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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규민 개인전 《RE:RE》: 연약한 자아의 주체로서의 선언
    REVIEW/Visual arts 2022. 5. 31. 01:44


    리혁종이라는 울타리 혹은 그늘

    “개성을 강조하고 남과 차별화된 창의성을 요구하는 작가상을 기르고 그로부터 전제된 일관성 있는 개념 및 양식의 작품 생산을 배양하려는 대학(과 대학원)에서의 미술 전공 과정. 양식적 새로움에 대한 경합의 무대를 위한 감각의 투여는 내게 어떤 동기보다는 피하고 싶은 어지러움을 준다.”_황규민, 「작가 노트: 대학 미술 출구 및 우회로를 찾아서」

     

    황규민, 〈넝마 철학 조각가 RE:〉(2022. 캔버스에 유화, 162.2x260.6cm.) ⓒ김민관.

    황규민 작가의 개인전 《RE:RE》는 리혁종 작가의 작업을 참조자료로 동원한다. 여기에는 작가의 작업의 다음 경로를 모색하는 데 따르는 곤경, 작업 방법론의 미결정 상태의 곤궁 모두 작용한다. [각주:1]. 여기서 리혁종 작가 자체가 모델―〈넝마 철학 조각가 RE:〉(2022. 캔버스에 유화, 162.2×260.6cm.)―이 되기도 하지만, 주로 리혁종의 작업에 대한 다른 매체를 통한 재현이거나 작가의 방법론적 모델이 황규민의 작업 방법으로 전유돼 표현된다. 황규민에게 참조의 모델인 리혁종의 모든 것은 결과적으로 작가의 생활을 오래 영위한 자의 실재적 역사로서는 매끈하고 화려한 성취이며 이를 의태할 수 있는 안정적인 작업의 바탕을 이루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연한 것들의 접합이자 파편들이 기워진 재료들로서 헐겁거나 불완전하며 아직 완전히 정의되거나 성취되지 않은 것으로서의 시간성을 띠기도 한다. 곧 리혁종이라는 상징계적 인물의 공고함―고유성―이 주는 일원화된 폐쇄적 시간과 달리 리혁종에 대한 황규민으로의 우연한 동시에 적극적인 연결은, 리혁종의 시간을 재가설한다. 

    일종의 리혁종 작가에 대한 연구로서 황규민의 작업은 위치하지만, 이 연구는 사실 황규민의 자아가 정착할 수 없는 상태의 연약함으로부터 시작된다. 가령 리혁종의 작업 재현의 매체로서 터프팅이라는 작가만의 매체가 선택되기도 하는 반면, 작가의 방법론은 리혁종의 작업 재현에 의도적으로 감춰진다. 작업의 지속 불가능성에 대한 회의와 작가 주체의 당위성 사이에는 긴 시차가 존재한다. 여기서 리혁종을 공고한 작가의 본질이 아니라 작가의 인정 욕구로부터 발현될 어떤 판타지적 대상이자 그 괴리로 볼 수는 없을까. 따라서 리혁종이라는 주체의 재구성이 아니라 리혁종이라는 어떤 자아와 리혁종에 투영되는 작가의 자아, 그 둘의 간극을 봉합/해결하기 위한 수행으로서 작업이 구성되고 있음을 이야기할 수는 없을까―하지만 여기서 ‘봉합’은 의도된 것이라기보다 그 둘의 간극을 애초에 부인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림 〈넝마 철학 조각가 RE:〉는 수많은 리혁종의 이미지, 작업 과정에서 그 행위 주체의 이미지들을 담는다. 그림은 그러한 이미지로 포화되며 사실주의적으로 그린 것임에도 이는 어떤 하나로도 수렴되지 않는 일종의 환영적인 주체들의 이합집산적인 이미지로 그려진다. 이미지들은 서로를 향하지 않으며 서로로부터 어긋난다. 본의 아니게 작가의 다른 시간들은 하나의 세계 안에 통합되는데, 이는 다분히 현실보다는 유토피아적인 공간의 이미지에 가깝다. 존재의 이미지들은 그 안에서 완전히 자리 잡기보다는 붕 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는 결국 하나의 배경 자체가 각 행위를 통합하기보다는 그러한 행위를 통합하는 하나의 시간으로 드러날 수 없음을 드러낸다. 곧 이미지들에 결부된 시간의 양상은 구제되지 않는다, 이 유토피아적 진공 속에서. 따라서 이 그림은 리혁종의 떠도는 시간들로부터 남은 어떤 표피들로서만 드러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작가의 수행에서는 이러한 작가 자신의 지난 이미지의 복원은 앞선 간극을 상쇄하기 위한 일종의 ‘주술’적인 의미일 수도 있다. 

    (사진 왼쪽부터) 〈개인의 도상〉(2022. 아크릴 실, 150x55cm.), 〈미의 도상〉(2022. 아크릴 실, 116.8x83cm.) ⓒ김민관.

    인상적인 터프팅이라는 작가의 방법론은 사실 대상 자체를 촉각적인 매체로 변용한다―〈개인의 도상〉(2022. 아크릴 실, 150×55cm.)과 〈미의 도상〉(2022. 아크릴 실, 116.8×83cm.). 이는 지나친 부드러움과 안락감을 준다. 리혁종의 ‘도약하는 이카로스’는 관념적인 이미지의 산물로서 현실에 기이하게 머무르고 있다면, 〈미의 도상〉과 그 옆의 〈개인의 도상〉은 의도적으로 만질 수 있는 대상으로 놓임으로써 이미지와 관람자의 간극을 통합할 수 있게 된다. 터프팅된 오브제는 리혁종과 황규민의 거리, 과거와 근과거의 거리가 좁혀질 수 있다는 환상과 그 과거 자체에 대한 애착을 해소할 수 있는 매개물로 작용한다. 여기서 초월적인 이상에 대한 추구의 정념은 뭔가 완전히 현실과는 분리할 수 없는(그것은 현재에 분명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눈앞의 현재로 잡히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불순물처럼 떠도는 대상이다.), 미술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복합적인 애정, 도달할 수 없는 미술에 대한 어떤 열정으로 전환되는 듯도 보인다. 
     
    그 거리를 좁히지 않고서

    “막연하게 디자인을 전공했다가 회화로 편입한 대학/미술 전공 제도에 많은 피로감과 우울한 무기력감이 함께 했다. 이러한 감정들은 내 안에 있는 작가에 대한 욕망과 미련, 그로 인한 복잡한 감정인 듯하다. 다양한 동시대 미술의 성공 사례를 배우고 찾았지만, 그 성공과 나의 상황에 대한 개인적, 사회적 격차 또한 엄습한다.”_ibid.

    (사진 왼쪽부터) 황규민, 〈RE:RE:RE〉(2022. 아크릴 실, 레드파인 각재, 못, 78.5x4.5x49cm.), 〈Woven Life〉(2022. 아크릴 실, 가변크기.), 〈작가 연구〉(2022. 왁구 틀, 페인트, 246.7x61.7cm.)

    황규민의 과거의 리혁종을 매개로 한 에고 트립의 관점에서 이러한 작업을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는 완벽한 자아 창출이라기보다는 불완전한 자아 탐구의 경로에서 이뤄지는, 황규민의 리혁종에 대한 탐사로 보인다. 이러한 연약한 자아에 대한 표현은 어디까지나 또 다른 자아를 감추는 일종의 연기(演技, 延期)일 수도 있다. 반면, 리혁종을 기술하(려)는 노력이기도 한 전시의 집적된 산물들은 매체 탐구의 불완전성과 지속성을 모두 담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처음으로’ 리혁종과 공통된다―이는 리혁종 스스로가 작업을 매체 결정적인 형식으로 완성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는 새로운 재료의 탐색과 발굴 자체의 의미를 가져가는 부분이다. 
    이는 리혁종의 방법론을 전유했음과는 별개의 사실로서, 일종의 작가 자신의 시간이 축적되어 갔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는 리혁종과 황규민 사이의 거리에서 연원한다. 하지만 이 거리는 결국 완전히 좁혀지지 않으며 황규민이라는 작가의 고유성을 더 특기할 만한 것으로 드러낸다. 황규민의 방법들이 결국 리혁종의 어떤 외양과 내용 안에 삽입되기 시작한다. 터프팅의 작업 방식뿐만 아니라 터프팅 틀―왁구 틀, 레드파인 각재+못을 작업을 설치하는 툴로 사용하는 것 역시 터프팅을 일종의 일로서 가져가는 작가의 삶과 결부되는 고유성의 작업 영역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이자 처음으로 황규민은 리혁종의 대학 시절 졸업을 앞두고 다른 학우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RE:RE:RE〉(2022. 아크릴 실, 레드파인 각재, 못, 78.5×4.5×49cm.)에 부착된 글 「Re: ‘젊음에게 예술을 권함’」―의 시점에 다시 선다. 이는 리혁종의 작업을 전유한 것이지만, 여기서 편지라는 형식에 대한 내용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되어야 한다. 이는 리혁종이라는 주체를 순전히 황규민이라는 주체로 바꾸는 일이다. 스스로의 결단과 바깥에 대한 발신이 뒤섞이는 지점에서 작가의 말은, 이카로스에 자신을 빗댔을 리혁종의 결기와는 다르다. 
    연약한 자아의 표상은 달라진 시대상과 세대의 정동을 드러내는 역사의 전환을 지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작가의 토로, 그리고 이러한 시대적 맞물림 또는 역사의 반복에 따른 언어의 재정립은 《RE:RE》가 과거의 재(re)생이자 과거를 통한 현재의 재(re)생산적 양식을 모색하는 과정임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황규민의 자아는 공중에 뜬 이카로스의 위치에 다시 한번 통합되며 동시에 그로부터 분기된다. 그의 정신적 위치는 추락을 감수하는 도약 자체보다는 그가 있는 공중이, 또 부상의 순간이 어느 정도에 위치하는지를 가늠할 수 없는 혼란과 우울에서 기인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모험을 감수할 수밖에는 없다.

    그의 삶은 환경과 역사에 종속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Woven Life(짜여진 삶)〉(2022. 아크릴 실, 가변크기.)의 경우, “Woven Life”와 그것의 번역인 “짜여진 삶” 두 개, 그리고 그 중간에 화살표로 방위를 지시하는 세 개의 작업이 모두 아크릴 실로 짠 작업이다. 이는 〈삶은 옥수수(Life is Corn〉(2019)의 “삶은 옥수수”와 “Life is Corn” 두 개의 작업으로 이뤄진, 리혁종과 이우광 작가가 함께했던 작업을 전유한 것이다. ‘삶아서 먹을 수 있는 옥수수’와 ‘옥수수를 재배하는 지역 농민의 삶’을 중의적으로 표현하는 원래의 작업은, 구체적인 매개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대신 삶의 수동성, 그리고 그 삶의 수동성을 구성하는 작업 자체에 대한 지시를 함축하며, 작가의 작업과 세계의 관계 양상을 드러낸다. ‘삶은 (이미) 짜였다.’ 이러한 수동적 삶을 작업은 지시한다. 이는 순수하게 이것을 짠 실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구체적인 대상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는 터프팅이라는 매체를 다루는 작가의 무의식을 이 작업이 보여주고 있음으로도 파악할 수 있다. 

    그림자를 넘어서

    “저는 아직도 제 삶의 태도를 명확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거기에서 오는 불안함을 잠시나마 해소하려 합니다. 제 삶에 아직 이렇다 할 가치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작가님의 치열한 고민이 담겨있던 질투 나는 포트폴리오를 직접 경험해볼까 합니다.”_황규민, 「Re: ‘젊음에게 예술을 권함’」.

    황규민의 《RE:RE》 전시 전경.

    황규민의 《RE:RE》는 현역 작가의 작업을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이를 자신의 작업으로 연장한다는 점에서 매우 기이하고 예외적인 전시이다. 어떤 명확한 과거를 가져오지만, 이는 해체와 재구성, 차이에 대한 인지와 함께 고유한 자신의 작업 방식을 오히려 구성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수행’의 일종으로, 다음을 기약하기 어려운 작가의 갈등과 번민의 상태를 투여하면서 승화할 수 있는 의식적 차원(에 대한 기대)도 동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는 완전한 승화라기보다 해소되지 않는 의식 위에 쌓는 미결정의 의식들을 더하는 것일 것이다.
    작가는 실체 없는 마음의 작용 아래 실체로 존재하는 과거의 다른 작가의 작업을 지지대로 삼아 이 구름의 경계를 분명한 선분과 물질로 결정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 경계에 놓이는 외양들은 작가의 고백으로 투명하면서도 작위적인 차원으로 그림자를 드리운다. 작가의 말은 그런 차원에서 (글이라는 매체이자 수행적인 발화로서) 무엇보다 중요하며, 작업과 작업에 대한 동기를 설명하는 차원을 넘어, 작가라는 증상을 드러내며[각주:2], 나아가 그것을 ‘선언’하여 그 말에 투신할 수 있는 존재의 여행을 보여준다―그러한 태도는 지난날의 리혁종의 그것이기도 하다(「“젊음에게 예술을 권함”」). 어쩌면 ‘리혁종’이라는 형상은 황규민의 외상을 덮는 어떤 절차에 가깝다. 그것은 거치거나 사라지거나 은은하게 뒤덮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분간되지 않는 어떤 그림자처럼 배면에 쌓이고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하지만 《RE:RE》는 그 훌륭한 위장 기술이 될 것이다. 

    “회화과를 선택하는 것은 예술의 본 무대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물론 동양화과 조소과 판화과도 마찬가지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디자인과에 가서도 관심을 가진다면 예술 본연의 무대로 뛰어들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학교에 들어오면 환상이 깨지는 부분도 많을 것이며 실제로 주어지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에 아연실색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아카데미에서의 제도 경험들은 예술을 하기에는 값진 과정이 될 것입니다. 어차피 예술은 자신의 안에서부터의 힘이 주가 되어 굴러가는 장치니까요.”_리혁종, 「“젊음에게 예술을 권함”」.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전시 개요]
    전시 일시: 2022. 05. 04 (수) - 05. 11(수) 12-6pm (휴관 없음)
    전시 장소: 아트스페이스128 (대흥동 465-1 2층)
    포스터 디자인: 황규민
    글: 안준형
    조력자: 리혁종

    1. 1. 이에 대해 안준형 필자는 예술 자체에 대한 정의를 해야 하는 예술가의 어떤 곤란함의 상태로 설명한다. “예술 자체를 규정하는 데에는 언제나 어떤 곤란함이 뒤따르는 것이다. 그와 같은 곤경은 예술의 생산자인 예술가라 하더라도 쉽게 외면되지 않는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바로 그 예술을 규정하는 데에 따르는 어려움을 곤경으로 여기기보단 외려 창작의 원천으로 삼곤 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이와 같은 예술의 반-규정성이라 할 법한 특징을 미적 자율성의 알리바이로 여기는 것이다.”, 출처: https://www.artbava.com/exhibit/%ED%99%A9%EA%B7%9C%EB%AF%BC-%EA%B0%9C%EC%9D%B8%EC%A0%84-rere/  [본문으로]
    2. 2. “…그는 우연히 어떤 오픈 스튜디오를 방문하였다가 한 작가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는 그 작가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자신의 현재 상태가 단순히 개인적인 의욕이나 동기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그 작가 또한 자신과 비슷한 고민이 있(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_안준형, 출처: https://www.artbava.com/exhibit/%ED%99%A9%EA%B7%9C%EB%AF%BC-%EA%B0%9C%EC%9D%B8%EC%A0%84-rere/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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