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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고은, 《에필로그: 세 개의 고래-인간 동그라미》, ‘보지 못하는 자’
    REVIEW/Visual arts 2022. 1. 20. 00:45

    임고은, 《에필로그: 세 개의 고래-인간 동그라미》(2022), ⓒ임고은(이하 상동). 

    임고은 작가의 《에필로그: 세 개의 고래-인간 동그라미》(이하 《에필로그》)는 그의 지난 퍼포먼스-전시 〈아키펠라고 맵: 세 개의 고래-인간 동그라미〉(이하 〈아키펠라고 맵〉)를 변주한 재버전이라 할 수 있다. 퍼포머가 작품의 순서를 지정하고 개별 작품의 작동을 수행하며 동선에 대한 지침을 수여하며 관객을 일정한 시공간의 틀로 자리하게 했던 반면에, 이번에는 모든 개별 작품/장소가 열린 상태로 진행되는 전시로 자리한다. 여기에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시차를 갖고 열렸던, 두 작업 사이의 지난 과정의 전시 ‘모래-정원 3부작’과 〈모래알 속 정원들〉이나 워크숍 형태의 〈실재하는 두꺼비가 사는 상상의 정원〉(이하 〈상상의 정원〉) 등이 전시에 부가된다. 

    이는 설치 차원에서 더해지거나 작품 내부적으로 삽입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전자에 해당하는 〈실재하는 두꺼비가 사는 상상의 정원〉은 극장―옵신 스페이스―과 극장이 있는 건물 카페 공간에서 차례로 진행되었는데, 중심 매체가 되었던 ‘우화집: 달-두꺼비의 정원들’, 곧 출판 전의 이 가제본을 검토하는 시간을 극장에서 먼저 갖고 씨드밤(seed bomb, 씨앗 폭탄)이라고 하는 흙과 씨앗, 자신이 쓴 메모지, 점토 등을 버무려 4개들이 달걀 종이 곽에 넣고 포장하는 워크숍을 카페에서 진행하며 마무리되었다. 책 워크숍은 자유로운 의견을 포스트잇으로 적어 해당 페이지에 붙이는 것을 제안했는데, 여기 붙은 다양한 피드백까지를 책과 함께 이번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후자에 해당하는 전시 〈모래알 속 정원들〉―이는 일종의 하나의 작업이 전시로 구성되는 경우라 보아야 할 것이다. 블록들은 반복의 집산이며, 뒤의 소리는 이곳으로 수렴하는 외부의 주체들이 가진 배경이다.―은 문화비축기지 야외―T2 야외 극장―에서 열렸는데, 쌀가루가 놓인 블록들과 공간의 가를 두른 스피커에서 울려 나오는 두꺼비 소리들으로 구성된 이 전시를 기록한 《에필로그》의 영상은, 흐릿하고 흔들리는 이미지로 탈초점화되어 이번 전시의 영상에 삽입된다. 

    여기서 흐릿한 현실의 반영이자 전시의 메타 기입의 차원은 입구에서 공간 중앙에 놓인 빈백이 이를 보게끔 하는, 오른쪽의 벽 전면에 나오는, 전시장에서 가장 큰 스크린으로 투사되는 영상 후반 부분에서 빈백에 누워 영상을 보는 관람자를 부감으로 찍은 영상에서 한층 부각되는데, 이는 당연히 전시를 보는 튜토리얼을 제시한다기보다는 현장의 관객을 그 영상으로 연장시키는 환영성을 부여하며, 영상과 현실을 연결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고 하겠다. 각각 이전 시간 전시나 이번 전시 관련한 이미지 삽입에 해당하는 작업은, 과거를 현재로 현동화시키며 현재가 또 다른 과거로 수축할 수 있음을 드러내는데, 신화의 시간이 책의 고정되고 박제된 이미지를 맴도는 카메라의 지위로써 드러낸다면, 현재의 시간은 떨리고 부유하며 열화되는 것으로서 찍는 주체의 흔들리는 양상을 반영하거나 현재를 증명하는 부가적이고 부차적인 현존의 순간적인 지위에 초점이 맞춰진다. 전자에는 견고한 이미지에 대한 현재의 탐구적 열망이 도사린다면, 후자는 장소에의 현존과 리얼리티를 최대한 감축하거나 또는 일시적으로 확장한다. 

    임고은은 리서치 과정에서 발견한 파편적인 푸티지로써 영상을 만들듯이 그 전시 방식에 있어서도 얼기설기 여러 이미지를 패치워크식으로 엮는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작품이라는 것의 개념을 고정되고 지칭할 수 있는 단위로 수렴시키는 게 아니라 우연히 선택되고 떨어져 나가는 과정의 차원에서 시간성을 가진 가변적이고 유동적인 생성물로 변용하는 데 가깝다. 여기서 작품은 첫 번째로, 하나의 전시의 단위라는 범주 아래 다른 작품들과 교환되며 연장되는 과정에 속하며, 두 번째로 여러 전시의 범주에 속하며 다시 변주되고 변용되는 과정에 속하게 된다. 

    이러한 임고은의 작품과 전시가 지닌 특이점은 〈아키펠라고 맵〉에서처럼 시간을 가장 주요한 지지체로 삼을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임고은의 연작 속 작품들은 상호 연관 속에서 또 다른 시간―이전과 이후―의 흐름에서만 부상하는 임시적이고 일시적인 기호로 놓이기 때문이다. 〈아키펠라고 맵〉의 퍼포머의 가이드는 사실상 퍼포머의 현존(과 관계하는 관객의 현존)이라는 또 다른 명제를 전시 안에 부여하기는 했지만, 퍼포머는 흐릿한 연관성의 작업들이 일정한 순서로 열리고 닫히는 지점을 명시하며 일회적인 순간만을 허용하는 미지의 공간으로 퍼포먼스를 초점화하는 데 도구적으로 기능했다고 할 것이다[각주:1](“맵”은 이후 전시들의 동선 없음과 우연한 엮임을 예고하고 있는지 모른다. 아울러 맵은 모든 전시장 입구에서 도장 찍는 것을 각별하게 제안하던, 서문과 플로어 맵이 포함된 일반적인 핸드아웃 대용의 포스터 크기―A2―의 또 다른 맵이기도 하다. 그런 차원에서, 전시의 이념으로서 어딘가로 이끄는 데 ‘그치는’ “맵”의 매개적 기능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를 지속하는 순간들의 집합으로 관객 스스로에게 종합할 것을 제안하는 《에필로그》는 〈아키펠라고 맵〉의 심연의 시공간을 포기하는 대신, 각각의 작품들을 기억의 재료로, 지난 기억의 환기로 가져온다. 이는 지난 전시의 주석이며, 지난 전시의 전유이다. 동시에 지난 전시 이후의 지난 전시의 누적을 갈음하며 이 모두를 또 다른 형태로 보존하고 사라지게 만드는 전시술의 적용이다. 따라서 임고은의 전시는 이전 전시의 것이 활용되며 잘려나가고 새롭게 부가된 것들이 임시적인 지층을 이루며 나아가 우연한 시계열 선을 그으며 사라질 것들이다. 

    이름 없는 임시적인 것들은 (캡션/제목이 아닌) 각각의 방으로 환원된다―“OCEAN-CHART”. 〈아키펠라고 맵〉이 순간과 틈을 허락하는 전시였다면, 《에필로그》는 각각의 방에 관객이 기식할 것을 요청한다. 이는 〈상상의 정원〉의 ‘자기만의 방’의 방식을 구성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방은 〈아키펠라고 맵〉의 퍼포먼스 시퀀스의 우연한 절대적인 틈과 달리 사유를 결정하는 해석적 주체의 틈을 가져올 수 있게 한다. 이는 단지 두 번 반복한다는 것이 강화하는 기억의 차원과는 다르다. 

    전시장 입구의 가장 깊숙한 곳―방위와 지명(?)이 적힌 맵을 따라서는 아무래도 전시의 물리적 위치를 가늠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의 한 지층을 지나, 거울을 통해 좌우 반전되는 영상을 바로 보게 되는 영상 설치에서 나타나는 현실 세계와 거울 세계가 각각 대등하게 펼쳐지던 신화적인 시대, 전근대의 시기를 특정한다. 두 세계가 경합하던 사건 이후, 거울 세계가 현실 세계를 따라 하는 슬픔(?)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이를 이야기가 가진 역능이 문학적 리얼리티를 획득하던 시기로 본다면, 이러한 서사는 전시 공간 사선으로 가로질러, 〈모래알 속 정원들〉을 가져온 영상의 서사와 접점을 이루는데, 너와 나가 상대의 이야기를 각각 가질 때 교통할 수 있는 접점이 만들어진다는 서사가 그러하다. 

    〈아키펠라고 맵〉에서 《에필로그》까지 가장 주요한 메타포인 고래가 인간에게 도구화되기 이전, 고래가 신화 속에서 인간에게 의미화 지층을 이루던 시대를 상상―인지/소통 불가능성 아래 초월/소통의 욕망이 아른거리는 정동―하는 것으로부터 두 작업 모두 시작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여기에 매체가 구현되는 방식의 다양성은 대상의 반영과 인지 경로 사이의 접점을 만들려는 시도이기도 하며, 그 경계를 구분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실제 고래를 보기를 열망했다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눈이 내면에 대한 보기를 상정한다는 점은 고래를 볼 때 온전히 외부로 열리는 운동성을 갖게 되는 것인가. 
    이러한 내면은 그 자체로 고립과 폐쇄의 공간으로 알 수 없는 닫힌 공간인가. 거기에 그친다면, 안과 밖 사이의 어떤 방향성도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내면을 볼 수 없는 건 우울과 함께 바깥으로의 충동과 이상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곧 내면은 온전한 통합보다는 (외부에서는) 또 다른 장막이자 (내부에서는) 그 스스로의 내면의 분열과 분리를 의미하는가. 《에필로그》는 알브레히트의 내면으로 침잠되는 시선의 위치에 관객을 놓는다, 끝내 고래를 보지 못했던 자의 자리에. 관객은 텅 비어 있는 내면을, 부상하지 않는 이미지의 자리를 자각한다. 결국, 대상과 인지의 불투명한 교신은 이미지의 자리에 이미지의 부재를 더듬는 텅 빈 주체의 이미지를 놓고 있음과 연관성을 갖지 않는가.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전시 개요]

    문래예술공장 𝐁𝐄𝐍𝐗𝐓 다원예술 선정작, 임고은, 《에필로그: 세 개의 고래-인간 동그라미》

    전시 일시: 𝟏.𝟏𝟒.(금) - 𝟏.𝟏𝟔.(일) 𝟏𝟑시-𝟏𝟗시
    전시 장소: 문래예술공장 𝟐층 박스씨어터

    작품 소개:
    추운 겨울이다. 지난가을 우리가 함께 그린 동그라미들이 이제 막 짧은 여정을 끝마쳤다. 어떤 동그라미는 고래의 눈에 담겨 명월주가 되었고, 어떤 동그라미는 두꺼비와 함께 씨앗이, 어떤 동그라미는 닭의 영혼인 달걀이 되었다. 닭의 알인 닭이 500여 년 전 난파된 씨앗을 물어왔다. 씨앗이 이곳에서 고래-인간의 그림자를 덮고 꿈을 꾼다. 표류한 씨앗 아래에 달이 된 고래의 눈도 우리와 함께 눕는다.

    “《세 개의 고래-인간 동그라미(Three Circles with(in) the Whale)》에서 임고은은 인류가 마주하고 있는 위기 속에서 야생을 회복하기 위한 시적 언어를 모색한다. 고래를 주제로 포경의 역사에서부터 시작하여, 식민주의, 제국주의, 근대로 이어지는 인간의 폭력의 역사 그리고 보르헤스, 에밀리 디킨스, 허먼 멜빌을 가로지르는 문학까지, 방대한 리서치에 기반한 밀도 높은 작품이다.” / “모든 것의 경계가 없던 곳에서부터 모든 잔혹한 경계가 생겨나기까지, 작품은 시적 여정을 통해 인간 존재를 되돌아보며 성찰의 시간으로 이끈다."
    ⏤ 김성희(옵/신 페스티벌 예술감독, 𝐁𝐄𝐍𝐗𝐓 퍼실리테이터)

    작가 소개:
    임고은은 서울과 암스테르담에서 영상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실험 영화 및 영상 설치를 통해 영화를 둘러싼 시선의 주체와 객체, 과거와 현재, 진실과 허구의 변증법적인 관계를 엮어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가능성을 탐구해 왔다. 그동안 여러 영화제와 전시를 통해 활동해 왔으며, 오버하우젠 국제 단편영화제, 서울 국제 실험영화 페스티벌, 유럽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아르코미술관 등에서 작품을 상영 및 전시한 바 있다. 최근에는 야생을 회복하기 위한 시적인 언어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 몰두하고 있다.

     

     

    1. 1. 이에 대해 이전에 기록한 리뷰에서는 퍼포머의 현존과 기능을 분리하지 않고 다룬 경향이 있다. 전자가 관객과 맺는 관계는 인상적이었지만, 한편으로 매뉴얼에 따른 표피적인 관계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인데, 그러한 점을 세세하게 분석하지는 않았다. 또한 불투명하게 남은 이미지와 텍스트 들이 체험의 실패인 것인지 작품의 내용 자체와 상응하는지를 분명히 판단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었다. 이 전시는 그와 같은 지점을 탐문하며 조금 더 면밀하게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김민관, 「임고은, 〈아키펠라고 맵: 세 개의 고래-인간 동그라미〉: 신화적 세계와 그 공백에 대한 이야기」, 출처: https://www.artscene.co.kr/177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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