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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코미디캠프: 파워게임》: 발화하며 현재화되는 경계로서의 ‘극’
    REVIEW/Theater 2022. 8. 29. 20:46

    《2022 코미디캠프: 파워게임》에서 김은한, 〈상식적인 접근〉(2022) ⓒ손영규 [사진 제공=지금아카이브](이하 상동)

    1인극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표방하며 대략 30분 정도의 시간으로 규격화되는 것으로 보이는《2022 코미디캠프: 파워게임》(이하 《코미디캠프》)에서, ‘코미디’라는 장르를 전면에 내세운 건 연극(인) 바깥의 다양한 이야기를 수용할 수 있는 적당한 포장으로도 보인다. 안담을 제외한 김은한, 배선희, 신강수 세 명 모두 평소에는 코미디 바깥에서 연극을 한다―《코미디캠프》에서는 안담이 유일하게 마이크를 사용한다면, 이 셋은 마이크 없이 무대에 선다. 반대로 이들은 《코미디캠프》에서 연극이 아니지만 연극에서 하지 못하는 것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코미디캠프》가 상대하는 건 일종의 연극이고, 《코미디캠프》가 지향하는 건 오히려 연극의 잔여이며 연극 바깥의 존재하지 않는 어떤 연극일지 모른다. 이는 다시 연극의 형식에 다가선다. 오로지 제4의 벽을 지운 것 같은 직접적인 발화 방식을 통해 소극장의 무대를 감화시키고 하나의 집단을 구성하는 효과를 빚어내기 위해 경주하는, 그럼으로써 비로소 ‘관객’을 구성하는 그러한 연극. 반면에 프로덕션이나 팀이 아닌 1인극이라는 효율의 경제는 오히려 작가주의적 성취를,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언어의 구사를, 다양한 전거의 참조 등을 자유롭고 자율적으로 달성한다. 여기서 김진아 연출이 이 넷의 각기 다른 이야기에 어떤 식으로 개입했는지 또는 하나의 종합적 틀을 만들기 위해 이들을 독려했는지 등 어떤 역할을 했을지 궁금함이 생겨난다.

    김은한의 〈상식적인 접근〉은 이 관객이라는 대상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직접 관객의 몸체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탐색한다. 처음에 레크레이션 강사처럼, 본 무대 전에 관객들을 워밍업 차원에서 훈련시키는 역할처럼 그는 일차원적인 관객의 양상을 구성하고자 하고 이에 실패한다―자신이 왼손을 들면 박수를, 오른손을 들면 함성을 이런 식으로 직접적인 관객 반응을 유도한다. 그리고 계속 다른 무대에서도 밈처럼 반복해서 쓰이는 구간인, 마임으로 퇴장해서 문을 열고 공연에 대한 실패를 자책하며 소리를 지르며 절망에 찬 모습을 보이는 장면을 연출한다. 그리고 누군가―일종의 ‘조력자’―의 등장에 의해 코미디 비밀 클럽에 입성하게 된다. 이곳은 하이쿠와 같이 문학에서의 여백이 잔상 효과로 관객에게 전이되는, 음미의 방식이 종용되고 또 통용되는 곳이다. 조금 더 고차원적인 작품 감상을 하는 곳과의 대조 이후, 마지막으로 간 더 은밀한 비밀 클럽에서 그는 어떤 타입을 선택할지 고심하며 왔다 갔다 한다. 
    퇴장 직전과 맞물린 첫 번째 장이 직접적으로 관객을 마주했다면, 두 번째 장 이후부터는 첫 번째 장의 바깥에서 관객이 연극이 ‘재현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관객은 김은한의 과거의 실패를 기록한 현장에 관한 머릿속 기억의 조각이 되고 현재의 시간 바깥에 유령처럼 존재하며 극에 합성된다. 사실상 짧고 추상적인 문장들로 이뤄진 시의 계열인, 따라서 단어와 단어 사이의 여백을 상상력으로 증폭시킬 수 있는, 하이쿠는 〈상식적인 접근〉에서 하나의 예술적 형식일 뿐이며 김은한이 활용 가능한, 선택 가능한 하나의 매체일 뿐이 된다. 
    곧 관객의 기호를 탐색하고 추적하기 위해 예술가는 자신의 고유한 매체 안에 결정되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을 향유하거나 하지 않는 관객이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그의 의심이 무대를 지배하고 있고, 이에 따라 절대적인 관객의 몫을 상대하는 고뇌하는 예술가의 상이 만들어진다. 이는 관객의 애매모호한 반응을 합성하면서 어떤 반응도 이후로는 확신에 차 할 수 없는 관객의 반응을 다시 관객 스스로에게 되돌려주는 것으로 연장된다. 결과적으로 김은한은 실패하는 예술가의 그물망에 관객을 포획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다. 

    《2022 코미디캠프: 파워게임》에서 안담, 〈PowerOFF〉(2022) ⓒ손영규 [사진 제공=지금아카이브](이하 상동)

    안담의 〈PowerOFF〉는 안담이 키우는 개 “무늬”가 함께 주인 안담과 등장한다. 안담의 말은 시종일관 개를 키워서 바깥으로 잘 나갈 수도 없고, 개를 데리고 다니는 것에 절대적인 한계 역시 따르고, 나아가 연애도 할 수 없다는 등의 개인적인 불만을 나열한다. 이는 또 다른 에너지로 굴절되는데, 안담은 담배를 피우며 개를 데리고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자신이 트리플 크라운의 사회적 ‘극혐’이 되는 일이 유일하게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인지하는 일이 된다는 측면에서 너무 기쁘다면서 개에 삶이 묶인 자신의 처지를 자조, 안위한다. 안담 특유의 말투가 있는데, 이는 물론 연극의 그것은 아니지만 다른 누구보다 연극적이다. 안담은 실실 웃으면서 발음을 흘리듯 발음하며 온갖 센 말을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낸다. 페미니즘과 퀴어,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가 부담스럽지 않고 그의 일상과 뒤섞여서 제시된다. 도살장에서 구조돼 분리불안이 있는 무늬를 살펴야 하는 안담은 개를 공연에 동원한다는 혐의를 받을 수 있음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무늬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바꾸어서 말하기도 하고, 무늬에게는 젠더가 이분법적으로 분명하게 나뉘어서 젠더를 “횡단”하지 않는다고도 이야기한다. 

    《코미디캠프》는 대부분 자신의 비밀을 오히려 공론의 장에서 유출하는데, 안담 역시 그러하며, 이는 타인의 은밀한 욕망이나 사생활의 차원에 닿아 있다는 점에서 외설적이다―그 수위가 다소(?) 약한 것으로 보이는 신강수의 사례는 예외적인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 그의 장애 자체를 무대에 올리는 것이 그 주제가 된다는 점에서 그의 이야기는 가장 일관되게 외설적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말들은 일상의 차원에서도 잘 발화되지 않는 차원에서 발설의 수위가 너무 높다는 의구심을 동반하며 동시에 이것이 나의 이야기든 그의 이야기든 잘 말하지 않는 부분이라는 점, 그리고 그 안에서 엄밀히 그것이 자기 기반의 내러티브라는 점에서 아마도 사실일 것임에도 사실인지의 여부를 또한 검증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외설적이다. 
    여기서 한 개인의 이야기가 사회적인 문제로 부상함으로써 갖는 힘이 있다. 사실 여기서 쓴 ‘수위’와 같은 표현 자체가 코미디라는 것이 또한 “상식적인” 수준을 가늠하며 구성되고 또한 검열이 갖는 경계선상에서 검토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사회적인 것을 매개하며 개인적인 것을 발견한다는 차원에서 의미를 획득한다. 어쩌면 사적인 것을 무매개적으로 표출하는 것은 예술에서도 잘 시도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반면 이러한 외설로서의 발화는 퍼포머들이 개인으로서의 위치를 자처하며, 개인과 사회의 경계선상에서 이야기함에서 출현한다. 《코미디캠프》는 이것이 예술이(어서 절대적인 것이)다가 아니라 삶의 연장선상에서 현재성을 가져가야 함을 견지한다. 

    《2022 코미디캠프: 파워게임》에서 배선희, 〈비행기술: 토미에해방의식〉(2022) ⓒ손영규 [사진 제공=지금아카이브]

    배선희의 〈비행기술: 토미에해방의식〉은 이곳이 연극 무대임을, 일상이 연극 무대로 현재 전치되었음을 주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일종의 상담기법을 무대에 적용하는데, 이는 자신이 실제 겪은 여러 치료 과정의 경험을 전용한 것이다. 배선희는 일본 만화 작가 ‘이토 준지’의 〈토미에〉에 등장하는 사랑하는 남성에게 살해당하고 다시 살아나는 토미에라는 캐릭터를 현전시킨다. 배선희는 이를 먹어서 영원히 여성 살해의 굴레와 즉각적 윤회의 수렁에 빠지지 않는 삶을 기도할 수 있게 해달라는 토미에의 요청에 대해 그를 완전히 갈아서 먹어치우는 것으로 성사한다. 그는 9년간이나 섭식장애를 겪었던 지난 경험이 다시 복귀되지 않도록 입을 틀어막는다. 
    망상이라는 믿음은 토미에라는 캐릭터를 가능하게 하며, 토미에의 완전한 죽음, 곧 죽음으로서의 서사는 서사의 죽음으로서 변환되어 몸과 통합되는 과정에서, 텍스트는 형해화되며 신체 내부에 새겨진다. 나아가 신체 자체가 된다. 망상과 화의 경험은 새로운 신체로의 합성을 유도하며, 타자로서의 여성을 구원하는 서사로 수렴하는 대신에 나와 토미에의 교환을 통해 통합된 나를 생성한다. 곧 나의 확장된 ‘전체’를 구성하는 건 나의 경계선상에 있던 신체였던 나의 분리된 조각으로서의 토미에이며 토미에는 타자의 인육으로서가 아니라 증상으로서의 나를 봉합하는 대상물이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흡수 통합은 죽음충동 자체를 수면 아래로 잠기게 해서 거세하는 것일까. 

    《2022 코미디캠프: 파워게임》에서 신강수, 〈매너가 꼰대를 만든다〉(2022) ⓒ손영규 [사진 제공=지금아카이브](이하 상동)

    신강수의 〈매너가 꼰대를 만든다〉는 이전의 무대들을 참조하며 비교적 유연하게 현장의 분위기를 구성하는데, 이는 김은한 이후, 《코미디캠프》가 이전의 무대를 경험한 관객에게 일종의 학습 차원의 반복을 통해 이전의 것이 합성되어 감과 함께 이 무대가 끊임없이 현재성의 기호를 구성하여 하나의 무대 위에 공존하는 존재들의 계열체를 이뤄 나가고 있음을 주지시키는 것과 같다. 
    그의 첫째, 둘째 형이 장신이라는 사실로부터 그의 장애가 유전적이 아니라는 사실, 동시에 그러한 사실이 하나의 “섹스 어필”일 수 있음을 제시함은, 장애와 비장애의 현실과 욕망을 교차시키며 혼합한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사실 그는 자신의 발화가 장애에 대한 교육이 아니라 코미디가 되기를 소망한다. 장애가 이야기의 출발 지점이 되지만 결국 장애와 비장애의 거리를 확인시키는 방식을 거부하고자 한다. 
    신강수는 무대에서 주요하게 장애 혐오를 다루는데, 장애에 대한 현재의 달라진 위상차를 역사의 차원을 점검하며 이를 변화의 궤적으로 상정하여 일단 현재를 긍정하는 제스처를 취한다. 이준석 역시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과의 TV 토론을 촉발하며 장애(-혐오)를 수면에 끌어올린 역설적인 매개자로서 긍정한다. 예로 든 시위를 하는 장애인의 이야기와 같이 가시화된 것으로서 장애는 그 언어의 실질을 비가시적인 것으로 은폐하는데, 이준석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박경석이 같은 눈높이에서 서로를 마주 보며 토론을 할 수 있게 된 것을 그는 굉장히 긍정한다. 

    김은한의 〈상식적인 접근〉, 안담의 〈PowerOFF〉, 배선희의 〈비행기술: 토미에해방의식〉, 신강수의 〈매너가 꼰대를 만든다〉는 각각 관객의 창조, 삶의 반경을 결정하는 반려동물, 자기 치유로서의 문학, 장애의 재결정 등을 다룬다. 이 네 무대는 각기 다른 무대의 반복과 함께 연결되며 공연자 간의 느슨한 연대와 갱신되는 현재성으로 드러난다. 또한 《코미디캠프》는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의제가 교차하는 일종의 공론장으로서의 무대와 은밀한 기호의 유출을 통한 비밀 클럽으로서의 공동체를 오간다. 결과적으로 《코미디캠프》는 당면한 사회 현실에 어느 정도의 에고 트립이 전제되며, 관중의 정동과 관객의 윤리 사이에서 진동한다. 그렇게 닫히지 않는, 동시대성의 윤리적이며 미학적인 질문들을 수여한다.

    《2022 코미디캠프: 파워게임》에서 배선희, 〈비행기술: 토미에해방의식〉(2022) ⓒ손영규 [사진 제공=지금아카이브]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 일시: 2022.8.18.-8.28 (8.22 월요일 쉼), 8.20(토) 8시 수어,문자통역, 8.26(금) 8시 음성해설
    공연 장소: 용산 펀타스틱씨어터
    작.출연: 김은한, 배선희, 신강수, 안담
    기획.연출: 김진아
    음악: 배선희
    조명: 정유석 
    홍보 도움: 사랑해
    촬영: 손영규 
    수어통역: ‘공인수어통번역 잘함’ 김홍남, 최황순
    문자통역: ‘소리를 빚다’ 이시은, 박세원, 임정희
    배리어프리 자문: 이래은
    PD: 이선민 
    제작: 지금아카이브 
    후원: 서울문화재단, 서울특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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