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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진모, 〈끝이야 시작이야〉: 연극에 대한 극장의 언설
    REVIEW/Theater 2022. 6. 16. 18:59

    전진모 작/연출, 연극 〈끝이야 시작이야〉[사진 제공=신촌극장](이하 상동). (사진 왼쪽부터) 윤정로, 송철호, 김은지 배우.

    〈끝이야 시작이야〉는 연극 이전에 자리하는 극장에 대한 거대한 언설이다. 또는 일상을 빌려와서 극장에 두는 작은 시도이다. 김은지, 송철호, 윤정로 배우 세 명은 매끄러운 서사의 당위를 갖지 않는, 일상의 파편들이 급격히 분절되는 상황 속에서 이전의 시간을 빌려온다. 그들은 서사의 중간에 위치하지 못하며 서사의 시작이자 끝인 어떤 모호함에 자리해야 한다. 분명하게 서사를 매개하는 대신 흐리멍덩한 서사에 적응해야 한다. 따라서 이들은 극장에 놓여 있으며, 그 놓여 있음에 대한 전사를 사유하는 것으로 연기를 대신해야 한다. 

    처음 송철호와 윤정로는 극장 바닥에 놓인 하얀 페인트를 부어 놓은 투명 플라스틱 통에 페인트를 묻혀 긴 롤러로 극장 벽을 칠한다. 아니 아무것도 안 묻은 롤러로 벽을 칠하는 행위를 정성스레 연기한다. 이러한 장면은 꽤 길게 진행되어 그 변화 없는 시각적 풍경과 반복되는 운동의 모습으로부터 관객이 ‘멍’한 단계로 넘어갈 것을 요청한다. 결과적으로 현실을 재현하면서 연극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하나의 리얼로 구성하려는 몸부림이다. 

    송철호는 맥주 바를 운영하고, 윤정로와 김은지는 그곳의 단골손님으로 보인다.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다보는 존재들은 이전의 시간을 지속하는 셈이지만 이는 다시 이후의 시간이 도래함으로 전환된다. 그 멈춤(pause)은 어떤 것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두 시간을 겹쳐 놓는다. 이러한 텅 빈 행위에서, 미세한 시간의 변경들이라는 연극의 규칙 자체는 주로 윤정로의 시점에서 인지되어 매개되는 것으로 제시된다. 어느 순간 공간과 시간이 바뀌어 있고, ‘나’는 그 상황을 마주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내가 이 상황 속에서 하고 있는 멍이라는 행위, 다른 세계로의 이동에 상응한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맥주를 마시고 흡연을 하는 곳 바깥에 위치한다. 반면 그들은 그 밖의 컨텍스트를 전연 가져오지 않으면서 또 다른 일상의 시간을 허공에 겹쳐 놓는다. 가게를 십 년이나 운영한 것의 어려움은 이 작품을 쓴 전진모 연출이 신촌극장을 운영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우연히 셋이서 저녁을 먹으려던 차에 주변에 있던 가게들이 없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공간 운영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윤정로가 차를 파는 가게를 운영한다는 사실 하나가 더해지며 극은 마무리된다. 하지만 앞선 맥락이 사회적인 의제나 메시지로 연장되는 것 역시 아니다. 또한 인물 간의 관계의 전사가 드러나거나 남녀 간의 관계가 깊어지는 것 역시 아니다. 

    다시 극장 벽을 페인트칠하는 행위를 두 사람이 시작하고, 조명이 꺼진다. 보이지 않는 벽에는 진짜 물감이 칠해진다는 느낌에 더 근접해진다. 물론 이는 물감이 실제 칠해지는 것과 칠해지지 않는 미세한 두께의 더해짐과 끈기를 식별하지 못할 정도의 어둠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감각의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의 어둠은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희미한 어둠에 무언가가 분명히 더해진다. 그것은 곧 벽에 어둠을 더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역시나 창문을 반드시 열어젖히게 된다. 그 빛에 무언가가 달라진 것은 없다. 반면 환기는 그 미세한 효과를 수용하기 전에 또 다른 극장의 진실을 열어젖히는 것과 같다. 

    양쪽 문을 열어놓은 채 진행하며 들어오는 빛은 반 야외 공간으로서 현실을 극장에 끌어들이는 장치이다. 그 말과 인물들이 현실을 입고 있고, 그 다른 맥락의 무엇도 현실을 넘어서려는, 극장을 새로운 시공간으로 바꾸려는, 판타지로 공간을 덮으려는 시도를 될 수 있으면 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과 같다. 아마도 이는 신촌극장이라는 장소의 문법에 대한, 여러 숱한 용례를 보면서 또 반복할 수밖에 없는, 어떤 실천일 것이다―전윤환의 〈자연빵〉(2021), 이양희, 〈A Hedonist〉(2022) 등 다양한 공연이 창문을 공연 중에 열어젖히고는 했다. 
    이는 현실에 무대를 여는 행위라면, 담배를 피우는 윤정로와 김은지에게 가해지는 조명은, 곧 실제 담배를 피우지는 않지만 그 숨을 연기로 바꾸는 효과를 자아냄은, 앞선 페인트칠과 같이, 무대를 현실로 치환하는 행위일 것이다. 〈끝이야 시작이야〉는 최소한의 구문과 행위, 존재 그 자체의 머무름만으로 극장에서 무언가가 발생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최소한의 극장이다. 동시에 극장 자체가 연극이 되는 경로를 만드는 것과 같다. 

    〈끝이야 시작이야〉는 ‘연극’에 대한 작은 콩트 같은 극이다. 연극을 언명하기 위해 극장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일상’을 수행하는 몸짓으로. 또 일상의 작은 틈새를 만드는 한 숨으로. 말이 없는 시간―조명―의 전환으로. 극장은 분절된다. 그렇게 일상이 흘러간다. 측정할 수 없는 시간이 쌓이며 동시에 사라진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명: 신촌극장 라인업, 〈끝이야 시작이야〉
    공연 일시: 2022년 6월 5일(일) - 6월 12일(일) 일-금 19:00. 토 15:00. �12(일) 15:00, 19:00 (총 9회 / 약 60분)
    공연 장소: 신촌극장(서대문구 연세로13길 17 4층 옥탑)
    출연: 송철호, 윤정로, 김은지
    사운드: 목소
    조명: 서가영 
    무대감독: 박진아
    오퍼레이팅: 박세련
    진행: 김신우, 한지혜
    영상기록: 최윤석
    조연출: 조다은
    글/연출: 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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