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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즉각반응, 〈슈미〉: 드라마적 완성도와 동시대적 질문의 낙차
    REVIEW/Theater 2021. 11. 15. 12:43

    즉각반응, 〈슈미〉. [사진 제공=컬처버스](이하 상동). 슈미 역의 최희진 배우.

    〈슈미〉는 원작 ‘헤다 가블러’를 각색해 재창작한 작업이다. 원작의 주인공이 제목과 동명이었던 것처럼, 〈슈미〉에서 주인공은 헤다 가블러를 치환한 슈미가 된다. 〈슈미〉는 흡입력 있는 대사와 움직임을 갖춘 탄탄한 드라마로 관객을 몰아세운다, 슈미가 다른 인물들에게 그러한 것처럼. 일종의 가스 라이팅으로 볼 수 있을 타인의 심리와 행동을 자의대로 조종하는 슈미의 행동은, 소위 ‘피씨함’의 범위를 많이 벗어나 있으며, 고전이 갖는 인간의 “광기”나 “불안” 같은 심리의 근간을 떠받드는 것만으로는 동시대의 언어로는 과도할 것이다. (아님 이를 포섭하기 위한 또 다른 언어를 개발해야 할 것인가.) 

    이러한 슈미와 엮이는 인물들 간의 관계는 어떤 군더더기가 없다. 적어도 누군가를 조종하고 조종받는다는 인식을 갖춘 슈미(최희진 배우)나 도규(장재호 배우) 같은 경우, 말들은 압축된 채 상대의 폐부를 찌르고 그 말은 상대의 세계에 인식의 경로를 구성한다. 경만(조형래 배우)과 애경(김시영 배우), (슈미에 의해 조금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자유의 이념을 시험받지만, 그것에 도달하지는 않는) 유완(권일 배우) 같은 이들은 슈미가 행사하는 말의 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슈미의 힘은 그의 관능과 연결돼 있다. 무대에는 긴 테이블 하나가 놓인다. 이는 각도를 틀어 무대를 가로지르기도 하고, 아무튼 넓게 시야를 구성한다. 첫 슈미의 등장이자 연극의 시작에서 슈미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그 테이블 위에 햇살을 쐬는 모습을 재현한다. 원 대상은 잔디밭 위의 누운 나체의 기억이다. 

    테이블에 앉은 슈미 역의 최희진 배우, 도규 역의 장재호 배우.

    슈미는 다른 대상과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맨발로 무대에 자리하는데, 이러한 특별한 구별 또는 표식은 무대 위에 등장하는 거의 유일한 상징으로 연결된다. 곧 새로 이사 온 이곳은 슈미의 욕동이 재현되고 연장되는 곳이어야 하며, 이는 기억 속 자리와 연결된다. 이상향의 기억은 유완과의 대화에서 가시화되며 처음 장면을 재현의 기호로 확정할 수 있게 한다. 슈미가 언제나 자유로운 영혼임을 그 스스로 확언할 수 있다면, 슈미의 시점에서 유완은 불확실한 경계에 놓여 있다고 상정된다. 

    무대 위에서 유일한 슈미의 맨발은 이곳이 슈미의 영토임을 지시하며, 다른 이들은 상대적으로 그러한 관능의 위치를 차지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유완이 슈미의 말의 영향 아래 있다는 점에서 유완은 자유로울 수 없으며, 또한 그 말의 바깥에서 자유를 상상할 수 없다는 역설로 인해, 여기서 누가 자유롭냐 자유롭지 않으냐는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슈미는 왜 남을 지배하려 하는가. 그리고 남의 죽음까지를 그의 자유로 칭송하며 기꺼이 긍정하려 하는가. 슈미는 타인의 자유에 대한 실험을 유완의 죽음을 통해 시도했고, 그것이 실패한 것을 알면서 스스로 자살을 선택한다.

    연회에서 집단으로 춤추는 장면. 사진 왼쪽부터 유완(권일 배우), 슈미(최희진 배우), 애경(김시영 배우), 경만(조형래 배우), 도규(장재호 배우).

    슈미의 자살은 그의 자유에 대한 명제를 그 스스로에게 대입한 결과이다. 슈미는 누군가를 자신의 지배력 안에 완벽하게 두는 법을 그는 욕망했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에 충분한가. 욕망의 잔여가 발생하지 않는가. 그것은 온전히 자신의 욕망이 될 수 있는가. 실제 헤다 가블러는 남편의 성을 거부하고 아버지의 성을 고수하는 것이나 남편이 원하는 아내의 모습을 비롯해 다른 이들의 요구를 모두 거부하는 것으로부터 통념의 여성 지위를 거부하는 것에서 나아가 자유로운 인간의 이념을 실현하는 주체의 위상을 가진다. 반면 〈슈미〉에서 슈미는 페미니즘적 전위의 서사 맥락을 거두고 평평한 세계의 질서를 채택한다. 이는 현대적 배경이기도 하지만, 재현의 당위를 탐문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인물의 복잡성, 이해 불가능성은 독해의 열망으로 곧장 연결되기도 하지만, 작품의 보편타당함이 절대적으로 유지될 수 있음의 조건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슈미〉에서 현대적인 각색의 차원은 어색하게 메타버스 안에서 가상의 죽음을 (아마 3D 환경에서) 체험하며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지를 시험하는 유완의 사례로 인용되는데, 이는 표현형의 새로움일 뿐, 현재의 질문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슈미〉는 앞서 말한 것처럼 상당한 흡입력으로 2시간의 러닝타임을 가져간다. 슈미는 자신의 주변의 모든 사람의 평범한 일상에 균열을 내는 존재이다. 죽음충동이 실재화돼 나타나는 기호가 슈미일 것이다. 슈미는 현대인의 연약한 내면, 주체적이지 않은 삶들, 안정적인 삶의 의지를 모두 비웃거나 파괴하려 든다. 그렇다면 슈미가 휴머니즘적 객체가 아니라 스핑크스 같은 타자로서 우리에게 죽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존재로 상정할 수 있을까. 

    〈슈미〉에서 슈미를 맡은 이희진 배우의 연기는 이를 반증하는 듯하다. 흐트러짐 없는 단정한 저음의 톤이 갖는 무게를 비롯해 유머로도 수용되는 인물 행동에 대한 절제의 요구 부분, 마지막에 자살을 선택하기까지 급격한 감정 변화의 낙차를 표현하는 데 있어 안정적인 부분까지 대부분의 장면에 신뢰를 준다. 이런 신뢰감은 인물의 타자성과 연관된다. 마지막 죽음 역시 주체적 선택의 측면 때문이 아니라 거기에 어떤 긴장이나 연민도 들지 않을 정도로 단호한 결단으로 처리된다는 점은 이를 강화한다. 총을 쏘기 전 암전이 오고 시차를 갖고 총소리가 들리는 것은 시각 효과의 미진함을 상쇄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에 대한 충격을 완충하려는 의도에 더 가깝다. 슈미의 죽음은 슈미의 의식이 그의 신체를 벗어나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바깥에 현재의 슈미가 영원히 놓임을 의미한다. 슈미에 대한 타자화는 그렇게 완성된다. 

     

    사진 왼쪽부터 경만(조형래 배우), 도규(장재호 배우), 슈미(최희진 배우).

    김민관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 일시 2021-11-06 ~ 2021-11-14 평일 19:30 / 토요일 15:00, 19:00 / 일요일 15:00 (월요일 공연없음)

    공연 장소 별오름극장
    관람시간 120분
    관람연령 13세이상 관람가

     

    출연 및 제작진

     

    출연 최희진, 장재호, 김시영, 권 일, 조형래

    재창작·연출 하수민

     

    드라마터그 신빛나리

    무대미술 남경식

    음악 지미세르

    조명 김소현

    의상 이윤진

    안무 이세승

    조연출 황준영

    무대감독 이뮥수, 최소영

    오퍼레이터 신지언

    포토그래퍼 이상윤, 박원민

    그림 신혜진

    홍보 안선정

    제작PD 차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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