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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석주 작/연출, 〈들뜬〉: 촉각의 연극
    REVIEW/Theater 2022. 8. 29. 21:10

    떠도는 이야기들을 쓸어 담는 공간-신체

    김석주 작/연출, 〈들뜬〉[사진 제공=극단 동](이하 상동). (사진 왼쪽부터) 김정아, 최태용 배우.

    〈들뜬〉은 짐을 다 뺀 황량한 집에서 시작한다. 이는 물론 소극장의 검은 바닥 자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물론 방이 아닌 다른 공간은 아니다. 남자의 맨발은 그것을 지시한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배우의 현존은 장소로부터 체결된다.’ 아마도 이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남자는 오랜만에 아내인 여자를 맞는다. 여자의 머리 위에 센서 등이 깜빡인다. 남자(최태용 배우)는 한참 동안 여자(김정아 배우)를 마주하지만 그를 응시하지는 않은 채 그 자리에 있다. 그는 허공을 보는 것 같지만, 사실 공간 안의 한 점을 보고 있다. 이 짧은 순간을 비교적 길게 늘이며 공간이 그의 몸에 담긴다. 
    시간이 멈추고 멈췄던 시간이 몰려온다. 〈들뜬〉은 발화를 통한 배우의 현존이 아니라 회상적 기억이 배우의 신체와 현재를 장악하는 순간들을 보여준다. 여기서 발화가 공간에 의존하며 공간이 발화와 함께 펼쳐지고 있음이 드러난다. 회상적 기억은 신체가 무언가와 닿는 그 순간에 발생한다. 기억은 촉각에 의지한다. 촉각은 기억을 촉발하며 완성하는 기억의 지지체가 된다. 오이를 먹거나 호떡을 한입 베어 물거나 할 때 이들은 그 맛을 음미한다기보다는 사유를 연속한다. 곧 어떤 것이 신체와 닿을 때 사유를 감각하는 차원에서 먹을거리가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처음 〈들뜬〉은 포스터에 나온 것처럼 바닥에 누운 남자의 하반신을 보여준다. 상반신은 전혀 알 수 없다. 그것은 마치 하반신만 잘려서 드러나는 듯 보인다. 하반신은 약간 바닥에서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바닥에 몸을 늘어뜨린 게 아니라 두 다리를 띄우고 있는 게 맞다. 남자의 사물화는 남자의 무의식의 영역이 그의 의지에 의해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과 유사하다. 그것은 그의 바깥에서 그의 안으로 침투한다. 이는 회상적 기억의 존재이다. 남자는 천장에서 남자의 하반신을 본다. 그 하반신은 상반신을 보여주지 않으므로 상반신이 이 층과 위층 사이에 위치하는지 아래층에서 온전히 빠져나갔는지 혼동하며 추정하게 할 수 있다. 
    한편 이 누드는 어렸을 적 성기를 줄에 문대며 타잔을 흉내 내다 아버지에게 맞았던 남자의 경험과 자신의 친구가 입었던 티팬티를 보고 놀란 여자의 경험처럼 성을 불문하고 성기라는 메타포와 일관되게 연관된다. 성적 경험은 그 자체로 억압되거나 또는 억압되는 과정을 직접 겪는 가운데, 성 분출의 다른 경로를 구성했을 것이다. 특이한 건 〈들뜬〉은 이 두 성 경험에 대한 해제를 하기보다는 그 이야기를 하는 두 사람의 우연한 동시성에 주목하게 한다는 것인데, 이 둘이 자식을 잃은 부부의 어떤 회한을 이야기한다거나 둘의 관계에서 있었던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대신에 (그럼으로써 리얼리즘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를 폭발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대신에) 자신의 무의식의 지층을 건드리는 회상적 기억을 공유하는 이야기꾼의 역할로서 둘을 배치해 그 둘의 신체에 ‘우연하게도’ 이야기가 끊임없이 담기는 것이 그러하다. 곧 이 둘은 부모라기보다 파편적 기억들을 떠올리는 나른한 주체로서의 몸뚱어리에 가깝다.

    비닐봉지를 머리에 쓰고 눕혀 놓은 선풍기가 비닐봉지를 미세하게 진동시킬 때 남자의 얼굴은 실루엣으로 흐릿하게 보이고 뒤돌아 앉은 채 남자의 성기께에 시선이 머물러 있는 여자의 얼굴은 물론 보이지 않는다. 선풍기처럼 여자의 신체도 ‘널브러져 있다.’ 얼굴들은 묻히고 또 사라지는 가운데, 떨리는 비닐봉지 소리만이 발화한다. 그 전부터 남자는 선풍기를 기울여 자신의 셔츠 위로 누이며 마치 선풍기를 존재인 양 다뤘다. 물론 두 얼굴은 남자와 여자의 배치같이 마주하지 않고 비스듬하게 교차한다. 
    “상상력”은 둘이서 파란 실을 감으며 바다를 불러오는 것으로도 연장된다. 여기서 상상력은 무의식의 범주와는 조금 다른, 적극적인 의식의 주창을 가져오고자 하는 능동의 행위로 구성된다. 반면 상상적 도식은 신체의 분절화를 통해 언캐니한 이미지를 구성한다. 그것은 무의식의 잔여물 같은 것으로, 또한 문득 바라다보이는 균열을 안고 있는 실재에 가깝다. 

    〈들뜬〉은 하나로 서사를 잇는 중심 서사가 없다. 다만 중심 이미지와 단어가 그것들을 흐릿하게 연동하는 데 그친다. 이 나누어진 서사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간을 머금는 신체로부터 나와 떠도는 것들이 된다. 분명한 건 없지만 각각의 이야기는 안착된다. 이 두 주체를 향하기보다 그것은 내밀한 우리 의식 바깥을 건드리는 것으로 나아간다. 조명은 시종일관 켜져 있다. 그래서 〈들뜬〉을 하나의 서사들로 치환하는 건 이 밝음이다. 공간이 신체로 함입되는 것도 발을 디디고 있거나 신체와 접지된 표면과 사물로부터 연장되는 것 역시도 이러한 밝음 안에서 지지된다. 이곳이 방이고 신체가 목소리와 표정을 담는 하나의 매체이자 감정과 의식만을 주로 반영하지 않는 이미지임을 조명이 드러낸다. 

    포스터상의 “들”과 “뜬” 사이에는 마침표 또는 온점이 있다. “들”과 “뜬”의 사이는 끝나지 않는 침묵, 부재하지 않는 여백을 가리킬 것이다. 천장 위의 벽지가 너덜거리며 흔들리고, 거기에 과거의 존재가, 예측할 수 없는 타자가 부상하게 될 때의 ‘들뜸’의 현상과 막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며 과거의 것이 현재성을 획득할 때의 ‘들뜸’은 다르지만, 그것이 마치 외부로부터 나와 거리를 두며 침투하는 무엇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들뜬〉은 다큐멘터리적인 당사자성을 지닌 이야기를 듣게 하기보다는 이야기가 발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말들은 배우의 들뜬 입술 사이로 슬며시 빠져나온다. 말과 성대가 또 말과 입술이 닿는 순간이다. 

    〈들뜬〉은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것은 청각에 내재하지 않는다. 기괴함과 진공의 이미지들을 보여주지만 그것은 시각에 국한되지 않는다. 〈들뜬〉은 차라리 촉각의 연극이다. 공간을 딛는 발, 입을 떼기 전까지 멈추어져 있던 공간의 첫 장면은 발과 입술을, 그것들의 특정한 물리적 진동을 이미지로 바라보게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바닥과 공기에는 어떤 감각이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촉각의 감각은 끊임없이 상기된다. 배우는 무언가에 접지되어 말하며 무언가와 밀착되어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현존의 어떤 재조립, 재구성일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 일시: 2022-08-25 ~ 2022-08-28 목요일 ~ 금요일(20:00), 토요일 ~ 일요일(16:00)
    공연 장소: 예술공간 혜화

    구성/연출: 김석주
    출연: 김정아, 최태용
    드라마투르그: 김기란
    조연출: 이래경
    음악: 옴브레
    조명: 정유석
    홍보영상: 이래경
    디자인: 김정수
    공동 제작: 극단 동, 협동조합 아트컴퍼니 드레
    후원: 통합문화예술교육센터 카에쿱, 내디내만 목공학원
    관람 시간: 1시간 10분
    문의: 02-766-6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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