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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우스 피스〉, 메타 연극의 하나의 재현 방식
    REVIEW/Theater 2021. 12. 24. 10:56

    키이란 헐리 작, 유은주 번역, 부새롬 연출, 〈마우스 피스〉 [사진 제공=㈜연극열전](이하 상동), 사진 왼쪽부터 리비 역의 김신록, 데클란 역의 장률 배우.

    〈마우스 피스〉는 글과 현재가 오가며 자연스럽게 시점이 전환되는, 서술과 연기가 중층되는 구조로 진행된다. 이는 리비가 데클란과의 만남과 그에 대한 묘사를 기초로 희곡을 완성해 나가는 극작가이기 때문인데, 이러한 글의 완결이 갖는 구조적 힘과 그것을 벗어나는 생명력을 갖춘 존재의 예외성은 극 후반에 이르러 극단적인 대립의 광경을 이루게 된다. 작가를 잠정적으로 그만둔 리비와 화가를 지망하는 데클란의 언덕의 만남을 시작으로, 데클란의 화가로서 길을 열어주고자 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글쓰기 역시 다시 시작하는 리비에 의해 데클란은 글의 주인공으로 들어오게 된다. 현실은 글을 위한 글감이 되는 셈인데, 결국 희곡이 완성되고 극장에 오르게 된다. 데클란의 입장에서 보면 리비는 자신의 삶을 착취한 셈이 된다. 
     
    한편, 〈마우스 피스〉의 글은 현실로 들어가는 풍경을 열기도 하지만[각주:1], 무대를 재현하기도 한다. 여기서 글은 무대로 구현됨을 상상한다. 글과 현실과 연극 사이에서 현실은 연극으로의 상연을 앞둔 글로 마감된다. 하지만 현실은 글을 밀고 들어온다. 글이 리비의 생각에서 진행된다면, 현실은 그의 글을 초과하며 부지불식간에 그 글을 중단하게 만든다. 리비가 자신의 글의 완성을 위해 달려가며 현실을 구획한다면, 그리고 데클란의 요구를 글의 편집점에서 밀어낸다면, 데클란은 그 글의 구성을 침범하고 이탈하며 자신의 삶을 주장하고자 한다. 마침내 리비의 희곡이 무대에 오르는 도중에 데클란이 작가와의 대화 시간에 손을 들고 극의 주인공이 자신으로부터 온 것임을 주장하며, 하이라이트를 받으며 자신의 무대를 이루게 될 때 삶이 극을 깨뜨리는 실재적 사건이 발생한다. 그 주인공은 사실 그 글과 무대에 갇혀 있어야 했다.

    사진 왼쪽부터 리비 역의 김여진, 데클란 역의 이휘종 배우.

    예술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클란과 현실을 예술로 가져오는 재료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리비 사이에는 극단적인 예술관의 차이가 있다. 리비의 예술은 결국 제도로, 대중으로 흡수되며, 명성과 영예를 얻는 것으로 나아간다. 예술의 가치는 상징계의 자본으로 치환될 수 있다. 반면 데클란의 예술은 혼자 자신의 삶의 에너지를 그림으로 투여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걸린 뭉크의 그림은 이름 있는 작가의 명작이 아니라, 단지 뛰어난 실재의 에너지 그 자체다. 그는 그 미술관에 자신의 작업을 걺으로써 그 작가의 지위를 획득하는 게 아니라, 그러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염원하는 데 그친다. 
    리비가 데클란의 그림이 뭔가 특별하다고 할 때, 그 그림은 사람들의 동의와 호의적인 평가를 이룰 수 있음을 전제한다. 이러한 평가와 수용 가능성에 대한 전제는 곧 그가 쓰는 글이 일차적으로는 공연 관계자,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무대에 올랐을 때 관객과 마주해야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음에서 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왼쪽부터 리비 역의 김신록, 데클란 역의 장률 배우.

    막이 오르면, 리비는 이야기의 탄생을 알리고, 비정형 구조의 무대는 솔즈베리 언덕으로 지시된다. 점을 찍는 것 같은 제스처는 자율적 표현이 아닌 현실 공간에서 가상이 펼쳐짐을 그리는 것으로, 어렴풋하고 어정쩡한 그리고 아찔한 어떤 상태를 표현한다[각주:2]. 그것은 알 수 없는 미래의 상을 예비하며 어떤 모습이 구현될지에 대한 기대감과 그러한 미래로 향하며 어떤 사건들이 일어날 것임에 대한 어떤 확신을 안긴다. 이후에도 작가로서의 서술이 현실로 이어지거나 교차될 때 현실로 곧장 흡수되는 말은 직전에 자신의 힘을 미래로 간직해 내면서 마침내 현실에서 그 말의 실현력을 드러낸다. 거꾸로 현실은 그 말에 힘을 준다. 현실이 말의 미래가 가진 힘을 현재로 드러내고 봉합한다. 이러한 절묘한 두 차원은 데클란과 리비의 발화로, 데클란의 침대가 있는 우측 편과 무대의 리비의 서재가 있는 좌측 편으로, 언덕 끝을 점유한 데클란과 그 중간에서 그를 바라보는 리비의 차이들로 연장된다. 
    데클란의 발화가 현실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의 말 바깥에 생각을 찾을 수 없다면, 그의 말은 그냥 투명하다면, 리비는 자신의 말을 바깥에서 판단하거나 사고의 대상으로 수렴시킬 수 있다. 이는 리비의 말이 일종의 방백, 리비와 같은 현실에 있을 때 그러한 무대 위의 발화 방식은 아마도 한 번도 실현되지 않기에, 곧 각자의 공간과 시간―같은 공간이라면 시간을 잠깐 이탈하거나 이 공간 자체를 과거의 것으로 지시하는―에 속할 때 일어나기에 이는 독백에 불과하지만, 현실이 글로 흡수되는 차원에서 그러니까 그 현실이 데클란의 입장에서는 순수하게 현재라는 점에서 이는 방백이다. 이러한 기묘한 현실 층위는 앞서 말한 대로, 서술에 현실이 침투하고 존재의 내재적 층위에 다른 존재의 현실 발화가 끼어드는 현실은, 마침내 두 존재 간의 관계로 극단적 대비로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흐른다.

    사진 왼쪽부터 리비 역의 김여진, 데클란 역의 이휘종 배우.

    리비의 내적 발화가 우리에게 들리므로(그것이 하나의 표면이므로), 이에 의해 이야기가 진행되므로, 우리는 그와 같은 이야기의 구조로 빠져나오기보다 그 안에서 어떤 완결성을 기다리게 된다. 그의 글을 위해 현실을 편집하고 마감하는 비윤리성을 용인할 수 없음에도 말이다. 데클란은 이러한 현실을 온전히 편집할 수도 주도권을 가질 수도 없다. 

    〈마우스 피스〉는 현실이 글로, 더 정확히는 작품으로 파고드는 힘을 그리고 파열을 종래 드러낸다. 반면 그 힘은 작품의 예외적이고 잉여적인 영역으로 남는다. 데클란이 무대 좌측 끝 작은 단상에 올라 자기 입장을 피력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는 과도한 실행이면서 위태롭고 스스로의 종결―그는 자해를 감행한다.―을 향해 간다. 그것은 봉합되지 않는 현실의 씁쓸함을 남긴다. 그 ‘힘’은 파편처럼 쓸어 담지 못하고 흩어지며 데클란의 마음에 생채기를 낸다. 
    글과 현실을 오가는 리비는 서술과 발화의 사이에서 무대 위의 배우와 역할을 오가며, 가상의 관객과 또 데클란과 만난다[각주:3]. 이런 이중의 말하기 방식이 오가며 현실과 극의 경계는 중첩되어 가며 극을 위한 현실, 극으로서 현재 모두를 보여주며 연극과 착종되는 삶과 연극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가시화한다. 흥미롭지만 고전적인 모범답안 같은 연극일 것이다. 따라서 리비의 감정선에 이입해서 보게 되며, 결과적으로 까다로운 역할을 연기하는 여자 배우―물론 남자 배우 역시 역할의 파열음과 파국을 모두 보여준다는 점에서 까다롭지만, 문제는 그 역할 자체가 완전히 매력적이거나 수용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의 역량이 절대적으로 공연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예측되는 부분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정보]

     

    공연 제목: 2021 연극 <마우스피스(Mouthpiece)>

    공연 일시: 2021년 11월 12일(금) ~ 2022년 1월 30일(일) 화, 수, 금 8시 / 목 4시, 8시 / 주말 및 공휴일 3시, 6시 30분(월 쉼)

    공연 장소: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러닝타임: 100분 (인터미션 없음)

    관람연령: 17세 이상

    제작: ㈜연극열전, 컴퍼니 일상.적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작: 키이란 헐리(Kieran Hurley)

    번역: 유은주

    연출: 부새롬

    출연진:

    리비 役_김여진, 유선, 김신록

    데클란 役_전성우, 장률, 이휘종

     

    무대: 김종석, 신나래

    조명: 최보윤

    영상: 정병목

    음악·〮음향: 이승호

    의상: 홍문기

    소품: 최고야

    안무: 홍유선

    분장: 현새롬

    무대감독: 강현호

     

     

     

    1.  1. 무대에는 막이 전환될 때마다 커다랗게 글자들이 무대 벽에 투사되는데, 이러한 기술의 효과는 사실 프로젝션 투사의 조금 투박하고 예스러운 분위기와 함께, 글의 문자가 가진 판타지를 다소 즉물적으로 구현한다는 인상을 준다. 오히려 리비의 타자 할 때 모니터 화면을 프로젝션으로 투사하는 게 훨씬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재현 방식이었을 것이다.  [본문으로]
    2. 2. 아마 이러한 움직임이 다른 배우에게도 적용됐을지는 모르겠다. 궁금한 부분이기도 하고, 아마 다 다를 것이다. ‘연극열전’은 이런 캐스팅 조합의 다양성을 하나의 전략으로 가져가는 것으로 보인다. [본문으로]
    3. 3. 2021년 12월 16일, 공연에서 김신록 배우는 그 경계를 빈틈없이 오갔다. 발성 자체가 크지 않지만, 또는 크지 않게 했지만 다 들렸고, 서술자의 명확한 관점을 전달하는 것과 현실에서의 메소드 연기 역시 섬세하게 구현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참고로, 그의 상대역으로 이휘종 배우가 데클란으로 분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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