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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차의 범위: 픽션들〉: 연극의 발생
    REVIEW/Theater 2022. 1. 6. 11:38

    〈오차의 범위: 픽션들〉 포토콜(실제 관객이 없는 상태이다.) ⓒ이소정(이하 상동). 공연이 이뤄지기 전 무대 전경.

    무대 중앙에는 하나의 빈 의자가 놓인다. 〈오차의 범위: 픽션들〉은 두 명의 배우와 세 개의 의자를 가지고 하는 연극이다. 비정형적으로 놓인 의자들 사이에서 빈 중심으로 한참 놓여 있던 의자에 이지혜 배우가 앉고 이를 마주 보고 앉은 최순진 배우의 거리가 가까워지며 주변(부)의 이야기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명확하게 만들면서 비로소 초점화된다. 〈오차의 범위: 픽션들〉은 연기-무대-이야기의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이다. 
    최초의 화자인 김연재와 이휘웅에게 들은 이야기는, 명시되지 않는 누군가에게 들은 것으로 옮겨진다. 이야기의 개연성은 그 이야기의 당사자를 떠나 그 이야기를 옮기는 사람의 번역과 변질, 전용과 같은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남은, 유의미한, 그리고 납득 가능한 의미가 구성될 수 있느냐의 부분일 것이다. 이러한 개연성은 언어 유희에 따른 우연한 연결, 그리고 한 번 더 반복되는 “죽음”과 어린 시절의 “성당” 등의 이야기의 구조적 전개에 따라 실재의 것보다는 인공적인 문학의 차원으로 여겨진다.

    최순진 배우.

    죽음을 반복해서 들여다보려 하거나 이야기하는 것을 스스로 질문하는 최진의 말은, 너저분하게 늘어놓는 이 작품의 이야기의 전개 방식 자체가 죽음충동을 향해 있음을 지시하는 것일 것이다. 무언가를 쌓기보다 언어의 표면―언어유희에 의해―에 다시 도달하고 시작하는, 허물어지기 위해 쌓는 이야기는 이지혜와 최순진의 대화가 아닌 각자의 혼잣말들이며, 완결된 구조가 아닌 끊임없이 출현하고 새로운 수로를 트는, 교차된 이야기들의 합집합으로 구성됨을 의미한다.
    대본이 아니라 즉흥으로 시도되는 연기는 캐릭터 자신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거나 자신의 어릴 적 경험을 가져온다는 식으로 가능하다. 객석 바깥쪽에 관객과 뒤섞여 있는, 애써 극장의 정면성을 해체한 무대에서 이야기를 하는 배우의 중요성은 이야기가 갖는 힘을 초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단락된다. 배우는 이야기를 지속하게 하는 유일한 화자라는 점에서 중요하며(‘연극은 이야기와 이를 전달하는 배우라는 매체로써 성립한다.’), 관객은 이야기의 바깥으로서의 무대가 허구인지 실재인지의 근원을 배우의 진실성의 차원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야기는 그렇게 화자를 입고 변화한다.

    재밌는 건 이야기의 개연성을 배우의 진실성으로 판단하면서도 이야기를 이야기 자체로 감각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연극은 문학의 힘을 빌린다. 하지만 이 문학의 온전한/완전한/순전한 번역은 연극의 이상적 모습으로 나타나는, 희곡과 연극의 간극 없는 번역과는 다르다. 완성되지 않은 희곡이 있고, 그러한 희곡을 토대로 때때로 부상하며 사라지는 연극을 만드는 것과 같다. 포스터 사진이 가리키듯 위아래로 결합한 두 개의 사진에서 위쪽의 왼쪽과 오른쪽이 각각 최초의 화자인 김연재 작가와 최순진 배우, 아래쪽의 오른쪽과 왼쪽이 각각 최초의 화자인 이휘웅 문학평론가와 이지혜 배우라는 점은, 이야기의 전달이 직접적으로 이뤄졌음을 의미한다. 이 이야기의 편집권을 연출이, 나아가 드라마투르그가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순서의 지정이나 기억의 우연성 같은 것 역시 즉흥의 방식에서 선취될 수 없는 것이라면, 연출은, 그리고 드라마투르그는 무엇을 하는 존재일까. 연출은, 그리고 드라마투르그는 이 게임의 구조를 설계하고 제안하는 역할을 하는 데 그치지 않을까[각주:1].

    (사진 왼쪽부터) 이지혜, 최순진 배우.

    언어 유희는 다양한 말들의 차이를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A와 B를 연결짓는다. 이지혜 배우는 러시아 본토식 발음이라고 하며 최순진 배우가 말하는, 우리가 아는 몇 가지 러시아 고유명사를 바꾸어 발음하는데,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일단 러시아 발음 같지가 않다. 반면 이러한 언어 유희의 직접적 공식화는 이후 출현하는 언어 유희의 의미를 포착하는 자양분이 된다. 아마 가장 은밀하고 내재적인 언어 유희는 “대갈로그”일 것이다. 이는 대화를 뜻하는 “다이알로그(dialogue)”의 변주 아닐까. 두 사람의 대화가 연극이 되고 있음을 지시하는 힌트. 
    〈오차의 범위: 픽션들〉은 이야기를 던지는 배우들이 끊임없이 이동하며 자리를 교환한다는 점에서 이야기들은 사라지지만 배우들의 어렴풋한 잔상이 희미하게 경로를 연결짓는다. 애초에 하나의 이야기가 아닌 시작되고 그치는 이야기들, 곧 픽션‘들’만이 있었을 뿐이므로, 하나의 이야기가 촉발하는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 사이의 ‘이행’이 이야기와 함께 존재했으므로 변화하지 않는 무대에서 유일하게 변화하는 건 배우들의 위치 교환이다. 이는 무대가 변화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아주 명확해진다. 

    분절은 우연하고 게임의 법칙 아래 자연 발생하지만, 그 이외의 분절, 혹은 조작이 없다는 것, 배우의 실존은 그런 우연함들을 무대에 욱여넣고 또 이는 다른 배우에게로 이전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빈 자리와 빈 시간이 모두 너로부터 주어진다는 점에서, 진정한 대화를 하는 두 존재는, 이야기는 언제나 우연히 발생하며 주체적으로만 발생하지 않으며 빈 구석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곧 말을 잇고 하는 유일한 두 사람이라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대화의 테이블에 놓인 두 배우는, 또한 관객에 의해 절단되며 완전히 마주할 수 없는 불가능성에서 서로를 스쳐 가게 된다. 이 스쳐 감은 관객에게로 전이된다. 
    배우는 역할이 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있다―그는 매번 자신의 말함을 시작할 때 자신의 있음으로부터 머뭇거림을 또는 겸연쩍음을 탄로한다(전자는 최순진 배우를 후자는 이지혜 배우를 가리킬 텐데, 어떻게 보면 최순진 배우는 연기를 ‘덜’ 하는 배우임을 이지혜 배우는 연기를 ‘잘’ 하는 배우임을 가리킬 것이다.). 배우는 대사를 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말을 대사로 착각하는 관객에게 말을 대사처럼 하기 위해 있다. 

    이지혜 배우.

    〈오차의 범위: 픽션들〉은 연극의 조건을 의도적으로 해체한다. 무대를 허물며 희곡을 고정하지 않고 연출의 지시를 아마도 소거한다. 서사는 끊기면서 끊이지 않고 이어지며, 말은 사라지면서 은근하게 스쳐 간다. 배우는 드러내지 않으면서 곁을 내어준다. 초반[각주:2]에 이지혜 배우는 화장실에 가려다 너무 벽이 얇아 소리가 바깥으로 전파될 것의 두려움을 표하며 갑자기 어렸을 때 오줌을 참다가 아버지한테 혼나던 이야기를 꺼낸다. 이렇게 화장실은 오줌에 대한 금기와 은밀한 욕망에 대한 트리거로 자리하며 사라진다. 실제 화장실을 가지 않고, 화장실에 가려고 했던 말 역시 진실이 아니었음이 다른 말들과 함께 사라진다. 
    화장실은 맥거핀으로 지시될 수 있지만, 우연한 연상 작용에 의한 이행은 〈오차의 범위: 픽션들〉의 본질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의미가 없는 것은 없다. 아니 의미가 있는 것이 없다는 게 유일한 의미일 것이다. 하나의 서사를, 픽션을 구축하기 위한 의미의 기능적 분산과 배치들, 하나의 의미를 구축하기 위한 여러 개의 서사, 픽션들은 없을 것이다. 〈오차의 범위: 픽션들〉은 농담과 같다. 그 농담이 주는 효과가 공간 전체에의 분산과 배우의 분산, 이야기의 분산 가운데 간간이 발생하는 연극 이전의 연극이다. 아니 연극의 잠재성 같은 것이다. 연극이라는 환상을 실재로 바꾼 연극이라는 점에서 연극 이후의 연극일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오차의 범위:  픽션들〉 포스터

    신촌극장 2021 라인업 오차의 범위: 픽션들

    최초의 화자: 김연재, 이휘웅
    화자: 이지혜, 최순진
    연출: 정혜린
    드라마트루그: 강동호
    영상: 이소정
    조명: 이정윤
    도움: 김여준, 정진웅
    제작: 런더앤싸이트닝

    공연 소개:

    오차의 범위: 픽션들은 들은 이야기와 들려주게 될 이야기 사이에 끼어드는 픽션과 배우로서의 몸, 그리고 이야기를 위해 분투하는 움직임에 주목한다. 짜여진 텍스트가 아닌 말과 기억, 충동의 형태들로부터 연극성의 토대를 발견하고자 하는 본 공연에서 화자들은 먼저 이야기를 들은 사람으로서, 말을 전달하는 사람으로서, 또한 이 모든 것을 인식하고 있는 배우로서 무대에 서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끊임없이 모색한다.

     

     

    1. 1. 하지만 이를 배우의 연극이라고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배우는 자신의 주체적인 위치를 수동적으로 부여받기 때문인데, 그것이 바로 이 공연을 설계하는 규칙, 곧 즉흥에 대한 발화방식의 일종의 강제이다. 일반적으로 배우는 역설적으로 대본 안에서 자유롭다[본문으로]
    2. 2. 참고로, 21.12.30 19:30에 관람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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