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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붉은 낙엽〉: 문학의 전술, 재현의 전략과 한계
    REVIEW/Theater 2021. 12. 26. 11:19

    연극 〈붉은 낙엽〉[사진 제공=서울연극협회](이하 상동). (사진 왼쪽부터) 지미 역의 장석환 배우, 에릭 역의 박완규 배우.

    〈붉은 낙엽〉은 카렌의 딸 에이미의 실종 사건이 미궁으로 떨어진 일련의 시간이 과정 전반을 이룬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스릴러적인 또는 추리를 동반하는 드라마 극의 외양을 띤다. 용의자로 몰린 지미의 아버지인 에릭(박완규 배우)은 〈붉은 낙엽〉의 서술자로서 내면의 심리가 드러나는 유일한 존재라는 점에서, 그는 이 극을 하나의 이야기로 갈음할 수 있는 저자의 위치를 갖는다. 아들 지미를 의심하는 그의 점진적인 심리 전개와 그것이 깨어지고 난 결말에 가까운 시점에서 만신창이가 된 그의 형태, 그리고 이 모든 걸 아우르는, 곧 가장 처음에 모든 비극을 ‘깨어져 나가는 균형’으로서의 알레고리로써 압축적으로 선취하는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중간중간 삽입되는 그의 서술이라는 세 가지 존재 유형에서, 그의 인식론적 기술이 그의 존재론적 발화에 선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압축이 이 극을 본원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말미를 주지는 않는데, 현실의 부분이 매끄럽고 밋밋한 표면이 아님을, 본원적인 흔들림의 일부로서 그 파열선이 드러날 것임이 예비되고 있음을 인지시키는 것에 가깝다. 곧 이는 이 공연의 스릴러적 긴장으로 흡수되어 버린다. 사실 중요한 건 지미가 (마찬가지로 워렌이) 범인이 아니었고, 그가 일말의 진실을 숨기고 있었다는 것이 아니고, 그를 범인으로 에릭이 의심했다는 것이다. 에릭의 의심이 갑자기 극대화되며 악마의 정당성을 갖추기 시작하는 건 앞서 선취된 문장에서도 감지할 있는데(문제는 이러한 서술이 그 자신의 의심을 합리화하는, 따라서 모든 것이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비극은 가족사의 ‘반복’적 양식으로 수렴한다(이것은 정말 사실이 되었다. 반면 이는 사후적인 조작이다. 왜냐하면 그의 의심이 그 비극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에릭 역의 박완규 배우

    따라서 이러한 문장은 나름 유려해 보이며 드라마 전체를 감싸고 있는 듯 보이지만, 인간에 대한 성찰이나 질문을 던지는 것과는 대별되는, 단순한 프롤로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서술로서, 서술자로서의 에릭과 재현되는 드라마 안의 에릭을 구분하는 간격을 두지 않음으로써 긴장을 극대화하며, 극을 그러한 외양으로 단순화시킨다는 차원에서는 불순물적 삽입이라 할 수 있다(반면 동명의 원작 소설을 연극으로 옮겼다는 점에서 일종의 서술을 내레이션으로 치환하는 기술적 역량이 극대화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문제는 이 소설의 연극화 자체에 대한 능력이 아닌 이 소설의 이야기가 무대에 오르기에 매력적인 부분이 있느냐는 것일 것이다.). 죄는 에릭의 바깥에, 곧 그의 외부에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반면 〈붉은 낙엽〉의 진정한 죄는 에릭의 내부에, 그의 심리 변화에 의한 것임 역시 명백하다는 점에서, 이 전환의 차원이 어디인지를 보는 것은 중요하다. 이는 그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단서를 자신의 형에게서 듣고 다시 감춰두었던 문서 더미를 거쳐 최종적으로 아버지에게서 듣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따른다. 

    이제 자신의 아픈 여동생이 죽을 때 보는 걸 꺼렸고 아버지에게 평소 질시 받았던 형과 아들 지미를 가령 ‘축 처진 어깨를 가진’ 동일자의 형상으로 지정하기 시작하고, 공교롭게 아들에 이어 상담관과 은밀히 막 뒤로 사라지는 아내에는 변호사와 바람이 났던 자신의 어머니의 기억이 아마도 겹쳐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러한 착각이 깨어져 나가는 것에 대한 충격이나 그 스스로의 반성을 불러일으키거나 하는 장면은 없는데, 휑한 그의 눈빛이 그 결과를 허무하게 간직한다. 

     (사진 왼쪽부터) 에릭 역의 박완규 배우, 지미 역의 장석환 배우.

    그와 같이 〈붉은 낙엽〉은 다소 허무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데, 진범이 밝혀지기 전의 자신이 의심했던 형과 아들, 그리고 에이미의 엄마인 카렌의 죽음이 잇따르고, 에이미가 발견되고 그를 납치한 진범이 밝혀진 직후 지미와 카렌의 죽음이 애석하다는 사람들의 평으로 사건은 간단히 갈음된다. 찰나의 죽음과 일단락되는 사건 이후 시간은 훌쩍 뛰어 에이미가 에릭에게 안타까움을 내비친다. 그의 어머니가 끝까지 의심을 거두지 못했던 지미를 쏘아 죽였기 때문이고, 진범이 조금 빨리 밝혀졌더라면 그와 같은 불상사를 피할 수 있으리라는 일종의 사후적 보족으로 사건을 봉합하고자 하는 것이다.

    에릭의 사고는 비정상적인 데다 거대한 기억의 자장 아래 확산되고 있었으므로 그러한 절연은 애도나 반성의 사유로 연결되지는 않는 듯하다. 아내까지 떠나고 사실상 아들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카렌과 지미의 만남을 막아 세웠던 게 카렌의 억울함과 답답함을 증폭시켜 왔던 탓에 카렌이 지미를 죽이고 자신도 쏴 죽은 것이라는 점에서, 초반 아들의 철저한 대변인이고자 했던 에릭과 그의 아내 바네사의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건 오류를 범하는 일이다―또는 카렌의 시점에서만 유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그러한 행위가 일관되지 못했으며, 아들에 대한 이해로 확장되지 못했다는 점이 잘못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사진 왼쪽부터) 카렌 브로디 역의 하지은 배우, 지미 역의 장석환 배우.

    〈붉은 낙엽〉의 드라마적 결론이 주는 메시지는 치유되거나 해소되지 않는 원한의 기억―과거―은 미래에 도래해 현재의 삶의 틈을 비집고 나오며 삶의 모순을 구성한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이는 사건의 사후적 종합을 위한 변론이 아니며, 그 변론으로서 에릭의 삶이 갖는 비극성이 그만큼 비정상적인 과거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근거를 댈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아닌데, 에릭의 행위를 단지 한 개인의 합리적인 판단의 역량이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치환하는 것만으로는 이 모든 사건을 갈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붉은 낙엽〉의 시작부터 그리고 중간중간 현실을 비집는 곧 사건을 모두 과거의 재현으로 만드는 에릭의 내레이션이 그의 삶 전반에 자신의 죄를 거론하지 않는 것은 〈붉은 낙엽〉을 스릴러로 만들려는 순전한 극적 장치의 일환이라기보다는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라고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모든 것이 드러난 상태에서 어떤 점에서 흐트러지기 시작했는지를 지켜보는 것―사건의 전제 조건을 안 상태에서 그것이 일어날지 아닐지를 조마조마한 상태로 바라보게 되는 일종의 서스펜스적 긴장으로 극을 구성하는 것―이 이 허무한 스릴러의 반전이 공허한 타격감을 안기며 급속도로 극의 동력을 잃는 것과는 차별화된 전개 양상을 가져왔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앞선 에릭의 불완전한 사고는 현장에서 단서 하나하나가 나오는 것과는 별개로 그의 오래전 기억이 소환되며 내재적 차원에서 사건이 종합되는 광경에서 완성된다. 그의 과거가 조금 더 설득력 있게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러한 기억은 조금 더 과잉된 비정상성을 띠는 것으로 구획된다. 

     (사진 왼쪽부터) 지미 역의 장석환 배우, 바네사 역의 김원정 배우, 에릭 역의 박완규 배우.

    〈붉은 낙엽〉은 배우들의 온 힘을 기울이는 연기, 그리고 사건의 진실을 향한 추리의 여정이 극의 긴장을 놓지 않게 만드는 차원, 내레이션의 문학적 견고함, 실내외를 한 공간으로 구성하고 에릭에 의해 의심의 상징으로 지시되는 점차 붉은 낙엽이 무대를 덮어가는 등으로 매끈하고 밀도 있는 잘 짜인 드라마 극의 외양을 선사하는데, 반면 소설을 선택한 당위에 대한 물음과 함께, 극의 긴장이 사건의 해결 과정에 대한 목표와 그 종결에 지나치게 휘둘린다는 점에서, 에릭이라는 인물의 동기를 그의 배경으로 잘 설명해 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준다. 〈붉은 낙엽〉은 편향된 시각의 서술과 극단적인 사건의 삽입과 힘을 잃은 결말 부의 진행 아래 불순물 같은 장면들과 온전하지 않은 현실에 대한 재정합의 해석이 필요해진다. 사실 이러한 문학의 이념은 매끈한 표면으로 붙잡혀 있지만, 극 안에서 충분히 해소되거나 연장되지는 않는다. 바로 〈붉은 낙엽〉이 일종의 미스터리극 같은 인상을 주는 이유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 일시: 2021.12.08.()~12.27.() 평일 1930(화 공연없음), , 15

    장소: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관람등급: 14(중학생) 이상 관람가

    소요시간: 110(예정)

    ·연출·각색

    원작: 토머스 H. (Thomas H. Cook)

    각색: 김도영

    연출: 이준우

    문의·예매: 1644-2003 | 국립극단 www.ntck.or.kr

    제작: 극단 배다

    주최: 국립극단

    예술가와의 대화: 12/12() 공연 종료 후 객석 * 참석자: 각색 김도영, 연출 이준우, 배우 박완규(에릭 )

     

    출연진

    박완규, 김원정, 장석환, 권태건, 선종남, 구도균, 하지은, 이호철, 이의령, 장승연

     

    스태프

    무대: 신승렬

    조명: 최보윤

    음악: 장한솔

    음향: 이현석

    의상: EK

    분장: 장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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