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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마을〉, 급진적 우화
    REVIEW/Theater 2021. 12. 22. 18:21

    이연주 작, 정성경 연출, 〈어느 마을〉 리허설 장면 ⓒ김솔 [사진 제공=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이하 상동). 빈 의자에는 사실 관객의 자리로, 연극의 구성상, 빈 의자는 사실상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아직 객석 주변으로 중간중간 전시 모니터가 들어오지 않은 모습으로(모니터는 공연 전후에는 전시 스크리닝으로, 공연 중에는 문자 통역의 자막 기능을 한다.), 임시적으로 한 대의 스크린이 바깥쪽에 놓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어느 마을〉은 장애인을 위한 동시적인 언어적 번역의 전개에서 나아가 이를 서사의 내용으로 함입한다. 원형으로 배우와 관객이 함께 둘러앉은, 현위치는 “어느 마을”이다. 그 바깥의 외부인이 등장하며 이 마을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는데, 그 다른 마을은 수어를 쓰는 마을이다. 수어를 쓰는 수의사(홍선우 배우)는 이후 등장하는 그 마을의 심리치료사(박준빈 배우)가 수어만 쓰는 것에 반해 말도 같이 하는데, 이런 이중 언어의 전략은 이 연극이 좇는 어떤 이상적 가치의 형상을 띤다. 따라서 〈어느 마을〉은 연극의 언어적 보완 장치로서 스크린의 자막과 배우 옆에 붙는 수어 통역사가 은폐되기보다 적극적으로 가시화되듯 수의사의 모습은 그런 연극의 주의(主義)를 메타적으로 지시한다. 곧 연극의 전략은 연극의 이념으로 치환된다, 그리고 완성된다. 

    〈어느 마을〉은 극장을 구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전시 인터뷰 구성 및 진행을 담당한 전강희의 “탈시설”, “동물권”, “마을을 구성하는 소리”, “공동체” 네 개의 주제를 가지고 구성한 전시가 모니터들에서 흘러나오는 가운데, 무대 중앙, 곧 객석이기도 한 이 공간에는 연극이 시작되기 전에 모든 배우와 수어 통역사, 관객이 뒤섞인 모습이 연출된다. 의자는 군데군데 몇 개만 있고 무대는 비어 있어 안정된 자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가장 복잡하고 부산스러운 이 광경은 사실상 가장 충격적이고 인상적인 장면에 가까운데, 무대의 엔트로피는, 보통의 “어느 마을”이 경계하고 은폐하는 다른 존재들 간의 마주침을 가장 자연스럽고 우발적으로 현상한다. 

    달걀을 주식으로 하는 마을에서는 달걀로 가치를 산정한다. 요리사(이사샤 배우)가 숫자가 붙은, “달걀”로 지시된 의자를 가지고 나오며 숫자를 호명하면, 이를 가져가 바닥에 적힌 숫자 위에 의자를 펴서 앉는 것으로 객석이 비로소 구성된다. 무대 위의 관객은 다시 무대로 지시되고 구성되는 공간을 누비며 공연 일부가 되는데, 그러한 참여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의미가 발생하거나 중요한 행위로 수용된다기보다는 비워진 공간이 어떤 하나의 공동체로서만 완성된다는 것을 일깨운다는 차원에서 특별하다, 또는 특이하다. 원형으로 둘러앉은 무대의 배치는 자연스레 무대 중앙으로 시선을 모이게 하고, 그 바깥의 주의를 지운다. 역설적으로 그 바깥으로의 등장, ‘침입’을 유의미한 것으로 바꾸는 게 이러한 폐쇄적 시선의 수렴을 구성하는 무대의 애초 설계이기도 하다. 

    “어느 마을”의 사람들은 네 개의 통로를 통해 바깥으로 왔다 갔다 하며 안에 대한 경계를 강화한다면, 또 다른 마을의 사람은 비로소 바깥에서 안으로 등장하며 안의 바깥이 있음을 상기시킨다(그 다른 마을은 볼 수 없다. 그것은 〈어느 마을〉이 극장의 바깥을 사유하는 과제와 일치한다.). 진리는 바깥으로부터 오되 다른 언어와의 소통을 통해 펼쳐진다는 것, 인류(마을)의 재앙이 불현듯 닥치되 이는 인간과 다른 종의 절멸(‘임신 불가능’)로부터 온다는 점에서, 〈어느 마을〉은 성서의 알레고리를 동시대적 이념으로 전유한 것으로도 보인다. 

    사진 좌측부터, 수의사 역의 홍선우 배우, 농부 역의 강보람 배우. 

    〈어느 마을〉은 닭이 알을 낳지 않아 마을의 주식이었던 달걀을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돼 혼란에 빠진 마을의 상황 이후 이를 해결하려는 다른 마을의 수의사와 심리치료사가 등장하며 반전을 맞는 드라마적 구조를 띤다. 이와 같은 이야기의 차원은 사실 드라마적 전개 자체보다 회의나 논의 같은 의사 결정 구조의 틀 자체로 수렴하며, 참여를 지시한다. 이는 관객을 그 회의의 가운데로 초대하는 특별한 무대 구성 방식에서, 관객을 비집고 나오는 배우의 말들이 핑퐁 같이 무대를 오가며 가로지르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이러한 의견들, 다양한 입장들이 1/n로 성립한다는 것, 민주주의적 의사 구조를 반영한다는 것이 그 말의 내용 자체가 중요한 가치를 나아가 진릿값을 지닌다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어느 마을〉이 갖는 참여성은 그 마을이 우화적으로 묘사되고 있음 자체에서 온다. 

    〈어느 마을〉은 민주주의에 대한 어떤 가상이며, 그 민주주의의 이름 아래 구성되는 어리석은 공동체에 대한 가상이다. 나아가 그것을 가로지르는 진리를 타자의 입장을 매개하는 번역의 언어 자체로 현상하는 동시대 어떤 예술에 대한 가상이다. ‘우리는 우리 주변을 구성하는 더 많은 생명과 공존재로서 살아나가야 한다.’ 이 같은 단순한 메시지는 한 번은 무대에서 발화하는 모두의 입장으로부터 나의 입장에 대한 심문으로 연장되며, 또 한 번은 바깥으로부터 다른 언어적 형상으로 그와 동시에 진리의 계시처럼 온다. 전자가 근원적인 민주주의적 장소로서 극장의 이념을 구성하는 것이라면(극장의 유비는 시종일관 공연을 지배한다. 극장장은 시각장애인이 쓰는 타자기를 들고 눈을 감은 채 글자들을 읽어 나가며, 극장의 등장·퇴장[각주:1], 조명의 온·오프 등을 내레이션으로 지시하며 재현한다. 또한 마을 사람들은 현 위치가 극장이었음을 어느 순간 자각하며, 자연스레 극장은 민주주의적 담론장의 상징성을 수여받는다.), 후자는 예술을 타자의 언어로서 번역하는 동시대적 예술의 윤리와 타자의 언어 자체를 예술화하는 오래된 예술의 이상을 합산하는, 어떤 불균질한 발생이다. 

    극장장 역할의 전인옥 배우.

    〈어느 마을〉은 급진적인 연극이며 또한 헐겁고 그 헐거움 안에 발화의 자리를 앞세우는 연극이다. 그러한 헐거움 속에 급진적 면모가 기식하는 연극이다. 배우의 구성과 극장의 구성, 나아가 미래의 정치를 내세운다는 점에서 급진적이라면, 또한 우매한 대중과 현명한 매개자 사이의 뚜렷한 대립과 극(단)적 분기 사이에 그 간격이 조종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헐겁다. 〈어느 마을〉은 다시 쓰일 수 있고 쓰여야 하는 공연일 것이다. 구성의 이념을 그리고 발화의 자리를 가시화하는 것으로서 〈어느 마을〉은, SF가 아닌 우화로써 근미래의 관객의 자리를 호출하기 때문이다. 

     

    김민관 mikwa@naver.com

     

    [공연 개요]

    작품명: 연극 〈어느 마을〉
    공연 일시: 2021년 12월 10일 ,13일, 16일 오후 7시
    공연 장소: KOCCA 콘텐츠문화관장 스테이지66
    작: 이연주
    연출: 정성경
    출연: 강보람, 강희철, 박준빈, 이사샤, 전인옥, 홍선우
    드라마투르기: 김현지
    기획: 정유경, 김용우
    무대감독: 이리안
    배리어프리 매니징: 강보름
    수어 통역: 신선아, 임동초, 장진석
    무대디자인: 김나은
    조명디자인: 곽유진
    의상디자인: 이예원
    소품디자인: 정결
    음악: 김진하, 박재범
    음향감독: 이규원
    그래픽디자인: 이민지
    전시 인터뷰 구성 및 진행: 전강희
    공연/전시 사운드디자인: 베일리홍
    공연/전시 영상디자인: 장주희
    사진: 김솔
    공연 영상: 플레이슈터
    오퍼레이팅: 조수빈, 조연희
    무대 제작: 애픽APIC
    제작감독: 최세헌
    제작팀: 이현정, 박동민, 박대종, 박수종
    무대 크루: 노솔
    조명 크루: 김효민, 이예림, 이한다, 전석희
    객석 진행: 김가영, 김성민, 박서정
    전시 진행: 정유민
    기술감독: 임건수
    제작 주임: 송기선
    제작 피디: 권연순
    제작: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공.기
    지원: 유쾌한반란
    후원: 한국콘텐츠진흥원, 수어통역협동조합
     
    1. 1. 그가 무대 가를 돌 때, 그리고 중앙을 가로지를 때, 바닥에 새겨진 원형과 그 안에 교차되는 선분들―마을을 지시하는 독특한 무늬들은, 일종의 튀어나온 홈으로서, 극장장이 따라 걷는 촉지도이기도 하다. 프로그램 북 역시 점자와 문자가 공존하는 요철의 표면을 지니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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