 그 연출들에게 각각 돌아간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김보라, 여신동, 이경성은 각각 인형을 사물로, 존재의 탐구로, 존재의 이념으로 바꾼다. 

    인형 바깥에서

    〈원래의 몸〉(김보라 연출), 《기존의 인형들》 ⓒ조음기관(이하 상동). 인형들과 박상미 무용수.

    김보라 연출의 〈원래의 몸〉은 옷걸이에 걸린 빽빽한 구체 인형 더미를 무대로 가져와 해체하는 움직임들로 구성된다. 엔트로피 법칙에 따른, 질서 정연한 배치로부터 관절이 해체되고 인형 위에 인형이 쌓이는 무질서한 광경으로 변해 간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상미는 처음 인형들 틈을 헤치고 나오고 인형을 가볍게 악기처럼 두드리는 것으로 시작해, 인형을 매단 고리에서 인형을 내리고 무대 위로 인형을 분배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해체 작업 과정에서, 박상미는 인형을 존재로 둔다기보다는 사물의 특이성을 추출하는 방식으로 다루는데, 후반의 무대 오른쪽에 인형을 내려놓을 때 인형과 시선이 마주치는 걸 제한다면, 인형은 의사-인간의 유형을 본뜬 관절들로 이뤄진 일시적 결속의 사물들과 같다. 

    이러한 인형을 대하는 태도는 사실상 아마도 안무에서 비롯한 움직임이 인형‘과 함께’가 아니라 인형‘들 속에’ 있음에 맞춰져 있음으로도 살펴볼 수 있다. 인형은 퍼포머 자신의 몸이 위치한 반경에서 배경으로 자리하거나 퍼포머의 반응되는 어떤 수동적 사물에 가깝다. 이를 첫 번째 박상미의 등장 장면 안에서 살펴볼 수 있다. 여기서 인형의 자리는 퍼포머 또는 무용수의 자리에 대응되는데, 어떤 경우, 안무를 위임받은 무용수의 움직임은 존재의 발화가 아니라 사물적 제스처에 가까워지고는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형에 대한 태도는 자신의 무심한 신체를 체현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처음 인형들 틈을 꾸역꾸역 박상미가 비집고 나올 때, 인형과 박상미의 존재가 어떤 구분을 갖지 않음을 유념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반면 인형은 폭력적인 재단의 상태에 있지 않은 채 예외적으로 유동적인 상태가 된다.). 

    박상미가 인형의 팔이나 다리 등을 해체할 때 인형과 마주하지 않는 시선은 관객의 시선을 비켜나며 허공을 가로지른다. 이때 팔과 다리를 뺄 때, 나아가 하반신을 잡고 매달려 완전히 인형을 형해화시킬 때 인형의 얼굴은 평온함을 유지한다. 그 평온함이 흔들리는 순간에 무언가 바뀌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엄습한다. 그것은 그 고통이, 파열이 바깥으로 느껴질 것이라는 어떤 환상일 것이다. 평온함의 흔들림, 곧 어떤 변화도 없이 상태를 유지하는 인형은 언캐니함을 안기며, 그 행위의 무력함을 상쇄한다. 

    신체 바깥에서

    〈인터뷰〉(여신동 연출), 《기존의 인형들》 ⓒ조음기관

    여신동 연출의 〈인터뷰〉는 검은 마스크를 쓴 사람이 마네킹 표면에 기계 관절이 안에 들어 있는 구체 인형을 소파에 앉히는 거로 시작한다. 얼굴을 알 수 없는 살아 있는 존재와 얼굴이 드러난 죽어 있는 존재 사이에서, 인터뷰어―질문자―를 자처하는, 허공에서 나오는 하나의 목소리는 이 둘의 관계를 기이하게 엮는데, 관객은 그 목소리를 어느 하나의 신체로 동기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가령 인간이 마네킹한테 말을 거는 것인지(무대 위 두 존재의 관계가 전제된다.), 마네킹이 바깥의 관객에게 말을 하는 것인지(무대에서 한 존재만이 존재하는 상황으로, 사람은 일종의 크로마키 배경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가 애매해지는 지점이 발생한다. 그 말을 누가 하는지, 누구에게 하는지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표정 없음의 존재로서 존재하는, 또는 존재하지 않는 얼굴은 그 자체로는 가늠의 척도를 만들지 않는다. 

    실제 공연이 끝나고 검은 마스크를 벗자 여신동이었음이 드러나는데, 여신동은 인형의 자세를 교정하고, 올바른 인간의 몸과 편안한 몸의 자세를 만들어 주는 데 초반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따라서 인형의 자리와 그를 추어올리는 비-인간의 자리는 대등한 상태에서 유착되는데, 인형을 애매하게 동시에 어떻게든 존재화하는 목소리는 동시에 존재와 탈구된 목소리는, 사람과 인형 너머의 초월적 존재의 양상에서 인형의 지위를 재정의한다. 여기서 사람의 지위는 인형을 넘어서지 못한다. 

    바깥의 신체

    〈고랑 몰라〉(이경성 연출), 《기존의 인형들》 ⓒ조음기관(이하 상동). 인형-유해를 발굴하는 이경성과 이를 찍는 카메라맨, 후경의 유족의 목소리를 재현하는 장성익 배우.

    이경성 연출의 〈고랑 몰라〉는 제주공항 부지에서 380여 구의 유해가 발굴된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장성익 배우는 제주 4.3 사건 유가족의 진술을 버바텀으로 재현한다. 무대 오른쪽 깊숙이 앉은 배우의 말을 후경으로 하고, 보트 위에 깔린 흙을 뒤집어 인형의 관절들을 캐내는 이경성의 퍼포먼스와 이를 주변에서 맴돌며 비추는 카메라맨이 전경을 이루는 가운데,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화면이 후면을 크게 잠식한다. 사실 제주도 말을 구사하는 배우의 말은 명확히는 전달되지 않는데, 이는 여기에 완전히 감응할 수 없는 인터뷰어의 지위를 관객에 체현시키려는 의도에 의한다고 보인다. 그리고 이경성이 캐내는 인형 관절은 4.3 사건의 피해자의 유해를 가리킨다. 

    이경성의 행위는 무미건조한 발굴 행위를 하는 고고학자의 모습을 체현한다. 그와 같은 신중한 모습은 양가적이다. 직업으로서의 무심한 노동의 행위이기도 하고, 그러한 무심함 속에 숭고한 시간과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구획하는 애도 행위이기도 하다(유해는 온전한 신체로 복구하기는 쉽지 않다. 동시에 유해를 복원하는 것이 삶을 복원하는 것 역시 아니다.). 나아가 이경성은 흙과 유해로서의 인형 관절들을 비추는 카메라가 중개하는 화면을 한 번씩 응시한다. 이는 자신이 발굴한 유해를 향한 시선도, 잠깐의 휴식 동안 얼핏 스쳐 가는 흘깃댐도 아닌 정확한 응시로서 관객을 유도한다. 이를 통해 관객이 유해가 멈추어 진열된 순간에 대한 사유를 촉구하는 듯하다. 이러한 전환의 순간을 기입하며, 그 나머지 시간에 이경성은 묵묵히 흙을 파헤치고 관절을 모으는 행위에 전념한다. 

    흙을 적당히 털어내고 바닥에 진열하는 행위는, 유해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의 찰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유해의 정체는 배우의 재현과 순간들과 협응하며, 종래 유가족의 아버지 유해 발굴로 수렴한다. 이경성은 아버지의 신체가 작았다는 배우의 말과 함께, 거의 해체되지 않은 작은 인형에 관절 하나를 끼워, 이를 품에 안고 배우에게 전달한다. “말해도 몰라”를 뜻하는 “고랑 몰라”는 참담한 역사의 자장을 겪은 당사자와 그 말을 듣는 사람이 갖는 어떤 거리감 같은 것을 동시에 지시한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갖는 초월적 경험의 거리감이 수여하는 애도 불가능성은 ‘인형을 유해로 옮기는’(그 반대가 아니라) 행위를 통해 애도의 대상을 찾는 것으로써 일정 정도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음의 자유롭지 않음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유해 발굴의 행위와 이를 지켜보는 일은 일종의 공동의 애도이다!). 나아가 “고랑 몰라”라는 말해도 모를 사실들의 인과관계와 그와 연결된 이 빠진 배경에 대한 사실적 인지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이의 당사자성에 다가서게 된다. 곧 이러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건 가늠할 수 없는 어떤 막연한 듣기이고, 막연하게 유해로서의 사료를 매만지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고랑 몰라〉는 “고랑 몰라”를 말하는 게 아니라, 듣고 있는(그대로 돌려주는) 공연이다. 그것이 버바텀과 유해 발굴자의 모습을 체현하는 행위, 나아가 이를 찍는 기록자의 모습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음으로 이 공연이 구성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 연유로 마지막으로 시간에 자국을 남기는 이경성의 응시는 주체적 의지의 발로로도 볼 수 있지만, 역사의 타자로 위치하는 우리의 위치를 가리키는, 곧 “말해도 몰라”를 듣는 유일한 청자의 위치를 재현하는 것일지 모른다. 

    〈인터뷰〉(여신동 연출), 《기존의 인형들》 ⓒ조음기관

    p.s. 결과적으로 김보라의 작업 〈원래의 몸〉은 가장 흥미롭게 주어진 인형 타래의 배경에도 불구하고 인형에 대한 탐구보다는 인형을 일종의 배경과 오브제의 양극단으로 분절함으로써 다소 즉물적으로 다루는 데 그친다. 결과적으로 다분히 관능적이고 감각적인 무용수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데 가깝다는 아쉬움을 준다. 반면, 가장 짧지만 여신동의 작업 〈인터뷰〉는 목소리와 인형의 분리를 통해 인형의 타자성을 기묘하게 감각하게 만들고, 이경성의 작업 〈고랑 몰라〉는 역사의 이념을 인형의 관절들로 옮겨오는 대담함과 기지를 보여준다. 

    〈원래의 몸〉이 무용수의 비주체성을 통해 언캐니한 인형의 신체를 극대화한다면, 〈인터뷰〉는 음성의 근원이 신체의 외부에 있는 아쿠스메트르(acousmêtre)의 명확한 상황 설정을 통해 인형의 언캐니함을 상황의 기묘함으로 상쇄한다―인형은 인간의 존재론적 지위를 획득한다. 〈고랑 몰라〉는 목소리의 외부를 설정하고(그러한 기원은 버바텀하는 배우로 수렴한다.), 그러한 목소리를 듣는 것과 인형-유해를 발굴하는 수행을 오버랩함으로써 인형의 존재는 인간의 존재로 고양되기에 이른다. 〈인터뷰〉가 보이지 않는 세 개의 신체들 간의 목소리라는 하나의 언어의 삽입과 그 교환 작용을 통해 게임을 전개한다면, 곧 신체는 각각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의 부재를 증명하고자 한다면, 〈고랑 몰라〉는 세 개의 신체를 모두 실제 시간의 시간을 갖고 ‘성실하게’ 재현한다. 거기에는 삶과 죽음이 뒤섞여 있으며, 이야기에는 기억과 경험이 있다. 유해 발굴은 그 기억을 따른 재현의 풍광이지만, 그 이야기가 뒤섞일 때의 재현은 분명 다르다. 그것이 바로 예술이 부상하는 순간이다. 유해의 존재론적 지위는 오직 인형을 통해서 얻어진다. 〈고랑 몰라〉는 예술이 삶으로 전환되는, 아니 가시화되는 순간을 기어이 조직해 낸다. 우리는 비로소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김민관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 일시: 2021.12.09.(목)/12.10.(금) 19:30, 12.11.(토) 14:00 / 18:00

    공연 장소: M극장 

    개념/구성: 이지형

    연출: 김보라, 여신동, 이경성

    프로듀서: 추수연

    그래픽디자인: 정김소리

    무대감독: 김상엽

    조명디자인: 윤혜린

    영상감독: 정민영

    음향오퍼레이터: 김강민

    홍보: 이나래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글룩

     

    공연 설명: 
    원래의 몸(김보라): 이 작업은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바뀌기 이전의 단순한 원래의 몸을 찾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몸과 인형의 유기적 관계를 탐구하여, 몸의 물성(몸을 구성하는)을 이야기함으로써 원형에 다가간다. 몸의 비언어적 물성을 전달하기 위해 춤은 어떠한 역할을 하며, 그 춤은 원래의 춤일까? 

    인터뷰(여신동): 이지형 작가에게 사람 크기만 한 아니 사람 같은 인형을 받았다. 그리고 “감탄사”라는 키워드를 덤으로 받았다. 나는 ‘인형의 감탄사’를 직관적으로 바라보고 인형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자아(소리)와 정체성(캐릭터) 찾기를 주제로 한다. 

    고랑 몰라(이경성): 제주도 제주공항 부지에서 380여 구의 유해가 발굴되었다. 그 유해 더미에서 누군가는 70년 전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를 찾았다. 그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고랑 몰라 는 ‘말해도 몰라’라는 제주도의 방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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