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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랙×남장신사〉(드랙바이남장신사): 수행성, 발화, 매개의 지층들
    REVIEW/Performance 2022. 6. 16. 20:24

    〈드랙x남장신사〉ⓒ양승욱 작가[사진 제공=〈드랙x남장신사〉 기획](이하 상동).  ‘레스보스’라는 바를 운영 중인 윤김명우 역의 윤김명우.

    〈드랙×남장신사〉는 실제 여성 퀴어의 발화와 무대를 고스란히 극장에 투여한다―무대 위의 수행성이 또 관객의 참여적 몫이 어떻게 효과를 가져갈 수 있을지에 대해 인상적인 예시를 제공한다. 처음 이십 년째 퀴어들을 대상으로 한 ‘레스보스’라는 바를 운영 중인 바지씨 윤김명우에 대한 생애사 재현에서 레스보스 시절 퀴어들의 만남으로 ‘바지씨’에 대한 정의를 탐구할 때까지 어느 정도 재현의 틀 안에서 극을 구성하려 했다면, 이후 〈드랙×남장신사〉는 윤김명우의 노래―〈세월이 가면〉―와 이하 독보적인 세 명의 출연으로 계속 판을 갈아엎고 쇄신하기에 이른다. 

    사진 중앙의 퍼포머가 봉레오.

    〈드랙×남장신사〉는 당사자의 장을 열어주는 것으로 “드랙”을 대신한다. 그건 법적 성별에 전략적으로 균열을 일으키는 의상과 분장을 바탕으로 한 노래와 춤/움직임 따위의 기존 정의를 넘어 무대에 그 자신을 드러내는 전략으로 전유된다. 모두는 자신을 연기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사회적으로 재확인받는다. ‘정체성 다지기’의 차원에서 관객으로부터의 강력한 운동성이 발휘된다. 따라서 〈드랙×남장신사〉는 ‘다른’ 관객, 퀴어 당사자성을 지니거나 이를 이해하는 관객을 상대로 설명적이거나 재현적이기보다는 수행적이고 현장성 있는 발화로 일관한다. 전략이 형식보다, 존재가 역할보다 우위에 있다. 각자의 순전한 정체성을 당연하게 인정받고 그러기 위해 과감하게 연대를 하겠다는 어떤 정동은, 그들의 발화를 짜릿하게 흡수한다. 

    (사진 왼쪽부터) 이효진, 권은혜, 이리 배우.

    아마 그런 와중에서 극 형식 자체의 막바지―이는 물론 극의 전체로 보면 전반부이다.―에서 어떤 질문이 강조되는 부분으로, ‘부치’로서의 자기 물음을 반복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통상적인 외부의 개념(‘부치는 전형적인 ‘남자’의 개념을 반복한다.’)을 빌려오며 이와 충돌시킴으로써(‘부치는 부치이다!’) 오히려 이분법적인 성별의 관념을 내파하기에 이르게 된다(‘부치라는 개념이 있고, 뒤이어 남자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자기 자신을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로, 사실 철학적인 언어를 구성하기 전에, 관객의 환호로 곧장 수용된다―또는 수용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한 결론은 부정합적인 전개 대신에 곧바로 퀴어-관객으로 확장되는 일종의 ‘정신 승리’로도 볼 수 있지만, 이는 부정적 의미라기보다 퀴어라는 성 자체에 대한 가스라이팅/굴레를 극복하는 단초가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적’에게 논리적인 설득이 아니라 나는 너의 전제를 따르지 않겠다라는 확신과 확언이 더 중요해진다. 

    1세대 트랜스젠더 퍼포머 색자.

    네 명의 존재, 레즈비언을 비롯한 모든 퀴어를 환영하는 ‘레스보스’의 운영자 윤김명우, 1세대 트랜스젠더 퍼포머 색자, 8%에 불과한 여성 소방관이자 성소수자부모모임의 활동가인 나비와 퀴어한 춤을 추는 봉레오, 그리고 이들과 마치 대응되면서 그 사이에서 퀴어를 매개하는 권은혜, 이리, 이효진 배우, 아장맨, 그리고 연주와 함께 때로 노래로 객석을 전염시키는 안마루, 이지구가 무대를 채운다. 특히 각기 다른 퀴어 정체성의 컬렉션은 퀴어라는 존재를 하나로 판별하지 않고, 더 다양한 주체가 양립할 수 있는 세계의 일환을 보여준다. 드랙은 발화 형식으로서 공통분모를 이루지만, 공연의 최종 형식이라기보다 그 배면의 발화와 또는 재현과 양립한다. 그 둘은 서로와 관계 맺지 않지만, 그 두 모습, 곧 발화의 인간적인 무엇과 쇼의 퍼포머티브적인 무엇은 서로를 설명하지 않으면서 각각 무대를 설득하거나 무대를 압도한다. 

    8%에 불과한 여성 소방관이자 성소수자부모모임의 활동가인 나비.

    윤김명우는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보다 (주로 녹음을 통해 전달되거나 극적 형식에서) 재현 대상으로 무대에 함께 위치하며 이리 배우와 묘한 중첩을 이루는데, 그러한 대칭적인 중첩은 또한 이리 배우를 단순히 재현하는 존재가 아니라 재현을 할 수 있는 존재로 고양한다. 색자는 좋아하던 남자를 만났던 기억과 사랑에 매달리기보다 자신의 꿈을 향해 열심히 매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다카라즈카 극단을 보고 감화되었던 경험이 단초가 되었다고 하는데) 페도라와 남성 양복을 착장한 그는 ‘남성적’인 음색과 신사적인 기품으로 무대를 채운다. 
    퀴어의 당사자성을 갖지 않은 유일한 존재인 ‘나비’와 봉레오의 모자 관계가 이야기되면서부터(레오는 드랙의 무대를 발화에 앞세운다.) 나비는 퀴어 공동체 관객과 그 바깥의 사회 사이의 매개―전자에서 후자로의―적인 존재로 위치하게 된다. 따라서 그는 이 퀴어 사회의 어떤 한계를 확장하며 그것에 조력하는, 퀴어가 아닌 존재 자체가 있다는 것의 울림을 안으로 가져다 놓는 존재로서, 환영을 받는다. 구원과 진정한 연대가 상응하는 현재의 시점에 그는 서며, 극장의 바깥을 사유하는 단초가 제시된다. 

    (사진 왼쪽부터) 이효진, 권은혜 배우, 안마루 음악가, 이리 배우, 이지구 음악가, 아장맨.

    〈드랙×남장신사〉는 재현으로써 존재의 언어에 다가서며 그 존재에 대한 매개물로서 사라진다―윤김명우. 이러한 (시간 차원에서) 반절의 매개 행위는 이후의 판을 열어놓되 독특한 주체의 효과를 또 질문을 구성한다. 이는 어떤 이념형적인 퀴어에 대한 재현이면서 퀴어에 대한 전유이기도 하다는 점에서―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으로부터의 수행이나 발화가 아니기 때문에 그 배우가 퀴어인지 아닌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 전유의 몫에 투여할 관객의 수행성의 여지가 생겨난다. 그것은 극단적인 연기, 또 과장된 재현과 함께 증폭된다. 그 ‘이후의’ 퀴어-존재들의 판은 현재의 시간을 증여한다―윤김명우 이후의 무대들. 존재들은 행위의 주체가 되고 이는 그 외의 존재들을 수행하고 연장하며 나아가 하나의 일시적인 공동체를 규합한다. 

     

    나비.

    그리고 마지막의 구원적 매개자의 등장은 그 외부를 상상하고 그 외부에 대한 적대를 내파할 힘을 앞선 전유 및 발화 전략으로부터 연장해서 마침내 완성한다―나아가 그 역시 드랙을 통해 표현형 무대를 만들고 이로써 퀴어적 존재로 전이되고, 이는 그 자신에게도 힘을 부여한다. 전유는 ‘퀴어적’ 행위의 이상성을 상쇄할 전략이나 부정적 시선을 벗어나서 그것을 객관화하며 문화적인 지층으로 분류하고 나아가 자연스러운 현실로 무대에 재기입한다. 그것은 그 자체로 수행성의 놀이이며 비-퀴어의 현실 바깥의 현실을 무대 위에 ‘구성’하며 스스로 용인한다. 무대 위 존재들은 자신을 호명하며 수행하고 지시한다. 이러한 전유의 시간들, 그리고 ‘용기’ 있는 삶의 발화에 더해, 마지막 무대는 그것을 그 바깥에서도 용인하고 말할 수 있음을 주지하면서 자신들의 힘을 새로운 역사의 물결에서 온당히 위치시킬 수 있음을 ‘상상’한다. 이러한 과정은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향하는 특별한 서사의 지층을 이룬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드랙x남장신사〉 포스터.

    [공연 개요]

    공연명: 〈드랙×남장신사〉(드랙바이남장신사) 
    공연 일시: 6월 10일 오후 8시(20시), 6월 11일 오후 4시(16시), 6월 12일 오후 4시(16시)
    공연 장소: 서강대 메리홀
    출연: 권은혜, 나비, 봉레오, 색자, 아장맨, 윤김명우, 이리, 이효진
    연주: 안마루, 이지구
    수어통역: 김보석, 남진영
    작: 김다원, 문상훈
    연출: 구자혜
    조연출: 김효진
    음악감독: 이지구, 안마루
    조명디자인: 윤혜린
    음향감독: 이현석
    안무: 라소영
    드랙 메이크업: 판
    무대감독: 박진아
    무대조감독: 박정우
    사진: 김지혜, 양승욱
    홍보물디자인: 주지윤
    기획: 문상훈, 김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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