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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훈 작/연출, 〈비둘기처럼 걷기〉: 도시(인)의 무의식을 탐사하기
    REVIEW/Theater 2022. 6. 7. 00:55

    작/연출: 김상훈, 제작: 음이온(ummeeeonn), 〈비둘기처럼 걷기〉ⓒ하준호[사진 제공=음이온](이하 상동).

    〈비둘기처럼 걷기〉는 공간 특정적인 서사를 구성한다, 존재를 뒤섞는 언어적 실험과 공간을 맵으로 설정하고 그에 따라 공간에 부착하는 언어들로써. ‘비둘기처럼 걷기’는 알레고리가 아닌 환유적인 기호가 되며 판타지를 물질화한다. 이는 비둘기에게 눈을 쪼아 먹힌 사람이 자신의 눈을 먹은 비둘기가 걸어가는 장면과 그에 해당하는 내레이션이 나올 때 극적으로 고양된다. 비둘기는 휴대전화에 작은 휴대용 삼각대를 연결한 것으로, 이 ‘비둘기’는 자신의 조종자의 바깥을 함입하며 그의 시선을 대리하거나(이 ‘비둘기’를 보는 조종자의 시선은 바깥을 온전히 향하지 못한다.) 또는 카메라 방향을 그 조종자가 돌림으로써 조종자를 함입한다. 
    곧 비둘기와의 형태적 유사성을 전제하고 있으며 비둘기로 초점화하는 순간적인 발화 행위 이후 생겨나는 비둘기라는 존재와 그것을 들고 걷는 존재가 소거되는 매개자의 걷기가 현동화된다. 비둘기가 일차 기호라면 비둘기처럼 걷는 존재는 이차 기호이다. 반면 이 걷기는 매개자의 걷기가 아니라 비둘기의 걷기를 바라보는 것으로, 걷기의 뒷모습으로부터 그 방향을 향하는, 그 뒤에 있는 자의 눈으로 대체된다. 비둘기가 화자의 눈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화자의 눈 한쪽이 없는 가운데, 그 다른 눈으로 보기를 상상하는 가운데 다른 존재로의 보기를 감행하게 된다. 

    (사진 왼쪽부터) 전혜인, 김경헌 배우.

    처음부터 〈비둘기처럼 걷기〉는 비둘기로 쪼아 먹힌 눈에 의안을 넣는 것과 관련해 의사와 상담하는 남자의 대화가 자리한다. ‘결핍’과 그것을 부피적으로만 채우며 실제 작동하는 것과는 상관없는 눈의 어떤 형식이 집요하게 대화의 중심부에 있다. 비둘기와 ‘나’의 등가는 비둘기-인간의 다른 존재를 상정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이는 인간의 특성을 또는 비둘기의 특성을 최대한 함축한 것이 아니라 인간과 비둘기의 경계에서 비둘기로 향하는 또는 비둘기로부터 유래하는 어떤 시선이 ‘나’에게서 가능해지는 시점을 이야기한다. 이는 비둘기가 아닌 자의 시선과 비둘기의 시선의 격차가 조율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나의 바깥으로부터 나를 사유하기, 나의 바깥에서 나를 바라보기와 같은 나의 반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비둘기처럼 걷기〉는 뒤에 놓인 비둘기-카메라의 시점을 객석 뒤편에 위치시키고, 뒷모습으로 이를 가린 존재들의 변경이 초점화된다. 존재를 찍는 게 아니라 그 존재가 이 카메라를 뒤덮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사이에 또 다른 조그맣게 축소된 존재의 시선이 들어온다. 보이지 않지만, 무엇을 보고 있는 비둘기의 시점을 매개하는 스크린은 그것과 일정한 거리를 벌리며 일정한 방향이 지정되어 있는 순서대로 퍼포머들이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러한 순서와 방향성은 그 자체로 서사의 내용을 담고 있지 않지만, 이 공간을 물리적으로 계측하고 이동을 통해 인지 가능한 거리로 변화시킨다. 곧 언어와 함께 작동하는 이동의 행위는 이 공간을 몇 개의 점으로 분쇄하고 반복해서 이들을 연결하는 식의 일정한 프로토콜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진 왼쪽부터) 김경헌, 전혜인 배우.

    객석 뒤편의 TINC 2층에서 세 명의 배우들이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소리는 뒤에서 오고 이는 앞에서 영상으로 불온하게 드러난다. 배우들은 스크린 양옆의 두 문을 통과해 스크린 뒤로 사라졌다 나타난다. 이는 누군가의 집으로 가정되지만, 이 건물의 끝이며 창문이 있는 곳으로서 비둘기가 통과해야 하는 바깥의 경계를 더듬어감을 일시적인 블랙아웃으로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여기에 블라인드를 리모컨으로 조종해서 쪼그라드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천장 곳곳에 마이크를 달아 소음을 발생시키며 〈비둘기처럼 걷기〉는 예측할 수 없는 비둘기와의 조우를 구성한다. 비둘기처럼 우는 배우들은 비둘기를 재현하기보다는 비둘기로의 변경을 주도하는 타자 되기의 전략 안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텅 빈 곳을 향하듯 눈을 뜨고 현실감을 상쇄하는 듯한 발화 과정이 이에 상응한다. 
    나의 바깥으로 빠져나온 시선이 나를 봄으로써 〈비둘기처럼 걷기〉는 조감의 시선과 조감되고 있음의 느낌을 동시에 가져간다. 비둘기를 합성함으로써 분열증적인 주체가 된 남자는 도시에 산포하면서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남자의 ‘반려-비둘기’의 영역은 집이 아니라 도시 전체로 확장된다. 사람과 비둘기 모두에게 도시는 “야생”이다. 아니 비둘기라는 존재를 진정으로 맞닥뜨림으로써 도시는 사람에게 야생이 된다. 

    (사진 오른쪽부터) 전혜인, 김나윤 배우.

    비둘기에게 쪼아 먹히고 한쪽 눈만 남은 남자는 일차적으로 세상에 대한 입체감 역시 없어진다. 이러한 증상은 물론 불편함이나 물리적인 시각의 왜곡에 그치지 않고, 인지의 구조적인 변경과 세계에의 부적응으로 연장된다. 남자는 마지막으로 만난 노인은 새 점을 보는 사람으로, 새와 인간의 지식, 곧 언어의 통약 불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새가 걷다가 멈춰선 곳에 놓인 쪽지, 곧 새의 ‘우연적인’ 선택은 우리가 새의 의도와 그 결말을 알 수 없으며, 새 역시 우리의 의도를 모를 것이라는 점에서 ‘절대적’이라는 궤변은, 새와 남자 사이의 간격을 좁히지도 또 더 넓히지도 않으며, ‘따로 또 같이’ 존재하는 두 존재의 알레고리를 재확인한다.
    〈비둘기처럼 걷기〉는 알레고리들로 차원들을 이어 나간다. 정신과 의사나 현실이 연장된 꿈속 비둘기, 도를 전파하는 사람의 외양으로 보이는 행인, 새 점을 보는 노인 등과의 대화는, 현실의 초월적 바깥으로 출구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경계를 시험하는 인지적 충격을 주는 것에 가깝다. 여전히 한쪽 눈이 남아 있는 것처럼 남자는 현실을 살며 그 현실이 다른 세계로부터 재편되고 있음을 동시에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앞선, 마지막 비둘기의 걸음은 결국 도시의 이면을 탐사하며 확장된 도시에서 재구조화되는 도시인의 어떤 패턴에 상응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사진 왼쪽부터) 김경헌, 전혜인, 김나윤 배우.

    비둘기와 남자의 간격, 인물 간의 간격은 일정하고, 또 선형적이고 특정한 방향으로 흘러가며 짜인다. 이동과 시선의 반복되는 순환에 따라 몇 개의 패턴으로 짜인 공간 구조에서, 관객 역시 반복적으로 공간에 엮여 나간다. 말들은 일정한 점들로부터 또 사방의 순환적 여정을 통해 들어온다. 곧 〈비둘기처럼 걷기〉는 스치는 풍경과 소리, 인물들의 웅얼거림 등을 점조직 같은 연결을 통해 공간의 구조화 과정에 배치하는 한편, 비언어와 언어의 조합으로써 도시의 풍경을 도시인의 무의식으로 재점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곧 도시는 구조화되었으며 또한 파편들의 산개인 시공간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명: 비둘기처럼 걷기
    공연 일시: 6월 2일 (목) ~ 6월 5일 (일) 19시
    공연 장소: TINC (this is not a church)
    공연 시간: 60분

    작/연출: 김상훈
    배우: 김경헌, 김나윤, 전혜인
    시노그라피: 박이분
    조명기술감독: 김현
    영상 디자이너: 전태환
    음향 디자이너: 이현석
    기획: 전강채, 조윤경
    포스터 디자인: 박서영

    제작: 음이온(ummeeeonn)
    후원: 서울문화재단, 서울특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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