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이양구 극작/이연주 연출, 〈당선자 없음〉: 역사의 균열을 추적하는 주체
    REVIEW/Theater 2022. 6. 3. 00:48

    연극 〈당선자 없음〉[사진 제공=두산아트센터](이하 상동). 사진 왼쪽부터 최상영 역의 배우 이윤재, 윤길상 역의 신강수 배우.

    〈당선자 없음〉은 제헌헌법이 창립한 경위를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추적해 나가며, 현재를 구성하는 이념의 한 구조적 토대가 되는 헌법의 계보를 가시화함으로써 소수의 자의적인 입법 과정과 그 이후를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지 않은 현재로 연장한다. 곧 헌법의 계보학을 좇는 〈당선자 없음〉은 법의 기원을 본질적인 정의의 이념으로 구성하는 대신 외설적인 흔적을 누출한다. 그것은 물론 당대의 영향 아래 있으며, 나아가 자의적이고 우연적이다. 일제강점기에서 해방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법 관련한 전문가는 전자의 친일파에 속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를 무대로 상연하는 자리에서, 그들―최상영_배우 이윤재과 그를 돕는 윤길상_신강수 배우―은 새로운 해방 정국에서 잔뜩 움츠러든 채 죄인으로서, 입법의 예외적인 역량을 가진 전문가인 동시에 일단의 권력의 네트워크를 가진 자로서 새로운 나라를 위한 헌법 초안을 만든다는 어떤 신념을 실행으로 옮기는 시간을 통해, 처벌받을 미래의 시간을 유예한다. 

    이는 새로운 다른 가능성의 미래를 위한 현재의 사투이며 그 미래와 손잡기 위해 현재를 거창한 수단으로 동원하는 것과 같다. 이들은 자신을 불우한 영웅의 지위에 놓으며 현 상황에서의 반등의 기회를 염원하고, 구원과 용서에 대한 명목을 만들어 낸다. 이후 입법의 크레디트를 둘러싼 존재들 간의 경합 상황이 펼쳐진다. 그러한 입법이 해방 이후 헌법의 토대로 이어지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당선자 없음〉의 장르적 특성이 팩션의 형태를 띤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는데, 헌법학계의 다수 의견과 대비되는 흥미로운 가설에 담긴 풍경이 입체적으로 복각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헌헌법을 만든 사람이 이진오라면, 헌법 초안을 만든 사람은 따로 있고, 그―최상영과 신길상―가 일제강점기의 친일파라는 사실은, 비정규직으로 방송국에서 고용되어 일하던 이정 피디가 다루려고 한 것을 좇아 가보는 형식으로 매개된다. 역사의 장면은 곧 연극의 장면이며, 이러한 역사가 정전의 역사에서 밀려난 어떤 역사라면, 연극은 역사를 다시 쓰려고 하는 이정 피디의 제작 의도가 방송국의 검열을 받는 상황에서 그가 죽었고 이를 살아남은 자들이 다시 꺼내 들여다봐야 하는 과거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하게 두 개의 시간 모두 진실에 대한, 그리고 그 존재자들의 의도에 대한 매개의 역량이 요청된다. 
    〈당선자 없음〉은 제정헌법을 만들던 상황을 재현 형식으로 삽입하는 한편, 현실에서 이를 다루던 자의 죽음 이후에 이를 다시 추적한다는 점에서, 두 다른 시간을 ‘매개’한다. 이는 역사와 현실을 따로 또 같이 매끈한 서사로 봉합하는 것에서 거리를 두며, 현재와의 간극을 상정하여 진실임 직함 자체를 질문하는, 진리에 대한 탐구 의지를 가진 역사가의 자리를 상기시킨다. 곧 〈당선자 없음〉은 스스로를 재현의 주체로 두며, 그 재현 자체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라미효 작가 역의 이주영 배우, 박연수 피디 역의 박수진 배우, 방송국 국장 역의 김상보 배우, 금윤형 교수 역의 황은후 배우.

    그러한 ‘매개자’의 눈에서 역사가 뭔가 어이없고 우스꽝스러운 광경으로 펼쳐진다면, 현재는 비장하고 암울한 존재들의 목소리로 채워진다. 이 두 ‘다른’ 시간 사이에서 〈당선자 없음〉은 1963년 개정헌법에서 삭제되었지만, 당시 사기업에서 근로자가 동일한 이익 점유의 권리를 보장하는 기초가 되는 “이익균점권”이 있었던 사실을 밝힌다. 이로써 현행 헌법의 노동자에 대한 이념적 공백은 더욱 커진다. 
    〈당선자 없음〉의 복잡다단한 서사의 가지들은 역사와 현재, 그 두 다른 시간의 매끈한 봉합이 불가능하다는 것에서 오며, 이는 근대의 균열적 기원과 그 초상에서 일정 부분 연유한다. 또한 자본주의적인 사회 구조가 자연스러운 사회 체제로 연장되었을 어떤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기원을 짐작하게 한다. 반면 현재는 현실적인 여러 문제를 수반하며 이 원인을 모두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 법에 대한 정의(定意)와 법으로 연장되는 정의(定義)를 구현하는 것 사이의 어떤 간극 역시 있다. 법의 명시된 이념과 바깥의 언어를 재구성하는 이념으로서의 법은 다르다. 

    계약직으로 일하는 방송국에서의 작가/PD의 열악한 지위와 내용에 대한 검열은 각각 현실에 안착하지 못하는 예술가의 삶과 블랙리스트 사태의 맥락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지만, 이는 일단 역사 차원의 연결을 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제정헌법이라는 내용을 다루는 자들의 현실이라는 외피를 입고 있으며 이로써 다시 제정헌법, 더 정확히는 헌법의 이념에서 배제된 자의 자리로 돌아오게 되며―‘당선자 없음’은 이러한 역사의 비가시적 주체에 대한 비판적 회의가 옮겨진 것이다.―, 과거와 현실은 유착된다. 동시에 헌법의 이념으로부터 역사의 이념을 구성한다.

    여기서 방송국 바깥에서 투쟁하는 동료들을 앞두고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자의 입장은 한층 더 복잡미묘하며, 이는 예술의 직접적인 사회적 개입의 필요성―‘예술은 사회에서 실제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며, 이는 예술가의 역할이 아니다.―과 사회적 의제를 다루는 예술의 형식―예술이 할 수 있는 하나의 본분이며 그것을 넘어서는 것은 예술의 역할이 아니다.―사이에서 예술가의 정체성에 대한 화두를 전제한다. 이정 피디―그를 연기하는 배우는 무대에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장에서 파업에 참여한 동료들에게는 동등한 노동자의 위치를 벗어나 연대를 부정하는 행위로도 보임을 그 스스로 이미 잘 인지하고 있을 것이며, 실질적으로는 방송국 상부에서의 불합리한 내용 검열과 비정규직에 대한 보상 억제로의 보복을 모두 감내해야 하는 곤궁함에 놓인 상황이다. 그의 죽음 이후에 자리하는 라미효 작가―이주영 배우―는 리정 피디에 대한 애도와 회의가 전제된 하나의 증상으로 자리한다.

    라 작가의 모습을 통해 〈당선자 없음〉은 현재의 우울한 타자의 형상으로부터 괴로워하는 한편, 거기서 헤어나올 수 없는 현재를 상정한다. 하지만 현실은 역사가 되기 이전이며 따라서 명확하지 않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당선자 없음〉은 미래의 자리를 현재에 수행적으로 구성하며 선취한다. 그것은 공연의 끄트머리에 삽입되며, 박연수 피디―박수진 배우―가 말없이 의자를 놓으며 배제된 자의 몫을 구성하는 것으로 시작한다―절단된 역사를 재개하며 또한 현실의 투쟁을 대리하며, 나아가 라 작가의 우울을 절단하며 그 의자들은 묵묵하게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드러내며 무대에 놓인다. 
    1948년 국회 본회의에서 국회의원들이 노동자와 농민 등의 당사자에 대한 목소리를 대변하고 논의하며 제정헌법에 이익균점권이 만들어지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국회의사록의 당시 발언들이 현재의 목소리로 옮겨진다. 곧 오늘을 사는 ‘극장 바깥의’ 다양한 인간 군상이 그 당시의 의사록을 읽는다. 이는 무대 바깥의 관객에 대응하는 하나의 의사-현실과 그들의 의사-수행성의 창출에 가까운데, 이로써 정치의 직접적인 발화의 위치에 있지 않은 수많은 사람의 릴레이 낭독을 곧장 정치의 형상으로 주조하는 것이다. 곧 이들은 각자의 의견 개진―수집―의 개체로 분화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역사의 타자를 연기함으로써 또 다른 타자―수많은 하나의 존재―를 대리하게 되는 것이다. 

    〈당선자 없음〉은 마지막의 시공간적 ‘비약’을 통해(과거로 동시에 현실로) 역사의 예외적 목소리를 되살리며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을 자의 미래의 자리를 마련한다. 곧 그러한 발화의 내용 자체를 정치로 규정하지는 않지만, 그 각각의 고유성 자체를 긍정하는 것으로부터 미학을 정치화한다. 모든 사람은 그 자체로 존재 의의를 가지며 동등한 발언 기회를 가진다. 그것은 심미적인 장면으로 부각된다. 거기에는 투표권이 없는 어린아이, 장애가 있는 사람, 〈당선자 없음〉에 참여한 여러 스태프 등으로, 차별 금지법에 대한 현재의 목소리를 수용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갑작스러운 현실로의 점프, 무엇보다 매체의 예고 없는 변환은 또는 극장의 배우들의 사라짐은, 미학적으로 또한 생경함을 준다―연극의 어떤 한계, 곧 배우로서 일정한 시공간을 지속적으로 보충하는 것과 비-배우의 역할을 그와 같은 차원으로 계속 일정한 것으로 반복하는 것, 곧 연기가 아니면서도 자기를 벗어나지 않는 자기를 맡는 역할은 무대로 고스란히 옮겨 올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암전이 아닌 밝기의 극단적 열림 역시 포함한다. 마지막 장면의 삽입을 다른(새로운) 목소리에 대응하는 다른 존재의 형상이 필요했을 수밖에 없었음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노동자의 형상에 인간의 다양체를 결합하며 더 급진적인 정치의 범주를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 필요함을 또는 그렇지 않았을 때 노동자라는 것이 주는 선입견을 다시 한번 반복하는 것임을 물론 인지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당선자 없음〉은 역사의 플롯을 일종의 증거자료처럼 ‘재생’하고 마지막에 역사를 현재의 ‘사람’들로 연기하게 한다. 여기서 극장은 재현의 장소가 된다, 역사를 파편들의 모음으로 분해, 그리고 ‘연결’함으로써 또는 비-연기의 영역에서 수행적 역량 자체를 보여주면서. 〈당선자 없음〉은 역사를 다시 쓰며 현재를 돌파할 힘을 찾는다. 무거운 현실을 짊어진 자들을 바라보면서. 마지막으로 역사와 현실을 잇는 연극으로써 현실을 연극으로 매개하려던 이정 피디와 같이 〈당선자 없음〉은 연극이라는 형식 자체를 가시화한다. 거기에 무엇보다 우리의 자리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명: ‘두산인문극장 2022 공정 Fairness’, 당선자 없음
    공연 일시: 2022.5.17-5.29
    공연 장소: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작·드라마터그: 이양구
    연출: 이연주
    출연: 김상보, 박수진, 신강수, 이윤재, 이주영, 황은후
    조연출·무대감독: 이효진
    무대조감독: 마광현

    무대디자이너: 남경식

    무대제작: 에스테이지(s_TAGe)
    대표: 이윤중
    제작팀장: 정우상
    제작팀: 김세진, 김용선, 남기상, 이승용, 이종민, 정병문, 정우근, 정재현, 차승호
    작화팀장: 이남련
    작화팀: 신혜원, 박윤경, 박지원, 조정숙
    전식: 제이컴
    제작협력: 와스테이지 제이컴

    조명디자이너: 신동선
    조명어시스턴트: 곽태준
    조명오퍼레이터: 권오성
    조명팀: 김지우, 김휘수, 윤혜린, 이택기, 이현직, 정하영, 홍유진, 홍주희

    음향 디자이너: 목소
    음향·영상 오퍼레이터: 임민정
    음향팀: 박진아, 정하윤

    영상제작감독: 강상우, 김동현

    영상기술감독: 윤민철

    의상디자이너: 김우성

    분장·소품 디자이너: 장경숙
    소품팀: 박진경

    일본어 대사 번역: 정하민
    일본어 대사 지도: 강유미

    영상·음성 출연: 강상우, 강유미, 강혜숙, 김다함, 김소원, 김은하수, 배춘환, 숙희, 신동선, 이양구, 이옥노, 이효진, 임영수, 조마리, 조인, 하지성, 홍유진
    촬영 협조: 보탬상점 사계절출판사
    촬영 도움: 김엘리, 김태희, 공현, 박지영, 이현진, 장이정수

    도움: 김주범 변호사 

    〈배리어프리 제작〉
    접근성 매니저: 강예슬
    배리어프리 협력: 공인수어통번역 잘함
    수어 통역: 김홍남, 최황순, 이수현
    음성해설: 유주현
    한글 자막: 강예슬, 임민정
    한글 자막 오퍼레이터: 이청
    공연 안내 영상 수어통역: 조영균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베르크
    사진 기록: 서울사진관
    영상 기록: 다이핀
    인쇄: 청산인쇄
    기획·제작: 두산아트센터
    후원: 두산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