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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도희, 《배꼽불》: 신체(와)의 관계성을 조각하기
    REVIEW/Visual arts 2022. 3. 12. 16:25

    김도희, 〈뱃봉우리(Volcano Peak)〉, 2018~. 설치, 가변크기,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라이트 상자, 배꼽캐스팅 오브제. ⓒ홍철기[사진 제공=김도희 작가].

    《배꼽불》은 2018년 이후 최근까지 진행해온 〈뱃봉우리〉 작업을 비롯해, 비교적 최근까지 다년간의 여러 작업이 뒤섞이는 가운데, 매체의 분화와 주제/시점의 차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동시에 직관과 감각에 의한 직조의 기술로써 이를 종합하는 전시이다. 각 작업이 갖는 힘은 각 작품에 머물기도 하고, 곧 다른 작업과 다른 이질성을 간직하기도 하고, 나아가 다른 작업과의 어떤 감각적인 연결을 추동하기도 한다. 《배꼽불》은 작가의 방대한 작업에서의 어떤 정수를 볼 수 있는 가운데, 주제를 언어로써 정교하게 시현하지는 않는 전시이다. 소위 작업은 작가의 정념과 작업력을 보여준다. 이는 아마도 작가의 작업이 감각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매체로 연장된다는 것과 그러한 감각적인 차원이 작가의 힘과 사고를 분명하게 보여준다는 것(곧 작가에게서 작업이 연유한다는 것), 나아가 그렇게 작업을 지속한다는 것이 종합된 결과일 것이다. 그 결과, 전시의 어젠더는 물론 분명하지만, 이것이 작가의 그것이라는 것이 같이 부각된다. 

    소위 큐레이팅의 언어와의 분별 속에서 작품이 가늠되는 차원의 전시가 다수를 이루는 흐름에서, 이러한 전시 성격은 그 전시 언어의 성격[각주:1]과 전시의 작업량의 절대적 차원에서 모두 예외적이다. 작가의 다양한 작업이 여느 규모 있는 전시 못지않게 비약적으로 들어서 있는 한편, 작가의 현재 어젠더 역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니까 전시의 언어는 ‘바깥의 (인공적) 언어’와의 차이를 가지며, 전시는 감각과 언어, 시간이 모두 한 작가의 그것으로 융해된다. 이것은 작가에 대한 신화적인 수사로의 추론이 아니라 전시 성격 자체가 희미하게 이러한 작가의 존재를 가시화한다는 일면에서의 분석적 접근에 따른다. 

    (사진 좌측부터) 김도희, 〈물새의 깃털처럼(Like a Water Bird Feather)〉, 2021. 퍼포먼스 기록영상, 5분 9초., 〈배꼽산실〉, 2022. 텐트 설치, 퍼포먼스, 180X310X310cm., 〈루스(Ruth)〉, 2021.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978X138cm. ⓒ홍철기[사진 제공=김도희 작가].

    ‘배꼽불’[각주:2]은 배꼽에 놓은 불이라는 의미로서, 배에 뜸을 뜨는 배꼽 캐스팅 〈뱃봉우리〉―〈뱃봉우리(Volcano Peak)〉, 2018~. 설치, 가변크기,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라이트 상자, 배꼽캐스팅 오브제.―가 이와 직관적으로 연관되는 작업이다. 전시장 1층 구석에는 텐트―〈배꼽산실〉, 2022. 텐트 설치, 퍼포먼스, 180×310cm×310cm.―가 있고, 이곳에서 참여 관객의 특정 배꼽 모양이 반영되는 캐스팅 공정은 설치와 또 다른 재현의 매체를 이후 통과하게 된다. 이러한 설치는 참여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 앞쪽의 사진들이 이러한 생산양식으로부터 온 것임을 증명한다. 사진들은 저마다의 배꼽을 주형으로 해서 생성된, 이를 뒤집은 모양이 클로즈업되면서 일종의 산과 같은 설치물, 그에 대한 재현으로 연장된 것이다. 
    배꼽에 이는 불의 감각, 곧 신체에 현상되는 감각은 실제 참여하지 않는 관객에게 전이되지는 않는다. 배꼽의 경험들을 한 공동체 같은 것은 물론 없지만, 자신의 특정 신체 부위가 이러한 사진들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의 결속력이 전시를 보는 데 특별한 경험을 구성할 수 있음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와만 관계되는 커뮤니티―일 대 일의 관계들―를 통해 추출한 형태들은 인체의 신비,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신체 일부분의 숭고화의 효과에 가깝다. 그것은 불의 감각과는 더 멀어지는데, 게다가 차갑게 굳어 있는 형태이다. 

    김도희, 〈살갗 아래의 해변(The Beach under the Skin)〉, 2022. 벽 설치, 연마기로 갈아낸 갤러리 벽, 250X1100cm. ⓒ홍철기[사진 제공=김도희 작가].

    여기서 더 강력하게 추출되는 감각은 높이에 대한 부분이다. 솟구치는 높이. 가설된 벽을 갉아내며 도출한 무늬들―〈살갗 아래의 해변(The Beach under the Skin)〉, 2022. 벽 설치, 연마기로 갈아낸 갤러리 벽, 250×1100cm.―은 여러 색을 포함하는 여러 지층으로 종합되는데, 일종의 등고선처럼 보이기도 한다. 곧 단순히 입체적인 캔버스로서의 회화 작업을 넘어, 수평의 감각을 수직의 감각으로 전환하는 위상의 전이를 보여준다. 이는 거대한 표면이면서 파인 부분들이 심층의 형상이 전복되어 있음을 주목할 때 특별해지는 부분이다. 이는 내가 보지 못하는 어떤 부분, 가령 고개를 들이밀어 그 안을 통과해야만 감각할 수 있는 어떤 뒤집힌 높이의 감각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구멍으로의 잠입이라 할 수 있다.[각주:3] 이런 ‘깊이’에 대한 감각의 차원은 내가 내 안을 들여다보며 발생하는 곧 그것을 바깥이 아니라 내가 속으로 잠겨 들어가며 그 안에 갇히게 되는 것, 동시에 다른 세계로 나아가게 되는 것, 이러한 지점이 배꼽불에 대한 위상 변이의 차원이라는 점에서 연결된다. 

    김도희, 〈가슴산(Untitled)〉, 2022. 설치, 한국의 흙, 900X1620cm. ⓒ홍철기[사진 제공=김도희 작가].

    동시에 이는 전시 전반으로 확장되는데, 여러 흙의 색감을 띠는 매트의 조합―〈가슴산(Untitled)〉, 2022. 설치, 한국의 흙, 900×1620cm.―은 낙차가 있는 수림아트센터 전시장 공간의 특정적 지형을 고스란히 전유한 것이다. 여기 위에 또 흙을 봉우리가 되도록 곳곳에 쌓아 놓음으로써 배꼽불 형상의 유사성을 가져가며, 뒤집힌 높이의 세계를 잇는다. 이 흙의 도상성―흙의 색과 무늬―과 지표성―하강하는 바닥으로서 땅의 그것―을 함께 띠고 있는 매트를 지나 마주한, 엉덩이가 터질 듯한 신체 조각상―〈인곡산수(人谷山水)〉, 2019. 설치, 바지, 산행일지.―은 중력의 무게가 투영된다. 시각적으로 여러 불편함을 넘어 모순의 지점을 구성하는데, 관람객이 거기서 뭔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의사-오줌을 피해 가야 하는 것과 천장에 달려 그 밑부분을 중점적으로 봐야 한다는 딜레마에 위치하는 것이다. 

     

    (사진 좌측부터) 김도희, 〈벽_잠행_바닥(Wall_Stealth_Floor)〉, 2021.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벽_잠행_바닥, 〈벽_잠행_바닥〉(2015)의 사진 기록을 편집 제작., 김도희, 〈강강술래(Ganggangsullae)〉, 2020. 단채널 비디오, 9분 12초, 컬러, 사운드. ⓒ홍철기[사진 제공=김도희 작가].

    이를 지나쳐 통로를 지나 나오는 영상은 어둠의 숲속 모닥불 주위를 맨발로 뛰는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들의 춤이다. 괴성과 신음은 원초적인 여신의 생명력에 근접한 여성 모습의 일면일까. 그렇다면 현실의 언어와 페미니즘의 지형에서 비판적으로 검토되는 것으로 보이는 여성 신성의 일면으로의 이러한 비약은, 어떻게 단번에, 단 한 번으로 일어날 수 있었을까.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시간의 양상을 띠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소위 까르륵하는 일단의 여성 간 친화력과 불이 주는 매혹과 명상적 도취, 추위에 맞선 열을 내는 운동력이 비벼질 때 이러한 차원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동시에 이는 앞선 이념적인 지형을 다소 협소한 차원으로 두며 돌파한다―그것은 여성에 대한 재현을 제한하고 마취시키기보다 복구하면서 여성 상의 지평을 확장하는 것일 수 있다. 이러한 차원에 대한 작가의 기획은 어디서 출발했고 어떤 감각을 수여하기 위한 것일까. 몸짓들은 우연하며 언제나 의도치 않게 시작된다.[각주:4]같은 명제는 작업의 일면을 충분히 설명하는 것일까.

    이 모든 것들은 대부분 신체의 행위를 작품에 투영한다. 구멍으로 들어가는 그라인딩―〈살갗 아래의 해변〉―과 구멍을 갈취하는 뜸의 행위―〈뱃봉우리〉―, 오줌을 싸는 신체의 재현, 마치 활화산 같은 모양으로 땅 위에 다시 흙을 쌓기―〈가슴산〉―, 불을 주변으로 돌기―〈강강술래(Ganggangsullae)〉, 2020. 단채널 비디오, 9분 12초, 컬러, 사운드.―를 상영하기 등. ‘배꼽불’은 절대적 감각으로 주어진다. 곧 배꼽에 불이 붙는 경험 이외의 해석이 부대적으로 요청되지 않는다. 그것은 소외된 신체로부터의 재정립된 신체이며 동시에 신체와 작업의 내밀한 연계이며(신체의 사물화가 아니라 사물의 신체 접변을 통한 신체-사물화), 동시에 참여의 폭을 바깥의 사회로 이전하며 그 힘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힘의 영도는 작가가 개개인의 신성을 또는 개개인의 부분 신체의 특정한 형상들의 고유성을 보편성의 차원에서 믿고 있음을 가리킨다. 

    〈뱃봉우리〉의 산은 〈가슴산〉의 산보다 더 비정형적이고 기괴하며 따라서 미학적인 가치가 크다. 다시 말하면 주어진 것을 되찾는 방식으로서의 전유는 어느 정도 일관적 형태를 아마도 눈대중 아래 구현했을 단순 작업에 비해 훨씬 고차원적인 결과를 낸다. 일종의 커뮤니티적 작업의 소스로 도출한 작업이자 미학적 결정(結晶)은 조각을 거친 사진이다. 이는 상승의 시각과 그 반대편의 하강으로의 감각, 그리고 보기에서 만져지기의 촉각적 인계를 가져온다.

    (사진 맨 오른쪽) 김도희, 〈인곡산수(人谷山水)〉, 2019. 설치, 바지, 산행일지. ⓒ홍철기[사진 제공=김도희 작가].

    《배꼽불》은 신체에 미치는 어떤 작용의 힘을 사물과 환경으로, 또는 그 힘과 관계 맺는 사물에서 그 힘을 보여준다. 이는 물리적 관계의 가시화, 또는 그 감각의 차원에서 포착되는 어떤 힘이다. 〈가슴산〉의 산 역시 결국 손과의 마찰이 전제된다. 이러한 신체 내속적인 작업은 그것과의 떨어짐, 거리 두기에 대한 불능으로서의 그 사물을 제시하며, 이 사물은 동시에 내가 포화되는 것, 섞이는 것, 만질 수 있는 것으로서 다른 단계에 대한 도약을 요청한다. 결론적으로 이 전시를 감싸고 있는 힘은 단순히 어떤 상징의 이름이 아니라, 관람자의 신체를 둘러싸고 있는 인지-감각에서 연유한다고 보인다. 그러한 힘은 전시의 사물들이 일종의 나이브한 언어로서 기피의 대상이 되든 해석할 수 없는 감각으로서 전이의 관계점이 되든 간에 이 전시를 해석할 수 있는 유일한 동시에 가장 강력한 개념 아닐까.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전시 개요]

    수림미술상 수상작가전 2021, 김도희 개인전 《배꼽불》

    전시 기간: 2022년 1월 6일(목)~2월5일(토)
    전시 장소: 수림문화재단 김희수아트센터 아트갤러리 
    기획: 김도희
    전시디자인: 정동춘
    포스터 그래픽: 김박현정
    비평: 김남수
    토크 모더레이터: 황수경
    주관&후원: 수림문화재단 

     

     

    1. 1. 여기서 ‘언어’는 물론 큐레이팅의 언어와 다른 언어를 말한다. [본문으로]
    2. 2. “배꼽불_Tummo는 사납고 뜨거운 야성적 여신을 뜻하는 티베트 어원 gtum-mo에서 유래한 것이자 여성신 개념을 바탕으로 인체 내부의 열을 증폭시켜 얻은 활력풍을 통해 비어있음(emptiness)을 이해하는 수행법을 뜻하는 단어이다.”  [본문으로]
    3. 3. “복숭아 벌레”, “에멘탈 치즈”, “투신” 등과 같은 개념이 작가와의 대화에서 김남수 안무비평가의 말에서 나오기도 했다.  [본문으로]
    4. 4. 물새의 깃털처럼(Like a Water Bird Feather)〉(2021. 퍼포먼스 기록영상, 59.)의 경우, 작가가 아무 결과를 생각하지 않은 채 우연히 물가에 뛰어들어 펼친 장면을, 현장에 있었던 공간 아트잠실을 운영하는 김수진 작가가 공간 일리의 대표 황수경 작가에게 전달한 촬영본이 다시 작가에게 전달된 것이라고 한다. 이는 작가와의 대화에서 나온 이야기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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