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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젝트 XXY, 〈박민정과 최성철〉, ‘예술의 부재하는 몫’
    REVIEW/Theater 2022. 1. 20. 00:50

    프로젝트 XXY, 〈박민정과 최성철〉 ⓒ 2022.김동환 All rights researved(이하 상동).

    프로젝트 XXY의 〈박민정과 최성철〉은 메타 공연의 형식을 띤다. 이 공연이 공연임을 또는 공연이 아님을 주지시킨다. 공간 안에 편재된 객석을 기준으로 공간 이곳저곳을 유동하는 배우/퍼포머의 움직임은 제4의 벽을 가정한 극적 환경에서 현실의 배우라는 존재로, 공간 일부가 되는 퍼포머로, 다시 연극 이전 삶의 재현으로 변환되는 노정에 있다. 공연은 공연의 결락된 맥락 동시에 공연이 결락되는 맥락을 투여하고 공연을 전개하는 대신 회수하고 공연의 공백을 전시하기에 이른다. 
    여기에는 사회에서 직접적으로 온 몇 가지 아이디어가 절합되어 있다. 수십 차례 반복되는 “트랜스휴먼 오디션 지원 관리 부서”라는 대사는 이를 집약한다. 첫 번째로, 무언가를 넘어서다 혹은 초월하다의 뜻을 지닌 ‘트랜스’가 붙은 “트랜스휴먼”은 공연에서는 주로 기존 인간의 약점을 ‘기술’로써 보강하거나 보완함으로써 개선이 가능하다고 전제한다. 두 번째로 이를 “오디션”이라는 형식을 통해 최종 선정함으로써 사람들의 열망이 반영된 인간 유형이 탄생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

    이 둘은 “대한민국정부”[각주:1]의 직접 사업 추진 과정에 속하는데, 이는 몇 가지 현실과의 유사성을 구성한다. 트랜스휴먼 개발 및 추진이 국고 보조식 미래형 인재 양성 사업의 면모, 나아가 예술가에 대한 직간접적 지원 체제와의 유사성을 띤다면, 오디션의 경우, 민주주의적 의사 결정이 대중문화산업의 유행 일부로 자리하는 현재의 지형에서 나아가 대중의 TV 극장의 유사 체계가 정책에 있어 의사 결정의 대중 이양으로 전이될 수 있을지의 문제 역시 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지시한다―실제 국민청원제도는 갖가지 정념들, 비판적 인지와 분노 등에 기인한 불특정 개인(들)의 발화가 급격하게 다수의 수용으로 전이되며 국가라는 주체의 검토/해결의 범주에 직접적으로 속하는 효과를 낳는다.

    약간 모호한 것은 모든 옵션이 동시에 충족된 ‘완전한’ 인간으로서 아마도 각각 여성과 남성으로 분류될 ‘“박민정”과 “최성철”이라는 인간 유형으로 모든 오디션 참가자들을 일원화시키는 것인가?’라는 것인데, 곧 각각의 사람에게 저마다 부족한 것을 보완, 충족하는 옵션을 추가할 경우, 박민정과 최성철이 되는가의 부분이다. 이는 곧 속성들‘만’이 모여 인간을 구성하는가의 질문이다. 한때 밈으로 떠돌던 신이 한 숟가락을 잘못 넣었는지 또는 잘 넣었는지에 따라 어떤 하나의 특정한 인간 유형으로 초점화된다는 말풍선의 만화 조각과 같이, 이는 속성들의 패치워크로 특정한 인간 유형이 결정될 것이라는 전제를 은연중에 하고 있다.

    프로젝트 XXY는 〈여기에는 메데이아가 없습니다〉(2019, 두산아트센터)에서 극장 안팎이라는 공간적 범주의 구분 속에서 사회 내 소속과 이격을 지시한다[각주:2]. “프로젝트 XXY”라는 이름은 여성의 성염색체와 남성의 그것을 각각 순서대로 이어 합친 것으로, 새로운 성염색체 계열을 지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을 일종의 종적 개체로 두고 다른 종적 개체를 상상함으로써 인간 자신을 낯선 것으로 재구성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작업한다고 보인다. 따라서 AI가 인간을 대체한다거나 인간 개조 프로젝트가 외부적인 힘에 의해 화두에 오를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그 주제의 전도된 양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실험이 사실상 매우 위험하고 부적절한 만큼, 이러한 기술이 어떤 것인지, 그 변환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는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는다(작업은 이를 상상하거나 지시할 수 있는 차원에서 벗어나고자 한다.)―사실 여기에는 윤리적인 차원과 더불어 과학의 통섭적 지식 차원이 결합하지 않았던, 곧 기술(記述) 불가능성의 차원도 전제되어 있다고 보이지만, 무엇보다 거기서 멈춰야 하는 이유가 분명하다. 이는 〈박민정과 최성철〉의 가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트랜스휴먼 실험」 참가자 공개 모집 공고문”에서 “응모 자격”은 각종 약자, 타자, 소수자를 지칭한다고 보인다. 반면, 1차 서류 접수 이후 방송으로 중계될 오디션 최종 경연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역할들의 논의에서는 인간의 욕망, 타자의 욕망에 대한 기준, 곧 인간의 내밀한 약점 또는 컴플렉스에 더 초점이 맞춰지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오디션 선정자 중 두 사람이 중도 포기 의사를 전한 것으로 보이고, 이를 회유하기 위한 대책에서 어떤 옵션을 추가할 것이냐의 논의가 벌어지는 가운데, 부서 내에서는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옵션이 아닌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다수의 옵션을 넣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지적이 발생한다. 

    〈박민정과 최성철〉은 정확히 두 번 반복된다. “트랜스휴먼 오디션”의 지원 접수 과정과 오디션이 TV로 방송되기 이전에 멈추는 것은 AI가 공연의 배우로 선택되고 기존 배우를 대체하게 될 때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을지를 배우들과 여타의 제작진이 논의하는 영상 기록―“-20211218 프로젝트 XXY 연습실-”―이 더 이상 현장으로 연장되지 않는 것과 같은 차원에 속한다. 곧 이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없다는 입장이 더해지며 갈등 상황이 초래되지만, 의견 조정이 이뤄지지 않는 사태에서 멈춘다. 포스트 다큐멘터리 연극 양식을 일부 허용한다고도 할 수 있을 이 부분은, 과정 자체를 작업으로 통합하기 위한 의도보다는 가상의 현실과 극단적인 대비를 이루기 위한 삽입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사-현실이다.
    그리고 배우들은 공간을 유령처럼 떠돌며 극장 이전의 장소로 이곳을 설정하는데, 관객이 없는 극장, 공연이 열리지 않는 극장의 상황을 은유한다. 극장이 “연습실”로 설정된 이 상황에서, 관객 역시 유령이 되는 상황을 맞는데, 극장이 이미 발생했던 수많은 행위, 색 테이프가 가로지르고 온갖 낙서의 형상을 지닌 이 극장 공간 전체의 행위가 벌어진 시간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이미 형성된 공간의 순수한 연장은 가능하지 않지만, 거기 위에 극장에의 염원을 기입한다. 여기에서 배우들의 발화와 낙서는 전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관객이 배우와 마찬가지로 유령이 되며, 배우의 놀이 반대편에서 극장의 빈 시간을 체감하며 유희를 할 수 없는 묶인 몸의 헛헛한 정동이 발생한다. 배우들은 관객이 입장한다고 가정하며 누군가가 관객인 것처럼 행동하고 다른 누군가가 이를 관객 안내원으로 응대하는 척한다. 애초에 매표 장소를 벗어나서부터 작동되는 작위적인 배우의 행동들이 다시 반복됨을 관객은 인지하게 된다. 앞서 말했듯, 이에 선행하는 극장의 배우를 AI 배우로 바꿀 때 미래의 공연에 대한 가상과 (이에 그치지 않고) AI 배우 투여라는 갑작스러운 통보에 따른, 불평등한 공연 절차에 대한 문제 제기라는 의사-현실을 보여주는 영상이 있다. 
    트랜스휴먼 오디션 과정에서는 인간 유전자 변형 같은 존재 생성의 과학적 기술에 대한 진단보다는 이러한 위험성에 대한 비판과 함께 곧 극이 수면에 잠겨 드는 것과 같이, 의사-현실의 문제 제기 역시 AI 배우와 공연과의 역학 관계에 대한 진단보다는 특정 배우의 일시적인 현실 차원의 입장과 함께 어떤 결론도 짓지 않고 제자리에서 푹 꺼진다. 여기에는 일종의 무정부 상태 같은 사태가 감지된다. 이는 오디션 역시 마찬가지인데, “포스트휴먼 오디션 지원관리 부서”라는 일시적인 TF팀의 정부 대리/하청 기관쯤의 “부서”는 포스트휴먼에 대한 총체적인 지식은 물론 개발 관련한 결정 권한을 가졌다고도 보기 힘들 것이다. 
    이들의 고민은 뭔가 현실과 연결되어 있지만, 그 현실은 어렴풋하며, 그 고민 역시 마찬가지로 추상적인 데 그친다. 이들과 배우들은 어떤 신적 지위와 권한이 부재하는 사태를 맞은 ‘길 잃은 어린 양’의 모습들에 가깝다. 사실상 관객이 사라지기 이전에 연출과 그와 같은 어떤 역량이 부재하는 공간에서, 배우들은 관객을 지우고 자신들만의 놀이를 한다―“미조 상태 석준 신지 여름 영미 재용 환성 희진”. 

    두 번의 중단되는 사태의 반복, 가상-현실에서 의사-현실로의 이전은 일견 당사자 주체성의 재현이 빠진 의사 절차에 대한 비판 자체를 보여주는 데 그 의의가 있는 듯 보인다. 따라서 SF적이거나 미래-현실적인 것에 대한 고민을 정교하게 더듬어 나가거나 확장할 섬세한 구성의 몫, 나아가 거기에 대한 흥미마저도 부차적인 지위로 밀려나는 듯 보인다. 〈박민정과 최성철〉은 낙차를 가진 반복 자체를 통해 가상과 현실을 교환하고자 한다. 반면, 이 현실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불분명하다. 가령 가상-현실과 갖가지 역량이 부재하는 극장의 사이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배우들만이 있는 공연, “캥거루를 어깨에 올린, 나풀거리는 옷을 입은, 한 가지 색 옷을 입은, 선글라스와 모자를 멋들어지게 얹은, 테이프가 주렁주렁 걸린 허리띠를 맨, 헬멧을 쓴, 짝짝이 양말을 신은, 교복을 입은, 삼선 슬리퍼를 신은, 사람.”들로서 분한다. 각각의 차이가 오로지 ‘개성’으로 수렴하는 종들‘만’이 있는 극장이 된다. 어떤 규칙도 대본도 의미도 시간도 현재도 현실도 없는 극장. 하지만 거기에는 어떤 하나의 박민정과 최성철로 수렴하지 않는 다양체가 있다. 이에 대한 어쩔 수 없는 혹은 극단적인 긍정, 그 자리를 점유할 수 있는 관객 자신의 ‘인지’만이 그 공허한 극장의 기의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극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부재하지도 않는다. 〈박민정과 최성철〉은 의사-극장을 만들고 유지한다. 여기서 극장은 어떤 것이 채워질 수 있음, 마찬가지로 비워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어떤 것도 동일한 형태로 채워질 수 없는 곳, 유기적인 조직체가 갖추어질 수 없는 곳, 어떤 내용도, 말도,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 오로지 저마다의 관객과 배우만이 존재하는 무정형의 공간이다. 거기에는 법, 대타자의 시선도 없다. 국가의 법이 미로에 빠진 것처럼 극장의 문법 역시 해체되었다. 하지만 그 자유는 진정 자유로운 것인가. 마지막으로 의심해야 하는 지점이다. 〈박민정과 최성철〉은 예술가의 어떤 공황 상태를 비추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 작업은 그 자체로 비판적이기보다는 다분히 징후적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정보]

    공연명: 박민정과 최성철*

    공연 일시: 2022.1.14.(금) - 2022.1.18.(화), 평일 오후 7시 30분 / 주말 오후 3시, 7시 30분

    공연 장소: 연희예술극장

     

    공동창작

    연출: 김지은

    작가: 원아영

    드라마투르그: 박세현

    무대: 김나은

    조명: 곽유진

    그래픽: 배소영

    음악: 정경인

    안무: 박지현, 배효섭

    사진/영상: 김동환

    기획: 한지혜

    출연: 권아름, 김민주, 김준섭, 박지현, 배효섭, 심효민, 여성환, 윤진희, 이규현

     

    제작: 프로젝트 XXY

    주최: BENXT(비넥스트)

    후원: 서울문화재단 서울연극센터

    예매: 인터파크

    공연문의: 010-6676-1596

     

    시놉시스:
    정상성이라는 루머를 마주한 사람들,
    결여된 존재들에 대한 우아한 추방이 시작된다.
    인공지능이 대부분의 일자리를 대체한 근미래, 정부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트랜스휴먼 실험 참가자를 공개 모집한다. 자신이 지금 트랜스휴먼이 되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 삭제되어버릴 것 같다고 느끼는 사람을 뽑아 유전적, 사회적 한계를 가지고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한계 극복’, ‘성공 신화’를 만들려는 것이다. 한편, 연희예술극장에는 공연을 선보이고 싶어하는 공동체가 살고 있는데.

     

    *2021년 서울문화재단의 BENXT(비넥스트) 연극 분야에 선정된 김지은의 작업.

     

    1. 1. “대한민국정부”라고 기입된 서류 봉투에 담긴 세 장의 A4 용지에는 일종의 공연 형식 자체가 구성된 것임을 보여준다. “「트랜스휴먼 실험」 참가자 공개 모집 공고문”과 “「트랜스휴먼 실험」 오디션 참가 신청서” 외에도 공연에 대한 소개서 성격의 서류가 있는데, 여기에는 “워크숍 노트”와 함께 “공연 구성”에 공연의 순서가 적혀 있다. 참고로 인용된 단어나 문장은 대부분 여기에서 추출한 것이다. [본문으로]
    2. 2. 김민관, 「프로젝트 XXY, 〈여기에는 메데이아가 없습니다〉: 재현으로서의 표현」, 출처: https://www.artscene.co.kr/169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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