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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미니 프로토콜, 〈부재자들의 회의〉: 배우에 관한 존재론
    REVIEW/Theater 2022. 11. 7. 14:12

    리미니 프로토콜, 〈부재자들의 회의〉 ⓒ2022 SPAF / 옥상훈.(이하 상동)

    리미니 프로토콜의 〈부재자들의 회의〉(이하 〈부재자들〉)를 채우는 건 관객들이다, 회의의 대리자를 자처함으로써 또는 대리자의 가능성을 전제함으로써. 부재를 상기시키는 각기 다른 10개의 스크립트가 있고, 이는 미리 녹음된 내레이션이 현재에 놓인다. 이들은 헤드폰을 끼고 소리를 하달받는데, 서류 봉투에 든 지시문 따라 읽기에서 시작해 인 이어 모니터로 매개하는 프롬프터 방식, 종이에 새겨진 글자를 보여주는 일종의 수동 자막 입히기, 움직임 스코어 수행 등으로 스크립트를 구현한다.
    스크립트는 물론 스크립트 ‘사이’까지 모든 과정이 예측된 절차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작품은 이미 구성된 바를 단지 구현하는 것이지만, 현장에서 누가 나올지―그것 자체가 의문시된다.―어떤 변수가 작동할지 약속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작품은 라이브니스의 요소를 극대화한다. 〈부재자들〉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지만 부재자의 현전을 상기시킨다. 따라서 〈부재자들〉은 배우로서의 관객의 독립된 온전한 현전을 시험하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여기에 없다는 사실‘만’―그 외의 사실은 대리자를 통해 모두 수행되고 있음―을 주지시켜 그가 연극 바깥의 현실에 너무나도 온전하게 현전함을 의심하지 않게끔 한다.

    연극은 현실 바깥에 또 다른 현실이 이해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듯하다. 현실‘들’을 통합한다. 커다란 네트워크 안에 세계는 연결돼 있다. 여기서 극장은 ‘현실’을 재현하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장소로서 존재한다. 연극 바깥의 현실이 연극 안의 순수한 현실로 이전된다는 환상이 가득하다! 
    더 많은 현전이 존재하며, 더 많은 존재가 현전한다. 전자는 부재자로 후자는 대리자로, 전혀 다른 두 존재가 통합되는 지점에서 의문시되는 건 대리자의 존재다. 부재자는 완벽히 침묵하면서 그의 말을 이전하고, 대리자는 완전히 말로만 존재하지만 그의 존재는 침묵해야 한다.

    이러한 완벽한 분리는 ‘연극’의 존재론을 완벽히 지시한다. 미리 존재의 말들이 쓰이고 배우는 그것을 온전히 매개하는 유령처럼 존재를 떠도는 존재일 거라는 지울 수 없는 거대한 상상. 실제 바로 앞에서 주어진 대본을 수행하기는 배우 오디션의 연기 자체와도 겹쳐지지만, 이러한 수행이 단지 그것을 수행하는 것 자체의 목적을 가질 뿐 완전함을 더 잘 가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모두의 입장 아래 놓이므로 이는 그 정반대의 효과를 가진다. 대리자‘들’ 안의 공생 관계가 생겨난다. 곧 배우 되기는 배우와 관객의 분리를 가정하기보다는 배우와 관객의 경계를 흩트리기의 차원으로 나아간다.
    따라서 의도하지 않은 현실, 내용적인 전개와 상관없는 현존 간의 관계가 만들어진다. 〈부재자들〉은 순수하게 스크립트를 관객에게 전달함으로써 배우를 관객이 대체하여 배우의 아우라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배우의 존재론을 수행하기’라는 일시적인 현존의 양태로 바꾸며 배우에 관한 인식론적 질문을 던진다. 더 적극적으로 배우에 관한 실험을, 배우에 관한 질문을 구성한다.

    〈부재자들〉이 갖는 ‘구멍’에 관한 내용적 진실, 서사의 개연성은 사실상 기믹에 가까워지는데, 이러한 이야기들을 어렴풋하게 꾀는 건 드라마투르기적 영역인 반면, 이를 관객 일반에게 특정적으로 수렴시키는 건 조금 더 적극적인 드라마투르기의 영역이 되기 때문이다. 남자들로 전유되었던 우주 비행에서 여자의 신체 변화를 탐구하는 우주인의 이야기나 온전히 남은 부위에 거울을 비춰 절단된 부위에 관해 뇌가 재인식하게 해서 환상통을 치료하는 장면 역시 부재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여기서 ‘부재’에 관한 정의는 첨예화되기보다 오히려 환원주의적인 구멍으로 모두 빠져나가는 데 가깝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배우들과 스태프가 이동하지 않는 선택과 말을 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대리하는 것은 다른 결의 윤리성이 작동하는 부분이다―뇌졸중으로 말을 할 수 없는 천체 물리학자의 이야기는 후자의 사례다. 인간 재생산을 막는 인류 멸종 운동을 통해 인류세가 가져온 지구 위기에 응전하려는 마지막 미국인의 사례 역시 ‘인류’라는 부재를 이야기하지만, 결국 앞서 간과되어 온 여성 신체에 대한 연구로서 페미니즘에 관한 서사가 지구 환경에 관한 주제로 비약하는 셈이다.

    결국 누군가를 대리/재현하는 것이 정치라면, 〈부재자들〉은 고대 그리스 원형 극장에서의 민주주의 제도로서의 연극의 한 기원을 소환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관객의 목소리가 ‘부재’하는데, 부재자들의 회의가 아닌 부재자들 각각의 서사는 대리자들의 목소리 없음으로 현상한다. 따라서 〈부재자들〉은 부재의 공백을 메우는 관객의 존재를 상정함으로써 연극을 관객에게 되돌려 주지만, 그 내용을 바꾸지는 않음으로써 관객에게 컨텍스트의 간극을 선사한다.
    이는 윤리에 대한 각각의 주제로 수렴할 수 있지만, 여기서 각자의 관점은 결국 공연은 외양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관객 스스로 내재화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무력해진다. 곧 누군가를 대리하기 위해 (윤리적인 차원에서) 관객은 배우를 선택하기보다 단지 이 공연이 완전한 부재로 닫힐 것을 걱정하며 배우를 자처한다. 거기에는 관객의 의미 역시 부재한다. 관객은 적극적이라기보다 정확한 사전 내용의 전달 자체를 여전히 수용하는 입장에 있다―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표면적으로는 수많은 연기 지망생들의 무대 경험의 기회를 얻는 차원에서 그것이 가능해지기도 한다.
    따라서 공연 초반에 환경을 위한 것이라는 공연자의 윤리를 내세우는 주의는 사실상 기믹에 가깝다. 이 같은 공연의 구성은 결국 배우와 무대라는 단순히 공연의 규약을 성립시키는 실시간 프로토콜의 시험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관객에게 양도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것은 배우를 제거하기보다 배우를 일차원적인 존재로 격하하고, 수행하는 존재로 재위치시키는 이중의 조작을 통해 가능해진다.

    리미니프로토콜은 여러 매체와 장소, 존재를 결합하며 배우를 전치하는 실험적 공연을 진행해 왔다. 그것이 성립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정교한 프로세스 구성과 관객을 향한 질문이다. 여기서 리미니프로토콜은 관찰자가 가진 윤리적 덕목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주의나 메시지 자체보다는 그 서사가 어떻게 현위치에서 연접될 수 있는지의 차원에서 서사를 감축하거나 분절하는 전략을 안고.

    이를 민주주의적 공론장을 가설하는 과정에서 도출되는 인류학적 리서치의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령 한국에서 〈100% 광주〉(2014)로 열린 〈100% 도시〉 시리즈에서 광주를 대표하는 시민 참가자 100명을 극장에서의 다양한 질문을 통해 여러 개성‘들’의 군집체로 분류하는 작업이나 개인 가정에서 불특정 다수가 군집해서 여러 질문에 대한 답변을 공유하는 〈유럽 가정 방문(Home Visti Europe)〉―이는 리미니 프로토콜에게는 통계학적 아카이브로 그 결과가 수렴된다.―의 경우들은 관객의 재설정이 민주주의적 주체를 경유하며 이뤄진다.

    여기에는 관객의 참여로 인한 완성이라는 데 초점이 있다. 여기에 적용되는 편집술은 사실 사회학적 통계의 진실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러한 데이터를 삐져나오는 주체의 목소리를 향해야 하는 것 아닐까. 〈부재자들〉은 참여자 전체가 참여하는 〈유럽 가정 방문〉이나 대표/재현의 역할을 사전에 부여받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100% 도시〉와 달리 현장 대리자 선출 방식을 통해 모두에게 열린 참여 가능성 아래 일부의 참여자로 공연을 이끌어 간다. 이는 조금 더 연극적이고 더 정교하고 구체적인 서사의 심층을 구성하는 반면, 결과적으로 공동체의 역량이나 민주주의적 참여를 기대한다기보다는 배우에 관한 비평적 제스처를 취하는 데 가깝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일정: 10.20(목)-10.21(금) 7.30pm, 10.22(토)-10.23(일) 3pm/7pm
    공연장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콘셉트·대본·연출: 슈테판 카에기, 다니엘 베첼, 헬가르트 하우크
    장르: 연극
    관람연령: 15세 이상
    소요시간: 120분
    초연: 2021 드레스덴 주립극장
    주최: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재)서울문화재단
    주관: (재)예술경영지원센터
    후원: 괴테인스티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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