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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소년극 《트랙터》: ‘희미한 연결들’
    REVIEW/Theater 2022. 6. 16. 18:40

    청소년극 단만극 연작 《트랙터》 중 〈7906번 버스〉(한현주 작)[사진 제공=국립극단](이하 상동). (사진 왼쪽부터) 운전기사 자은 역의 박은경 배우, 고등학생 세영 역의 신윤지 배우, 은호 역의 최상현 배우.


    청소년극 단만극 연작 《트랙터》는 세 명의 희곡 작가가 쓴 세 개의 작업이 하나의 작업으로 연결되어 있다. 처음부터 철저하게 의도된 것이라기보다는 한 명의 연출이자 동일한 배우들, 그리고 희곡 작가들의 교류가 접점에 대한 인지를 만들어 낸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구성의 차원에서 세 작업의 특징과 그에 따른 순서의 지정은 세 다른 공연의 연결에서도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 냈다고 할 것이다. 

    〈7906번 버스〉(한현주 작)가 멈춘 버스의 장소, 곧 일종의 비-장소에서 고등학생 세영(신윤지 배우)과 은호(최상현 배우), 운전기사 자은(박은경 배우)은 재난과 사고에 대한 개인의 트라우마를 공유하게 된다. 처음 자신이 사는 곳 공사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쓰러지며 자신이 탄 버스를 덮친 사고를 이야기하는 세영은, 고등학생 특유의 태도와 비교적 담담한 성격을 보인다.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는데, 세영이 겪은 사고를 인터넷 기사로 접한 이후, 1995년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에 대한 은호의 강박증적 트라우마를 끄집어냈음 역시 드러나고, 가장 마지막으로 자신의 딸을 음주 운전 교통사고로 잃은 자은의 슬픔 역시 드러나는 것이 그것이다. 

    멈춰 버린 시공간, 우연히 얽힌 관계의 알레고리는 동시대의 재난 서사를 미시적이고 또 거시적으로 엮어낸다. 우울의 증상과 애도의 정서는 세대에 따라 분리되어 있으며, 직접적인 피해자는 청소년에 국한되며 그 사고의 책임자와 그와 연관되어 애도를 하게 되는 주체는 어른으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이 셋의 만남에 의해 우울과 애도는 절합되어 하나의 시대를 갈음한다. 
    곧 사고에 대한 직접적 체험―세영―과 사건 이후를 사는 사람들―은호와 자은―의 두 다른 양상에서, 은호에게 주어진 사건은 조금 더 보편적인 범주의 것이지만 그의 반응은 예외적인 것으로, 그 예외적인 것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시대적인 공통의 트라우마를 명시해주는 것이라면, 자은의 애도는 개인적인 것이고 따라서 예외적인 것이지만 보편적으로 겪는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두 존재의 만남은 해소되지 않는 개인들의 고통과 아픔의 다른 범주를 무언가 연결하는 느낌을 수여한다. 

    청소년극 단만극 연작 《트랙터》 중 〈빵과 텐트〉(허선혜 작)[사진 제공=국립극단](이하 상동). (사진 왼쪽부터) 배우 역의 송석근 배우, 소녀 역의 박은경 배우.

    〈빵과 텐트〉(허선혜 작)는 비교적 사회적인 리얼리티를 시대적인 우울과 애도를 하나의 성좌로 이어내며 보편 차원으로 연장하는 〈7906번 버스〉에 비해, 판타지의 시공간을 열어젖힌다. 이는 현실에서 판타지로 이행하는 〈하얗고 작은 점〉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연장된다. 〈빵과 텐트〉는 공간과 결부된 움직임이 꽤 역동적이다. 구불구불하고 경사진 비정형의 하얀 공간은 바닷가―시칠리아 해변―의 바위들의 환유물과 같은 공간이 되기도 하는데, 그 일종의 커다란 구조물의 굴국에 맞춰 어포던스적인 움직임이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박은경 배우의 연기는 버스 기사에서 소녀로 변화하면서 24시간 기아체험에서 초대 가수로 공연을 하고 몰래 텐트에 들어와 빵 하나를 먹으려던 배우(송석근 배우)의 행위를 방해하면서, 갑작스럽게 새로운 세계로 여행을 하게 된다. 이는 문학적인 상상력이 연극의 움직임으로 적극적으로 옮겨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기의 첫 번째 단어 “오늘”의 “ㅇ” 속에 여러 세계가 있다. 소녀는 몸이 없음을 역설한다. 곧 소녀의 몸이 없음은 어딘가에도 위치할 수 있는 유동적인 신체에 대한 문학적 알레고리 자체이다. 

    소녀의 어떤 역할을 해도 배우 자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메소드) 연기를 잘 하지 못하는 배우에 대한 어떤 ‘궤변’은, 결과적으로 몸을 잃어버린 소녀의 의식―소망―을 반영하는 대신, 남자의 주체로서의 영도를 탐사하는 가운데 남자의 곤궁을 향한다. 소녀의 몸을 찾기 위해 떠나는 여행은 배우가 타자의 세계를 함입하지 못하는, ‘중심’을 잃지 못하는 자가 중심을 하염없이 잃고 헤매는 과정을 통해 몸의 다양성과 역동적인 변경을 체험하는 확장의 체험을 하게 되는 것으로, 그 대상이 소녀에서 배우로 반전되고, 남자는 배우를 ‘실천’한다. 의도치 않게 남자는 연극의 한가운데 있으며, 그 연극이 이끄는 곳에 자신을 정착시켜야 한다.

    청소년극 단만극 연작 《트랙터》 중 〈하얗고 작은 점〉(나수민 작)[사진 제공=국립극단](이하 상동). 중학생 강준 역의 최상현 배우.

    〈하얗고 작은 점〉(나수민 작)에서 제목은 중학생 강준(최상현 배우)의 엄마(신윤지 배우)의 유방에 생긴 결절을 일차적으로 의미한다. X선 모니터를 빤히 바라보던 강준은 (X자가 그어진 종이상자로 된) 모니터로 머리를 박고 이를 뚫고 나간다. 그리고 물속에서 유방암 절제 수술을 엄마를 둔 최근 가슴이 성장하고 있는 동년배 지오(박은경 배우)를 만난다. 〈빵과 텐트〉에서의 세계의 변경이 물리적인 공간에의 수행성으로 펼쳐진다는 점에서 무대를 객석으로 곧장 연장한다면―곧 열어젖혀 일시적으로 트인 무대의 특성은 트랙터라는 밴드의 공통분모를 만드는, 몇 번의 등장인물들의 랩과 음악의 콘서트로 이어진다.―, 〈하얗고 작은 점〉은 극장의 경계 너머라는 알레고리를 전제한 채 (암전과 조명의 변화를 통한) 또 다른 세계로의 심리적 변경을 가설한다. 

    (사진 왼쪽부터) 지오 역의 박은경 배우, 중학생 강준 역의 최상현 배우.

    ‘트랙터’라는 이름은 농촌에서 덜덜거리며 짐을 싣고 가는 느린 자동차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명명은 각기 다른 세 작업과의 특정 연관성을 가지지 않으면서, 이 셋을 그다지 매끈하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끌고 가는 잠재적인 역량의 기호를 의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말 그대로 《트랙터》는 각기 다른 희곡을 무대―아마도 트랙터의 짐칸―에 싣는다. 노래라는 공통점으로 연결성을 가져가기도 하지만, 《트랙터》에서 세 개의 희곡은 다른 희곡과 연결된다기보다는 어떤 희미한 연결점을 통해 각자의 특징을 더 명확하게 구성한다. 

    ‘청소년극’은 표층적으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공연, 혹은 청소년을 소재로 한 공연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청소년극은 청소년의 환경과 현실, 언어 등이 ‘성인’의 그것에 비해 제대로 재현, 번역되지 않고 있음의 전제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도 하다. 청소년극을 만드는 주체는 성인일 것이기 때문이다. 청소년이라는 일종의 타자를 성찰, 사유, 나아가 소통하는 시도 속에서 보이지 않는 현실, 공고하거나 고착된 ‘어른’의 현실 너머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는 청소년에 대한 재현이 아니라 청소년을 포함한 세계의 더 나은 번역일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 일시: 2022.5.19.(목)~6.12.(일) 평일 19시 30분 / 토, 일 15시 (화 공연없음) * 5.26.(목), 6.6.(월) 현충일 15시, 6.1.(수) 전국동시지방선거일 19시 30분
    공연 장소: 국립극단 소극장 판
    작: 한현주, 허선혜, 나수민 
    연출: 권영호 

    출연진
    박은경, 송석근, 신윤지, 최상현

    스태프
    드라마트루그: 김옥란
    무대 디자인: 신나경
    조명 디자인: 김재억
    의상/소품 디자인: 이은경
    작곡/음악: 유태선
    음향 디자인: 김서영
    교육 감독: 손서희
    조연출: 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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