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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엔젤스 인 아메리카-파트 원: 밀레니엄이 다가온다〉: ‘과도기의 시대 정신’
    REVIEW/Theater 2021. 12. 26. 10:44

    토니 커쉬너 작, 신유청 연출, 〈엔젤스 인 아메리카-파트 원: 밀레니엄이 다가온다〉[사진=국립극단 제공](이하 상동). 프라이어 월터 역의 배우 정경호.

    3막으로 구성되는 〈엔젤스 인 아메리카-파트 원: 밀레니엄이 다가온다〉(이하 〈엔젤스〉)는 밀레니엄을 앞둔 미국의 혼란스러운 배경을 동성애와 에이즈, 인종 등의 개념어가 떠다니는 가운데, 인물들의 심리 변화와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다룬다. 180도로 회전하며 변신하는 무대 위에 숨 막히게 쏟아내는 배우들의 대사들로 휴식 시간을 포함한 4시간의 러닝타임이 그다지 길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다. 다른 말로는 1985년 미국 당시의 컨텍스트를 파악하거나 이해하기 쉽지 않다―사실상 그것을 포기하게 만드는데, 연출의 방향은 그것이 그다지 중요한 무엇으로 다가오지 않게 만든다(이는 번역극의 어떤 과제이기도 하다). 
    손바닥 뒤집히듯 교체되는 양면의 무대는 어느 한 인물도 주도권을 갖거나 그 바깥을 조망할 수 없이, 세계의 소품처럼 위치함을 의미한다. 절반의 무대는 물리적으로는 현실을 펼쳐놓되 또 다른 현실을 감춘다. 상징적으로는 펼쳐지는 현실과 보이지 않는 현실은 모두 같은 세계 내에 같은 위상으로 존재함을 의미한다. 한편으로 인물들은 죽음을 향하거나 방황한다. 다른 한편으로 인물들은 관계의 차원에서 누군가에게 종속되기보다 각자의 세계에서 번민한다.

    (사진 왼쪽부터) 조셉 포터 피트 역의 정환 배우, 로이 마커스 콘 역의 박지일 배우.

    리얼리즘을 지향하는 드라마 연극에서, 무대의 변환 기술은 유일하게 극장의 구조를 드러내는 한편, 세계의 작동 원리를 구조적인 것으로 기술한다. 꿈과 현실이 교차하고, 신과 같은 어떤 특별한 존재의 강림이 계속 예고되며, 종래는 무대 천장에서 천사의 현현과 같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방식으로 끝나는 연극에서, 세계의 작위적인 출현 방식의 노출은 실상 무대의 작동 원리를 가시화하는 것으로 수렴하기보다 인간의 인지 능력을 초월한 알 수 없는 힘을 보여주는 것에 상응한다. 이러한 불안정한 그라운드는 배우들의 대사가 빠르다는 차원에서 밀도 있는 그러나 황급하다는 차원에서 모호한 전달에 대한 측면을 설명하고 포괄하는 또 다른 단서일지 모른다. 곧 연출은 자막이나 설명 같은 여타의 매개 언어 대신 무대 전환의 기술과 배우들의 연기의 밀도로 매끈하게 원작을 재현하는 데 초점을 둔다. 

    (사진 왼쪽부터) 프라이어Ⅱ 역의 박지일 배우, 프라이어Ⅰ 역의 정환 배우, 프라이어 월터 역의 정경호 배우. 

    인물들의 연기가 모두 흠잡을 데 없이 안정적으로 작동할 때 결국 캐릭터에 대한 애정의 정도가 감상을 좌우한다―또는 그 캐릭터를 배우로 착각한다. 프라이어 역을 맡은 정경호 배우는 에이즈에 걸린 채 등장해 고통스러워하며 점점 쇠약해 가는 게이를 연기함으로써 연민을 자아내지만, 실상 타자의 형상에 함몰된다. 프라이어 자신의 지독한 고통과 외부로부터의 연민은 사실상 그의 언어 체계에서는 연결되지는 않는다―이러한 고통이 신의 계시를 받거나 그의 와스프 가문의 선조들이 찾아오는 것과 같은 어떤 경계 너머의 접속이 가능한 수용의 성질로 그에게 발현됨은 그의 한없이 연약한 성질과 결부된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니까 그는 정말 불쌍한 한 게이에 그친다. 이는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다른 인물들에게도 해당하는 부분이다. 따라서 몇몇 인물을 빼고는 주체로서의 발화를 찾기 어렵다. 시대적 전환, 종말의 어떤 분위기에서 인물 대부분은 그 자신의 내부적인 차원에서 또는 관계의 차원에서 길을 찾지 못하는데, 인물들은 대개 현실적 언어만을 구사하므로 특별한 관념이나 자각을 구성하는 건 관객의 몫이 된다. 

    (사진 왼쪽부터) 루이스 아이언슨 역의 김세환 배우, 프라이어 월터 역의 정경호 배우. 

    〈엔젤스〉의 맥락이 어떤 특별한 전화(轉化)를 맞는 부분이나 동시대적 맥락을 건드리거나 하는 부분은 실상 찾기 어렵다. 그럴수록 관객은 인물에 대한 심리 묘사에 천착할 수밖에 없다. 동성애를 자신의 어두운 면으로 치부하며 가두어 놓은 조, 그리고 에이즈에 걸려 입원한 프라이어로부터, 사실은 그러한 현실을 견딜 스스로의 용기 없음으로부터 도피한 루이스의 내면은 프라이어나 다른 인물에 비해 한층 입체적인데(프라이어는 그 생명력 자체가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그런 차원에서 정경호는 극 중에서 단연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다. 흔들리는 목마처럼 앞뒤로 기울어지는 침대 위에서 처절한 몸부림에 섞은 후반의 연기는 그 절정이다.), 그 둘의 만남―아마도 잠자리―이 막바지에 이어지면서, 이후 펼쳐질 2부에서는 그 둘의 내면의 변경이 또는 전이가 지시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남편 조가 동성애자임을 알게 된 하퍼는 어렸을 적에 가정으로부터 상처를 안은 인물로 묘사되지만, 그것은 조와의 관계에서 애착과 그 미끄러짐에 대한 반동으로서 단지 남극으로 여행을 떠나고 나서 일시적인 위안과 해방감을 얻는 정도에서 산만하게 마감된다―다분히 수동적인 인물상으로 처리된다. 

    (사진 왼쪽부터) 프라이어 월터 역의 정경호 배우, 루이스 아이언슨 역의 김세환 배우. 

    이제 〈엔젤스〉라는 원본에 대한 이야기가 남았다. 사실상 〈엔젤스〉에서 인물들은, 그리고 인물들의 관계는 그다지 정교하지 않으며, 다만 그 대사의 한 번의 호흡과 거기에 포함된 맥락과 고유명사를 매개 없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차원이 복잡함을 일으킬 뿐이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보통 한 명은 정답을 가진 상황이 된다. 가령 프라이어와 루이스의 대화에서 프라이어가, 루이스와 벨리즈의 대화에서 벨리즈가, 조와 루이스의 대화에서 루이스가 그 키를 잡는 셈이다. 또한 꿈속의 예지는 별다른 단서 없이 바로 문제의 키를 일러준다. 가령 초반에 하퍼에게 프라이어가 하퍼의 남편 조가 게이인 사실을 알려준다.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벽을 사이에 둔 두 커플의 대화가 갈등이 첨예화될 때 완전히 교차하며 정합되는 것처럼, 이러한 장면은 현실 경계의 희미한 심층의 세계에서 두 커플의 인연이 이어질 것임을 미리부터 예고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이러한 특징들은 두 가지 극의 특징을 설명하는데, 사실상 드라마로 진행되는 표면을 띤 연극에서, 드라마의 개연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사진 왼쪽부터) 하퍼 아마티 피트 역의 김보나 배우, 조셉 포터 피트 역의 정환 배우, 루이스 아이언슨 역의 김세환 배우, 프라이어 월터 역의 정경호 배우. 

    두 대별되는 커플에서 각각 한 사람 간의 인연이 칸막이 세계를 가로지르며 발생하거나 닫힌 두 개의 모나드에서 대화가 오가는 구성으로 소리가 종합되는 건 이 두 커플이 하나의 세계의 지층에 살고 있음을 넘어 세계의 어떤 신비한 힘이 미치는 영역 속에 특별한 예제로서 그 삶들이 주어짐을 함의한다. 이는 회전하며 바뀌는 양면의 세계 구성으로서의 무대로 확장된다. 〈엔젤스〉는 특이한 정동을 구성하던 세계를 특별한 인물 군상‘들’을 보여주는 것으로써 대신한다. 인물들은 세계의 축소판인데, 인물 간의 대화가, 관계가 연극을 구성하는 것이 일반론적인 것이라면, 〈엔젤스〉는 시대의 징후로서 인물을 제시하고, 그 시대를 보이지 않는 존재의 힘으로, 그러한 존재가 영향력을 미치는 영역으로 가시화한다. 가령 마지막 장면의 천사가 그러한데, 사운드로써 무대가 진동으로 휘감기고 무대 천장이 열리는 수 분 지속하는 스펙터클의 시간과 천사의 등장은 장엄하게 그 힘이 펼쳐질, 이후의 세계를 예비한다. 그리고 자연 웅장한 커튼콜로 이어진다. 

    (사진 왼쪽부터) 조셉 포터 피트 역의 정환 배우, 루이스 아이언슨 역의 김세환 배우, 프라이어 월터 역의 정경호 배우. 

    운명론적 인연들은 애초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봉합 속에 완전히 제자리를 인정받을 것임을 또는 그다지 무의미한 사실들로 전락할 것임을 의미한다. 곧 거대한 세계의 변혁에 개개의 주체는 일종의 예시에 불과하다. 동성애가 조에게서 발설할 수 없는 폐제해야 할 욕망으로 자리하는 것 역시도. 그 같이 개인의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주체의 갈등으로 온전히 수렴될 수 없는데, 결과적으로 시대적이고 사회적인 관념을 해소할 수 없는 당대, 그리고 현재에 대한 문제의식의 차원으로 옮겨온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에이즈에 걸린 프라이어와 로이의 죽음은 필연적이며, 그 시대의 종결 역시 마찬가지이다. 곧 그들의 죽음은 한 개인이 아니라 그 시대의 죽음이다. 또는 새로운 시대의 탄생이다. 결국 작가가 만드는 시대의 운명 속에 각 개인은 톱니바퀴처럼 얽혀 하나의 종결을 향해 간다. 내년에 열릴 2부는 그 또 다른 전개와 결정을 아마 가져올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정보]
    공연 일시: 2021.11.26.~12.26. 평일 19시 / 토, 일 15시(화요일 쉼)
    관람등급: 20세 이상 관람가(미성년자 관람불가)
    소요시간: 225분(인터미션 2회 포함)
    작: 토니 커쉬너
    연출: 신유청 
    문의·예매: 1644-2003 | 국립극단
    장소: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예술가와의 대화: 12.5(일) 공연종료 후 *참석자: 신유청(연출), 박지일(로이役), 정경호(프라이어役)
    외국어 자막서비스: 매주 목요일, 일요일 영문 자막

    ■ 출연진
    로이 마커스 콘 외: 박지일
    한나 포터 피트 외: 전국향
    프라이어 월터 외: 정경호
    하퍼 아마티 피트 외: 김보나
    천사 외: 권은혜
    조셉 포터 피트 외: 정환
    루이스 아이언슨 외: 김세환
    벨리즈 외: 박용우

    ■ 스태프
    번역: 김진숙
    윤색: 윤성호
    무대: 조수현
    조명: 강지혜
    음악·음향: 지미 세르
    의상: 홍문기
    소품: 최혜진
    분장: 정지윤
    안무: 이소영
    조연출: 오의택, 김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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